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저는 615 남북공동선언, 남북정상회담의 내용을 잘 모릅니다.
그러면서 그날을 맞아 뭔가를 글쩍어 본다는게 우습긴 하지만
그날과 관련된 기억 한토막이 있어 나누고자 합니다.

2000년 6월 13일, 평양공항에 분단 50년만에 처음으로 이남의 비행기가 직항하여 도착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을 태우고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계획에 없었던 공항마중이 있었습니다.

남과 북, 두 정상이 만나 손을 맞잡았습니다.
잘은 기억이 안나지만, 김대중 대통령이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네요.
"이렇게 가까운 거리를 50년을 돌아왔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리고 두 정상이 손을 맞잡는 순간 눈물이 났습니다.
'내가 사는 동안 이런 순간이 오다니...'
제겐 헤어진 가족도, 찾아야할 가족도 없으며 전쟁에 관한 영향은 더더욱이 없는데 말입니다.

그때 저는 휴학생이었습니다.
늦잠을 자다 일어나 이 광경을 보았습니다.  세수도 않은채로.
시간도 잊은채, 멍하니 우리 분단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광경을 한참 바라보다가
얼만간의 시간이 지나고 저는 아르바이트를 가기 위해 준비를 했습니다.
TV를 틀어놓은채로, 간간히 TV에 시선을 두면서.

아르바이트에 가서는 오전의 감동도 잊은채로 일을 했습니다.
일을 마치고 해질녁,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타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앞에 두 명의 어르신이 서 있었습니다.

한 어르신이 말했습니다.
"니가 오늘 술한잔 하고 싶은 내 마음을 어째 알았노?"
"내 마, 오늘은 일도 손에 안잡혀서 쉬었다이가."

나머지 어르신이 말을 받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김대중이 평양가는 거 보니까 형님 생각나데예."
"그래서 일찍 정리하고 안왔는교."

처음의 어르신이 말을 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김대중이 평양가는 거 보고 맘이 울적해서 술한잔 하고 싶었다."
"이제 우리 것이 돈 없는 사람도 얼마 안있으면 고향 갈 수 있겠제?"
아마도 그 어르신은 이른바 '실향민'이었나 봅니다.
그러면서 대로에서 붉게 변한 얼굴을 감싸쥐는 것이었습니다.

신호가 바뀌는 것을 기다리면서,
그 대화를 뒤에서 듣고 있던 저는, 저는 두 어르신 뒤에서,
그 대로에서 울어버릴 뻔했습니다.
'이런거구나'
'정치고, 경제고 뭐고 이래서 통일이 되어야 하는거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작은 일렁임, 그러나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이유로
615 남북정상회담을 다시 느끼는 순간이었지요.
그렇게 마음이 촉촉하게 젖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TV에선 하루종일 두 정상의 첫 만남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공항까지, 공항에서 다시 이북의 공항까지.
지금치러지고 있는 월드컵 경기에서 득점의 순간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시간별로 정리하고, 장소별로 정리하고, 두 정상의 행보별로 정리하고.
다시 봐도, 보고 도 봐도 감동이 여전하더군요.
또 저에겐 낮에 두 어르신의 대화가 귀에 남았기에...

그때 인기가 가장 높았던 드라마가 바로 <허준>이었습니다.
그날도 원래는 드라마가 있는 날인데, 특별방송으로 드라마가 쉬게 되었지요.
그 사실을 알게된 엄마는,
"저것 때문에 <허준>이도 안하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에 저는,
"지금 <허준>이 중요하나, 엄마."라고 말했죠.
엄마는 처음보다는 줄어든 목소리로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저거는 하루종일 방송했다이가."
엄마에겐 분단 50년만의 남과 북, 두 정상의 만남보다 드라마 <허준>이 더 중요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엄마의 분단과 통일에 대한 생각을 탓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615 남북정상회담보다 드라마 <허준>이 개개인의 삶에 더 중요할지도 모르는건
엄마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었으니까요.
그것이 멀고도 가까운 우리의 분단과 통일에 대한 인식
그리고, 현실이었으니까요.

615 남북정상회담과 남북공동선언이 있고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월드컵으로 자치단체의 대표를 뽑는 전국지방동시선거도 묻혀버린 지금,
6월 15일을 앞두고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의 분단과 통일에 대한 생각은 그때보다 얼마나 달라졌을까.'

드라마 <허준>보다 더 강력한 월드컵이 온 나라 사람들을 휘어잡고 있는 지금 말입니다.


여기서 '615 남북정상회담과 드라마 <허준>'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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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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