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 캠핑을 다녀왔다.  한국에서도 마지막 캠핑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분명한 건 10년도 더 됐다는 것, 캠핑에 취미를 둔 지비의 친구 발디와 사라 덕분에 지난 5월에 이어 두번째로 캠핑을 가게 됐다.  캠핑 마지막 날인 월요일 우리는 일찍 런던으로 돌아왔다.  원래는 캠브리지를 거쳐 오려던 계획을 바꾸어 토요일 아침 캠핑지로 가는 길에 캠브리지를 구경하고, 마지막날인 월요일은 노팅힐 카니발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첫해 런던에 도착하고서 정신을 차리고보니 여행책자에서 본 노팅힐 카니발이 벌써 지나가 있었다.  작년 여름은 한국에 있었고.  그때 노팅힐 카니발에 간 지비가 나에게 전화를 했었다.  내년에 꼭 같이 오자고 했던 그 카니발.

처음 노팅힐 카니발 이야기가 나왔을때 지비는 '가보자'라고는 답했지만 그렇게 반기지는 않았다.  지비는 내가 그렇게 좋아할 스타일의 카니발이 아니라고.  그래도 처음이니까 가보자고 했던 것인데, 역시 벌써 지비는 나에 관해서 많이 알고 있는지 지비의 의견이 맞았다.  노팅힐 카니발은 내가 좋아할 수 있는, 즐길 수 있는 성격의 카니발이 아니었다.  사실 카니발이라는 게 모두 그렇겠지만.

런던에 도착하고서 노팅힐로 가려고 준비를 하는데 지비가 창가로 와보라고 했다.  창가로 가보니 멀리서 쿵짝거림이 들려왔다.  노팅힐 카니발에서 오는 소리임이 분명했다.  들뜬 기분으로 노팅힐로 가는 버스를 탔는데, 몇 정거장 못가서 버스가 더 이상 노팅힐 방향으로는 가지 않는단다.  내려서 걷기로 했다.  마침 갑작 카니발행 제의에 동의한 실바나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즐겁게 걸었다.  좋은 집들을 구경하면서.  그것도 잠시, 카니발의 끝 부분에 해당하는 무리를 만나게 되는 순간부터 우리 사이 대화라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각종 바나 클럽에서 마련한 스피커에서는 내 심장이 감당할 수 없는 큰 음악이 흘러나왔다.  스피커 앞을 지날땐 심장이 자기 박동을 잃고 그냥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대로 뛰었다.
길거리엔 이미 만취한 사람들이 술과 음악에 온몸을 맡긴채로 흐느적 거리고 있었다.  우리는 악명 높은 카니발의 소매치기 때문에 휴대전화도 집에 놓고 교통카드와 동전만 주머니에 넣고 온터라 흩어질까 손을 꼭 잡고 걸었다. 
긴 카니발의 행렬이 노팅힐을 굽이굽이 돌고 있었다.  사실 카니발의 행렬은 많은 인파 때문에 앞으로 나간다는 느낌보다는 선 자리에서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는 격이었다.  우리는 그곳 지리가 익숙한 지비를 따라 동네를 가로질러 카니발의 행렬 앞부분으로 갔다.  그곳에서는 카니발다운 퍼포먼스를 볼 수 있었다. 
결국 두 시간만에 많은 사람과 소음에 지쳐버린 우리는 집근처 Chiswick으로 가서 커피나 맥주를 한 잔 하기로 하고 노팅힐을 떠났다.  그런데 사실 주변의 모든 도로와 대중교통 수단이 통제된 상태라서 꽤 먼거리를 걷고서, 그리고 약간 기다리고서야 겨우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노팅힐 카니발이 규모면에서나 유명한 것은 사실이지만 개인적으론 그렇게 추천할만한 볼거리는 못되는 것 같다.  실바나와 나는 런던에서 한 번이면 족하다고 결론내렸다.
길거리엔 음악과 춤이 넘쳐나지만 동시에 사람과 술 그리고 상술도 넘쳐난다.  노팅힐 카니발 행렬은 상업적인 클럽이나 바에 의해서 준비된 것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노점에서 각종 음식과 술을 판다.  우리는 어떤 가정집 앞에 긴 줄 하나를 봤다.  뭔가 하고 들여다봤다.  임시로 설치한 화장실이 턱없이 부족하다보니 그곳에 집을 가진 사람들은 1~2파운드를 받고 화장실을 개방하고 있었다. 
이런 한시적인 노점을 제외한 거의 모든 노팅힐의 가게들은 문을 닫았다.  대부분의 상점들은 도로편 유리를 나무 판넬로 덮고 문을 닫았다.  작년에 폭력사태가 있어 그런 것이기도 하겠지만, 워낙 술에 취한 사람들이 벌이는 사건사고가 많다보니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은 것이었다.  그리고 경찰들은 고급 주택가로 향하는 골목을 막고서 카니발의 행렬이나 그 일부에서 떨어져나온 취객들이 주택가로 들어서는 것을 막고 있었다.

런던의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지만 노팅힐은 전통적인 런던의 부자들과 가난한 커리비안들이 뒤섞여사는 동네다.  일년에 한 번 그 동네에서 주로 커리비안들이 늘어지게 술마시고 춤추고 즐기는 것이 카니발인데, 지금은 그 빛깔이 많이 흐려져 취객과 상술만 넘쳐난다는 것의 지비의 의견.  8월초에 구경갔던 라틴 아메리카 페스티벌과 비교했을때 술과 춤을 즐기지 않는 나로서는 참 좋아하기 힘든 카니발이었다.  한마디로 '일탈' 그 자체였는데, 나는 '일탈'에도 긍정성이 있다고 보는 사람이지만, 이 카니발의 일탈엔 어떤 긍정성이 있는지 알송달송하다.

영국은 8월 마지막 월요일 휴일을 끝으로 크리스마스까지 더는 휴일이 없다.  이 연휴를 끝으로 학교는 새 학기가 시작되고 일터는 여름휴가 시즌을 끝내고 업무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우리도 커피 한 잔 하고서 산책으로 연휴인 긴주말을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산책 길 끝에 발견한 자전거.  지하철역 앞 자전거를 묶어두는 곳에 어떤 이가 유아용 자전거를 굵직한 자물쇠로 묶어놓았다.  집과 공원을 반복해서 오가는 어느 부모가 그냥 공원에 두기를 결심한 것이 아닐까.  어차피 내일도 올 공원이니까.  어느 엉뚱한 부모때문에 우리는 한참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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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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