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인가를 아이에게 가르치기란 참 어렵다.  밥 잘먹기, 말하기 심혈을 기울여도(?) 참 생각만큼 따라와주지 않는다.  그런데 어떤 것들은 나도 모르는 사이 아이들은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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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가 요즘 "leave it(그냥 둬)"라는 말을 지비에게 잘 한다.  어떤 상황이었던 간에 그 말이 별로 좋게 들리지는 않는다.  이 말은 주로 지비가 누리가 원하지 않는 행동(장난감을 치워버린다거나 음식을 강요할 때)을 할 때 나온다.  그 말이 어디서 왔을까 가만히 생각해봤더니 내가 한 말이다.
누리가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해서 울게 되면 내가 지비에게 했던 말.  누리를 더 많이 겪으면서 생긴 나름의 방법은 동의와 설득이다.  장난감을 치워야 할 때 꼭 먼저 말한다.  "장난감 치운다", "장난감 치울래?", "장난감 치우자~".  지비는 그런 과정 생략하고 행동에 먼저 들어가니 누리가 운다.  그때마다 내가 했던 말이었다.

더 할 말이 없다 -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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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며칠 누리가 어린이집을 갈 때 스쿠터를 이용했다.  늘 시간에 쫓겨 유모차에 넣고 바쁘게 갔다.  하지만 언제까지 유모차 신세를 질 수도 없고, 유모차를 끌고 바쁘게 걷는 샛길이 나 혼자서도 가기 싫은 길이었다.  사무실들이 몰려 있는 뒷길이라 사람들이 늘 줄지어 담배를 피우고 있고, 늘 동전을 구걸하는 두 명의 노숙자가 있다.  스쿠터를 타기에도 길이 험했다.  그에 비해 주택들이 있는 앞길은 스쿠터를 탈 수 있지만 약간 멀었다.  그래도 마음먹고, 이제 비도 적은 계절이니 스쿠터를 태워 앞길로 다니기로 했다.

다니지 않던 길을 가다보니 연이틀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와 엄마를 뒤따라 가게 되었다.  주택가와 차도를 지나 공원안에 들어서니 아이가 길을 벗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봄에 한창 피는 수선화(daffodil)을 하나 둘 꺾는다.  하나 둘에서 그치겠지 싶었는데 아이는 꺾고 버리기를 반복하며 공원을 가로 지른다.  어이가 없었다, 나만.  그 엄마는 그 행동에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빨리 가자고만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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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의 존재를 알게 된 건 그 이전이다.  어린이집에서 간식으로 우유를 준다.  그런데 마시지 않은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갈 때 자유롭게 하나씩 들고 가기도 한다.  그 아이가 어린이집을 나설 때 우유를 들고 나섰다.  나는 누리를 유모차에 넣고 그 모자를 뒤따르고 있었다.  어린이집 옆 공원으로 들어설 때 아이가 마시던 우유팩을 망설이지 않고 공원 잔디밭을 향해 던졌다.  바로 3m 앞에 쓰레기통이 있었는데 말이다.  그때도 그 엄마는 아무말하지 않고 아들을 잠시 보고 섰다 갈길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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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쓰레기를 버리고 공원의 꽃을 꺾어 버리기를 반복하는 아이의 행동은 부모에게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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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교육의 공간에 들어가니 내 아이만 잘 돌보고 가르치는 게 전부가 아니더라는 지인의 말이 떠올랐다. 내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서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도, 줄 수도 있으니.  그러면 내가 그 아이에게 한 마디 해야하는데, 아마 어린이집 내부였고 엄마가 옆에 없었다면 아이에게 말을 붙였을 것이다.
사실 그 엄마는 말을 붙이기에 좀 무서운 포스다.  "좀 그래.."라고 이 상황을 설명하니 지비가 "어떻다는 말이야?"하고 되묻는다.  여러 가지 설명을 덧붙여도 선명하지 않다.  하기 싫은 말이었지만 한 마디로 "look like people from estates"라고 말하니 지비가 이해한다.  한국말로 풀자면 '임대주택(소셜하우징)에 사는 사람'이다.  이 말에 불편해할 사람도 있겠지만, 한국과 달리 영국에선 가난하다는 말이 거칠다는 말과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올 때가 많다.  슬프게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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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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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쪼꼬미엄마 준 2016.04.15 22:39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아... 정말 맞습니다.
    엄마아빠는 아이들의 거울이자 선생님이더라구요.
    저도 전에 책은 집어 던지고 스마트폰을 손가락 하나로 조심스럽게 (저를 똑같이 흉내내며) 내리던 저희 아가를 보고 엄청 반성했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리 좋은 거울은 못되는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제 아이도 그렇지만 다른 아이들이 좋지 않은 행동을 했을 때 저희아이와 함께 그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저도 함부로 그런 행동을 저지하거나 타일르기 어려울 것 같아요. 작은 행동같지만 사실 큰 용기가 필요한듯 합니다. (무서운 포스를 가진 엄마가 함께 있다면 더더욱 그렇겠죠)

    마지막 부분에 가난 = 거침 의 등식이 성립하는 것이 약간은 안타깝네요.
    문화적인 것이 있겠습니다만, 그렇다고 이해가 안가는 것도 아닌지라 더 안타깝습니다.

    • 토닥s 2016.04.15 23:31 신고 Address Modify/Delete

      남편은 누리가 미운 행동을 할 때마다 그 행동을 어린이집에서 배웠다고 생각해요. 그런 것도 없지는 않지만 우리에게서 온 것도 있더란 부끄러운 고백. 반성해요.

      런던에 와서 사람들 사는 모습을 보면서 찜찜한 게 그 부분이었어요. 한국에선 가난한 게 위험한 것과 통하진 않는데 여기는 그렇더라구요. 물론 그것이 미디어가 만들어낸 이미지가 상당 부분 많은 영향을 미쳤겠지만, 시간과 함께 경험해보니 그렇더군요. 참 씁쓸한 사실이예요.

  2. Mia 2016.04.26 05:17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얼마전 제 아기가 토들러 그룹에서 남자 아이(머리하나정도 더 큰아이)가 놀고 있는 부엌모형 장난감으로 가서 평소처럼 문 열고 닫기를 하는데 그 아이가 자기 노는 것을 방해 했다고 느꼈는지 우리아이 머리를 노려보며 "No"라고 고함을 치더라구요.몇번이나..저러다 한대 치는 거 아닌가 해서 초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문이 4-5개 있어서 제 아기에게 "너는 이쪽 문만 가지고 놀아라. 다른 친구들은 다른문 가지고 놀게"라고 말한 터였고 제 아이도 그러고 있는데 그아이가 소리를 지르니까 당황이 되더라구요. 마침 그 아이 엄마가 와서 "너보다 어린 아기한데 그러지 마라" 했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share'라는 것을 인식시켜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어요. 저도 가끔 제 아이가 놀던 것을 다른 아기들이 가져가거나 만지면 "괜찮아 같이 가지고 노는거야"라고 말하거든요.사실 거기 있는 물건들이 개인소유는 아니니까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아이는 그 다음주부터 보이지 않더라구요.

    제가 그 상황에서 그 아이에게 한마디 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어요..사실 안 한건지 못 한건지 모르겠습니다. 그 아이에 대해 잘 모르는 상황에서 뭔가를 말한다는 것이 옳은 일인지 모르겠더라구요.특히나 '우리'가 아닌'나'를 먼저 배우는 이나라에서 '내 아이'가 아닌 '남의 아이'에게 내 의견을 말해도 되는 건지 고민이 되긴 합니다.

    • 토닥s 2016.04.26 18:46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아마 조근조근 이야기했어도 그 아이는 이해하지 못했을꺼예요.ㅎㅎ
      제 경우는 그런 경우가되면 "다른 거 하자"하며 아이를 다른 곳으로 이끌었어요. 그런데 지금와서 조금 후회되는 부분은 누리가 그런 상황이 되면 물러서버려요. 그래서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새치기를 해도 나만 쳐다보며 슬퍼하는.(ㅜㅜ )
      지비는 그런 아이의 성격을 걱정스러워해서 어린이집 상담시간에 이야기했지요. 교사는 "stand up" - 자기 것을 챙기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하더군요.
      우리는 좋게 말해 '양보'를 가르친다고 생각하지만 여기선 'my turn'을 지키도록 하는게 내 아이에게도 다른집 아이에게도 옳다는 문화인거죠.
      그 아이에게 let's play together하면서 같이 놀 수 있도록 돕는게 좋은 것 같아요. 애들이 share 싫어해요.ㅎㅎ

      내 아이와 마찰이 일어나는 경우라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90프로쯤 상대방 부모도 이해합니다, 경험상으론. 10프로쯤 이해못하는 부모도 있긴한데 그건 그쪽 탓이지요.ㅎㅎ

      엄마도 아이도 stand u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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