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주년 기념으로 다양하게 열린 행사 가운데는
"광주 학살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규명하는 518 시민법정"도 있었습니다.

01.

518의 책임을 묻는, 518에서 미국의 책임을 묻는 시민법정이 도청 회의실에서 열렸습니다.
80년 5월 27일 새벽, 군의 본격적인 도청 진압작전이 시작된지 단 20분만에
시민군 사상, 전원연행으로 빼겨버리고만 도청에서 말입니다.

02.

그리 넓지는 않지만 사람들로 도청 회의실은 가득찼습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젊은 학생들을 중심으로 금남로에 설치된 대형 멀티비전으로
이 시민법정을 지켜보았습니다.

03.

이 재판의 재판장 세분중에 한분이신 대표재판장 최병모 님입니다.
이 재판에서 피고인으로 기소된 사람은
1980년 5월 당시 미국의 대통령 - 제임스 얼 카터,
주한미군 대사 - 윌리엄 글라스틴,
한미연합군 사령관 - 존 아담스 위컴,
미국방부 장관 - 헤럴드 브라운,
미 중앙정보국 국장 - 스탠스필드 터너를 포함하여 모두 8명입니다.

03.

주남마을 부근에서 있었던 계엄군의 무차별 사격에서의 유일한 생존자 홍금숙 님입니다.
홍금숙 님은 증인으로 나오셨습니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홍금숙 님은 오빠를 찾으러 나갔다가 돌아오던 중
집방향으로 가는 시민군의 차량을 얻어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때 차량 안에는 홍금숙 님처럼 가고자 하는 방향이 같아 차량에 탑승한 사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주남마을 부근을 지나던 중 무차별 계엄군의 무차별 사격을 받아
탑승인원 18명 중 3명만 살아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차례 사격이 끝나고 계엄군이 살아남은 3명의 신분을 확안하던 중
홍금숙 님을 제외한 두명의 소지품에서 대학생 학생증이 발견되었고
즉시 두명은 산으로 끌려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어 산에서 총성이 들려왔고, 홍금숙 님은 홀로 상무대로 끌려갔다고 합니다.

홍금숙 님의 증언을 임철우의 소설 <봄날>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책을 읽으며, 주남마을 총격사건 부분을 읽으며 얼마나 울었는지..
그래도 소설이라 생각했는데, 그때 유일한 생존자가 바로 이분이었던 것입니다.

04.

"피고인들은 기소된 내란 및 내란 목적 살인죄, 집단 살해죄, 인도에 반한 죄에 관하여 모두 유죄이다."
이것이 이 시민법정이 판결입니다.

이 한마디 말이 나오기까지 광주시민들은 20여년을 기다려왔습니다.
도청에서 열리는 시민법정을 시작으로
정식 법정에서 이 한마디 말이 세상에 어서 나오기를 기다려봅니다.
그것이야 말로 광주가 진정으로 바라는 보상이 아닌가 합니다.

여기서 '광주가 진정으로 바라는 보상'은 끝입니다.
신고
Posted by 토닥s

댓글을 달아 주세요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