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수화통역사 권재희 선생님의 포스팅, 새롭게 일을 시작하는 장애인들에게 해줄 좋은 이야기에 관한 아이디어가 없냐는 질문을 보다가 지난 토요일에 갭Gap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갭의 온라인 몰에서 내 바지 하나와 지비 가디건 하나를 샀다.  나의 경우는 매장에서 입어본 것이라 자신있게 온라인 장바구니에 담았고, 지비의 경우는 웹사이트에서 제시하는대로 가슴둘레와 팔길이를 재어보고 주문했다.  그런데 웬걸.  둘다 M사이즈로 주문했는데, 금요일에 물건을 받고 입어보니 둘다 큰 거다.  홈페이지에 검색해보니, 매장에 가서 사이즈를 바꿀 수 있을 것도 같고, 최소한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매장을 통해 보내고 변경할 물품을 집으로 새로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변경할 물품의 사이즈를 어떻게 신청하지?'하는 물음이 생겨 일단 매장에 가서 알아보기로 했다. 

내가 주문한 옷은 마터니티 계열이고, 지비는 그냥 남성 계열.  집 근처 갭은 아이들 옷과 마터니티만 다루고, 그 다음으로 집에서 가까운 쇼핑몰의 갭엔 마터니티 계열이 없다.  그래서 모든 것이 다 있는 옥스포드 스트릿의 대형 매장으로 토요일 수업을 마치고 출동.


토요일이지만 비교적 한산한 2층의 계산대로 가서 차례를 기다렸다.  두 세 사람 기다리고 내 순서가 와서 직원 앞에 섰는데, 직원이 청각장애인이었다.  내가 계산대에 다가서자 직원은 자신의 귀 부분을 '톡톡' 치면서 입을 벙긋거리며 자신이 청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내게 알렸다.  온라인에서 구입한 상품을 매장에서 바꿀 수 있는지, 없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물어보려던 것이라 단순히 계산만 하면 되는 경우가 아니여서 그녀보다 내가 더 당황을 했다.

그녀가 듣지 못해도 최대한 또박또박 간단하게 이야기했다.  원래 내 영어가 그렇기도 하지만.

"I bought it from online shop!"

"But too big!"

"Can I change here?!"

내 입모양을 보고 이해를 하는 모양인지, 한 번에 이해하고 그녀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리고 그녀가 내게 두 손가락으로 허공에 네모를 그리며 "페.."라고 발음했다. 

소리는 '페'만 들렸지만 그녀의 입모양을 보고 '페이퍼'라고 나는 이해했고, 영수증/인보이스를 말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가져간 모든 걸 보여줬더니, 그 모든 건 물건이 배송되어 올때 안에 담겨 있던 것들, 서너 장의 종이 속에서 그녀는 그녀가 필요한 영수증/인보이스를 집어들었다.  여기까진 여러움 없이 풀리는듯 했는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http://www.gapcareers.com


아무리 갭UK 온라인에서 구입한 옷이고, 필요한 것이 그저 사이즈 교환이라도 매장에서는 온라인에서 구입한 상품을 환불하고 다시 매장에서 구입하는 과정을 밟아야 했다. 

일단 그녀가 내가 교환을 원하는 사이즈가 있는지 확인해보고 오겠다고 했다.  물론 그녀는 계산대를 떠나면서 검지손가락을 들어올리고 "원.."이라고만 발음했지만, 정황상으로 그녀가 'wait one second'이라고 한다고 나는 이해했다.

그녀가 돌아왔다.  내 바지는 S사이즈가 있는데 지비의 가디건은 S사이즈가 없었다.  대신 다른 색의 가디건 S사이즈를 들고와서 이걸로 하겠냐고 물었다.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색이라 지비의 가디건은 그냥 두고, 어차피 환불하고 다시 구입하는 것이니까 내 바지만 계산하겠다고 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녀가 가지고 온 바지를 찍으니 가격이 정가로 나오는 것이다.  나는 50%할인된 가격으로 온라인에서 구입했는데.  그녀는 온라인 할인과 매장 가격이 다를 수 있다고 종이에 써서 설명했다.  내가 그러면 배송료를 다시 주더라도 온라인에서 다시 구입하는게 낫겠다고 말하자 그녀가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민하는 표정을 짓자 그녀가 매니저랑 이야기를 해보겠냐고 종이에 써서 물어왔다.  내가 달라질 수 있을까라고 답을 하자, 그녀는 "헬.."이라고 발음했고, 나는 그녀의 입모양을 보고 'helpful'이라고 이해했다.  그래서 나도 크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는 매니저를 불러왔다.


매니저가 왔다.  매니저는 대략의 상황을 이해하고 온듯했다.  그런데 오자말자 내가 꺼내놓은 영수증과 점원이 교환을 위해 들고온 옷의 바코드를 보더니 금새 다른 옷이라는 걸 알아냈다.  두 옷의 모양은 똑같았지만, 정말, 점원이 들고 온 옷은 운동복 계열이었고 내가 온라인에서 구입한 옷은 마터니티 계열의 옷이었다.

그러더니 또박또박 점원에서 상품을 정확하게 확인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면서, 내가 교환을 원하는 바지를 한 손에 들고 나머지 한 손으론 배가 불룩한 모양을 했다.


지비의 가디건이 원하는 사이즈가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내 바지는 원하는 사이즈로 교환을 했으니 결과적으로 모든 건 잘 해결된 셈이다.  이 모든 일을 해결하는데 15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계산을 위해 줄은 선 사람들은 기다림이 지루했을지 모르지만, 나는 스스로가 듣지 못하는 점원과 소통하고 원하는 결과를 얻었다는 게 뿌듯했다.  그녀가 듣지 못하더라도 계산대를 돌아서면서 또박또박 "thank you"라고 말했다.

그 점원도 비록 매니저의 '상품을 정확하게 확인해라' 코멘트를 듣기는 했지만, 단순 계산 업무뿐 아니라 다른 업무도 잘 처리해냈다는 성취감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가슴 한 구석에는 청각장애인이 이런 매장에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부럽기도 했다.


장애인이 고객응대의 업무를 할 수 있다는 환경이 부럽다는 코멘트를 보고 갭의 홈페이지를 찾아봤다.  특별히 장애인 채용에 관한 부분이 있는지.  'responsiblity', 'environment', 'community'같은 키워드는 있어도 특별히 장애인을 언급한 부분은 없었다.  다만 고객이 다양한 문화임을 반영하여, 직원 또한 그런 다양함이 반영되어 있다는 정도.


사실 영국은 법이 무서워 장애인, 소수인종, 연령, 성병을 이유로 차별할 수 없다.  물론, 당연하게도, 현실사회엔 차별이 존재하긴 하지만.  소송을 걸면 '무조건' 차별받았다고 소를 제기한 사람이 이긴다고 봐도 크게 지나침이 없다.  그럼에도 이런 서비스 영역에서 장애인 노동자를 만난 것이 내게도 흔한 일이 아니라 마음이 찡..했다. 

'한국은 언제쯤?'이라고 다시 떠올리면 마음이 가볍지많은 않다.  사실 양쪽이 조금만 소통하려고 노력하면 그렇게 힘든 일도 아닌데.  나를 봐라.  영어 잘 못해도 영어만 하면서 여기에 살잖는가.  중요한 건 소통하려는 의지다.



※ 글쓰기를 시작한 건 월요일이었는데, 쓰다보니 '오늘'이 '어제'가 되고, 다시 '이틀 전'이 되었는데 그냥 그대로 둔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런던일기 > 2012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taste] 유사 팥빙수  (0) 2012.07.05
[coolture] 프로젝트 팀 금옥  (0) 2012.07.02
[life] 갭Gap에서 있었던 일  (2) 2012.06.27
[taste] 얼갈이 배추 쌈  (4) 2012.06.25
[life] 과일  (2) 2012.06.20
[book] 우리가 사랑한 1초들  (0) 2012.06.13
Posted by 토닥s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gyul 2012.06.30 05:01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중요한건 소통하려는 의지다...
    격하게 공감합니다...
    정말 한국은 언제쯤 가능할까요..

    • 토닥s 2012.06.30 06:02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수화통역사 권재희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구요. 외국에서 한국을 방문한 이가 한국의 장애인 편의시설은 뒤질데가 없으나 인식이 뒤지는 것 같다고. 인식도, 소통의 의지도 '곧' 달라졌으면 하고 희망합니다. :)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