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우(2010). 〈이별하는 골짜기〉. 문학과 지성사.


내게 작가 임철우는 의심없이 책을 고를 수 있는 작가다.  그가 다루는 소재도, 글을 써내려가는 솜씨도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다룬 책들이 해답없는 질문을 반복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리고 그게 지겹고 답답해 졌을 때,  '문학'을 좀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랜만에 검색해보고 고른 책이다.  이름으로 검색하고, 내가 읽은 책인지 아닌지 생각해보고 그냥 주문한 책이다.  심지어 제목도, 내용도 개의치 않고.  내게 임철우라는 이름은 전라도와 짠내나는 어느 바닷가와 동의어라서 '정선선?'하고 좀 의아했다.  그런데 언제나 그렇듯 차분하고, 그래서 때로는 무겁게 느껴지는 그의 글투가 퇴락해 가는 어느 시골역과도 닿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별어곡이라는, 이별하는 골짜기라는 이름을 가직 정선선의 작은 역사를 중심으로 네 명의 이야기를 담았다.  시를 쓰는 젊은 역무원, 평생을 불운 속에 산 늙은 역무원 신씨, 여생을 산골짜기에 들어와 마감하게 된 일본군강제위안부 가방할망구, 그리고 시골마을에 어울리지 않는 음악이 흐르는 베이커리를 연 삼십대의 여자. 

이 네 명의 삶이 한국의 역사와 얽히고 설켜 고양이가 뱉어낸 헤어볼처럼 탁 튀어나온 곳이 별어곡이다.  그곳이 우연히 별어곡이기는 하지만 그들의 구겨진 삶은 한국 역사를 볼 때 필연적이다.  필연적으로 생길 수 밖에 없는 헤어볼이 때론 고양이에게 고통을 주기도 하는 것처럼, 그들의 삶도 그랬다.  하지만 헤어볼이 고양이 목구멍을 통해 나올 때 고통이 완화되는 것처럼 네 명의 삶도 우연히 별어곡에서 만나면서 고통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는 이야기.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책이 재미없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고 읽을 여유가 없었다.  누리가 낮잠이 들어 짬시간이 나면 나도 그저 눈감고 옆에 누워있고 싶은 심정이지 책이 잘 펼쳐지지 않는다.  일찍 일어나야 할 부담이 없는 금요일 저녁에나 누리가 잠든 후 읽다보니 가벼운 소설책을 몇 주는 읽은 것 같다.

두통을 유발하는 세상을 피해가려고 읽은 책인데 '왜 세상이 빠른 것만 좇아가며 변해가는지'를 생각하며 다시 세상에 눈돌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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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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