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언제나처럼 한겨레신문을 펼쳤습니다.  
정치면, 국제면을 보면서 속으로 욕하고 그러면서 한장한장 넘기던 중
이 기사를 읽고 신문을 덮고 말았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프고, 두 눈이 너무 뜨거워져 계속해서 읽을 수가 없었답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신문을 펼쳤습니다.

'우리 쌀 살리기 100인 100일 걷기'
이 걷기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 신문기사를 읽고서, 그 뒤로 잊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마치 농사를 짓는 일처럼 힘들고 외로운 길을 계속해서 걷고 있었네요.
그들의 싸움은 쌀농사 짓는 '그들만을 위한 싸움'이 아닌데
우리가 너무 그들을 힘들고 외롭게 한 것은 아닌지
부끄러움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쌀시장이 개방되면
처음 국제자본은 속을 다 내어줄듯 싼 값으로 쌀을 제공할껍니다.
그 값싼 쌀에 결국 우리 농민들의 쌀농사가 깡그리 무너지고 나면
그때는 결코 싼 값으로 쌀을 제공받을 수 없다는 걸 모두가 아는데,
왜 우리 정부만 모르는걸까요.
아니, 알아도 두손으로 귀 틀어막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언젠가 노무현도 했던 말을 하겠죠.
세계화의 흐름은 이미 막을 수 없는 대세라고.
정말 막을 수 없는 대세입니까?

네, 막을 수 없는 대세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막을 수 없는 대세'라는 사실 외에 또하나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냥 앉아서 맞아야 하는 것이 세계화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보다 먼저 경험한 국가들이 한목소리로 내는 외침,
그리고 오늘로 24일째 걷고 있는 그들의 외침에 귀 막지 말아야 합니다.
아마도 이것이 오늘은 걷지 않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그리고 해야하는 첫번째 일입니다.


"이 길만이 살길이기에… 쓰러져도 멈출순 없어요"

20일 경남 함양-전북 남원 간 국도. 장맛비가 물러가고 다시 뙤약볕이 불처럼 온몸을 덮친다. 아스팔트가 갱엿마냥 물러지면서 발을 붙들어메는 것 같다.

지난 1일 전남 진도 용장산성을 출발해 ‘우리 쌀 살리기 100인 100일 걷기’를 시작한 지 20일째. 전국을 걷는 1800㎞의 대장정 가운데, 이제 겨우 300여㎞를 걸었을 뿐이다.

‘농민 포기 정책’이나 다름 없는 정부의 ‘농어업·농어촌 특별 대책’을 보고 기가 막혀 농업 회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나섰지만 정경식(44)씨의 마음은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농사꾼이 농삿일을 하지 않고 길 위에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한창인 농삿일을 아내 혼자 어떻게 감당하고 있을까. 그러나 20여명의 일행들이 하나같이 자신의 일을 팽개쳐두고 걷고 있다. 유선규씨와 문우정씨는 걷는 이들의 밥을 해주겠다고 자원하고 나섰고, 실상사의 서림 스님과 학해 스님도 하안거를 대신해 거리로 나섰다.


△  정경식씨가 쉬는 틈틈이 생각을 정리하며 메모하고 있다.

그래서 정씨는 자신의 걱정만을 내색하긴 어렵다. 그제 진주를 지나칠 때는 엎어지면 코닿을 거리인 사천에서 혼자 살고 계신 어머니도 찾아뵙지 못하고 지나쳐야 했다.

발등이 아파서 전날 침을 맞았던 한내(14)는 다리가 더욱 아픈 모양이다. 전남 보성에 살며 학교에 다니는 대신 ‘홈 출석 수업’을 하는 한내는 농사를 짓는 아빠의 권유로 혼자서 참여했다. 자기보다 더 어린 평화(10)의 재롱에 한내가 힘이 생기는 모양이다. 평화는 전남 곡성에서 농사를 짓는 아빠를 따라 나섰다.

불볕 더위에도 걸을 수 있는 것은 아름다운 산과 들이 있기 때문이다. 심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모들이 지리산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춤을 추며 인사한다.

고추와 콩들의 싱그러운 냄새와 그들이 뿜어내는 산소를 마실 때마다 지친 세포들이 다시 생동한다. 들판과 야산 사이에 시골마을이 그림처럼 앉아 있다. 농사로 자식들을 모두 공부시켜 도시로 보냈을 노인은 논풀을 뽑다가 흙 묻은 손을 흔든다.

한내는 그렇게 힘들게 걷고 있으면서도, 엄마 아빠에게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고 엽서를 썼다. 평화도 경치를 즐겨가며 “이런 시골마을들이 없는 세상은 상상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과연 저 아이들에게 저 들판과 시골 마을을 제대로 물려줄 수 있을까. 정씨는 답답하기만 하다. 지난해 말 시작된 세계무역기구(WTO) 새 라운드가 예정대로 타결돼 2년 뒤부터 쌀 수입이 자유화하면 500만 농민의 90% 이상이 쌀 농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고, 머지 않아 한내네도 평화네도 살 길을 찾아 시골을 떠나고 나면 들판도 시골 마을도 유령의 땅으로 바뀔지 모른다.

외환위기 때 제조업들이 부도로 쓰러지면 나라가 망한 듯 전국민이 난리였지만, 농민들이 망해가는 것을 보면서도 누구 하나 귀기울이지 않는다. 정치권도, 매스컴도 이 고독한 장정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중략)

이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은 역시 농민들 뿐이었다. 지난 12일 전남에서 경남으로 진입할 때는 경남의 농민들이 자기들도 차를 타고 맞을 수 없다며 3일 간 걸어 와 맞이하는 것을 보고, 가슴으로 눈물을 쏟아냈다. 이 날도 실상사와 남원 농민회 등에서 40여명이 점심 무렵 합류해 함께 걸었다.

남원의 농민들이 일행을 환영하려고 산내복지회관에서 마련한 주민간담회에 앞서 한 소리꾼이 흥부가를 불렀다. 놀부에게 쫓겨나는 흥부가 “형님, 나는 어디로 가야 한다는 말입니까”라고 물으니, 놀부는 “이 놈! 내가 니 갈 곳까지 알려주랴”고 나무란다. 농민들은 대책없이 내쫓기는 자신들의 처지를 보는 듯 절로 한숨을 쉬었다.

실상사 주지 도법 스님은 “우리 농민들이 모두 쌀농사를 포기하고 나면, 억만금을 줘도 밥 한 그릇 얻을 수 없는 시대가 반드시 오고 말 것”이라고 피를 토하듯 경고했다. 우리쌀, 우리 생명을 살리려고 농사꾼들이 막막한 길 위를 걷고 있다. 남원/조연현 기자cho@hani.co.kr
(한겨레 2002/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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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이 길만이 살길이기에…'는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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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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