기념식이란 도대체 누가 와야하며, 또 누가 위로 받고 추모 받아야하는가를 생각하며
신묘역 옆으로 난 길을 따라 타박타박 걸어 구묘역으로 갔습니다.

01.

구묘역이라고 불리는 3묘역에는
518광주민중항쟁을 비롯 민주화운동을 하시다 숨을 거두신 열사들이 누워계십니다.

02.

91년 강경대 열사의 죽음 뒤 뒤따르던 분신 중에서
노동자로서, 그리고 여성으로서 처음으로 분신하신 이정순 열사의 11주기 추모식이
조용하게 치러지고 있었습니다.

03.

사회자가 말했습니다.
이정순 열사가 분신했을때 바로 옆에 사진기자라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그런데 그들은 불을 끄기는 커녕 사진을 찍기에 바빴다고.
동료들이 달려가 불을 껐을땐 이미 늦어버렸다고.

그말을 듣고서 카메라를 들고 있던 손목이 갑자기 무거워졌습니다.

04.

많은 어르신들이 함께 자리하고 계셨습니다.
그 분들은 자식을 저세상으로 먼저 보낸, 그래서 불효자식을 둔 부모님들입니다.

05.

박종철 열사의 아버님(가운데 남색 양복),
이한열 열사의 어머님(푸른색 양장),
사진 속에는 안계신 강경대 열사의 부모님,...
미쳐 기록하진 못했지만 우리의 아픈 과거에서 자식들을 먼저 저세상으로 보낸 부모님들입니다.

06.

한 어르신이 참배하러 온 묘를 등지고 먼곳에 시선을 두고 계셨습니다.

07.

묘비 앞에는 그곳에 누워 있는 사람의 이름, 'OOO의 묘' 이렇게 쓰여져 있습니다.
묘비 뒤에는 약력, 사망경위
또는 가족들이 그곳에 쓸쓸히 누워있는 이에게 하고픈 말이 쓰여져 있습니다.

'엄마 편안이'
그곳에 누워있는 무덤 하나하나가 마음 아프지 않은 것이 없지만
이 짧은 말에 정말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았습니다.

08.

우리학교 86학번 선배님이신 양영진 열사.
'어머니 손톱을 다 깎아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88년 재료관에서 투신, 지금 그곳에 누워계십니다.

09.

박종철 열사의 죽음 뒤 각계각층에서 잇달았던 시위.
그들 중 한 시위에서 최루탄에 맞아 숨을 거둔 이한열 열사.

10.

연세대 95학번 노수석 열사.
대선자금 공개, 교육재정 확보를 외치던 96년 3월
경찰의 폭력 진압으로 숨을 거둔 노수석 열사.

그때 저는 대학 1학년이었습니다.
'열사'라는 말이 체감되지 않았습니다.
저보다 한살이 많은 선배들도 이야기 했습니다.
95학번 같은 동기가 숨을 거두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그렇게 나누었던 이야기들, 그리고 사람들.
지금은 어디서 살아가고들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노수석 열사는 그대로 그곳에 누워있는데 말입니다.

저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져 봅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지만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현실에서
무얼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부끄럽지는 않은지...말입니다.

518이 민주화 운동으로, 민중항쟁으로 이름을 가지면서
보상되었다고 합니다.
돈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떳떳하게 광주를 이야기하고,
광주에까지 발걸음을 둡니다.

그러나 정말 보상이 된 건가요?
과연 그것이 돈으로, 돈만으로 보상이 가능한 것인지 생각해봅니다.

그걸 안다면 그들도 그렇게 떳떳하게, 난척하며 광주에
518묘역에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겠죠.

518묘역행은 지금의 '나', 그리고 변함없는 '현실'을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여기서 '구묘역에서', 전체로 518묘역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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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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