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대통령에 좌파 룰라

브라질 헌정사상 첫 좌파 대통령이 탄생했다. 브라질 최고선거위원회는 27일(현지시각) 이날 치러진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노동자당의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이하 룰라·57) 후보가 집권 사회민주당의 주제 세하(60) 후보를 누르고 새 대통령에 당선됐다고 발표했다.

[사진]27일 치른 브라질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당선된 노동자당의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후보가 28일 새벽 최대 도시 상파울루의 거리로 몰려나온 지지자들의 환호에 두 손을 들어 답하고 있다.(상파울루/로이터 뉴시스)

98% 개표 결과 룰라 후보는 전체 유효투표 수의 61.5%인 5200여만표를 얻어 1998년 페르난두 엔리케 카르도수 현 대통령의 최다득표 기록(3500여만표)을 경신했다. 세하 후보는 38.5%를 얻는 데 그쳤다. 룰라 후보는 수만명의 지지자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평화의 세계를 세우기 위해 미주에서 브라질이 훌륭한 구실을 할 것으로 믿는다”라며 특히 “시장이 우리가 시장에 보여주게 될 존경심과 같은 정도의 존경심을 갖고 움직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철강 노동자에서 강력한 좌파 정치인으로 성장한 그는 89·94·98년 세차례 대선 후보로 나섰으나 국제자본과 시장 등의 강한 거부에 부닥쳐 낙선한 바 있다. 그는 지난 6일 치른 대선 1차투표에서 46.5%를 얻어 1위를 했으나 과반수 득표에는 실패해 2위를 한 세하 후보와 결선투표에서 맞붙었다. / 이창곤 기자 goni@hani.co.kr
(한겨레 2002/10/29)


브라질 좌파대통령 3전4기 '담금질'

■룰라 당선자의 인생역정

4차례의 도전 끝에 마침내 ‘세계 제9위 경제대국’인 브라질의 대통령이 된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이하 룰라·57)는 말그대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구두닦이 소년에서 노동운동의 대부로 성장해 ‘브라질 헌정사상 첫 좌파 대통령’에 오르기까지의 인생역정은 한편의 잘 짜여진 인생 대역전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사진]27일 실시된 브라질 대선에서 압승한 룰라(가운데) 노동자당 후보가 투표하기 위해 자택을 나서기 전 그를 찾아온 어린이들과 함께 손으로 승리의 ‘브이’자를 그려 보이고 있다.(상파울루/AP 연합)

▶유·소년 시절=룰라는 1945년 10월27일 가난한 농부의 8남매 가운데 일곱째로 태어났다. 궁핍한 집안 사정으로 7살 때부터 거리에서 땅콩이나 오렌지 등을 내다팔지 않으면 안됐다. 아홉살 때 아버지가 돈을 벌러간다며 집을 나가버려 북동부 페루남부쿠에서 최대도시 상파울루의 뒷골목으로 이주해 단칸방에 아홉식구가 뒹굴어야 했다. 이런 찢어지는 가난으로 인해 그는 10살이 돼서야 겨우 글을 깨쳤으며 초등학교조차 졸업을 1년 남겨두고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소년 룰라는 이후에도 학교 문턱을 넘어보지 못했지만 주경야독의 생활로 고교 졸업 자격증을 땄다. 세탁소 점원, 구두닦이, 환경미화원 등 벌이를 위해 닥치는 대로 일하던 그는 14살 무렵 자동차공장 선반공으로 취직하면서 본격 노동자의 길로 나가게 됐다. 19살 때는 볼트를 수리하던 야간작업을 하다 동료의 실수로 프레스에 의해 왼쪽 새끼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철의 노동운동가=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군사독재 정권 치하인 66년 룰라는 한 금속산업 공장에 취업했지만 당시만 해도 오직 축구클럽에만 관심을 보인 비정치적인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노동조합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형 치코에 의해서였다. 사회주의자인 형은 그에게 지하유인물을 읽도록 하는 등 이른바 의식화 작업을 했다. 열심히 공부해 딴 고교 졸업 자격증을 인정해달라고 고용주에게 요구했으나 거부당한 것도 노조 활동의 동기가 됐다. 이후 69년 금속노조 대의원, 72년 사회복지부문 제1비서, 75년 10만 금속노동자의 대표인 노조위원장 당선 등 룰라는 노동운동가로서 꾸준히 성장했다. 노조위원장에 재선된 78년에는 브라질 노동운동사에 새 역사를 썼다. 뛰어난 지도력과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10여년 동안 파업없이 양순하기만 했던 10만여명의 금속노동자를 움직여 그해 5월 이 나라 노동운동사와 민주 노정에 큰 고비를 이루는 노동자대투쟁의 불꽃을 당겼던 것이다.

▶3전4기의 대선 후보=80년 2월10일 룰라는 상파울루 주변 공단 노동자집단을 중심으로 노동자당을 만들어 지도자가 됐다. 지식인 중심의 브라질공산당과 마오쩌둥주의 계열 공산당 등 기존 좌파에 한계를 느낀 데다 노동자 대중의 실질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한 정당정치를 통하지 않고서는 노동자들의 처우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였다. 이와 함께 그해 4월 임금인상과 노동조건 개선을 외치며 다시 파업을 벌이는 등 노동운동의 고삐도 늦추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17명의 노조 지도자와 함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투옥되기도 했다.

룰라는 이후 86년 최고의 득표를 기록하며 하원의원에 당선하면서 급성장해 89년 노동자당의 대선 후보로 나서 토지개혁 등 급진적 정책을 제시하며 결선투표까지 나가는 등 선전해 브라질은 물론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는 94·98년에도 잇따라 대선 후보로 출마했으나 모두 1차 투표에서 아쉽게 떨어졌다. 69년 섬유공장 노동자이던 부인 마리아를 간염으로 잃고 난 뒤 혼자 살던 그는 지금의 부인 마리사 레티시아와 재혼해 5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후략) / 이창곤 기자 goni@hani.co.kr
(한겨레 2002/10/29)



10월 28일을 기다려야겠다고,
잊지말고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잊고 있었습니다.
오늘 신문에서, 지구반대편 브라질에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10년 프로젝트(?) 그리고 20년 프로젝트(?)면
브라질의 지구반대편 이곳에도 희망은 있다고 봅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긴호흡이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한겨레 기사 읽기
- "브라질 대통령에 좌파 룰라" -> 바로가기
- "브라질 좌파대통령 3전4기 '담금질'" -> 바로가기
- "룰라의 입맞춤" -> 바로가기



여기서 '철의 노동자, 룰라 브라질 대통령 당선'은 끝입니다.
신고
Posted by 토닥s

댓글을 달아 주세요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