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6월 25일)

하노이에서 호치민시티까지 그 먼길을 타고 다닌 미니버스다. 24인승 버스 미니버스이지만 그야말로 미니버스이고, 짐들이 많아 남는 공간이 없었다. 아마도 여행 중 다들 잠든 시간에 찍은 사진인 것 같다.

달리는 미니버스 안에서 찍은 사진들.

잠시 쉬어가는 휴게소에서 찍은 사진.

한밤 중에 어느 시골도로 휴게소, 그냥 가게라고 해야 적당한 규모,에 들렀더니 주인이 띄엄띄엄 한국말을 한다. 자세한 내막을 들어보니 한국의 그것도 부산의 신평공단에서 일했던 노동자라고 한다. 한국에서 돈을 벌어 돌아와 가게를 차리게 됐다고 반가워 한다. 우리는 그가 반갑고 고마웠다. 분명 고생 많았을 한국에서의 시간을 그렇게 기억해줘서. 그가 끓여주는 라면으로 야식을 즐긴 후 다시 가던 길을 재촉하여 갔다.

주인이 한국과 인연이 있는 사람이라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 사람이라서 나는 진열된 과자들을 편하게 구경하고 사진찍을 수 있었다. 정말 배낭여행객처지만 아니라면 기념품 삼아 사고 싶은 것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어릴 때 먹던 과자들과 한국에서 이름있는 과자들의 이미테이션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뒤에 알게 된 사실인데 한국의 과자들은 대부분 일본의 이름있는 과자들을 따라 한 것이었다.( ;; )

여행을 준비하여 샀던 카메라가방. 여행을 다녀오고서도 매일 같이 들고 다녔다. 카메라가방 같지 않아서 좋았는데, 매일 들고 다니다보니 이젠 낡아서 쓸 수가 없는 지경이 됐다. 오죽했으면 같은 모양의 가방을 사려고까지 했다. 그런데 살 수가 없었다.
카메라 그리고 여권과 돈을 담은 가방은 어디를 가도 몸에서 놓지 않았다. 그래야 한다.


하노이에서 호치민시티로 간 길은 1번 국도였다. 그 도로가 아직 부분부분 비포장구간이 있었다. 그 것 하나만으로도 베트남의 사정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쉼없이 달린 길이라 빨래를 할 틈이 없었다. 다 말리지 못한 양말을 이동하면서 차창으로 들어온 햇빛으로 말리는 중. 시간이 흐르면서 이럴 일이 없어졌다. 왜, 계속 맨발로 다녀서.( ;; )

하교하는 아이들.

립톤티는 여행중 내가 가장 즐겨마시는 음료수다. 어느 곳을 가도 콜라는 있지만, 탄산을 즐기지 않는 내가 가장 쉽게 마실 수 있는 음료이기 때문이다.
립톤티를 즐겨마시게 된 것은 유럽여행 때부터다. 만만한게 물이라고 생각없이 마시던 나는 물이라고 다 같은 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물이라고 생각하고 산 물이 탄산수라는 것을 알고 벌컥하고 마셨다가 고생을 하였다. 그 뒤엔 세상말로 '안전빵'으로 립톤티를 마시게 됐다.

이 기차는 베트남에서 처음으로 본 기차였다. 기념삼아 찍었다.
하노이에서 호치민시티까지 기차로 타면 39시간이 걸린다. 좌석의 종류가 두어 가지 있긴 하지만 비행기를 타지 않는 이상 꼭 그만큼의 시간이 걸린다. 기회가 되면 꼭 타볼 생각이다.

전봇대의 생김이 한국과 달라 찍었다.

주요소에서 찍은 사진이다. 뭘까 뭘까 궁금해 하고 있는 낡은 모터사이클 한대가 탈탈탈 와서 기름을 넣고 간다.

선미마을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등 뒤에서 '낄낄'한다. 놀라서 돌아보니 망태기 안에 돼지가 있었다. 어디 돼지를 팔러가는 길인가 보다. 저렇게 돼지를 기르지는 않으니 말이다. 이 또한 신기해서 찰칵.

이 돼지를 보고 난 뒤에는 이렇게 싸여진 돼지가 종종 보였다.


구아바. 맛은 푸른 대추맛. 베트남 남부지역의 특산물이다.

한국으로 돌아오고서 얼마 뒤 구아바 쥬스가 상품으로 나왔다. "구아바~구아바~"하는. 당장 사먹었다. 실망스러운 맛이었다. 거의 설탕물이었다. 구아바는 그런 맛이 아닌데-.


+ 베트남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서 나는 가기전보다 더 많은 책들을 보았다.  '아, 그거구나'하는 것도 있었고, 여전히 모를 것들도 있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알면 알 수록 베트남을 좋아하게 된다는 사실.

모든 여행이 그런 것 같다.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에서 고미숙의 말처럼 알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알게 되는 것 같다.  

+ 여행을 다녀오고서 베트남에 관한 정보를 끌어모으던 중 나와우리라는 단체를 알게 됐다.  나와우리에서는 교류사업으로 묘지조성사업을 하고 있었다.  이를 오현씨에게 소개하였다.  묘지조성사업은 농촌활동과 비슷한 형태로 이루어진다.  한국군이 민간인을 학살한 지역에 들어가 묘지 만드는 일을 한다.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해 공부하는 계기가 됐다.

나와우리를 통해서 선미마을에서 영상을 가져와 번역하고, 자막을 넣어 다시 보냈다.  나와우리의 간사인 김정우 선생님은 뒤에 알게 된 베트남 친구 투항에게 호치민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친 사람이다.  김정우 선생님은 코이카로 2년 동안 베트남에 갔었다.

베트남 여행에서 통역을 했던 쑤언을 통해 부산외국어대학에 다니고 있던 투항을 알게 됐다.  투항은 뒤에 우리과 대학원에 들어와 후배가 됐다.  지금도 연락을 하고 있는 투항은 석사과정을 마치고 현재는 서울에서 일하고 있다.

+ 베트남에 관련해서만도 인연들이 실타래처럼 엮였다.  이 실타래 안에는 인연이 되지 못한 인연들이 또 있다.  
김정우 선생님을 통해서 영상을 가져올 것을 부탁한 사람은 이마리오라는 감독이다.  이 감독은 당시 베트남에서 어떤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이후 이 작품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봤다.

또 pal방식을 ntsc방식으로 변환하기 위해 한 기관에 문의를 했었다.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회원이 아니면 어렵다는 것이었고, 그를 위해서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뭐 이런데가 다 있어'하고 말았는데, 그 기관이 미디액트다.
이 정도면 인연이 된건가?

+ 기회가 된다면 한 일년쯤 베트남에 살아보고 싶다.  내 나이 서른다섯이 되기 전에 그런 시간을 가지게 될 줄 알았는데,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그래도 난 꼭 간다.  
뭐, 할 일이 있는 것은 아니고 살면서 사진을 좀 찍어보고 싶다.  낮엔 사진 찍고 저녁엔 커피나 맥주를 마시고.  그냥 살면서 느릿느릿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런 날이 올까?

+ 이렇게 베트남 여행기는 끝!



뜬금없는 옛글이라 놀라시겠지만 오래된 홈페이지에서 블로그로 이사중이랍니다.  끝내지 못할 숙제 같지만 천천히 옮겨 보려고요.  예전에는 티스토리가 과거날짜로 발행이 됐는데 이젠 안되네요.  그래서 오늘 날짜로 발행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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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25일 작성)


베트남 여행을 가면서 입고간 청바지. 아무데나 털썩털썩 앉고 계속 입다보니 헤져 구멍이 났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호텔에 버리고 왔다. 조금이라도 짐을 줄여보려고.
그땐 여행에 대한 노하우가 없어, 사실 지금도 없기는 매 한 가지다만, 옷짐이 가장 많았다. 지금도 그런 경향이 없지 않지만. 비교적 물가가 저렴한 나라를 여행할때는 현지에 가서 사입는 방법을 권하고 싶다. 저렴하기도 하고, 돌아오면 기념품이 되기도 한다. 단, 그러한 여행법은 표준체형 또는 그보다 작은&날씬한 경우만 해당한다. 나는, 나는 안돼.(ㅜㅜ )

호치민시티에 가서는 메콩강 투어다, 구찌터널이다 시외로만 나돌아서 정작 호치민시티에서 찍은 사진은 없다. 아침저녁으로 밥 먹으며 어슬렁 거린 거리가 전부이니. 하지만 그도 나쁘지 않다고 스스로 평가하고 있다.

베트남 커피. 여행을 하면서 이미 사둔 커피가 있어 새로이 구입하지는 않았다.
베트남의 커피 생산량은 세계 3위다. 놀랍다. 하지만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커피에 밀려 품질을 알아주는 커피는 아니다. 맛은 잘모르지만 좋아라 하고 먹는다. 베트남에 다녀오고서 계속. 베트남 여행을 통해 알게 된 친구들이 집에 다니러 갔다올 때마다 커피를 선물로 사가지고 온다.

호치민시티는 모방그림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렇게 듣고보니 이런 장면도 기념이 될듯하여 한 장 찍었다.

앞서 말했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의외로 육식을 즐긴다. 더운 날씨를 이기기 위함이라고 우리끼리 생각하고 말았다.

베트남 커피를 내려먹는 방식이다. 철제로 된 드리퍼에 커피를 꼭꼭눌러담고 커피를 내린다. 진하게 내려진 커피와 연유를 섞어 먹는 것이 베트남에서 커피를 먹는 방식이다.
여행에서 돌아올때 철제 드리퍼를 사오기는 했는데 베트남에서 먹던 것과는 달랐다. 언니와 함께 베트남에서 마셨던 커피를 재현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모두 실패. 철제 드리퍼는 기념품으로만 남았다.

떠나오던 날 아침 미니호텔 창에서 내려다본 풍경. 한참 동안 내려다봤다.
베트남에서 보낸 열흘이 너무 꿈만 같고, 너무 좋아서.( ˇ_ˇ)


처음 베트남 여행을 할 때, 그리고 하노이 어느 시장 어귀에서 돼지기름에 볶은 밥그릇을 앞에 놓고 내가 왜 베트남에 왔을까를 생각했다. 말이 '생각'이지 '후회'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땅에서 열흘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은 '간사한 사람 마음'이 떠오를 정도로 180˚ 바뀌어 있었다. 이제야 정이 들 것 같은데 떠나야 하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정 들자 말자 이별이라더니-.

호치민시티의 공항은 하노이 공항과는 달리 분주했다. 시간이 늦어 생각할 틈도 없이 짐을 붙이고 보니 나는 반바지 차림인 것이다. 돌아가야할 한국은 2월인데.( ;; )

정신없이 자다보니 밥을 먹으란다. 빵조각 조금 뜯어먹고 다시 잠을 청하려고 하는데, 조그만 창으로 보이는 풍경이 장관이다.


+ 돌아오는 날 공항에서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던 쑤언의 표정이 눈에 보이게 좋지 않았다.  

쑤언은 나이 스물여섯에 한국에 왔고, 그의 나이 서른 둘인 지금도 한국에 있다.  그때 쑤언의 나이 스물여덟.  언제가 끝인지 알 수 없는, 끝나도 미래를 약속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는 유학길에 다시 올라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만든 것이었다.

그때 일행 중 가장 연장자였던 김남기 선생님이 쑤언의 어깨를 토닥이며, 얼른 열심히 공부해 돌아오면 되지 않느냐는 말씀을 해주셨다.  베트남은 미국과의 전쟁에서 이기고 우리나라가 하지 못한 통일을 이룬 나라라며, 그런 나라에서 열심이 일할 일꾼이 되라는 말씀을 해주셨던 것 같다.  그런 쑤언은 아직도 베트남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당시 석사과정에 있던 쑤언은 석사과정을 마쳤고, 지금은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함께 해야하는 처지라 공부만 하지 못하다보니 박사논문이 계속 늦어지고 있다.  그러고보니 쑤언을 만난지도 조금 됐다, 지난 겨울에 보았으니.  오랜만에 쑤언에게 연락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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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2월 8일 작성)

미토mytho는 호치민시티에서 두어 시간 떨어진 곳이다. 작은 도시지만 이 도시엔 많은 여행객들이 찾는다. 그 이유는 메콩강 크루즈 때문이다. 베트남에서 어느 곳 하나 인상적이지 않은 곳이 없었지만 메콩강도 그 중에 하나다. 이 곳 역시 호치민시티에서 약간의 거리가 있는 곳이라 호치민시티만 찾은 사람이 찾아가기 쉽지 않지만 꼭 가보라고 권하고 싶은 곳이다. 호치민시티에 있는 크고 작은 거의 모든 여행사들이 미토에서 출발하는 메콩강 크루즈 상품을 다룬다. 왜 그렇겠는가. 여행상품이 된 곳은 그만한 볼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여행상품을 이용하는 방법은, 앞에서 언급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도착한 도시에서 작은 여행사를 찾는 방법이다. 거의 대부분의 여행사들이 해당도시와 그 근교를 루트로 한 하루 또는 며칠 짜리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비용도 줄이고, 또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기회이므로 이용해도 좋을 것 같다. 나도 베트남을 다시 찾게 되면 여행상품을 이용하여 여행할 생각이다.

사진을 찍은 곳은 선착장의 매점이다. 일행이 흥정에 들어간 사이.

일행이 빌린 중형 보트다. 이 보트를 타고 3시간짜리 투어를 시작했다. 일행이 모두 탈 수 없어 중형보트 2대로 나누어탔다. 여기에서도 알 수 있겠지만 중형이라 하여도 그다지 크지 않다.

메콩강변에 가기전까지 그렇게 강이 큰지 몰랐다. 한강보다 폭이 넓다. 강폭에 깜짝 놀랐다.
사진으로 보기에 강이 깨끗해보이지 않지만 강은 무척 깨끗하다.

메콩강 투어는 강을 따라가다 몇개의 작은 섬에 내려 구경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작은 섬은 저마다의 특산물을 판매하는 형식이다.
투어는 짧은 것에서 하루 넘는 것도 있다고 들었다. 우리는 시간이 없어 짧은 투어를 선택했다.

강에서 목욕하는 아이들. 물놀이에 가까운 목욕이었다. 비누도 없고, 투브도 없고, 수영복도 없었다.
급하게 카메라를 들었는데 담지 못했다. 아이들은 보트를 향해 웃고 있었다.

첫번째 우리가 내린 섬은 과수원이 있었다. 찾아보니 타이선이라는 이름의 섬이다.

섬에 내리면 가이드가 과수원 안쪽으로 안내한다. 작은 오두막이 나오고 오두막에 이르면 과일과 차를 내온다.

과일과 차에 대한 댓가를 지불하지 않지만, 과수원에서는 발효된 술을 판다. 사람들은 기념품 삼이 그 술을 사고, 과수원 사람들은 그렇게 생계를 이어간다.
이런 방식의 투어라는 것을 알게 된 나는 여기서부터 흥미가 확 떨어졌다.


라임이다. 한국에서 퍼를 먹으로 가면 숙주와 함께 레몬을 내어준다. 고기 육수로 된 퍼 국물에 넣어먹는 것이다. 한국에서 레몬이라는 것은 크기는 주먹만하고 색깔은 노란 것이다. 하지만 베트남에서는 우리가 라임이라고 알고 있는 것을 레몬이라고 내어왔다. 베트남에서 라임을 접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과일을 먹고, 차를 마시고, 사람들은 기념품으로 술을 사고. 사실 물건을 팔기는 하지만 베트남의 물가가 그러하듯 그렇게 비싼 수준이 아니어서 부담이 되는 정도는 아니다.

과수원이 있는 섬에서 다음으로 간 곳은 코코넛으로 사탕을 만드는 곳이었다.

말은 사탕인데 엿에 가깝다. 더군다나 베트남의 남단에 이르러 날씨는 절정으로 더웠고 사탕은 더 엿처럼 늘어졌다. 몇 개를 맛보게 하고, 기념품 삼아 사탕을 사는 식이다. 언니와 나도 사탕을 샀다.
집에와서 엄마에게 주니 어릴 때 먹던 사탕이 생각나신단다. 엄마가 어릴 때 먹던 사탕이라면 언제적 이야기인 것인가.
맛은 무척 달지만 뒷맛이 설탕의 단맛과는 다르다.

한 두개의 섬에 더 들렀는데 자세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투어의 방식이 기념품을 파는 것이라는 점에서 반감이 들었지만 메콩강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았다. 올려다본 하늘도 좋았고.

강렬한 햇볕에 반나절만에 피부가 껍질이 벗겨질 정도로 타버렸다. 내 평생 처음 있는 경험이었다.

과일과 사탕만 먹어 투어를 마치니 배가 고팠다. 취향대로 점심을 해결하기로 한 우리는 뿔뿔히 흩어졌다. 우리는 식당에 들어가 만만한 퍼를 시켰다. 영어가 통할리 있나. 손짓발짓으로 주문을 했다. 허기를 달랠 무엇이 나오긴 했는데 퍼가 아니었다. 분이라고, 일종의 비빔 국수였다. 분과 함께 아이스티로 목을 축였다.

식당에서 화장실을 이용하면서 찍은 개와 화로.
베트남에서 만난 개는 모두 이런 식으로 자고 있었다. 날씨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보는 우리는 신기해하며 즐거웠다.

짧은 메콩강 투어를 마치고 우리는 서둘러 호치민시티로 돌아갔다.


+ 메콩강에서 보트를 타고가며 강물에 손을 집어 넣었다.  강물의 냄새를 맡아보았다.  냄새도 없고 물은 깨끗했다.

볍씨가 강물에 떠다니고 있었다.  어느 강가에서 누가 뿌린 볍씨겠지.  
그 볍씨를 보고 있자니, 이렇게 수량이 풍부한 강과 식물이 잘 자라는 기후를 가진 베트남이 왜 가난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농경민족인 베트남 사람들은 부지런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왜.  
사실 답은 간단하다.  미국의 경제봉쇄때문이다.  러시아의 페레스트로이카에 비유되는 도에모이라는 개방정책으로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베트남은 가끔 한국의 TV에 높은 건물과 수많은 모터싸이클의 모습으로 비춰진다.  그 모습은 베트남의 모습이 맞다.  하지만 중부지역이나 북부지역의 모습은 대도시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의무교육이 있지만 학교에 다니기를 포기하고 농사일에 매달려 할만큼 가난하다.  심지어 의무교육을 받지 못할만큼 가난하기도 하다.

풍요로운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메콩델타였지만, 상대적으로 가난한 베트남 사람들의 모습이 짠한 느낌을 주었다.


뜬금없는 옛글이라 놀라시겠지만 오래된 홈페이지에서 블로그로 이사중이랍니다.  끝내지 못할 숙제 같지만 천천히 옮겨 보려고요.  예전에는 티스토리가 과거날짜로 발행이 됐는데 이젠 안되네요.  그래서 오늘 날짜로 발행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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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2월 8일 작성)

호치민시티에서 떨어진 구찌cuchi, 그리고 구찌 시내에서도 떨어진 구찌터널. 짧게 베트남 또는 호치민시티를 방문한 사람이라면 가기 쉽지 않은 여정이지만, 그래도 갈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꼭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구찌터널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두어 시간 걸린 것 같다. 가는 길에 발견한 삼륜자동차. 우리나라 TV에도 가끔 등장한다,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골동품으로. 그런데 베트남에서는 이 삼륜차가 아직 굴러다니고 있었다.

카메라에 담아보려고 노력했지만 달리는 버스안에서 찍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비교적 많은 부분을 담은 삼륜자동차.

길을 묻고, 간식으로 과일을 사려고 잠시 세웠을 때 찍은 사진. 사진의 제목이 왜 '반미노점'이냐. 베트남에선 바케뜨를 '반미'라고 한단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들은 놀라운 우연성에 키득거렸다. "역시 반미의식이 투철해"하고. 베트남에선 바케트를 파는 노점을 발견하는 것이 쉽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은 내가 유일하게 열심히 먹었던 것이기도 하다.

구찌터널이라는 이름은 몰라도 베트남 전쟁당시 베트남 사람들이 터널에서 생활했다는, 그 규모가 적지 않다는 이야기를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 길이가 250km에 이른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다. 대략 부산에서 대전까지 거리가 아니던가.

당시 병사들의 복장이라고 한다. 인형이 목에 두르고 있는 스카프를 기념품 가게에서 판매하고 있었다. 일행 중 몇 사람은 그걸 사기도 하였는데, 나는 그런게 왠지 싫었다.

투어로 운영되는 구찌터널에 가면 안내원이 터널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들려준다.

터널의 끝은 강가와 닿아있으며 온도와 습도, 환기가 자연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하지만 노출은 되지 않도록 만들어졌다고 한다. 터널은 손으로 만들어졌다.

안내원이 설명하는 동안 탈탈탈 돌아가던 선풍기의 스위치.

숲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안내원.

우리는 안내원을 따라 한 숲으로 갔다. 어디를 가나 싶었는데 한 곳에 멈춰서 발로 나뭇잎을 쓸어내고 터널의 입구를 보여줬다. 일행은 탄성을 내뱉었다. 터널 입구의 크기에 말이다. 작아도 너무 작았다.

이 터널의 입구가 진짜다. 가이드가 누가 들어가보겠냐고 하였지만 아무도 나설 수가 없었다. 그나마 체구가 작은 일행이 시도를 해보려고 하였으나 역시 무리였다. 그럼 우리는 못가는건가하고 당황하고 있을때 가이드가 친철하게 여행객들을 위한 터널의 입구로 우리를 안내했다. 이미테이션인 것이다.

여행객을 고려해 높이와 폭을 넓혔다고 하였지만 그래도 좁았다. 공간과 공간을 잇는 터널을 지날땐 쪼그려 걸어야 했으니까.
이 사진을 찍다 '이크'하고 앞으로 넘어져 카메라 앞부분을 찍고 말았다는.(ㅜㅜ )

터널과 터널로 회의실, 식당 등의 공간이 연결되어 있다.

만일의 경우, 외부 침입이 있을 때를 대비하여 곳곳에는 트랩이 있다. 하지만 그 트랩이라는 것이 좀 원시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밝은 조명아래 보아서 그것이 위협적이지 않지만 깜깜한 터널 안이라는 상황으로 가정한다면 이런 트랩도 위험할 것도 같다.

당시 쓰던 타자기.

이곳은 여행객을 위한 터널과 본래의 터널이 연결되는 곳이다. 다시 보아도 도저히 들어갈 수 없을 것 같다.

전쟁당시 폐타이어를 이용하여 만들어 신었다는 샌들. 호치민 샌들이라고들 부른다. 지금은 기념품이 되어 기념품매장에서 구입할 수 있었다.

투어를 끝내고 우리는 땀범벅이 되어 쉼터에 앉았다. 고구마도 아니고, 감자도 아닌 먹거리와 차를 내왔다. 지금 생각하면 마가 아닌가 싶다. 마? 토란?

투어를 담당했던 아저씨. 너무 잘생기셨습니다.(^ ^ )

호치민 샌들을 만드는 작업장.

고무 채취의 흔적.

미군이 떨어뜨렸던 폭탄에 비해 베트콩의 무기는 너무 원시적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무기로 끝까지 싸웠고, 그들은 미국을 이긴 유일한 나라가 됐다.

철장안에 있지만 호락호락하지 않은 눈빛이 베트남과 같다는 생각을 하였던 것 같다.
오래되나서.(-_- )a

대중교통수단인 미니 버스.

기념품 가게로 간 사람들을 기다려 코코넛을 마셨다. 그러는 동안 해가 졌다.

+ 구찌터널 투어에 앞서 설명이 끝나고 나면 전쟁 당시 필름으로 기록한 영상을 보여준다.  한국어로 더빙된 것도 있어 우리는 그 영상을 보았다.  그 영상을 보면서 목소리의 주인공은 누굴까가 나는 궁금했다.  
어색하고 우습기 그지없는 더빙이었지만, 우리는 옛운동권쯤이 아닐까 추측했다, 고맙게도 그 더빙된 영상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내가 할 무엇인가를 찾기도 하였다.  한국어로 더빙된 영상을 열심히 보는 일행을 보면서, 선미마을의 본 영상을 한국에 가져와 번역해 선미마을을 찾는 여행객들이 볼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뜬금없는 옛글이라 놀라시겠지만 오래된 홈페이지에서 블로그로 이사중이랍니다.  끝내지 못할 숙제 같지만 천천히 옮겨 보려고요.  예전에는 티스토리가 과거날짜로 발행이 됐는데 이젠 안되네요.  그래서 오늘 날짜로 발행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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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 27일 작성)

나짱에는 참파유적지를 빼면 이름난 볼거리가 없다. 그래서 나는 그때까지 하지 못한 일들을 해야겠다라고 마음을 먹었다. 조카들에게 엽서쓰기, 그리고 내 홈페이지에 자랑질(?)하기 등등.

별 다른 볼거리가 없었다고는 하지만 여행이 중반을 넘어가던 때라 조카들과 부모님께 엽서를 쓰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 어디 자리를 잡기만하면 졸음이 쏟아졌으니. 단단히 마음 먹은 나는 어두운 호텔방에서 전날 저녁 산책길에 사둔 엽서에 인사를 쓰고 날이 밝기를 기다려 우체국을 찾아갔다. 여행자들이 잘 찾는 곳이 우체국이기도 하지만, 베트남 사람들의 생활의 일부분이기도 해서 호텔에 부탁을 하기보다 꼭 가보고 싶었다.

생각보다 국제우편보내는 절차가 너무 간단해 아쉬웠다. 베트남 사람과 간단한 인사라도 하게 될줄 알았는데. 아쉬운 마음에 이리저리 길거리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내가 우체국을 간 시간은 아이들이 등교하는 시간이었다.

초등학교 학생같은 아이들. 아침에 씨클로를 타고 가는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a

아오자이 교복을 입은 여고생들.
정말 '베트남스러운' 풍경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들에겐 일상이지만, 이방인인 나에게는 가슴이 뭉클한 특별함이 됐다.

음료 한 병 사먹고, 뭘 마셨던가? 오래되서 기억도 안난다.(ㅜㅜ ), 찍은 사진.

다시 작은 가게 앞에 서서 주변을 구경하는데 뒤에서 '부시럭'. 돌아보니 한 아주머니가 재활용품을 정리하고 계신다. 재활용 쓰레기를 수거하는 일은 베트남과 같은 나라에서는 무척 중요한 일이다. 사실 어느 나라가 그래야는 것인데. 자원의 소중함과 자연의 소중함을 생각할 때 말이다.

선미마을을 찾아가는 길에 우리는 길을 물으면서 음료수를 사먹었다. 차를 몰던 사람이 우리가 마시고 남은 음료수 캔, 병을 그냥 창 밖으로 던지라고 했다. 우리는 '엥?'하는 표정이 됐다. 그냥 단지 차안에 쓰레기를 만들지 않으려는 마음인 줄 알았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던지라고 해도 워낙 바른생활인들인 우리들은 주저했는데, 덧붙이는 말이 알루미늄 캔이나 유리 병과 같은 재활용 쓰레기는 그걸 수집하는 사람들에게는 적으나마 도움이 된다고 한다. '아-'하고 신음이 흘러나오긴 했으나, 그렇다는 사실이 신기하다기보다 슬프게만 다가왔다.


나짱에서 만난 쑤언의 사촌동생 순남. 정말 '미소년'아닌가. 순남의 여동생도 정말 이뻤는데 이름이 기억이 안난다.

순남의 나이는 12살쯤이었던 것 같고, 쑤언 이모의 아들이었다. 쑤언의 이모는, 쑤언의 어머니와 정말 닮았었다, 결혼하여 중부지역인 나짱에 살고 있었다. 쑤언은 이모가 결혼하고 처음 만나고 14년 여만에 처음 만나는 것이라고 하였다. 여행이 일반화되어 있지 않은 베트남이다보니, 더군다나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다보니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베트남을 갔을 때 1번 국도가 한참 공사중이었으니-.

호텔 입구에서 찍은 아이들. 함께 등교하기로 한 친구를 기다리는 중이었을까? 아니면 오후반 등교를 기다리는 아이들이었을까?

일행은 베트남에 오고서 처음 한국식당을 찾았다. 여행의 경험이 많지 않은 나지만, 나는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여행 중에 한국식당을 찾은 것이다. 아, 이후 도쿄 여행에서 부대찌게 집을 간적이 있구나.

그래도 배운 게 그거라고 바닥에 신문이 있길래 펼쳐봤다. 무슨 말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설명을 들으니 베트남의 주요미디어는 국영 체제라고 한다. 민영 체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경우라도 정부의 운영지침을 충실히 따른다고. 언론과 출판에 자유가 없다고 했으나, 그럼에도 사회변화를 희망하는 많은 활동이 언론과 출판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했던 것 같다. 그때 마음으로는 베트남의 미디어에 대해서 알아보자고 하였으나, 돌아와서는 잊기도 하였고 사실 정보를 얻을 곳도 없었다.

일행이 찾은 식당은 현대식당. 그 식당에서 한국 영화스텝들과 마주쳤다, 배우 감우성이 포함돼 있었다.

현대식당에서 먹은 메뉴는 비빔밤.

밥을 먹고 주변을 얼쩡거리다 찍은 아이들. 애들이 왜 그렇게 이쁘게 생겼던지. 웃음도 너무 좋다. 찍은 사진을 바로 보여주니 너무들 좋아했는데, 보내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베트남에서 놀랐던 것이 내가 생각했던보다 베트남 사람들은 육식을 즐긴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스테이크와 같은 고깃덩이를 주식으로 한다는 것은 아니다. 바케뜨와 같은 빵을 즐기는데 그 안에 고기류 등을 넣어 프렌치 샌드위치처럼 먹는다. 그외에도 주식인 밥에 고기를 얹어 먹는 식이다. 쌀국수만, 아니 적어도 많이 먹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은 빈약한 지식에서 나오는 오해였다고나 할까.
일행들끼리 더운 나라니 고기를 먹어 기운을 유지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들을 나눴다. 우리나라에서 더위에 삼계탕을 먹는 것처럼. 아, 베트남에도 개고기를 먹는다고 한다.

베트남에서 한글이 쓰여진 중고차를 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특히 버스 종류는. 그런 버스를 처음 볼땐 반가움이 들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버스 꼬리로 나오는 시커먼 연기를 볼 때마다 걱정이 됐다.

씨클로 타기. 앞 글에서 말한대로 1시간쯤에 1$를 주었다. 적은 돈도 아니지만, 많은 돈도 아니라는 생각에 달라는 대로 주었다. 60분은 나짱을 한 바퀴 도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신나게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아저씨가 내리라는 것이다. 처음 돈을 주면서 한 시간 뒤 내릴 곳을 말해주었는데, 그와는 전혀 상관 없는 길 한 가운데서 내리래서 당황을 하였다. 당황해하며 씨클로에서 내리니 '역시나' 말 없이 그냥 가는 것이 아닌가.( i i)
그런데 앞서 가던 아저씨가 뒤를 돌아보고 따라오라고 손짓한다. 머뭇거리며 따라갔다. 따라가며 보니 내리라고 한 곳은 오르막길이었다. 걷기도 힘든데 씨클로에, 무거운 아이(?)에 얼마나 힘에 부쳤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르막길의 정점에서 아저씨는 씨클로를 세우고 다시 타라고 손짓했다. 그렇게 시원한 바닷가길을 달려 목적지인 스파에 갔다. 내가 씨클로를 타는 사이 일행들은 스파에 갔기 때문이다.

스파로 가는 길 오르막이 한 번 더 나타나 한 번 더 걸어야 했다.
스파에 도착하니 일행들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옛 정취가 느껴지는 병에 담긴 환타로 목을 축였다.

밤에 해변 레스토랑에서 음료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마신 음료는 파파야. 이때 처음으로 파파야가 얼마나 맛있는 과일인지를 알게 됐다. 적당히 익어야는데, 많이 익으면 먹어보지 않은 우리는 적응하기 힘든 맛이다, 쥬스로 나온 파파야는 적당했다.

밤하늘을 보니 소설가 방현석의 말대로 깍이고 차오르는 모양이 다른 달이 떠 있었다.


+ 얼마전 후배가 베트남 여행을 간다기에 권해준 책이 소설가 방현석의 하노이에 별이 뜨다이다.  여행을 다녀온 후 베트남과 관련된 책을 몇 권 읽었지만 이 책만큼 잘쓰여진 책이 없는 것 같았다.  지금은 품절되서 구하기 쉽지 않지만, 베트남을 여행할 계획이 있다면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호텔이나 식당 등의 정보가 있지는 않지만 알고 가면 좋을 베트남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뜬금없는 옛글이라 놀라시겠지만 오래된 홈페이지에서 블로그로 이사중이랍니다.  끝내지 못할 숙제 같지만 천천히 옮겨 보려고요.  예전에는 티스토리가 과거날짜로 발행이 됐는데 이젠 안되네요.  그래서 오늘 날짜로 발행이 됐습니다.

출처: http://todaks.com/1577 [토닥씨의 런던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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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 27일 작성글)

나트랑, 베트남 사람들은 나짱이라고 부르는 휴양도시다. 나트랑이라는 이름은 프랑스 식민역사의 잔재다. 나짱이라고 불러야는데 나트랑이라는 이름이 먼저 입에 붙었다.

나짱의 중심은 해변이다. 해변에 가면 비치배드에 누운 관광객을 볼 수 있다. 그들은 비치배드에 누워 그늘에서 책을 읽고 있다. 그렇게 휴식을 즐기는 곳이 바로 나짱이다.

이 곳에서 처음으로 나는 씨클로를 탔다. 정확한 금액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1달러(US)를 주고 한 시간 정도 시내구경을 했던 것 같다. 나짱은 정말 바닷가에서 쉬는 것 말고는 달리 볼 거리도, 할 거리도 없어보였다. 씨클로 에피소드는 바로 다음 글에.

그렇다고 이른바 여행 포인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곳은 참파유적지다. 대부분은 전란에 타버렸고, 전탑같은 탑만 몇 개동 남아 있다.

참파유적지는, 유적지의 탑들은 베트남의 신앙과 깉은 관계가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특별할 것은 없고, 어디에나 가도 있는 향, 향꽂이가 있고 유적지내 점포에는 향과 같이 기복을 위한 용품들을 팔고 있다.

여기도 시바.

참파유적지는 유적지라기보다 그냥 흔적 같았다. 그다지 보존에 심혈을 기울인 것도 같지 않고. 전선은 어지럽기 그지 없었다. 어지럽고, 낡고, 낡다못해 부서지고 무너진 곳이었다.

아무리 좁은 유적지였지만 이 청년은 처음 그 곳에 들어섰을때나 한 바퀴를 돌았을때나, 그리고 주변에 사진을 찍을때나 모두 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하릴없다'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여기서부터는 씨클로를 타고가며 찍었던 사진들이다.

금성홍기. 베트남의 국기다.

+ 나짱의 씁쓸했던 기억은 그것이다.  나트랑이라고 불리는 이름에서도 알겠지만 나짱을 좋아하는 건 유럽에서 온 관광객들이다.  그 중에서도 프랑스인들.  

베트남은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역사가 있다.  바게뜨, 에스프레소식(진한) 커피의 식문화로 남아 있는 문화들이 있기도 하다.  그 비슷함과 익숙함 때문인지 프랑스인 관광객이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아시아 중에서는 일본인들이 단연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사실 일본인의 흔적은 지구 어디를 가도 찾기 쉽고, 그들의 비중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프랑스인 관광객들이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 나는 못마땅했다.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도시가 아닌 관광지에서는 영어만큼 프랑스어가 통한다.  한국이 그런 것처럼.  그나마 한국은 '가까우니까'라는 이해할만한 이유가 있지만, 베트남에 프랑스인 관광객들이 많다는 건 어떻게 봐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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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에서는 외국지명을 표기할 때 현지의 발음을 따르도록 한다.  그래서 우리가 바르샤바Warszawa라고 부르는 폴란드의 서울을 폴란드에서는 알아듣지만 영어권에서는 알아듣지 못할 수도 있다.  영어권에서는 바르샤바Warszawa를 월소Warsaw라고 쓰고 읽는다.  지비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온 친구들은 내가 그들이 부르는 국가과 지명에 가깝게 부를 때 다들 놀라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자랑스럽게 한국어의 외국어표기법을 설명해주곤 했다.  개인적으론 좋은 표기법이라고 생각한다, 상대에 대한 존경/인정이 담긴 것 같아서.


바르샤바 Warszawa - Warsaw


바르샤바의 역에 도착하면 바르샤바의 상징물 중의 하나인 문화과학궁전 Palac Kutury i Nauki가 보인다.  바르샤바의 상징물이지만 소련에서 선물한 건물이라 폴란드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소련은 위성국/형제국에 똑같은 모양의 건물을 선물했다고 하는데 기회되면 다른 나라의 건물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이자 슬픔이 될 것 같다.


이 문화과학궁전(이름이 참)은 다음에 둘러보고 우리는 역에서 지비의 친구 T를 만났다.  지비보다 나이가 많은 T는 지비가 일본무술인 아이키도를 할 때 만난 친구로 지비가 그 운동을 그만 둔 뒤에서 폴란드의 서쪽끝과 동쪽끝에 살지만 여행을 함께 하기도 한 친구라고.  바르샤바에 있는 동안 T의 집에 머물렀다.



T는 한국인인 나를 배려해 바르샤바에서 한국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찾아 안내했다.  가보니 한중일 + 알파를 하는 식당이었다.  전날 과음으로 시원한 국물이 끌렸던 나는 김치우동을 신나게 시켰다.



그런데 몇 분 뒤 내 앞에 나타난 것은 김치볶음우동이었다는 슬픈 마무리.


유태인 지구 유적 Jewish Heritage


폴란드를 여행할 때 챙겨볼만 한 것 한가지는 유태인 지구 유적이다.  내가 맞게 이해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유태인들은 세계2차 대전이 끝나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가지기 전까지 민족과 종교를 유지하며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았는데 폴란드에도 많은 수가 있었다.  전쟁과 함께 유럽대륙을 떠나 많은 수가 영국과 미국으로 이주하게 됐다.  나치가 유태인을 격리하며 쌓았던 벽이 유적으로 폴란드 바르샤바에 남아 있다.  문화과학궁전과 가까운 곳으로 영어로는 The Ghetto Wall로 검색해보면 그 위치를 알 수 있다.  오늘날에는 이 유적을 비롯 유태인 지구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문화유산으로 조성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물론 싫어하는 사람도 당연히 있다.

친구 T의 안내로 우리가 들른 곳은 그 게토 문화유적은 아니지만 당시 건물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던 곳이었다.  그 인근에 유태인 지구 관련 시설이 생긴다는 말은 들었지만 6년이 지난 지금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유태인 지구 유적을 찾아보니 꼭 갈만한 곳인 것 같다.  전쟁으로 완전 폐허가 된 바르샤바라 게토 벽 일부만 남아 있지만 그 벽이 주는 깊이는 유효하므로.  이번 여행에서도 가보기는 어려울 것 같고, 내년쯤 기회가 되면 둘러볼 생각이다.



친구 T의 소개로 둘러본 유태인 지구와 전쟁의 흔적 뒤로도 전 교황님의 흔적. 

그리고 우리는 바르샤바 여행의 중심지인 왕궁 광장으로 이동했다.


왕궁 광장 Plac Zamkowy - Castle Square


가이드북을 보니 이 구시가의 여행은 잠코비 광장, 왕궁 광장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T의 안내로 성십자가 성당 앞에서 시작했다.  시간과 여건에 따라 왕궁을 먼저 보든, 우리처럼 T의 안내에 따라 성십자가 성당에서 시작하든 다를 수 밖에 없겠지만 기억을 더듬고, 가이드북을 들춰보니 성십자가 성당 앞에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길을 따라 분위기를 느끼며 고조시켜가는 방법이다.




성십자가 성당.  프랑스인 아버지와 폴란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쇼팽이 프랑스에서 사망하며 자신의 심장을 폴란드에 묻어달라고 했단다.  성십자가 성당은 그 쇼팽의 심장이 묻혀 있는 성당으로 유명하다.  이날은 위치만 확인하고 뒤에 다시 들러보았다.




성십자가 성당에서 시작해서 왕궁 광장으로 가는 길에는 바르샤바 대학과 대통령 관저가 있다.  굵직한 건물들과 함께 거리에 설치된 작은 구조물이나 거리 공연이 심심찮은 볼거리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해질녁이었다.  왕궁엔 들어가지 않고 왕궁과 광장을 볼 수 있는 교회탑으로 올라갔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기억을 더듬어 론니플래닛을 참고하니 St. Anne's Church라는 곳이다.  여기에 오르면 이런 풍광을 볼 수 있다.



나름 광장을 찍는 곳으로 알려졌는지 혼자 카메라를 놓고 찍는 사람이 꽤됐다.  그 중 한 명에서 부탁해서 찍은 사진인데 멋진 광장을 우리가 다 가려버렸다.



그래서 다른 느낌으로 찍은 사진.



왕궁이 언덕위에 있는데 그와 같은 높이의 교회탑이라 주변을 둘러보기 좋았다.  사실 우리를 이곳으로 안내한 T는 고소공포증이 있었다.  그럼에도 멀리서 온 친구에게 좋은 풍광을 보여주기 위해 용기를 내서 함께 해주었다.  고마운 T.



왕궁광장 한가운데는 지그문트 3세의 동상이 있다.  그 주변으로 많은 거리 예술가들은 물론 많은 관광객들을 볼 수 있는 명소 중의 명소인데, 사진 생각하지 않고 너무 다가간 관계로 동상 사진은 생략.  뒷걸음쳐 가기에 너무 지쳐있었다.



그리고 왕궁 광장 한켠으로 빠져나가면 또 하나의 광장이 나타났다.  유럽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형태의 광장으로 건물들로 둘러싼 네모 모양의 광장이었다.  시장이 있고, 시장의 한 가운데는 바르샤바를 상징한다는 인어동상이 있었다.  바르와 샤브라는 어부 부부가 구해준 인어인데 그 뒤 고마움에 좋은 일을 많이 했다는 설이 있다.  이 설에서 바르샤바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또 다른 설설설.



친구 T가 안내한 동선에 따라 당시 핫하다는 야외 레이져 쇼를 보러 갔다.  이때가 폴란드-우크라이나 유로컵 개최전이라 많은 시설물이 생기고, 볼거리가 생기던 때였다.  이 야외 레이져 쇼도 그런 볼거리 중 하나였다.  그 덕을 T 덕분에 톡톡히 챙겼던 바르샤바 여행이었다. 

(두번째 레이져 쇼 사진 왼편은 나름 쇼팽 이미지였는데-.)

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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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과 크라코프-바르샤바 여행을 앞두고 이 여행기를 정리하는 게 목표였는데, 수두와 함께 방학을 맞으면서 꼼찌락할 틈이 없어졌다.  물론 그래도 할껀 다 한다만은.  잠시 쉬었던 여행(사진) 정리에 다시 힘을 쏟아볼까 한다.  다음주면 가족들이 오니까.


비에리츠카 Wieliczka - Salt Mine


크라코프에서 마지막 일정이 비에리츠카 소금광산이었는데, 전날 과음으로 지비는 침대에서 일어나 앉지도 못했다.  나도 별로 다르지 않은 상태였지만, 더 아픈 지비를 끌고 비에리츠카로 향했다.  크라코프의 도시 경계 밖에 있다는 비에리츠카로 우리는 시내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갔지만, 폴란드어가 안된다면 앞서 말한 것처럼 투어 프로그램을 추천한다.  지비도 그곳 사람이 아니고 가본적도 없어서 어디서 내려야할지 잘 몰랐다.  우리는 버스정류장 이름만 보고 내리려고 했는데, 버스 기사님이 한정거장 앞서 내려야 가기 편하다고 그곳에 내려주셨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엔 몰랐던 사실인데, 별로 준비가 없었던 여행이라, 비에리츠카는 시간대별로 가이드와 함께하는 2시간 정도 길이의 투어만 가능하다.  개별 입장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  이 글을 쓰기 위해 가이드북님을 들춰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비에리츠카는 9개 레벨/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모든 터널의 길이를 더하면 그 길이가 300Km에 이른다고 한다.  방대하기 때문에, 호기심에 여기저기 들어갔다가는 길을 잃을 것이다.  길만 잃으면 다행이고 길 잃은 관광객을 찾지 못하면 문제가 될 것 같다.  현재는 상층 3레벨/층을 공개하고 있다고.  가이드를 따라 입장하면 나무로 된 계단을 따라 한참 내려 가야 한다.  가장 깊은 갱도가 지상에서 327m 아래라고 하니 상층 3레벨/층을 가는데도 우리는 한참을 걸어내려 간 것이다.  깊이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도 있다고 입장에 앞서 주의를 주지만, 우리는 과음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 깊은 계단을 어서 빨리 내려가 화장실로 달려가고 싶었는데, 앞 일행에 막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난간을 부여잡고 서 있었다.



계단에서 기다림이 길어지면서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위로 아래로 보며 기념 사진을 찍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벽을 살펴보니 한글로 누구 다녀감이 적혀 있어 그렇지 않아도 과음 때문에 화끈거리는 얼굴이 더 화끈거렸다.  우리, 그러지 맙시다.


가족들과의 크라코프 여행에서 비에리츠카를 갈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길었다.  당시 영어는 지금보다도 더 부족했고, 과음으로 기억이 무척 짧았다.   이 글을 쓰면서 가이드북을 보니 정말 많은 내용을 놓치고 그곳에 다녀왔다 싶다.  크라코프가 처음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될 때 함께 이름을 올렸다고 한다.  이런 타이틀은 별로 의미가 없나.  하지만 700여 년 사용된 소금광산이라는 점, 총 터널의 길이가 300Km을 넘는다는 점은 놀랍다.

이 정도 내용만 알고 갔어도 과음으로 이한 후유증을 누르고 열심히 보았을텐데, 뒤늦게 아쉬운 마음이다.




가이드북님이 말하시길, 눈여겨 볼 곳 중의 하나는 지하에 만들어진 교회chaple이다.  만드는데만 30년이 걸렸다고 할 때는 '그런가' 싶었는데 그게 1895년 일이라면 '와'하는 탄성이 나온다.  기둥이 없는 거대한 터널/강당의 형태다.  모양과 함께 광산 안에 교회를 만들겠다는 폴란드인들의 발상, 신앙심이 의외였다.  그런 바탕이 있어 후에 이 나라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배출했는지도 모른다.

지금 2017년 영국에 사는 폴란드인들도 부활절 연휴와 크리스마스 연휴를 가족들과 함께 보내기 위해 폴란드로 날아간다.  그 행렬이 한국의 귀성행렬과 맞먹을 정도다.  그 기간엔 폴란드로 들어가고 나오는 항공권이 무척 비싸니 여행에 참고하시길.  그 외 기간엔 폴란드는 인기있는 여행지가 아니어서 비교적 저렴한 편이다.



역시나 빠질 수 없는 전 교황님의 흔적.



사진을 정리하며 내가 이 소금광산 내 호수를 왜 찍었을까 싶었다.  도대체 이유를 알 수 없어 사진 정리에서 빼버렸는데, 가이드북님이 말씀하시길 이 호수가 눈여겨 볼 곳 중 하나라고.  이 호수물 1리터에 소금함량이 320g이라고 한다.  무척 짠 호수.  가이드의 설명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기억이 희미해져 사라진 것인지.  사진을 찍은 걸 보면 후자인 것도 같다.



가족들이 이 비에리츠카를 갈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할 때 언니가 폴란드에 다녀간 지인들에게 물어봤다고 한다.  그랬더니 폴란드에서 가장 좋았던 곳이라는 의견과 갈 필요 없다는 의견, 극과 극이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가기로 결정했다.  안가보면 좋은지, 나쁜지 알 수 없으니.  가본 나로써는 시간과 경제적인 여유가 따라준다면 가볼만한 곳으로 추천한다.  언제 다시 크라코프에 가며, 다시 비에리츠카를 찾겠냐며.


비에리츠가 입장료는 폴란드 물가에 비하면 무척 비쌌던 것으로 기억된다.  거기다 사진을 찍으려면 따로 비용을 내야한다.  10 즈워티였던가.  우리가 간 곳은 광산이었고, 주변으로 박물관도 만들어져 있는데 이후 기차 시간도 시간이고 몸이 너무 좋지 않아 우리는 광산에서 나와 친구네로 가서 쉬었다 다음 여행지인 바르샤바로 향했다.  여유가 있어 박물관도 봤더라면 소금광산의 '대단함'을 그때 알 수 있었을까.




앞에서 말한 비에리츠카 사진 촬영 티켓.

그리고 바르샤바행 기차.  크라코프에서 바르샤바까지 2~3시간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객차는 한국의 비둘기호 느낌?  요즘 에어컨 싱싱 나오는 널찍한 통근용 비둘기호 말고, 내가 어릴 때 탔던 비둘기호.




다만 영어로는 컴파트먼트라고 하는 좌석형태, 6~8개의 좌석이 하나의 방으로 구성된 형태는 유럽이라는 느낌을 물씬 주었다.  이런 형태 말고 일반좌석도 있다.



그때만해도 랩탑/노트북을 이용하는 정도였는데 요즘 가면 다들 휴대전화 충전기를 꼽아놓고 있을 것 같다.


관광객 표내며 기념사진 찍으며 폴란드의 서울 바르샤바로 고고.



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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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8.10 21:54 Address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이 블로그에서 여러 번 언급했지만 알면 알 수록 폴란드는 한국과, 폴란드인들은 한국인들과 싱크로율이 높다.  많이 비슷하다.  유럽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좋은 것이든 싫은 것이든 권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지만, 그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일단 폴란드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특히 먹고 마시는 면에서 정말 많이 권한다.  올해 초 돌아가신 지비의 고모님은 늘 우리더러 새처럼 먹는다고 나무라셨다.   잠시 들려 차 한 잔만 하고 가겠다고 연락하면 늘 밥을 해놓고 기다리셨다.


술 마시는 문화도 정말 비슷하다.  안주가 없는 건 다르지만, 보드카만 생으로 마신다, 술 권하는 문화 만큼은 정말 똑같다.  이런 식이다.

6년 전 여행에서 크라코프를 떠나기 전 지비의 동료들과 모여 술을 한 잔 하기로 했다.  우리가 묵었던 친구네에서.  먼저 도착한 한 친구가 사람들이 밖에서 초인종을 누를 때마다 문 밖에 나가 보드카를 원샷하지 않으면 들여보내지 않았다.  뒤늦게 도착한 친구는 술 마시지 않는 아내 몫까지 마셨던 걸로 기억한다.



친구 부부가 준비해 온 보드카 젤리.  게임으로 먹는 젤리였지만 달콤한 맛에 먹다보면 훅 가는 젤리였다.  달달구리를 좋아하는 지비도 이 젤리 챱챱 먹다 훅 가셨다.



투어에서 막 돌아와 배고팠는데 친구가 내놓은 술상은 보드카, 사과주스, 콜라, 피클이 전부였다.  (배고파) 아쉬운 내 눈빛을 보았던지 "네 생각을 못했다"며 가게에 다녀온다고 했다.  잠시 뒤에 체리보드카 한 병 들고 나타났다.  40도 보드카는 독하니 숙녀용 체리보드카라며.  그런데 그 체리보드카는 38도였다.



시간이 흘러 사람이 늘어나도 맥주 정도 추가 되고, 레드불 같은 카페인 음료 추가 되고, 비스켓 정도 추가 되는 게 전부였다.



술이 어지간히 들어가고 시작된 음주가무.  한국과 다른 점이라면 자신들이 직접 연주하고 노래하고 생-난리-부르스였다.  지비 말에 의하면 80년대 90년대 유행하던 폴란드 대중가요를 불렀다는데, 알아듣지 못하는 내겐 그저 코미디였다.



그래서 모두들 (요즘 말로) 꽐라가 되었다는 당연한 결말.

같이 꽐라가 된 경험 때문인지 아직도 이들과 페이스북으로 코멘트를 주고 받는다.  진한 술 한 잔은 그렇게 오래 남는 것인가보다.  폴란드나, 한국이나.


+


지비가 폴란드가 유럽에서 음주운전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한국은 세계에서 음주운전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라고 말해줬다.  이렇게나 비슷한 폴란드와 한국이다. 부(끄)럽..


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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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과 크라코프-바르샤바 여행을 준비하면서 여행정보를 찾아보니 한글로 된 여행 정보가 많지 않아 급하게 6년전 사진을 소환하게 됐다.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는 크라코프에 간다면 꼭 추천하고 싶은 장소다.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강제 수용소로 알려진 아우슈비츠는 독일이 아니라 폴란드에 있다. 

한국인 여행객들 중에서 다녀간 사람도 많지 않고, 아니 있는데 블로그 같은 매체에 담아놓은 것이 없는지도, 현지에 한국어로 운영되는 여행상품도 없다.  한국에서 가이드를 동반해서 오는 여행상품 정도만 있는듯 하다.  한국의 이름있는 여행사의 현지 투어 상품을 알아보니, 모두 현지 투어와 연계된 상품으로 영어로 진행된다.  그래서 아우슈비츠를 여행하게 될 우리 가족은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에 6년전 폴란드 여행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물론 도움될만한 정보는 담기 어렵겠지만, 느낌만으로라도.


아우슈비츠 Auschwitz는 우리에게 알려진 이름이지만 독일어 발음이다.  폴란드에서는 '오쉬비엥침' 그 비슷하게 읽는다.  아우슈비츠라고 물어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아 오쉬비엥침!"하고 답한다. 

이곳에 가려면 버스터미널 시외버스로 갈 수도 있고, 현지 여행사의 투어 프로그램을 살 수도 있는데 개인적으로 현지 여행사의 투어 프로그램을 추천한다.  우리는 시외버스를 타고 갔지만, 지비가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버스도 터미널의 정류장에서 정류장으로 가는 게 아니라 도중에 내려야 하는 일종의 완행버스다.  그나마도 자주 없고, 작은 미니버스여서 자리도 넉넉하지 않아 돌아오는 길에 완행버스 한 대를 보내고 다시 한참 기다려야 했다.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크라코프 시내에서 아우슈비츠까지는 한 시간 조금 더 걸린 거리였다.  이 완행버스보다 더 천천히 가는 일종의 시내버스도 있는데, 정말 시간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면 권하고 싶지 않다.  정류장에서 구름떼 같은 다른 관광객을 마주해야 한다.  여행은 정보와 시간이 비용과 비례한다.  물론 비용 걱정할 필요가 없다면 상관없지만.  현지 여행사의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크라코프 시내 주요 호텔이나 거점에서 버스를 타고 아우슈비츠로 이동할 수도 있고, 다른 지역이 포함된 상품은 더더욱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기본적인 영어, 언제 어디서 다시 모이는지만 이해할 수 있으면 이용에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  교통편으로만 이용해도 큰 도움이 된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

개인적으로 방문할 경우 사전에 관내 투어를 예약하고 가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참고로 만 14세 미만은 입장이 안된다.

☞ 아우슈비츠 박물관 http://auschwitz.org/en/


01. 아우슈비츠 Auschwitz


우리는 영어투어로 입장했다.  시즌에 따라 다르지만 영어투어는 거의 매시간 있고, 폴란드어투어는 그보다 더 자주 있다.  영어 이외에 독일어, 체코어  등등이 있지만 영어투어만큼 자주 있지는 않다.



아우슈비츠 관련된 영화나 다큐멘터리에서 한 번쯤 보았을법한 문구 - Arbeit Macht Frei.

노동이 자유를 준다(work sets you free)는 뜻.  그 아래를 지나 강제 수용소로 들어가게 된다.



아우슈비츠 박물관이라고 불리는 곳은 과거 1 수용소다.  건물 안팎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었다.  장소의 특수함 때문에 적극적으로 사진을 찍기 어려웠다.  1 수용소로 쓰였던 박물관 내 일부 전시 - 수용인들의 모발은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 사람들에 대한 예를 표하기 위한 것이다.



수용소에서 사용된 살생 가스의 통들.



수용소로 들고 온 누군가의 가방들과 남겨진 신발들.  물론 일부분일테다.  하지만 그 일부분의 양이 놀랍다.



기록으로 남은 수용인들의 얼굴.

지나서 생각해보면 이렇게라도 기록이 남은 게 그들 개인들에겐 참 다행인지도 모른다.  강제 수용소에 수용됐다는 전제가 다행일 수 없지만.



1 수용소의 화장실과 침상으로 쓰인 시설.  이후 2 수용소인 비르케나우에 가서 이 1 수용소의 시설이 보다 나은 상황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1 수용소의 거의 마지막 방문지인 가스실 입장에 앞서 간단한 묵념도 했던 것 같다.



가스 통이 투입되었던 천정의 구멍과 사후 처리를 위해 지속적으로 불탔던 가마를 뒤로하고 2 수용소인 비르케나우로 향했다.  1 수용소 투어가 끝나면 박물관 앞 정류장에서 몇 시 몇 분에 2 수용소로 출발하는 셔틀이 있다고 알려준다.  2 수용소에는 별다른 시설이 없으므로 바쁘게 화장실에 들렀다 가이드를 따라 셔틀에 탑승하는 게 좋다.


02. 비르케나우 Birkenau


시간이 없는 개인 방문의 경우는 1 수용소 방문으로 아우슈비츠 관람을 마무리 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2 수용소 방문도 권하고 싶다.   1 수용소와는 비교도 안되는 규모가 놀랍다.  2 수용소의 경우 대부분의 시설이 전쟁 마지막에 파괴되었다고 한다.  1 수용소는 비교적 잘 보존되었는데, 수용소 중앙으로 마지막까지 사용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2 수용소에 완전히 파괴해야 할 이유가 더 많았다는 설도 있다고.  2 수용소에서는 수용과 처형은 물론 각종 의학실험도 진행되었다고 한다.  이 글을 쓰면서 찾아보니 3 수용소도 있었다.  3 수용소는 강제 노역의 현장인 공장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저 광활한 벌판 위에 일부 시설과 철조망만 남아 있지만 그 자체가 주는 무게가 크다.



2 수용소에서 사용되어진 화장실과 침상들.

수용소 생활의 처참함을 알려주는 대목 - 수용인들은 어느 지점에 이르러선 옆사람의 죽음에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고 한다.  사람이 죽으면 죽은 이의 소지품을 차지하기에 바빴고, 더 위쪽 침상을 쓰기 위해 사투가 벌어졌다고 한다.  아래쪽 침상일수록 오물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당시 성인들의 몸무게가 2~30KG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가이드가 나는 배우 같다고 생각했다.  빼어난 외모도 그랬지만, 전달하는 목소리에 호소력이 있었다.  질문 시간에 한 관람객은 가이드에게 개인적으로 아우슈비츠와 관련된 가족사가 있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그 어느 투어보다 관람객들의 집중력이 높았다. 



아우슈비츠에서는 처형 못지 않게 많은 사람들이 강제 노역, 질병, 의학실험에 의해 죽었다고 한다.  장소가 장소여서 적극적으로 사진을 찍지 못했고, 날씨도 도와주지 않아 어둡게 찍힌 사진들이 많다.  하지만 혹시라도 이후에 다녀가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많은 사진을 올린다.




아쉽게도 한국어로 진행되는 투어가 없지만, 어떤 블로그에서 보니 박물관 기념품 코너에 한국어 가이드북이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다녀가거나, 영어가이드 투어가 부담이 되는 사람은 투어 전후에 가이드북을 사보면 도움이 될 것 같다.


☞ 참고1. 영어 https://en.wikipedia.org/wiki/Auschwitz_concentration_camp

☞ 참고2. 한국어 아우슈비트 강제 수용소






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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