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3-'집행유예'를 찾아가는 길은 멀고도 험난했습니다.
아니 멀지는 않았지만 찾아가는 길이 힘겨웠습니다.
이유는 프로젝트3-'집행유예'가 전시되고 있는 '518자유공원'을 찾기가 어려웠던 탓이지요.
자세한 이야기는 '518자유공원'을 찾아가던 과정에 본의 아니게(?) 들렀던
'518기념공원'관련 글에서 하겠습니다.

'집행유예'는 '범죄자에 대하여 단기(短期)의 자유형(自由刑)을 선고할 때에
그 정상을 참작하여 일정 기간 그 형의 집행을 유예하는 제도'입니다.
그러나 프로젝트3에서 '집행유예'가 가지는 의미는 '정상을 참작하여'부분 보다
'그 형의 집행을 유예'라는 부분에 포커스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형이 '유예'되었을뿐 아직 끝나지않은.
그러니까 계속되는 형벌 말입니다.

프로젝트3-'집행유예'가 전시되고 있는 518자유공원은 광주에서 상무지구라고 불리는 곳에 있습니다.
518 당시 부대가 주둔했던 곳이고 지금은 고양의 일산이나 대전의 유성구처럼,
그리고 부산의 해운대구처럼 신도시로 개발되고 있는 곳입니다.
518 당시 수감시설로 이용되던 당시의 건물들을 쓸어버리고
지금은 아파트들이 즐비한 곳이 되어버렸지요.
이런 세태에 대해서 광주에서도 고민이 많더라구요.
역사의 의미를 불도저로 밀어버리고 난개발을 그대로 묵인 하는 것이 맞느냐, 그렇지 않느냐라고 말입니다.
어쨌든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는 곳은 당시의 상무대 시설을 재현하여 지은 건물들입니다.
상무지구와 집행유예, 이제 더 긴밀하게 느껴지나요?

01.

전시관의 첫 건물에 있는 작품입니다.
518 당시 군법에 의해 시민들을 재판했던 현장을 재현하고 그 속에서 의미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02.

군법관들이 앉았던 곳에서 재판정을 바라본 사진입니다.

03.

518 당시 잡아온 광주시민들을 수감한 시설 입구에 있었던, 아니 있었을 표시입니다.
출입이 '허가'된 자들은 지휘관, 지휘관이 허락한자, 형무장교 및 서기병, 주번사관이었구요,
출입이 '허가'되지 않은 이들은 바로 광주시민들이었습니다.
518 이전까지는 특별할 것도 없었던 광주시민들 말입니다.
이후 이들은 이 나라 언론, 콕 집어 조선일보의 당시 평기자 김대중에 의해서 '폭도'가 되었죠.
그 유명한 김대중 주필말입니다.

04.

가둬둔 광주시민들을 감시하기 위한 시설입니다.

05.

그리고 광주시민들에게 휘둘렀을 '무기'들이구요.

06.

유리로 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앞에 무릎 꿇은 사람들이구요.

07.

있지도 않은 허상, 내용도 철학도 없는 그 유리로 된 사람에게
무릎 꿇었던 시절이 우리에겐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무릎 꿇었던, 그 시대를 힘겹게 살았던 사람들을 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단지 그런 유리로 된 허상 앞에서 무릎 꿇도록 만들었던 사회,
그리고 중간에서 이득이란 걸 챙긴 놈들에게  %$#%!$!#$%$@#.

08.

뜻밖의 만난 첫번째 작품입니다.
어쩌면 이 작품이 끝나지 않은 현대사를 이야기 하는 그곳에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공동생산을 표현, 그래서 이북의 사상을 찬양했다는 해설로 국가보안법 위반의 논란을
일으켰던 신학철 님의 작품입니다.
저는 문제화 된 부분만 잡지에서 봤었는데
그의 작품 전체를 보고 그런 해석이 지나치다라는 결론을 내어올 수 있습니다.
현대사 전체 과정에서, 해방이후의 공간 또는 공동체 문화가 많이 남아있던 시대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를 담고 있는 작품에서 부분, 앞부분만을 강조, 확대해석하여
국가보안법으로 옭아맸던 작품입니다.
저는 그 중에서 우리 역사에서 도려내고 싶은 부분을 찍었습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09.

뜻밖에 만난 두번째 작품입니다.
한때 자신의 누드사진을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 갤러리에 올려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김인규 선생님의 작품입니다.
김인규 선생님의 작품은 일반적인 가정의 안방을 떠올리는 공간을 구성하고 있었습니다.
약간은 촌스러워 보이는 이불도 있고, 화장대도 있고 그리고 화장대 위엔
이러저러한 사물들, 그리고 부부의 사진이 있습니다.

10.

부부의 나체,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완벽한 몸매의 남녀의 사진이 아닙니다.
임신한 그래서 추하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는 나체입니다.
많은 이야기들을 하고 싶지만, 사진에 대해서가 아니라
이런 작품 활동이 용납되지 않는 우리 사회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들을 하고 싶지만 말을 아끼렵니다.
그래도 꼭 하고 싶은 말은,
적어도 예술활동은, 부부생활은 그 모든 것은 김인규 선생님의 생활이고 삶일꺼라는 것입니다.
이 작품은 그 삶에 대한 고민의 과정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함부로 외설이니 어쩌니 이야기 할 수는 없는게죠.

11.

작품들을 둘러보고 나오니 마당 한가운데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더군요.
태극기.
518 당시 조직도, 지도부도 제대로 없었던 광주시민들은 태극기를 그들의 '깃발'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광주시민을, 광주를 짓밟았던 군부대도 태극기를 '깃발'로 삼았겠죠?
그리고 오늘 우리도 여전히 이 태극기를 '깃발'로 삼고 있습니다.

12.

프로젝트4-'접속'이 전시되고 있는 도심폐선부지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프로젝트3-'집행유예'는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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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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