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일주일도 전에 누리가 크리스마스 트리 타령을 시작했다.  "어 다음주에"하고 답하고, 바쁜 한 주를 보내는 동안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토요일 집에 돌아와 다시 시작된 크리스마스 트리 타령.  내친김에 꺼냈다.  12월에 들면 꺼내려고 했던 크리스마스 트리인데, 어차피 12월도 며칠 남지 않았다.


작년에 썼던 것들을 꺼내 크리스마스 준비 완료.  사실 가장 노동(?)이 필요한 크리스마스 카드가 남긴 하였다.


그 와중에 누리는 계속 내 옆에 와서 "산타 할아버지가 배가 고파"타령을 했다.  그 말은 주중에 사둔 크리스마스 디저트 민스 파이를 발견하고 그걸 먹고 싶다는거다.  여기 아이들은 12월 24일 산타와 루돌프가 먹을 간식을 준비해두고 잠이 든다.  주로 민스 파이와 당근.

스페인으로 이주하는 이웃의 송별 파티에 들고 가려고 사둔 민스 파이였는데, 송별 파티 장소가 집이 아니라 차를 타고 가야하는 곳이라는 전날 알게 되어 가지 않았다.    "그래 옛다!"하고 뜯어줬다.  행복하게 한 입 물더니 이전에 먹어본 것들에 비해서 맛이 없는지 먹던 걸 결국 지비에게 다 떠넘긴 누리.



급하게 마트에서 산 마트표 민스 파이인데, 내가 먹어보니 맛이 없긴 하다.  우리는 매년 연말 워커스 숏브레드라는 브랜드에서 주문해서 선물도 하고 우리도 먹는다.  그 맛을 기대했는데, 마트표는 저렴하고 유통기한이 긴 대신 설탕맛과 시큼한 맛이 너무 강했다.  다행스럽게 누리도 싫어하니 남은 민스 파이는 모두 지비 몫.



그리고 벌써 매달아놓은 양말.  매일 아침 왜 선물이 없는지 묻는다.  작년 겨울 런던에 다녀갔던 친구가 달달구리를 가득채워 선물한 또 다른 양말도 있는데, 역시 매일 아침 왜 달달구리가 그 안에 없는지 묻는다.  크리스마스 선물은 이미 준비되어 있지만, 지금 넣어놓으면 크리스마스까지 남아나질 못할듯해서 숨겨두었다.  더군다나 저 양말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리고 문 밖도 누리가 폴란드 스카우트에서 만들어온 별을 매달아 크리스마스 리스를 대신했다.



솜을 보고 양이냐고 물었더니 아기 새란다.  그러면 아기 새인 것으로.


그렇게 해서 집 안팎으로 크리스마스 장식 완료.  이젠 틈틈히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드는(?) 일만 남았다.  어쨌든 그리하여 우리집은 벌써 크리스마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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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25일)

하노이에서 호치민시티까지 그 먼길을 타고 다닌 미니버스다. 24인승 버스 미니버스이지만 그야말로 미니버스이고, 짐들이 많아 남는 공간이 없었다. 아마도 여행 중 다들 잠든 시간에 찍은 사진인 것 같다.

달리는 미니버스 안에서 찍은 사진들.

잠시 쉬어가는 휴게소에서 찍은 사진.

한밤 중에 어느 시골도로 휴게소, 그냥 가게라고 해야 적당한 규모,에 들렀더니 주인이 띄엄띄엄 한국말을 한다. 자세한 내막을 들어보니 한국의 그것도 부산의 신평공단에서 일했던 노동자라고 한다. 한국에서 돈을 벌어 돌아와 가게를 차리게 됐다고 반가워 한다. 우리는 그가 반갑고 고마웠다. 분명 고생 많았을 한국에서의 시간을 그렇게 기억해줘서. 그가 끓여주는 라면으로 야식을 즐긴 후 다시 가던 길을 재촉하여 갔다.

주인이 한국과 인연이 있는 사람이라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 사람이라서 나는 진열된 과자들을 편하게 구경하고 사진찍을 수 있었다. 정말 배낭여행객처지만 아니라면 기념품 삼아 사고 싶은 것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어릴 때 먹던 과자들과 한국에서 이름있는 과자들의 이미테이션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뒤에 알게 된 사실인데 한국의 과자들은 대부분 일본의 이름있는 과자들을 따라 한 것이었다.( ;; )

여행을 준비하여 샀던 카메라가방. 여행을 다녀오고서도 매일 같이 들고 다녔다. 카메라가방 같지 않아서 좋았는데, 매일 들고 다니다보니 이젠 낡아서 쓸 수가 없는 지경이 됐다. 오죽했으면 같은 모양의 가방을 사려고까지 했다. 그런데 살 수가 없었다.
카메라 그리고 여권과 돈을 담은 가방은 어디를 가도 몸에서 놓지 않았다. 그래야 한다.


하노이에서 호치민시티로 간 길은 1번 국도였다. 그 도로가 아직 부분부분 비포장구간이 있었다. 그 것 하나만으로도 베트남의 사정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쉼없이 달린 길이라 빨래를 할 틈이 없었다. 다 말리지 못한 양말을 이동하면서 차창으로 들어온 햇빛으로 말리는 중. 시간이 흐르면서 이럴 일이 없어졌다. 왜, 계속 맨발로 다녀서.( ;; )

하교하는 아이들.

립톤티는 여행중 내가 가장 즐겨마시는 음료수다. 어느 곳을 가도 콜라는 있지만, 탄산을 즐기지 않는 내가 가장 쉽게 마실 수 있는 음료이기 때문이다.
립톤티를 즐겨마시게 된 것은 유럽여행 때부터다. 만만한게 물이라고 생각없이 마시던 나는 물이라고 다 같은 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물이라고 생각하고 산 물이 탄산수라는 것을 알고 벌컥하고 마셨다가 고생을 하였다. 그 뒤엔 세상말로 '안전빵'으로 립톤티를 마시게 됐다.

이 기차는 베트남에서 처음으로 본 기차였다. 기념삼아 찍었다.
하노이에서 호치민시티까지 기차로 타면 39시간이 걸린다. 좌석의 종류가 두어 가지 있긴 하지만 비행기를 타지 않는 이상 꼭 그만큼의 시간이 걸린다. 기회가 되면 꼭 타볼 생각이다.

전봇대의 생김이 한국과 달라 찍었다.

주요소에서 찍은 사진이다. 뭘까 뭘까 궁금해 하고 있는 낡은 모터사이클 한대가 탈탈탈 와서 기름을 넣고 간다.

선미마을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등 뒤에서 '낄낄'한다. 놀라서 돌아보니 망태기 안에 돼지가 있었다. 어디 돼지를 팔러가는 길인가 보다. 저렇게 돼지를 기르지는 않으니 말이다. 이 또한 신기해서 찰칵.

이 돼지를 보고 난 뒤에는 이렇게 싸여진 돼지가 종종 보였다.


구아바. 맛은 푸른 대추맛. 베트남 남부지역의 특산물이다.

한국으로 돌아오고서 얼마 뒤 구아바 쥬스가 상품으로 나왔다. "구아바~구아바~"하는. 당장 사먹었다. 실망스러운 맛이었다. 거의 설탕물이었다. 구아바는 그런 맛이 아닌데-.


+ 베트남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서 나는 가기전보다 더 많은 책들을 보았다.  '아, 그거구나'하는 것도 있었고, 여전히 모를 것들도 있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알면 알 수록 베트남을 좋아하게 된다는 사실.

모든 여행이 그런 것 같다.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에서 고미숙의 말처럼 알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알게 되는 것 같다.  

+ 여행을 다녀오고서 베트남에 관한 정보를 끌어모으던 중 나와우리라는 단체를 알게 됐다.  나와우리에서는 교류사업으로 묘지조성사업을 하고 있었다.  이를 오현씨에게 소개하였다.  묘지조성사업은 농촌활동과 비슷한 형태로 이루어진다.  한국군이 민간인을 학살한 지역에 들어가 묘지 만드는 일을 한다.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해 공부하는 계기가 됐다.

나와우리를 통해서 선미마을에서 영상을 가져와 번역하고, 자막을 넣어 다시 보냈다.  나와우리의 간사인 김정우 선생님은 뒤에 알게 된 베트남 친구 투항에게 호치민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친 사람이다.  김정우 선생님은 코이카로 2년 동안 베트남에 갔었다.

베트남 여행에서 통역을 했던 쑤언을 통해 부산외국어대학에 다니고 있던 투항을 알게 됐다.  투항은 뒤에 우리과 대학원에 들어와 후배가 됐다.  지금도 연락을 하고 있는 투항은 석사과정을 마치고 현재는 서울에서 일하고 있다.

+ 베트남에 관련해서만도 인연들이 실타래처럼 엮였다.  이 실타래 안에는 인연이 되지 못한 인연들이 또 있다.  
김정우 선생님을 통해서 영상을 가져올 것을 부탁한 사람은 이마리오라는 감독이다.  이 감독은 당시 베트남에서 어떤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이후 이 작품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봤다.

또 pal방식을 ntsc방식으로 변환하기 위해 한 기관에 문의를 했었다.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회원이 아니면 어렵다는 것이었고, 그를 위해서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뭐 이런데가 다 있어'하고 말았는데, 그 기관이 미디액트다.
이 정도면 인연이 된건가?

+ 기회가 된다면 한 일년쯤 베트남에 살아보고 싶다.  내 나이 서른다섯이 되기 전에 그런 시간을 가지게 될 줄 알았는데,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그래도 난 꼭 간다.  
뭐, 할 일이 있는 것은 아니고 살면서 사진을 좀 찍어보고 싶다.  낮엔 사진 찍고 저녁엔 커피나 맥주를 마시고.  그냥 살면서 느릿느릿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런 날이 올까?

+ 이렇게 베트남 여행기는 끝!



뜬금없는 옛글이라 놀라시겠지만 오래된 홈페이지에서 블로그로 이사중이랍니다.  끝내지 못할 숙제 같지만 천천히 옮겨 보려고요.  예전에는 티스토리가 과거날짜로 발행이 됐는데 이젠 안되네요.  그래서 오늘 날짜로 발행이 됐습니다.

베트남 여행기는 카테고리>길을 떠나다.>2003년 베트남여행 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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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25일 작성)


베트남 여행을 가면서 입고간 청바지. 아무데나 털썩털썩 앉고 계속 입다보니 헤져 구멍이 났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호텔에 버리고 왔다. 조금이라도 짐을 줄여보려고.
그땐 여행에 대한 노하우가 없어, 사실 지금도 없기는 매 한 가지다만, 옷짐이 가장 많았다. 지금도 그런 경향이 없지 않지만. 비교적 물가가 저렴한 나라를 여행할때는 현지에 가서 사입는 방법을 권하고 싶다. 저렴하기도 하고, 돌아오면 기념품이 되기도 한다. 단, 그러한 여행법은 표준체형 또는 그보다 작은&날씬한 경우만 해당한다. 나는, 나는 안돼.(ㅜㅜ )

호치민시티에 가서는 메콩강 투어다, 구찌터널이다 시외로만 나돌아서 정작 호치민시티에서 찍은 사진은 없다. 아침저녁으로 밥 먹으며 어슬렁 거린 거리가 전부이니. 하지만 그도 나쁘지 않다고 스스로 평가하고 있다.

베트남 커피. 여행을 하면서 이미 사둔 커피가 있어 새로이 구입하지는 않았다.
베트남의 커피 생산량은 세계 3위다. 놀랍다. 하지만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커피에 밀려 품질을 알아주는 커피는 아니다. 맛은 잘모르지만 좋아라 하고 먹는다. 베트남에 다녀오고서 계속. 베트남 여행을 통해 알게 된 친구들이 집에 다니러 갔다올 때마다 커피를 선물로 사가지고 온다.

호치민시티는 모방그림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렇게 듣고보니 이런 장면도 기념이 될듯하여 한 장 찍었다.

앞서 말했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의외로 육식을 즐긴다. 더운 날씨를 이기기 위함이라고 우리끼리 생각하고 말았다.

베트남 커피를 내려먹는 방식이다. 철제로 된 드리퍼에 커피를 꼭꼭눌러담고 커피를 내린다. 진하게 내려진 커피와 연유를 섞어 먹는 것이 베트남에서 커피를 먹는 방식이다.
여행에서 돌아올때 철제 드리퍼를 사오기는 했는데 베트남에서 먹던 것과는 달랐다. 언니와 함께 베트남에서 마셨던 커피를 재현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모두 실패. 철제 드리퍼는 기념품으로만 남았다.

떠나오던 날 아침 미니호텔 창에서 내려다본 풍경. 한참 동안 내려다봤다.
베트남에서 보낸 열흘이 너무 꿈만 같고, 너무 좋아서.( ˇ_ˇ)


처음 베트남 여행을 할 때, 그리고 하노이 어느 시장 어귀에서 돼지기름에 볶은 밥그릇을 앞에 놓고 내가 왜 베트남에 왔을까를 생각했다. 말이 '생각'이지 '후회'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땅에서 열흘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은 '간사한 사람 마음'이 떠오를 정도로 180˚ 바뀌어 있었다. 이제야 정이 들 것 같은데 떠나야 하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정 들자 말자 이별이라더니-.

호치민시티의 공항은 하노이 공항과는 달리 분주했다. 시간이 늦어 생각할 틈도 없이 짐을 붙이고 보니 나는 반바지 차림인 것이다. 돌아가야할 한국은 2월인데.( ;; )

정신없이 자다보니 밥을 먹으란다. 빵조각 조금 뜯어먹고 다시 잠을 청하려고 하는데, 조그만 창으로 보이는 풍경이 장관이다.


+ 돌아오는 날 공항에서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던 쑤언의 표정이 눈에 보이게 좋지 않았다.  

쑤언은 나이 스물여섯에 한국에 왔고, 그의 나이 서른 둘인 지금도 한국에 있다.  그때 쑤언의 나이 스물여덟.  언제가 끝인지 알 수 없는, 끝나도 미래를 약속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는 유학길에 다시 올라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만든 것이었다.

그때 일행 중 가장 연장자였던 김남기 선생님이 쑤언의 어깨를 토닥이며, 얼른 열심히 공부해 돌아오면 되지 않느냐는 말씀을 해주셨다.  베트남은 미국과의 전쟁에서 이기고 우리나라가 하지 못한 통일을 이룬 나라라며, 그런 나라에서 열심이 일할 일꾼이 되라는 말씀을 해주셨던 것 같다.  그런 쑤언은 아직도 베트남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당시 석사과정에 있던 쑤언은 석사과정을 마쳤고, 지금은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함께 해야하는 처지라 공부만 하지 못하다보니 박사논문이 계속 늦어지고 있다.  그러고보니 쑤언을 만난지도 조금 됐다, 지난 겨울에 보았으니.  오랜만에 쑤언에게 연락을 해봐야겠다.


뜬금없는 옛글이라 놀라시겠지만 오래된 홈페이지에서 블로그로 이사중이랍니다.  끝내지 못할 숙제 같지만 천천히 옮겨 보려고요.  예전에는 티스토리가 과거날짜로 발행이 됐는데 이젠 안되네요.  그래서 오늘 날짜로 발행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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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2월 8일 작성)

미토mytho는 호치민시티에서 두어 시간 떨어진 곳이다. 작은 도시지만 이 도시엔 많은 여행객들이 찾는다. 그 이유는 메콩강 크루즈 때문이다. 베트남에서 어느 곳 하나 인상적이지 않은 곳이 없었지만 메콩강도 그 중에 하나다. 이 곳 역시 호치민시티에서 약간의 거리가 있는 곳이라 호치민시티만 찾은 사람이 찾아가기 쉽지 않지만 꼭 가보라고 권하고 싶은 곳이다. 호치민시티에 있는 크고 작은 거의 모든 여행사들이 미토에서 출발하는 메콩강 크루즈 상품을 다룬다. 왜 그렇겠는가. 여행상품이 된 곳은 그만한 볼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여행상품을 이용하는 방법은, 앞에서 언급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도착한 도시에서 작은 여행사를 찾는 방법이다. 거의 대부분의 여행사들이 해당도시와 그 근교를 루트로 한 하루 또는 며칠 짜리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비용도 줄이고, 또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기회이므로 이용해도 좋을 것 같다. 나도 베트남을 다시 찾게 되면 여행상품을 이용하여 여행할 생각이다.

사진을 찍은 곳은 선착장의 매점이다. 일행이 흥정에 들어간 사이.

일행이 빌린 중형 보트다. 이 보트를 타고 3시간짜리 투어를 시작했다. 일행이 모두 탈 수 없어 중형보트 2대로 나누어탔다. 여기에서도 알 수 있겠지만 중형이라 하여도 그다지 크지 않다.

메콩강변에 가기전까지 그렇게 강이 큰지 몰랐다. 한강보다 폭이 넓다. 강폭에 깜짝 놀랐다.
사진으로 보기에 강이 깨끗해보이지 않지만 강은 무척 깨끗하다.

메콩강 투어는 강을 따라가다 몇개의 작은 섬에 내려 구경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작은 섬은 저마다의 특산물을 판매하는 형식이다.
투어는 짧은 것에서 하루 넘는 것도 있다고 들었다. 우리는 시간이 없어 짧은 투어를 선택했다.

강에서 목욕하는 아이들. 물놀이에 가까운 목욕이었다. 비누도 없고, 투브도 없고, 수영복도 없었다.
급하게 카메라를 들었는데 담지 못했다. 아이들은 보트를 향해 웃고 있었다.

첫번째 우리가 내린 섬은 과수원이 있었다. 찾아보니 타이선이라는 이름의 섬이다.

섬에 내리면 가이드가 과수원 안쪽으로 안내한다. 작은 오두막이 나오고 오두막에 이르면 과일과 차를 내온다.

과일과 차에 대한 댓가를 지불하지 않지만, 과수원에서는 발효된 술을 판다. 사람들은 기념품 삼이 그 술을 사고, 과수원 사람들은 그렇게 생계를 이어간다.
이런 방식의 투어라는 것을 알게 된 나는 여기서부터 흥미가 확 떨어졌다.


라임이다. 한국에서 퍼를 먹으로 가면 숙주와 함께 레몬을 내어준다. 고기 육수로 된 퍼 국물에 넣어먹는 것이다. 한국에서 레몬이라는 것은 크기는 주먹만하고 색깔은 노란 것이다. 하지만 베트남에서는 우리가 라임이라고 알고 있는 것을 레몬이라고 내어왔다. 베트남에서 라임을 접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과일을 먹고, 차를 마시고, 사람들은 기념품으로 술을 사고. 사실 물건을 팔기는 하지만 베트남의 물가가 그러하듯 그렇게 비싼 수준이 아니어서 부담이 되는 정도는 아니다.

과수원이 있는 섬에서 다음으로 간 곳은 코코넛으로 사탕을 만드는 곳이었다.

말은 사탕인데 엿에 가깝다. 더군다나 베트남의 남단에 이르러 날씨는 절정으로 더웠고 사탕은 더 엿처럼 늘어졌다. 몇 개를 맛보게 하고, 기념품 삼아 사탕을 사는 식이다. 언니와 나도 사탕을 샀다.
집에와서 엄마에게 주니 어릴 때 먹던 사탕이 생각나신단다. 엄마가 어릴 때 먹던 사탕이라면 언제적 이야기인 것인가.
맛은 무척 달지만 뒷맛이 설탕의 단맛과는 다르다.

한 두개의 섬에 더 들렀는데 자세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투어의 방식이 기념품을 파는 것이라는 점에서 반감이 들었지만 메콩강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았다. 올려다본 하늘도 좋았고.

강렬한 햇볕에 반나절만에 피부가 껍질이 벗겨질 정도로 타버렸다. 내 평생 처음 있는 경험이었다.

과일과 사탕만 먹어 투어를 마치니 배가 고팠다. 취향대로 점심을 해결하기로 한 우리는 뿔뿔히 흩어졌다. 우리는 식당에 들어가 만만한 퍼를 시켰다. 영어가 통할리 있나. 손짓발짓으로 주문을 했다. 허기를 달랠 무엇이 나오긴 했는데 퍼가 아니었다. 분이라고, 일종의 비빔 국수였다. 분과 함께 아이스티로 목을 축였다.

식당에서 화장실을 이용하면서 찍은 개와 화로.
베트남에서 만난 개는 모두 이런 식으로 자고 있었다. 날씨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보는 우리는 신기해하며 즐거웠다.

짧은 메콩강 투어를 마치고 우리는 서둘러 호치민시티로 돌아갔다.


+ 메콩강에서 보트를 타고가며 강물에 손을 집어 넣었다.  강물의 냄새를 맡아보았다.  냄새도 없고 물은 깨끗했다.

볍씨가 강물에 떠다니고 있었다.  어느 강가에서 누가 뿌린 볍씨겠지.  
그 볍씨를 보고 있자니, 이렇게 수량이 풍부한 강과 식물이 잘 자라는 기후를 가진 베트남이 왜 가난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농경민족인 베트남 사람들은 부지런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왜.  
사실 답은 간단하다.  미국의 경제봉쇄때문이다.  러시아의 페레스트로이카에 비유되는 도에모이라는 개방정책으로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베트남은 가끔 한국의 TV에 높은 건물과 수많은 모터싸이클의 모습으로 비춰진다.  그 모습은 베트남의 모습이 맞다.  하지만 중부지역이나 북부지역의 모습은 대도시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의무교육이 있지만 학교에 다니기를 포기하고 농사일에 매달려 할만큼 가난하다.  심지어 의무교육을 받지 못할만큼 가난하기도 하다.

풍요로운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메콩델타였지만, 상대적으로 가난한 베트남 사람들의 모습이 짠한 느낌을 주었다.


뜬금없는 옛글이라 놀라시겠지만 오래된 홈페이지에서 블로그로 이사중이랍니다.  끝내지 못할 숙제 같지만 천천히 옮겨 보려고요.  예전에는 티스토리가 과거날짜로 발행이 됐는데 이젠 안되네요.  그래서 오늘 날짜로 발행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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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2월 8일 작성)

호치민시티에서 떨어진 구찌cuchi, 그리고 구찌 시내에서도 떨어진 구찌터널. 짧게 베트남 또는 호치민시티를 방문한 사람이라면 가기 쉽지 않은 여정이지만, 그래도 갈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꼭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구찌터널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두어 시간 걸린 것 같다. 가는 길에 발견한 삼륜자동차. 우리나라 TV에도 가끔 등장한다,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골동품으로. 그런데 베트남에서는 이 삼륜차가 아직 굴러다니고 있었다.

카메라에 담아보려고 노력했지만 달리는 버스안에서 찍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비교적 많은 부분을 담은 삼륜자동차.

길을 묻고, 간식으로 과일을 사려고 잠시 세웠을 때 찍은 사진. 사진의 제목이 왜 '반미노점'이냐. 베트남에선 바케뜨를 '반미'라고 한단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들은 놀라운 우연성에 키득거렸다. "역시 반미의식이 투철해"하고. 베트남에선 바케트를 파는 노점을 발견하는 것이 쉽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은 내가 유일하게 열심히 먹었던 것이기도 하다.

구찌터널이라는 이름은 몰라도 베트남 전쟁당시 베트남 사람들이 터널에서 생활했다는, 그 규모가 적지 않다는 이야기를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 길이가 250km에 이른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다. 대략 부산에서 대전까지 거리가 아니던가.

당시 병사들의 복장이라고 한다. 인형이 목에 두르고 있는 스카프를 기념품 가게에서 판매하고 있었다. 일행 중 몇 사람은 그걸 사기도 하였는데, 나는 그런게 왠지 싫었다.

투어로 운영되는 구찌터널에 가면 안내원이 터널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들려준다.

터널의 끝은 강가와 닿아있으며 온도와 습도, 환기가 자연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하지만 노출은 되지 않도록 만들어졌다고 한다. 터널은 손으로 만들어졌다.

안내원이 설명하는 동안 탈탈탈 돌아가던 선풍기의 스위치.

숲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안내원.

우리는 안내원을 따라 한 숲으로 갔다. 어디를 가나 싶었는데 한 곳에 멈춰서 발로 나뭇잎을 쓸어내고 터널의 입구를 보여줬다. 일행은 탄성을 내뱉었다. 터널 입구의 크기에 말이다. 작아도 너무 작았다.

이 터널의 입구가 진짜다. 가이드가 누가 들어가보겠냐고 하였지만 아무도 나설 수가 없었다. 그나마 체구가 작은 일행이 시도를 해보려고 하였으나 역시 무리였다. 그럼 우리는 못가는건가하고 당황하고 있을때 가이드가 친철하게 여행객들을 위한 터널의 입구로 우리를 안내했다. 이미테이션인 것이다.

여행객을 고려해 높이와 폭을 넓혔다고 하였지만 그래도 좁았다. 공간과 공간을 잇는 터널을 지날땐 쪼그려 걸어야 했으니까.
이 사진을 찍다 '이크'하고 앞으로 넘어져 카메라 앞부분을 찍고 말았다는.(ㅜㅜ )

터널과 터널로 회의실, 식당 등의 공간이 연결되어 있다.

만일의 경우, 외부 침입이 있을 때를 대비하여 곳곳에는 트랩이 있다. 하지만 그 트랩이라는 것이 좀 원시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밝은 조명아래 보아서 그것이 위협적이지 않지만 깜깜한 터널 안이라는 상황으로 가정한다면 이런 트랩도 위험할 것도 같다.

당시 쓰던 타자기.

이곳은 여행객을 위한 터널과 본래의 터널이 연결되는 곳이다. 다시 보아도 도저히 들어갈 수 없을 것 같다.

전쟁당시 폐타이어를 이용하여 만들어 신었다는 샌들. 호치민 샌들이라고들 부른다. 지금은 기념품이 되어 기념품매장에서 구입할 수 있었다.

투어를 끝내고 우리는 땀범벅이 되어 쉼터에 앉았다. 고구마도 아니고, 감자도 아닌 먹거리와 차를 내왔다. 지금 생각하면 마가 아닌가 싶다. 마? 토란?

투어를 담당했던 아저씨. 너무 잘생기셨습니다.(^ ^ )

호치민 샌들을 만드는 작업장.

고무 채취의 흔적.

미군이 떨어뜨렸던 폭탄에 비해 베트콩의 무기는 너무 원시적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무기로 끝까지 싸웠고, 그들은 미국을 이긴 유일한 나라가 됐다.

철장안에 있지만 호락호락하지 않은 눈빛이 베트남과 같다는 생각을 하였던 것 같다.
오래되나서.(-_- )a

대중교통수단인 미니 버스.

기념품 가게로 간 사람들을 기다려 코코넛을 마셨다. 그러는 동안 해가 졌다.

+ 구찌터널 투어에 앞서 설명이 끝나고 나면 전쟁 당시 필름으로 기록한 영상을 보여준다.  한국어로 더빙된 것도 있어 우리는 그 영상을 보았다.  그 영상을 보면서 목소리의 주인공은 누굴까가 나는 궁금했다.  
어색하고 우습기 그지없는 더빙이었지만, 우리는 옛운동권쯤이 아닐까 추측했다, 고맙게도 그 더빙된 영상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내가 할 무엇인가를 찾기도 하였다.  한국어로 더빙된 영상을 열심히 보는 일행을 보면서, 선미마을의 본 영상을 한국에 가져와 번역해 선미마을을 찾는 여행객들이 볼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뜬금없는 옛글이라 놀라시겠지만 오래된 홈페이지에서 블로그로 이사중이랍니다.  끝내지 못할 숙제 같지만 천천히 옮겨 보려고요.  예전에는 티스토리가 과거날짜로 발행이 됐는데 이젠 안되네요.  그래서 오늘 날짜로 발행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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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 27일 작성)

나짱에는 참파유적지를 빼면 이름난 볼거리가 없다. 그래서 나는 그때까지 하지 못한 일들을 해야겠다라고 마음을 먹었다. 조카들에게 엽서쓰기, 그리고 내 홈페이지에 자랑질(?)하기 등등.

별 다른 볼거리가 없었다고는 하지만 여행이 중반을 넘어가던 때라 조카들과 부모님께 엽서를 쓰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 어디 자리를 잡기만하면 졸음이 쏟아졌으니. 단단히 마음 먹은 나는 어두운 호텔방에서 전날 저녁 산책길에 사둔 엽서에 인사를 쓰고 날이 밝기를 기다려 우체국을 찾아갔다. 여행자들이 잘 찾는 곳이 우체국이기도 하지만, 베트남 사람들의 생활의 일부분이기도 해서 호텔에 부탁을 하기보다 꼭 가보고 싶었다.

생각보다 국제우편보내는 절차가 너무 간단해 아쉬웠다. 베트남 사람과 간단한 인사라도 하게 될줄 알았는데. 아쉬운 마음에 이리저리 길거리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내가 우체국을 간 시간은 아이들이 등교하는 시간이었다.

초등학교 학생같은 아이들. 아침에 씨클로를 타고 가는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a

아오자이 교복을 입은 여고생들.
정말 '베트남스러운' 풍경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들에겐 일상이지만, 이방인인 나에게는 가슴이 뭉클한 특별함이 됐다.

음료 한 병 사먹고, 뭘 마셨던가? 오래되서 기억도 안난다.(ㅜㅜ ), 찍은 사진.

다시 작은 가게 앞에 서서 주변을 구경하는데 뒤에서 '부시럭'. 돌아보니 한 아주머니가 재활용품을 정리하고 계신다. 재활용 쓰레기를 수거하는 일은 베트남과 같은 나라에서는 무척 중요한 일이다. 사실 어느 나라가 그래야는 것인데. 자원의 소중함과 자연의 소중함을 생각할 때 말이다.

선미마을을 찾아가는 길에 우리는 길을 물으면서 음료수를 사먹었다. 차를 몰던 사람이 우리가 마시고 남은 음료수 캔, 병을 그냥 창 밖으로 던지라고 했다. 우리는 '엥?'하는 표정이 됐다. 그냥 단지 차안에 쓰레기를 만들지 않으려는 마음인 줄 알았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던지라고 해도 워낙 바른생활인들인 우리들은 주저했는데, 덧붙이는 말이 알루미늄 캔이나 유리 병과 같은 재활용 쓰레기는 그걸 수집하는 사람들에게는 적으나마 도움이 된다고 한다. '아-'하고 신음이 흘러나오긴 했으나, 그렇다는 사실이 신기하다기보다 슬프게만 다가왔다.


나짱에서 만난 쑤언의 사촌동생 순남. 정말 '미소년'아닌가. 순남의 여동생도 정말 이뻤는데 이름이 기억이 안난다.

순남의 나이는 12살쯤이었던 것 같고, 쑤언 이모의 아들이었다. 쑤언의 이모는, 쑤언의 어머니와 정말 닮았었다, 결혼하여 중부지역인 나짱에 살고 있었다. 쑤언은 이모가 결혼하고 처음 만나고 14년 여만에 처음 만나는 것이라고 하였다. 여행이 일반화되어 있지 않은 베트남이다보니, 더군다나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다보니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베트남을 갔을 때 1번 국도가 한참 공사중이었으니-.

호텔 입구에서 찍은 아이들. 함께 등교하기로 한 친구를 기다리는 중이었을까? 아니면 오후반 등교를 기다리는 아이들이었을까?

일행은 베트남에 오고서 처음 한국식당을 찾았다. 여행의 경험이 많지 않은 나지만, 나는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여행 중에 한국식당을 찾은 것이다. 아, 이후 도쿄 여행에서 부대찌게 집을 간적이 있구나.

그래도 배운 게 그거라고 바닥에 신문이 있길래 펼쳐봤다. 무슨 말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설명을 들으니 베트남의 주요미디어는 국영 체제라고 한다. 민영 체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경우라도 정부의 운영지침을 충실히 따른다고. 언론과 출판에 자유가 없다고 했으나, 그럼에도 사회변화를 희망하는 많은 활동이 언론과 출판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했던 것 같다. 그때 마음으로는 베트남의 미디어에 대해서 알아보자고 하였으나, 돌아와서는 잊기도 하였고 사실 정보를 얻을 곳도 없었다.

일행이 찾은 식당은 현대식당. 그 식당에서 한국 영화스텝들과 마주쳤다, 배우 감우성이 포함돼 있었다.

현대식당에서 먹은 메뉴는 비빔밤.

밥을 먹고 주변을 얼쩡거리다 찍은 아이들. 애들이 왜 그렇게 이쁘게 생겼던지. 웃음도 너무 좋다. 찍은 사진을 바로 보여주니 너무들 좋아했는데, 보내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베트남에서 놀랐던 것이 내가 생각했던보다 베트남 사람들은 육식을 즐긴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스테이크와 같은 고깃덩이를 주식으로 한다는 것은 아니다. 바케뜨와 같은 빵을 즐기는데 그 안에 고기류 등을 넣어 프렌치 샌드위치처럼 먹는다. 그외에도 주식인 밥에 고기를 얹어 먹는 식이다. 쌀국수만, 아니 적어도 많이 먹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은 빈약한 지식에서 나오는 오해였다고나 할까.
일행들끼리 더운 나라니 고기를 먹어 기운을 유지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들을 나눴다. 우리나라에서 더위에 삼계탕을 먹는 것처럼. 아, 베트남에도 개고기를 먹는다고 한다.

베트남에서 한글이 쓰여진 중고차를 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특히 버스 종류는. 그런 버스를 처음 볼땐 반가움이 들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버스 꼬리로 나오는 시커먼 연기를 볼 때마다 걱정이 됐다.

씨클로 타기. 앞 글에서 말한대로 1시간쯤에 1$를 주었다. 적은 돈도 아니지만, 많은 돈도 아니라는 생각에 달라는 대로 주었다. 60분은 나짱을 한 바퀴 도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신나게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아저씨가 내리라는 것이다. 처음 돈을 주면서 한 시간 뒤 내릴 곳을 말해주었는데, 그와는 전혀 상관 없는 길 한 가운데서 내리래서 당황을 하였다. 당황해하며 씨클로에서 내리니 '역시나' 말 없이 그냥 가는 것이 아닌가.( i i)
그런데 앞서 가던 아저씨가 뒤를 돌아보고 따라오라고 손짓한다. 머뭇거리며 따라갔다. 따라가며 보니 내리라고 한 곳은 오르막길이었다. 걷기도 힘든데 씨클로에, 무거운 아이(?)에 얼마나 힘에 부쳤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르막길의 정점에서 아저씨는 씨클로를 세우고 다시 타라고 손짓했다. 그렇게 시원한 바닷가길을 달려 목적지인 스파에 갔다. 내가 씨클로를 타는 사이 일행들은 스파에 갔기 때문이다.

스파로 가는 길 오르막이 한 번 더 나타나 한 번 더 걸어야 했다.
스파에 도착하니 일행들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옛 정취가 느껴지는 병에 담긴 환타로 목을 축였다.

밤에 해변 레스토랑에서 음료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마신 음료는 파파야. 이때 처음으로 파파야가 얼마나 맛있는 과일인지를 알게 됐다. 적당히 익어야는데, 많이 익으면 먹어보지 않은 우리는 적응하기 힘든 맛이다, 쥬스로 나온 파파야는 적당했다.

밤하늘을 보니 소설가 방현석의 말대로 깍이고 차오르는 모양이 다른 달이 떠 있었다.


+ 얼마전 후배가 베트남 여행을 간다기에 권해준 책이 소설가 방현석의 하노이에 별이 뜨다이다.  여행을 다녀온 후 베트남과 관련된 책을 몇 권 읽었지만 이 책만큼 잘쓰여진 책이 없는 것 같았다.  지금은 품절되서 구하기 쉽지 않지만, 베트남을 여행할 계획이 있다면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호텔이나 식당 등의 정보가 있지는 않지만 알고 가면 좋을 베트남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뜬금없는 옛글이라 놀라시겠지만 오래된 홈페이지에서 블로그로 이사중이랍니다.  끝내지 못할 숙제 같지만 천천히 옮겨 보려고요.  예전에는 티스토리가 과거날짜로 발행이 됐는데 이젠 안되네요.  그래서 오늘 날짜로 발행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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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멍이들의 천국


누리가 어릴 땐 공원과 놀이터를 매일 출근했다.  그때마다 볼 수 있는 건 나 같이 유모차를 끌고 있는 엄마들이거나 개들과 산책하는 사람들이었다.  듣자하니 영국에선 개를 하루에 두 번 산책 '시켜야 한다'고.  그래서인지 개들이 크기를 떠나 다들 순한 편이다.  마치 아이들처럼 하루에 두 번 바깥 공기를 마시며 맘껏 뛰니 집 안에서, 다른 개들과의 관계에서 스트레스가 없는 편이다.  물론 그래도 문제성 개는 늘 존재하겠지만.  나이든 개를 싣고 있는 개용/고양이용 유모차도 가끔 본다.  공원에서 그런 유모차를 신기해하며 보던 우리에게 그런 유모차를 끌던 할머니가 하신 말씀이다.  "여기는 개들의 천국"이라고.

오늘 장을 보러 갔더니 할로윈 상품이 빠져나간 자리를 빼곡히 크리스마스 상품들이 채우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 '아 역시 영국이구만'했던 상품 - 개들을 위한 민스 파이.


영국에선 크리스마스에 민스 파이를 먹는다.  나는 다진 고기가 든 파이인 줄 알고 몇 년을 손도 대지 않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다져서 조린 과일이 들어 있는 디저트용 파이다.  사람들이 먹는 크리스마스용 디저트 파이를 본떠 만든 개들을 위한 민스 파이가 있었다.  물론 개들용 진저맨 브레드 인형도 있고, 개용/고양이용 스톡킹 선물 꾸러미도 있었다.  양말 모양의 주머니에 개들과 고양이가 좋아할만한 장난감과 간식이 담겨 있었다.


재미로 집에 와서 오늘 뭘 샀는지 보라고 지비에게 찍어 보냈다.  개들을 위한 민스 파이라고 놀라는 지비.  "싸서 많이 사왔는데 어쩌냐"고 했더니 더 놀라는 지비.  놀려 먹는 재미가 솔솔하다.



자폐 아이들을 위한 학교


어제 버스를 타고 가다가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못보던 학교를 하나 발견했다.  '듣도보도 못한 이 학교는 뭐지?'하고 검색해봤다.  자폐 아이들을 위한 초등/중등 학교였다.


누리가 학교를 신청할 즈음 보게 된 브로셔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구와 인근 지역의 초등학교 목록을 보게 됐다.  그 중에 장애 학교가 있어서 '어디지?'하고 생각했다.  장애 정도가 심하지 않은 아이들은 일반학교에 다닌다.  정부에서 이동과 학습을 보조할 수 있는 어시스턴트 교사를 지원해준다.  아마 그때 본 장애학교가 이 학교가 아닐까 싶었는데, 놀라운 건 자폐 아이들을 위한 학교라는 점이다.  잘은 몰라도 장애에 유형에 따라 특화된 교육과 시설이 필요할텐데, 요즘 급증하고 있는 장애 유형을 반영해 생긴 학교인듯하다.  어떤 부모들은 아이가 장애가 있어도 일반학교에서 아이들과 어울려 생활하기를 바란다.  교육적으로 도움이 된다면, 나는 그도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좀더 특별한 교육환경이 필요한 아이들에게는 그에 맞는 선택지가 필요하다.  '역시 영국'이구나 싶었다.  유럽에서 복지수준이 높지 않은 영국이 이렇다면, 유럽의 다른 곳은 어떨까 싶다.   궁금하지만 그 곳에 살지 않고, 또 또래의 아이를 키우지 않으면 이런 것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한국에서 장애학교 설립을 두고 학부모와 지역주민이 충돌하고, 장애아이를 둔 부모들이 무릎 꿇은 사진을 본 뒤라 이 학교의 존재가 더 깊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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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 27일 작성글)

나트랑, 베트남 사람들은 나짱이라고 부르는 휴양도시다. 나트랑이라는 이름은 프랑스 식민역사의 잔재다. 나짱이라고 불러야는데 나트랑이라는 이름이 먼저 입에 붙었다.

나짱의 중심은 해변이다. 해변에 가면 비치배드에 누운 관광객을 볼 수 있다. 그들은 비치배드에 누워 그늘에서 책을 읽고 있다. 그렇게 휴식을 즐기는 곳이 바로 나짱이다.

이 곳에서 처음으로 나는 씨클로를 탔다. 정확한 금액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1달러(US)를 주고 한 시간 정도 시내구경을 했던 것 같다. 나짱은 정말 바닷가에서 쉬는 것 말고는 달리 볼 거리도, 할 거리도 없어보였다. 씨클로 에피소드는 바로 다음 글에.

그렇다고 이른바 여행 포인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곳은 참파유적지다. 대부분은 전란에 타버렸고, 전탑같은 탑만 몇 개동 남아 있다.

참파유적지는, 유적지의 탑들은 베트남의 신앙과 깉은 관계가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특별할 것은 없고, 어디에나 가도 있는 향, 향꽂이가 있고 유적지내 점포에는 향과 같이 기복을 위한 용품들을 팔고 있다.

여기도 시바.

참파유적지는 유적지라기보다 그냥 흔적 같았다. 그다지 보존에 심혈을 기울인 것도 같지 않고. 전선은 어지럽기 그지 없었다. 어지럽고, 낡고, 낡다못해 부서지고 무너진 곳이었다.

아무리 좁은 유적지였지만 이 청년은 처음 그 곳에 들어섰을때나 한 바퀴를 돌았을때나, 그리고 주변에 사진을 찍을때나 모두 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하릴없다'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여기서부터는 씨클로를 타고가며 찍었던 사진들이다.

금성홍기. 베트남의 국기다.

+ 나짱의 씁쓸했던 기억은 그것이다.  나트랑이라고 불리는 이름에서도 알겠지만 나짱을 좋아하는 건 유럽에서 온 관광객들이다.  그 중에서도 프랑스인들.  

베트남은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역사가 있다.  바게뜨, 에스프레소식(진한) 커피의 식문화로 남아 있는 문화들이 있기도 하다.  그 비슷함과 익숙함 때문인지 프랑스인 관광객이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아시아 중에서는 일본인들이 단연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사실 일본인의 흔적은 지구 어디를 가도 찾기 쉽고, 그들의 비중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프랑스인 관광객들이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 나는 못마땅했다.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도시가 아닌 관광지에서는 영어만큼 프랑스어가 통한다.  한국이 그런 것처럼.  그나마 한국은 '가까우니까'라는 이해할만한 이유가 있지만, 베트남에 프랑스인 관광객들이 많다는 건 어떻게 봐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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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18일 토요일 / 주말학교 / 용(머리)


볼 일을 보고 집에 돌아오니 용을 만들었다고 흔들어대던 누리.

도대체 어디가 용인지 알 수 없었는데, 오늘 사진 찍는다고 이리저리 돌려보니 용머리다.  불을 내뿜는.

나름 불도 있고, 빠끔한 콧구멍도 있고, 볼록한 눈도 있는 용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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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11일 토요일 / 주말학교 / 폴란드 국기


주말학교에서 만들어온 폴란드 국기.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한국에 살고 있는 폴란드인 친구 사진을 보니 폴란드 독립기념일이었다.

그 사진을 보고서야 "아!"하는 지비. 


+


그 집 아이 사진처럼 올려 보겠다고 사진을 찍으려다 정신 없이 국기를 흔들어댄다고 버럭해서 누리를 울린 지비.

나는 또 그런 일로 아이를 울린다고 버럭.



그래서 이런 사진이 찍혔다.


누리에게 미안한 마음이(지비에겐 얄미운 마음이) 들어 페이스북엔 올리지 않은 사진.

이런저런 사진을 다 찍어 올리긴 해도 다른 사람 보여만 주려고 올리는 사진은 아니다.  우리도 즐거워야지.  그지 누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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