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춘의 여론읽기
- 이회창 후보의 언론관

여성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그리려면 아름다운 여자를 사랑한 경험이 있어야 한다. 괴테다운 고백이다. 언론의 자유도 나름의 아름다움을 지닌다며 그 말을 빌린 사상가가 있다. “언론의 자유를 옹호하려면 반드시 그것을 사랑한 경험이 있어야 한다.” 19세기에 권력의 언론탄압에 맞서 신문기자 카를 마르크스가 쓴 논설이다. 마르크스라면 ‘빨갱이 원흉’이거나 기껏해야 ‘전체주의 철학자’로 여기는 윤똑똑이들에게 언론자유를 외친 마르크스의 진실을 들려주기란 내키지 않는 일이다. 돼지에게 진주는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2002년 오늘 뜬금없이 언론자유 더 나아가 공정보도를 부르대는 무리를 보면서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언론을 사랑한 경험이 있는가. 심지어 과거 군사독재 시절은 물론이려니와 현재도 언론 내부의 독재자인 신문사주에 맞서 단 한번도 언론자유를 위해 입 벙긋하지 않은 인사들이, 아니 과거엔 군사독재에 용춤춘 어용방송의 앞잡이였고 지금은 신문사주의 ‘수호자’들까지, 수염을 부르르 떨며 언론자유와 공정언론을 외쳐댄다. 소가 웃을 기막힌 역설이다. 한나라당이 최근 방송사들에 ‘불공정 보도 시정촉구’ 공문을 보내고 특히 <문화방송>을 국정감사하겠다며 감사원법 개정에 나선 풍경이 언론계 안팎에 우스개가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문은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과 관련해 정연씨 얼굴을 내지 말 것과 ‘이회창 후보의 아들’이란 수식어를 쓰지 말라고 요구했다. 단순한 야당이 아니라 국회 과반의석을 지닌 권력정당이 방송사에 후보 아들의 의혹과 관련해 ‘보도지침’을 내리는 오만은 우리를 아연케 한다. 우리 사회가 역류하고 있다는 단적인 증거이다.

기실 한나라당과 <조선일보>가 김대중 정권과 연결지어 문화방송을 공격해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김중배 사장은 청와대 낙점 인사가 아니다. 더구나 문화방송 보도국의 현재 의식수준도 과거와 사뭇 다르다. 문제는 수구세력의 공세에 문화방송이 알게 모르게 ‘자기검열’을 할 우려가 크다는 데 있다. 하여 분명히 짚고 넘어가자. 지금 문화방송 ‘김중배 체제’가 비판받아야 한다면 수구세력의 비리를 너무 파헤쳐서가 아니라 더 파헤치지 않아서다. 이 땅의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수구정당·수구언론에 너무 비판적이어서가 아니라 정반대로 어중간히 비판적이어서이다. 결코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론이 아니다. 김 사장 스스로 문화방송에 취임하며 ‘혁명적 선출’을 강조했다면 공영방송으로서 더 곧은길을 걸어야 했다. 그랬다면 시시콜콜 시비 따위는 오히려 줄지 않았을까.

물론, 사태의 본질은 한나라당에 있다. 병역비리는 후보 스스로 정계은퇴와 맞물릴 만큼 주요 사안이다. 그런데도 후보 아들임을 적시하지 말라거나 국감으로 본때를 보이겠다는 발상은 군사독재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뿐만인가. 공영방송의 고갱이를 둘러싼 갈등엔 정작 눈돌린 채 사소한 잘못을 꼬집어 마구 부풀리는 지식인들의 글도 곰비임비 쏟아진다. 딴은 국회의원이나 전·현직 언론인과 언론학자들이 그렇게 못할 까닭도 없다. 언론사 사장의 ‘법적 살인’에 가담한 인물이 아무런 반성도 없이 대통령을 하겠다고 언죽번죽 나서는 상황 아닌가.

하여 민주언론운동의 모서리를 지켜온 언론인으로서 정색을 하고 묻는다. 취재기자에게 창자를 뽑아버리겠다는 ‘협박’은 술자리의 ‘만용’으로 묻어두자. 그러나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의 처형판결에 배석판사로서 이회창씨는 진실을 밝힐 의무가 있다. 자신의 아들 비리 의혹 보도를 통제하려는 한나라당 공문에 후보의 ‘소신’은 무엇인지도 분명히 밝혀라. 답할때까지 벅벅이 묻겠다. 언론인 처형에 동참하고 아들 관련보도에 벌써부터 ‘재갈’을 물리겠다는 인사가 대통령이 된다면 대한민국의 언론은, 아니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겠는가. 손석춘 논설위원
(한겨레 2002/09/04)


'돼지에게 진주, 소가 웃을 역설'.
표현이 정말..(^^ ):

손석춘씨를 지지하지만 그의 글을 읽는 자체는 즐겁지 않아요.
찬찬히 읽다보면 내용이 마음에 와닿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칼럼은 읽는 재미가 없더라구요.
그런데 오늘은 '푸하' 소리가 날 정도로 웃어가며 보았습니다.
사실, 웃을 일은 아니지만 그만큼 시원했다는 것이죠.

그런건가 봐요.
할 것 같은 사람에게 더 쓴소리하고.
전혀 하지도 않을 사람들에게 안한다고 뭐라 그러면 버럭 화를 내도
할 것 같은 사람들은 그 쓴소리도 가슴 깊이 새길 것 같습니다.

'김중배 & 손석춘' CHEERS! (^^ )v


여기서 '소가 웃을 기막힌 역설'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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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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