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원(2012). <마인드 더 갭>. 이매진.


런던에 처음 왔을 때 K선생님이 읽어보라며 책 한 권을 빌려주셨다.  박종성의 <더 낮게 더 느리게 더 부드럽게>라는 책이다.  영국을 이해하는데 혹은 궁금증과 호기심을 더 가지는데 기여한 책이다.  그 책의 내용 중에서 많은 부분이 남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마인드 더 갭Mind the gap'이라는 부분이다.  지하철 발판에 쓰여져 있고, 지하철이 들고 날 때 방송에서 나오는 말, 마인드 더 갭.  나는 '마인드 더 갭'이 아니라 '마인 더 갭'이라고 들리더만, 하여간.  그 말이 언제나 조심스러운 그래서 친절하게도 보이는 영국사람들의 문화가 담겨 있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고, 사람과 사람 간의 보이지 않는 거리를 늘 두는 영국사람들 같다던 그 말.  그 책에 담긴 다른 내용들과 달리 일상생활에서 늘 접하는 말이라 깊이, 오래도록 여운이 남았던 대목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대목이 책 제목이 되어 영국을 말해주는 또 한 권이 책이 나왔다.  나는 예전에 읽었던 책이 제목을 바꾸어 나온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전혀 다른 책이었다.


애초 석사과정을 위해 영국으로 왔다가 연수과정으로 바꾸어 영국 캠브릿지에서 일년을 보낸 한겨레신문 김규원 기자의 책이다.  역사와 공간에 관심이 많다고 하는데.

내용과는 좀 동떨어진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아 기자들의 글쓰기가 이런 거구나'하고도 느꼈고, '아 남자들은 이런 걸 보는구나'하고도 느꼈다.


기자들의 글쓰기를 느끼게 된 이유는 문장이 참 간결하다.  그럼에도 그닥 간결해보이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담고 있는 정보량이 많기 때문이다.  심층취재를 많이 해온 사람의 글이라서 그럴 수도 있겠다.  에세이 형식의 영국 가이드를 기대하는 사람에겐 딱딱할 수도 있겠다만, 사회·정치 시스템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가끔 BBC뉴스에서 의회장면을 보여줄 때 잘 이해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는데, 왜 의원들이 토론 중에 계속 일어났다 앉았다 하는지 그런 사소한 것들의 이유를 '아~'하고 알게 됐다는 점.  나만 그런데 궁금해 하는 걸까?  의회 진행이 궁금하긴 했지만 그런 걸 물어봐도 아무도 답해주지 못했다.  쉽게 말해 영국의 상식을 아는데 도움이 되었다고나 할까.


남자의 시선을 느끼게 된 이유는 글쓴이는 사회의 틀에 더 많은 비중을 둔 것 같았다.  그 안에 담긴 사람들보다.  물론 영국사람들의 사람됨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안에 자신은 좀 빠져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여성들의 글쓰기는 다르다.  사회에서 자신으로 모여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뻗어나가 사회로 접근하는 방식이다.  뭐 남녀의 차이가 아니라 개인의 차이일지도 모르겠다만 나는 그렇게 느꼈다.


좀 억울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영국기(記)는 온몸으로 살면서 부딪히며 느낀 것이라기 보다는 방대한 정보 습득의 결과로 보인다. 


스르륵 읽다가 두 대목이 내가 알고 있는 상식과 다른 부분이 있었다.  지금 찾아보니 하나는 내가 맞고(그가 틀렸고) 하나는 내가 틀렸다(그가 맞다). 

왕실의 권한과 사회적 역할을 언급한 대목에 나오는 부분이다.  캠브릿지 대학의 head는 여왕의 남편 필립 공이고, 런던 대학의 head는 여왕의 딸 앤 공주라고 한다.  나도 몰랐다.  그 끝에 글쓴이도 갸우뚱하며 "우스개인지 참말인지.."하며 영국의 모든 토끼는 여왕소유라는 말이 있다고.  토끼가 아니라 백조다.  영국의 모든 백조는 여왕소유다.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참 웃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이다.  백조를 괴롭히거나 잡아가면 위법이라고 한다.  혹시나해서 인터넷에 찾아보니 철새가 아닌 텃새로서의 백조는 왕실소유, 즉 여왕소유가 맞다고 한다.

내가 틀린 부분은 상류층의 영어와 비상류층의 영어에 관한 부분이다.  상류층은 잘 알아듣지 못했을 때 'what'이라고 되묻고, 비상류층은 'pardon'이라고 되물으며 상류층은 'napkin'이라는 단어를 쓰고 비상류층은 'serviette'라는 단어를 쓴다는 부분.  이 대목을 지비에게 이야기해주니 거꾸로 아니냔다.  내 생각도 그랬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그가 맞다.( ☞ http://en.wikipedia.org/wiki/U_and_non-U_English )  그의 설명은 상류층은 영어식 표현을 비상류층은 외래식 표현을 쓴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위키를 제외하고 인터넷에서도 이 대목에 대해선 말이 많다.  특히 영국에선 잘 알아듣지 못했을 때 'what'이라는 말을 '일반적으로' 쓰지 않는다.  그런 반응은 '뭐라구?  한 번 해보자는 거야?'라는 정도의 상황에서나 쓰이는 말이다.  영국사람들은 일반적으로 'sorry' 또는 'sorry, could you say again?'이라고 말한다.


말랑말랑한 영국생활기는 아니지만 쇼핑거리만 잔뜩 소개해 놓은 가이드, 유명인사들의 환상적이기만해서 일상적이지 않은 에세이가 아닌 다른 영국이야기를 접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한다.


혹시 내가 예전에 읽은 박종성 교수의 책도 궁금하다면 참고하시고.

박종성(2001). <더 낮게 더 느리게 더 부드럽게>. 한겨레신문사.  ☞ http://www.yes24.com/24/goods/187906


좀 재미있는 건 10년 전에 쓰여진 책과 그리고 올해 쓰여진 책 속의 영국은 그대로거나 여전히 비슷한 모습이다.  그런 나라가 영국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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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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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램블 2012.09.12 20:17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포스트 보고 호기심과 함께 읽어보고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토닥님 글 아주 잘 쓰신다는... ^^

    • 토닥s 2012.09.13 03:51 신고 Address Modify/Delete

      감사합니다, 잘 쓰는 글도 아니지만. 레시피 잘 보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살아가는데 아주 유용한 블로그라 생각하면서. 요리의 결과는 상관없이.(^ ^ );;

  2. Chorom Lee 2012.09.17 16:47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살고 계신 분이 그 사회를 잘 표현한 책이라 평하시니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저는 요즘 Sorry I'm british 랑 Brit-think Ameri-think 읽고 있는데, 호주는 미국보다 영국이랑 닮은 점이 많더라구요.

    • 토닥s 2012.09.18 01:10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아마도 Commonwealth로 묶인 국가니 그렇겠죠? 정보적인 면은 <마인드 더 갭>이 낫지만, 전반적인 문화 면은 <더 낮게 더 느리게 더 부드럽게>라는 책이 나은 것 같아요. 읽은지 좀 되긴 했지만, 그렇게 기억되네요.
      여기서 제가 느끼는 호주 사람들은 정서적인 면이 미국과 더 가깝다고 생각되는데, 일단 영국사람보다 friendly해요, 호주에선 또 다르게 느껴지나보군요. 아마 시스템은 영국과 비슷해도, 성향은 미국이 더 가깝지 않을까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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