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목요일 집에서 첫날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찍은 사진들이다.  사실 출산하러 갈 때 작은 카메라를 들고 갈까 큰 카메라를 들고 갈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출산 가방이라는 걸 싸고보니 꽤나 짐이 많아 작은 카메라를 챙겨넣었다.  하지만 정작 출산 과정에선 가방에 카메라를 꺼낼 겨를이 없어 휴대전화로만 사진을 찍고 말았다는.  집에서 첫날밤을 보내고 지비랑 나는 아기가 자는 동안 탐색전에 들어갔다.






발도 꺼내보고 손도 꺼내보고 둘이서 "아 신기해" (^ ^ )

발을 꺼내보니 아기를 식별하는 태그가 두 발에 차여져 있어 실수로 두 발에 채웠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한 쪽이 쏙 빠지고 말았는데 그걸 겪고서 "아, 빠질 수도 있으니까 두 발에 채우는구나"하고 둘이서 바보 돌깨는 소리를 했다.



내 딸이라서 그런게 아니라 손이 이쁜 것 같다고 했더니 문안을 온 B언니는 사정없이 "원래 아기들 손은 다 이뻐!"라고 말씀하심.( i i)

그러면서 발가락 긴 건 날 닮았다고 하심.( . .);;




한국의 가족들은 아기 눈뜬 사진을 좀 찍어보라고 하시는데,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은 아기들은 눈뜰 일이 잘 없다.  어렵게 포착한 사진.



멀티링구얼multilingual로 키우겠다는 야심찬 지비.  폴란드어로 대화를 시도한다. 아기 표정은 알쏭달쏭한 표정.  뭔가 다르다고 느끼긴 하는건지 멀뚱 쳐다본다.



멀티링구얼로 키워진다면 좋기야 하지만 쉽지는 않아보인다.  특히 내 입장에선 한국어가.  내가 그렇게 말이 많은 타입도 아니거와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는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접하기가 쉽지 않다.  집에서 자전거로 10분거리엔 폴란드문화예술센터가 있어 의지만 있다면 폴란드 이민자녀를 위한 주말학교나 어학원에 보내는 건 어려워보이지 않는다.  조금 부풀려서 동네마다 폴란드 음식거리를 파는 가게도 많고, 폴란드인을 만날 기회도 많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서쪽 런던은 일본인이라면 모를까 한국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다.  서쪽런던에 위치한 액튼 Acton엔 일본공립학교가 있어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음식점도 꽤 있다.

누군가가 노팅힐Notting Hill에 한인교회가 있는데 2세를 위해서 거기에 나와보는 건 어떻겠냐고.  아무리 언어가 중요하기로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아직 없다.



사진처럼 볼 살이 많지는 않은데 사진으로 본 누리는 볼 살이 무척 많아보인다.  집에만 있다고 우리가 그저 아기 얼굴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좀 그런 셈이긴 한데, 지비는 꽤나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다.  병원에서 오고, 만 하루를 꼬박 보낸 다음 지비가 서둘러 한 것은 출생신고.


그전까지 누리의 서류 표기명은 'Baby Kim'.  아기를 낳기 전 주말 "이제는 이름을 정해야겠다"며 지비가 '하나'와 '누리'중 정하자고 했다.  '하나'는 지비가 마음에 들어한 이름이긴 하지만, 유럽에도 '한나'라는 이름이 있으니까, 우리 가족을 포함한 주변의 모든 한국인들이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이름이었다.  지비는 내가 좋아한 '누리'와 '보리'중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 '누리'로 하자고 마음을 정했다.  그래서 '누리'는 출생 전에 '누리'라는 이름을 가지게 됐다.



병원에서 준 서류를 들고 나가 순식간에 출생신고를 하고 돌아온 지비.  태어난지 42일 안에만 하면 된다고 하는데 지비가 좀 이런 면에 서두르긴 한다.  지비말에 의하면 기다린 건 30분, 신고는 5분도 안걸리더란다. 

영국의 출생 신고는 의외로 간단하다.  병원에서 준 서류엔 아기의 NHS 번호가 있다.  NHS 번호는 국가의료시스템의 번호이다.  한국처럼 주민등록번호 같은게 없는 이곳에서는 NI 번호라고 고용과 관련해서 필요한 국가보험번호와 함께 개인을 인식하는 주요한 수단이다. 

그 번호와 병원에서 준 신청서를 작성해 살고 있는 지역의 registry office에 제출하기만 하면 된다.  registry office는 한국으로치면 호적신고 기관쯤된다.  출생도 신고하고, 결혼도 신고하는 곳.  출생 신고 과정에서 안 건 꼭 아빠 성만 성으로 물려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면 엄마 성은 물론 아무 성이라도 물려줄 수 있다고 한다.  막말로 이름은 '누리'로 성을 '만세'로 주어 '누리 만세'라는 이름을 줄 수도 있다는 것.  이 이름은 누리가 성인이 되면 또 자신의 원하는 바에 따라 바꿀 수 있다고 한다.


이름을 '누리 사브주크'로 신고했다고 하니 주변에선 왜 내 성을 미들네임으로 넣지 않았냐고 묻는데, 나는 굳이 그렇게 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름이 주는 정체성도 크지만, 정체성이라는 건 어떻게 키워지느냐에서 오는 것이니까.



그래서 요것이 누리의 출생증명서다.

얼마전 영국의 여권 신청서의 부모란이 'father'와 'mother'로 표기 하지 않고 'parent1'과 'parent2'로 바뀐다더니, 차별철폐차원에서, 출생신고는 그대로인듯.  하기야 부모라는 뜻이 낳아준 부모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니까.



우리는 요즘 부지런히 '증거'들을 모으는 중이다.  일전에 해럴드가 임신 축하 선물로 준 성장기록책을 채우기 위해서.  그 책에 보면 첫번째 손님란이 있어, 아기를 보러온 알렉산드라를 첫번째 손님으로 찍었다.  알렉산드라는 무지하게 사진 찍히기 싫어하는 친구지만 이날만은 특별히 허용.  고맙고맙. (^ ^ )


알렉산드라는 아기보기로 일한 경험이 있어 우리에게 많은 도움과 정보를 주고 있다.  누리에게 이탈리아어를 가르치겠다는 야심도 가지고 있다.  폴란드인 아빠에, 한국인 엄마, 그리고 이탈리아인 아줌마까지.  '세상, 세계'라는 뜻을 가진 누리는 정말 이름답게 인터네셔널하다.  그런 걸 고려하고 지은 이름은 아닌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렇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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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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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9.30 18:16 Address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토닥s 2012.10.01 16:40 신고 Address Modify/Delete

      고맙습니다. :) 누리 얼굴을 보고 있으면 이유 없이 마냥 좋은데, 달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을 땐 저마저도 울고 싶답니다. 그러면서 아기도, 저도 크는 것이겠죠?

  2. gyul 2012.10.01 21:28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ㅎㅎ 손도 발도 아주 예쁘네요... ^^

  3. 엄양 2012.10.02 09:56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아기들은 뭔가가 맞지 않을때 우는데..대표적으로 1.배고플때, 2.기저귀가 젖었을때, 3. 더울때,,,
    1.2번은 부모들이 자주 확인하는거고,,,3번이 의외로 많아
    아기들은 우리보다 체온이 높기 때문에.. 선선한 공기를 좋아해.
    신생아라고 둘둘싸메고 있으면 덥고 답답하고 그래서 찡얼거리는 경우 많아.
    온습도계가 있는가? 아기들은 20~23도사이의 온도에 60프로 정도의 습도가 적당,,,
    온습도 유지가 아기 키운는데 중요한 포인트 ~~~

    아기 정말 이쁘다,,,성공했네...^^

    • 토닥s 2012.10.02 15:22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이곳의 권장온도는 18-20도. 왜 지역따라 다를까만은 여긴 확실히 선선하게 키우는 것 같다. 근데 우리집 온도가 요즘 난방없이 22-23도라 하니 이불을 얇은 것으로 하나만 덮으라더군.
      지비랑 나는 춥지않을까 걱정이다. 우린 정말 한여름 한 2-3주 빼곤 일년 내내 오리털(거윈가) 덮고 자거든. :P
      근데 누리는 혼자서 체온 조절하는지 낮잠잘땐 이불을 다 차버려. 밤잠은 덮고자더라. ;)

  4. 램블 2012.10.04 12:09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누리란 이름... 정말 예쁜거 같아요.
    이탈리아 아줌마를 둔 누리.. 정말 부럽부럽... ^^

    기록을 모은다는것도 참 좋은거 같아요.
    아이에게 뿌리를 알려주는 중심이 될 수 있겠단 생각...

    토닥님 사진에서는 따스함이 느껴져서 좋아요.

    • 토닥s 2012.10.05 16:17 신고 Address Modify/Delete

      한국인과 폴란드인 사이에서 태어나 영국에 (당분간) 살게 될 아기라서 정체성에 대해서 한 번은 질문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높죠. 어쩌면 런던이라는 도시의 특성때문에 아예 안가지게 될 가능성도 높고요.
      하여간 그래서 저는 자신에 대한 역사를 남겨주고 싶네요.
      (하지만 무지 게을러지고 있는 요즘.. 반성합니다.)

    • 램블 2012.10.06 17:09 신고 Address Modify/Delete

      그래도 이렇게 블로그로 아이 성장기를 남겨주신건 대단한 부지런함이세용.. ^^

  5. 프린시아 2012.10.16 18:51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와 누리 정말 이쁘네요.

    발가락이 길지만 넘 귀여운데요^^

  6. 작토 2012.12.13 19:50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태어나자마자 4개국어를 접하게 되는군요! 아기들은 다른 언어라는 인식보다는 상황에 따라 말을 다르게(사투리 즘으로) 해야한다고 인식을 하기 때문에 습득이 빠르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자연스럽고 편하게 할 때 말이죠^^ 누리의 성장기 기대하겠습니다!

    • 토닥s 2012.12.13 20:35 신고 Address Modify/Delete

      3개국어, 그것이 남편의 꿈이죠. 꿈 하나 더 보태면 독일어도 하면 좋겠다 정도. 영국엔 대학 등록금이 비싸서 유럽으로 보내려고 벌써부터 김칫국물을 마시고 있죠.(^ ^ );;

  7. 앵두네 2014.11.26 16:11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뉴욕에 있는 폴란드출신 친구가 어렵게 임신해서 출산을 앞두고 있다보니 어떤 선물이 좋을까 뒤지던 중에 발견한 블로그예요. 벌써 누리도 꽤많이 자랐겠네요 ^^ 이쁜 아기 모습에 이쁜 글에. 감탄하고 축하의 발도장 뒤늦게 남기고 갑니다.^^ 행복하셔요.

    • 토닥s 2014.11.27 07:51 신고 Address Modify/Delete

      고맙습니다.
      누리는 벌써 두 돌을 넘기고 다시 두 달을 더 넘겼답니다. 아기보다는 아이가 어울리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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