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에서는 외국지명을 표기할 때 현지의 발음을 따르도록 한다.  그래서 우리가 바르샤바Warszawa라고 부르는 폴란드의 서울을 폴란드에서는 알아듣지만 영어권에서는 알아듣지 못할 수도 있다.  영어권에서는 바르샤바Warszawa를 월소Warsaw라고 쓰고 읽는다.  지비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온 친구들은 내가 그들이 부르는 국가과 지명에 가깝게 부를 때 다들 놀라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자랑스럽게 한국어의 외국어표기법을 설명해주곤 했다.  개인적으론 좋은 표기법이라고 생각한다, 상대에 대한 존경/인정이 담긴 것 같아서.


바르샤바 Warszawa - Warsaw


바르샤바의 역에 도착하면 바르샤바의 상징물 중의 하나인 문화과학궁전 Palac Kutury i Nauki가 보인다.  바르샤바의 상징물이지만 소련에서 선물한 건물이라 폴란드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소련은 위성국/형제국에 똑같은 모양의 건물을 선물했다고 하는데 기회되면 다른 나라의 건물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이자 슬픔이 될 것 같다.


이 문화과학궁전(이름이 참)은 다음에 둘러보고 우리는 역에서 지비의 친구 T를 만났다.  지비보다 나이가 많은 T는 지비가 일본무술인 아이키도를 할 때 만난 친구로 지비가 그 운동을 그만 둔 뒤에서 폴란드의 서쪽끝과 동쪽끝에 살지만 여행을 함께 하기도 한 친구라고.  바르샤바에 있는 동안 T의 집에 머물렀다.



T는 한국인인 나를 배려해 바르샤바에서 한국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찾아 안내했다.  가보니 한중일 + 알파를 하는 식당이었다.  전날 과음으로 시원한 국물이 끌렸던 나는 김치우동을 신나게 시켰다.



그런데 몇 분 뒤 내 앞에 나타난 것은 김치볶음우동이었다는 슬픈 마무리.


유태인 지구 유적 Jewish Heritage


폴란드를 여행할 때 챙겨볼만 한 것 한가지는 유태인 지구 유적이다.  내가 맞게 이해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유태인들은 세계2차 대전이 끝나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가지기 전까지 민족과 종교를 유지하며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았는데 폴란드에도 많은 수가 있었다.  전쟁과 함께 유럽대륙을 떠나 많은 수가 영국과 미국으로 이주하게 됐다.  나치가 유태인을 격리하며 쌓았던 벽이 유적으로 폴란드 바르샤바에 남아 있다.  문화과학궁전과 가까운 곳으로 영어로는 The Ghetto Wall로 검색해보면 그 위치를 알 수 있다.  오늘날에는 이 유적을 비롯 유태인 지구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문화유산으로 조성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물론 싫어하는 사람도 당연히 있다.

친구 T의 안내로 우리가 들른 곳은 그 게토 문화유적은 아니지만 당시 건물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던 곳이었다.  그 인근에 유태인 지구 관련 시설이 생긴다는 말은 들었지만 6년이 지난 지금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유태인 지구 유적을 찾아보니 꼭 갈만한 곳인 것 같다.  전쟁으로 완전 폐허가 된 바르샤바라 게토 벽 일부만 남아 있지만 그 벽이 주는 깊이는 유효하므로.  이번 여행에서도 가보기는 어려울 것 같고, 내년쯤 기회가 되면 둘러볼 생각이다.



친구 T의 소개로 둘러본 유태인 지구와 전쟁의 흔적 뒤로도 전 교황님의 흔적. 

그리고 우리는 바르샤바 여행의 중심지인 왕궁 광장으로 이동했다.


왕궁 광장 Plac Zamkowy - Castle Square


가이드북을 보니 이 구시가의 여행은 잠코비 광장, 왕궁 광장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T의 안내로 성십자가 성당 앞에서 시작했다.  시간과 여건에 따라 왕궁을 먼저 보든, 우리처럼 T의 안내에 따라 성십자가 성당에서 시작하든 다를 수 밖에 없겠지만 기억을 더듬고, 가이드북을 들춰보니 성십자가 성당 앞에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길을 따라 분위기를 느끼며 고조시켜가는 방법이다.




성십자가 성당.  프랑스인 아버지와 폴란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쇼팽이 프랑스에서 사망하며 자신의 심장을 폴란드에 묻어달라고 했단다.  성십자가 성당은 그 쇼팽의 심장이 묻혀 있는 성당으로 유명하다.  이날은 위치만 확인하고 뒤에 다시 들러보았다.




성십자가 성당에서 시작해서 왕궁 광장으로 가는 길에는 바르샤바 대학과 대통령 관저가 있다.  굵직한 건물들과 함께 거리에 설치된 작은 구조물이나 거리 공연이 심심찮은 볼거리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해질녁이었다.  왕궁엔 들어가지 않고 왕궁과 광장을 볼 수 있는 교회탑으로 올라갔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기억을 더듬어 론니플래닛을 참고하니 St. Anne's Church라는 곳이다.  여기에 오르면 이런 풍광을 볼 수 있다.



나름 광장을 찍는 곳으로 알려졌는지 혼자 카메라를 놓고 찍는 사람이 꽤됐다.  그 중 한 명에서 부탁해서 찍은 사진인데 멋진 광장을 우리가 다 가려버렸다.



그래서 다른 느낌으로 찍은 사진.



왕궁이 언덕위에 있는데 그와 같은 높이의 교회탑이라 주변을 둘러보기 좋았다.  사실 우리를 이곳으로 안내한 T는 고소공포증이 있었다.  그럼에도 멀리서 온 친구에게 좋은 풍광을 보여주기 위해 용기를 내서 함께 해주었다.  고마운 T.



왕궁광장 한가운데는 지그문트 3세의 동상이 있다.  그 주변으로 많은 거리 예술가들은 물론 많은 관광객들을 볼 수 있는 명소 중의 명소인데, 사진 생각하지 않고 너무 다가간 관계로 동상 사진은 생략.  뒷걸음쳐 가기에 너무 지쳐있었다.



그리고 왕궁 광장 한켠으로 빠져나가면 또 하나의 광장이 나타났다.  유럽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형태의 광장으로 건물들로 둘러싼 네모 모양의 광장이었다.  시장이 있고, 시장의 한 가운데는 바르샤바를 상징한다는 인어동상이 있었다.  바르와 샤브라는 어부 부부가 구해준 인어인데 그 뒤 고마움에 좋은 일을 많이 했다는 설이 있다.  이 설에서 바르샤바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또 다른 설설설.



친구 T가 안내한 동선에 따라 당시 핫하다는 야외 레이져 쇼를 보러 갔다.  이때가 폴란드-우크라이나 유로컵 개최전이라 많은 시설물이 생기고, 볼거리가 생기던 때였다.  이 야외 레이져 쇼도 그런 볼거리 중 하나였다.  그 덕을 T 덕분에 톡톡히 챙겼던 바르샤바 여행이었다. 

(두번째 레이져 쇼 사진 왼편은 나름 쇼팽 이미지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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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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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과 크라코프-바르샤바 여행을 앞두고 이 여행기를 정리하는 게 목표였는데, 수두와 함께 방학을 맞으면서 꼼찌락할 틈이 없어졌다.  물론 그래도 할껀 다 한다만은.  잠시 쉬었던 여행(사진) 정리에 다시 힘을 쏟아볼까 한다.  다음주면 가족들이 오니까.


비에리츠카 Wieliczka - Salt Mine


크라코프에서 마지막 일정이 비에리츠카 소금광산이었는데, 전날 과음으로 지비는 침대에서 일어나 앉지도 못했다.  나도 별로 다르지 않은 상태였지만, 더 아픈 지비를 끌고 비에리츠카로 향했다.  크라코프의 도시 경계 밖에 있다는 비에리츠카로 우리는 시내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갔지만, 폴란드어가 안된다면 앞서 말한 것처럼 투어 프로그램을 추천한다.  지비도 그곳 사람이 아니고 가본적도 없어서 어디서 내려야할지 잘 몰랐다.  우리는 버스정류장 이름만 보고 내리려고 했는데, 버스 기사님이 한정거장 앞서 내려야 가기 편하다고 그곳에 내려주셨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엔 몰랐던 사실인데, 별로 준비가 없었던 여행이라, 비에리츠카는 시간대별로 가이드와 함께하는 2시간 정도 길이의 투어만 가능하다.  개별 입장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  이 글을 쓰기 위해 가이드북님을 들춰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비에리츠카는 9개 레벨/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모든 터널의 길이를 더하면 그 길이가 300Km에 이른다고 한다.  방대하기 때문에, 호기심에 여기저기 들어갔다가는 길을 잃을 것이다.  길만 잃으면 다행이고 길 잃은 관광객을 찾지 못하면 문제가 될 것 같다.  현재는 상층 3레벨/층을 공개하고 있다고.  가이드를 따라 입장하면 나무로 된 계단을 따라 한참 내려 가야 한다.  가장 깊은 갱도가 지상에서 327m 아래라고 하니 상층 3레벨/층을 가는데도 우리는 한참을 걸어내려 간 것이다.  깊이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도 있다고 입장에 앞서 주의를 주지만, 우리는 과음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 깊은 계단을 어서 빨리 내려가 화장실로 달려가고 싶었는데, 앞 일행에 막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난간을 부여잡고 서 있었다.



계단에서 기다림이 길어지면서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위로 아래로 보며 기념 사진을 찍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벽을 살펴보니 한글로 누구 다녀감이 적혀 있어 그렇지 않아도 과음 때문에 화끈거리는 얼굴이 더 화끈거렸다.  우리, 그러지 맙시다.


가족들과의 크라코프 여행에서 비에리츠카를 갈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길었다.  당시 영어는 지금보다도 더 부족했고, 과음으로 기억이 무척 짧았다.   이 글을 쓰면서 가이드북을 보니 정말 많은 내용을 놓치고 그곳에 다녀왔다 싶다.  크라코프가 처음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될 때 함께 이름을 올렸다고 한다.  이런 타이틀은 별로 의미가 없나.  하지만 700여 년 사용된 소금광산이라는 점, 총 터널의 길이가 300Km을 넘는다는 점은 놀랍다.

이 정도 내용만 알고 갔어도 과음으로 이한 후유증을 누르고 열심히 보았을텐데, 뒤늦게 아쉬운 마음이다.




가이드북님이 말하시길, 눈여겨 볼 곳 중의 하나는 지하에 만들어진 교회chaple이다.  만드는데만 30년이 걸렸다고 할 때는 '그런가' 싶었는데 그게 1895년 일이라면 '와'하는 탄성이 나온다.  기둥이 없는 거대한 터널/강당의 형태다.  모양과 함께 광산 안에 교회를 만들겠다는 폴란드인들의 발상, 신앙심이 의외였다.  그런 바탕이 있어 후에 이 나라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배출했는지도 모른다.

지금 2017년 영국에 사는 폴란드인들도 부활절 연휴와 크리스마스 연휴를 가족들과 함께 보내기 위해 폴란드로 날아간다.  그 행렬이 한국의 귀성행렬과 맞먹을 정도다.  그 기간엔 폴란드로 들어가고 나오는 항공권이 무척 비싸니 여행에 참고하시길.  그 외 기간엔 폴란드는 인기있는 여행지가 아니어서 비교적 저렴한 편이다.



역시나 빠질 수 없는 전 교황님의 흔적.



사진을 정리하며 내가 이 소금광산 내 호수를 왜 찍었을까 싶었다.  도대체 이유를 알 수 없어 사진 정리에서 빼버렸는데, 가이드북님이 말씀하시길 이 호수가 눈여겨 볼 곳 중 하나라고.  이 호수물 1리터에 소금함량이 320g이라고 한다.  무척 짠 호수.  가이드의 설명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기억이 희미해져 사라진 것인지.  사진을 찍은 걸 보면 후자인 것도 같다.



가족들이 이 비에리츠카를 갈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할 때 언니가 폴란드에 다녀간 지인들에게 물어봤다고 한다.  그랬더니 폴란드에서 가장 좋았던 곳이라는 의견과 갈 필요 없다는 의견, 극과 극이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가기로 결정했다.  안가보면 좋은지, 나쁜지 알 수 없으니.  가본 나로써는 시간과 경제적인 여유가 따라준다면 가볼만한 곳으로 추천한다.  언제 다시 크라코프에 가며, 다시 비에리츠카를 찾겠냐며.


비에리츠가 입장료는 폴란드 물가에 비하면 무척 비쌌던 것으로 기억된다.  거기다 사진을 찍으려면 따로 비용을 내야한다.  10 즈워티였던가.  우리가 간 곳은 광산이었고, 주변으로 박물관도 만들어져 있는데 이후 기차 시간도 시간이고 몸이 너무 좋지 않아 우리는 광산에서 나와 친구네로 가서 쉬었다 다음 여행지인 바르샤바로 향했다.  여유가 있어 박물관도 봤더라면 소금광산의 '대단함'을 그때 알 수 있었을까.




앞에서 말한 비에리츠카 사진 촬영 티켓.

그리고 바르샤바행 기차.  크라코프에서 바르샤바까지 2~3시간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객차는 한국의 비둘기호 느낌?  요즘 에어컨 싱싱 나오는 널찍한 통근용 비둘기호 말고, 내가 어릴 때 탔던 비둘기호.




다만 영어로는 컴파트먼트라고 하는 좌석형태, 6~8개의 좌석이 하나의 방으로 구성된 형태는 유럽이라는 느낌을 물씬 주었다.  이런 형태 말고 일반좌석도 있다.



그때만해도 랩탑/노트북을 이용하는 정도였는데 요즘 가면 다들 휴대전화 충전기를 꼽아놓고 있을 것 같다.


관광객 표내며 기념사진 찍으며 폴란드의 서울 바르샤바로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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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8.10 21:54 Address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이 블로그에서 여러 번 언급했지만 알면 알 수록 폴란드는 한국과, 폴란드인들은 한국인들과 싱크로율이 높다.  많이 비슷하다.  유럽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좋은 것이든 싫은 것이든 권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지만, 그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일단 폴란드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특히 먹고 마시는 면에서 정말 많이 권한다.  올해 초 돌아가신 지비의 고모님은 늘 우리더러 새처럼 먹는다고 나무라셨다.   잠시 들려 차 한 잔만 하고 가겠다고 연락하면 늘 밥을 해놓고 기다리셨다.


술 마시는 문화도 정말 비슷하다.  안주가 없는 건 다르지만, 보드카만 생으로 마신다, 술 권하는 문화 만큼은 정말 똑같다.  이런 식이다.

6년 전 여행에서 크라코프를 떠나기 전 지비의 동료들과 모여 술을 한 잔 하기로 했다.  우리가 묵었던 친구네에서.  먼저 도착한 한 친구가 사람들이 밖에서 초인종을 누를 때마다 문 밖에 나가 보드카를 원샷하지 않으면 들여보내지 않았다.  뒤늦게 도착한 친구는 술 마시지 않는 아내 몫까지 마셨던 걸로 기억한다.



친구 부부가 준비해 온 보드카 젤리.  게임으로 먹는 젤리였지만 달콤한 맛에 먹다보면 훅 가는 젤리였다.  달달구리를 좋아하는 지비도 이 젤리 챱챱 먹다 훅 가셨다.



투어에서 막 돌아와 배고팠는데 친구가 내놓은 술상은 보드카, 사과주스, 콜라, 피클이 전부였다.  (배고파) 아쉬운 내 눈빛을 보았던지 "네 생각을 못했다"며 가게에 다녀온다고 했다.  잠시 뒤에 체리보드카 한 병 들고 나타났다.  40도 보드카는 독하니 숙녀용 체리보드카라며.  그런데 그 체리보드카는 38도였다.



시간이 흘러 사람이 늘어나도 맥주 정도 추가 되고, 레드불 같은 카페인 음료 추가 되고, 비스켓 정도 추가 되는 게 전부였다.



술이 어지간히 들어가고 시작된 음주가무.  한국과 다른 점이라면 자신들이 직접 연주하고 노래하고 생-난리-부르스였다.  지비 말에 의하면 80년대 90년대 유행하던 폴란드 대중가요를 불렀다는데, 알아듣지 못하는 내겐 그저 코미디였다.



그래서 모두들 (요즘 말로) 꽐라가 되었다는 당연한 결말.

같이 꽐라가 된 경험 때문인지 아직도 이들과 페이스북으로 코멘트를 주고 받는다.  진한 술 한 잔은 그렇게 오래 남는 것인가보다.  폴란드나, 한국이나.


+


지비가 폴란드가 유럽에서 음주운전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한국은 세계에서 음주운전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라고 말해줬다.  이렇게나 비슷한 폴란드와 한국이다. 부(끄)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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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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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과 크라코프-바르샤바 여행을 준비하면서 여행정보를 찾아보니 한글로 된 여행 정보가 많지 않아 급하게 6년전 사진을 소환하게 됐다.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는 크라코프에 간다면 꼭 추천하고 싶은 장소다.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강제 수용소로 알려진 아우슈비츠는 독일이 아니라 폴란드에 있다. 

한국인 여행객들 중에서 다녀간 사람도 많지 않고, 아니 있는데 블로그 같은 매체에 담아놓은 것이 없는지도, 현지에 한국어로 운영되는 여행상품도 없다.  한국에서 가이드를 동반해서 오는 여행상품 정도만 있는듯 하다.  한국의 이름있는 여행사의 현지 투어 상품을 알아보니, 모두 현지 투어와 연계된 상품으로 영어로 진행된다.  그래서 아우슈비츠를 여행하게 될 우리 가족은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에 6년전 폴란드 여행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물론 도움될만한 정보는 담기 어렵겠지만, 느낌만으로라도.


아우슈비츠 Auschwitz는 우리에게 알려진 이름이지만 독일어 발음이다.  폴란드에서는 '오쉬비엥침' 그 비슷하게 읽는다.  아우슈비츠라고 물어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아 오쉬비엥침!"하고 답한다. 

이곳에 가려면 버스터미널 시외버스로 갈 수도 있고, 현지 여행사의 투어 프로그램을 살 수도 있는데 개인적으로 현지 여행사의 투어 프로그램을 추천한다.  우리는 시외버스를 타고 갔지만, 지비가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버스도 터미널의 정류장에서 정류장으로 가는 게 아니라 도중에 내려야 하는 일종의 완행버스다.  그나마도 자주 없고, 작은 미니버스여서 자리도 넉넉하지 않아 돌아오는 길에 완행버스 한 대를 보내고 다시 한참 기다려야 했다.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크라코프 시내에서 아우슈비츠까지는 한 시간 조금 더 걸린 거리였다.  이 완행버스보다 더 천천히 가는 일종의 시내버스도 있는데, 정말 시간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면 권하고 싶지 않다.  정류장에서 구름떼 같은 다른 관광객을 마주해야 한다.  여행은 정보와 시간이 비용과 비례한다.  물론 비용 걱정할 필요가 없다면 상관없지만.  현지 여행사의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크라코프 시내 주요 호텔이나 거점에서 버스를 타고 아우슈비츠로 이동할 수도 있고, 다른 지역이 포함된 상품은 더더욱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기본적인 영어, 언제 어디서 다시 모이는지만 이해할 수 있으면 이용에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  교통편으로만 이용해도 큰 도움이 된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

개인적으로 방문할 경우 사전에 관내 투어를 예약하고 가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참고로 만 14세 미만은 입장이 안된다.

☞ 아우슈비츠 박물관 http://auschwitz.org/en/


01. 아우슈비츠 Auschwitz


우리는 영어투어로 입장했다.  시즌에 따라 다르지만 영어투어는 거의 매시간 있고, 폴란드어투어는 그보다 더 자주 있다.  영어 이외에 독일어, 체코어  등등이 있지만 영어투어만큼 자주 있지는 않다.



아우슈비츠 관련된 영화나 다큐멘터리에서 한 번쯤 보았을법한 문구 - Arbeit Macht Frei.

노동이 자유를 준다(work sets you free)는 뜻.  그 아래를 지나 강제 수용소로 들어가게 된다.



아우슈비츠 박물관이라고 불리는 곳은 과거 1 수용소다.  건물 안팎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었다.  장소의 특수함 때문에 적극적으로 사진을 찍기 어려웠다.  1 수용소로 쓰였던 박물관 내 일부 전시 - 수용인들의 모발은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 사람들에 대한 예를 표하기 위한 것이다.



수용소에서 사용된 살생 가스의 통들.



수용소로 들고 온 누군가의 가방들과 남겨진 신발들.  물론 일부분일테다.  하지만 그 일부분의 양이 놀랍다.



기록으로 남은 수용인들의 얼굴.

지나서 생각해보면 이렇게라도 기록이 남은 게 그들 개인들에겐 참 다행인지도 모른다.  강제 수용소에 수용됐다는 전제가 다행일 수 없지만.



1 수용소의 화장실과 침상으로 쓰인 시설.  이후 2 수용소인 비르케나우에 가서 이 1 수용소의 시설이 보다 나은 상황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1 수용소의 거의 마지막 방문지인 가스실 입장에 앞서 간단한 묵념도 했던 것 같다.



가스 통이 투입되었던 천정의 구멍과 사후 처리를 위해 지속적으로 불탔던 가마를 뒤로하고 2 수용소인 비르케나우로 향했다.  1 수용소 투어가 끝나면 박물관 앞 정류장에서 몇 시 몇 분에 2 수용소로 출발하는 셔틀이 있다고 알려준다.  2 수용소에는 별다른 시설이 없으므로 바쁘게 화장실에 들렀다 가이드를 따라 셔틀에 탑승하는 게 좋다.


02. 비르케나우 Birkenau


시간이 없는 개인 방문의 경우는 1 수용소 방문으로 아우슈비츠 관람을 마무리 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2 수용소 방문도 권하고 싶다.   1 수용소와는 비교도 안되는 규모가 놀랍다.  2 수용소의 경우 대부분의 시설이 전쟁 마지막에 파괴되었다고 한다.  1 수용소는 비교적 잘 보존되었는데, 수용소 중앙으로 마지막까지 사용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2 수용소에 완전히 파괴해야 할 이유가 더 많았다는 설도 있다고.  2 수용소에서는 수용과 처형은 물론 각종 의학실험도 진행되었다고 한다.  이 글을 쓰면서 찾아보니 3 수용소도 있었다.  3 수용소는 강제 노역의 현장인 공장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저 광활한 벌판 위에 일부 시설과 철조망만 남아 있지만 그 자체가 주는 무게가 크다.



2 수용소에서 사용되어진 화장실과 침상들.

수용소 생활의 처참함을 알려주는 대목 - 수용인들은 어느 지점에 이르러선 옆사람의 죽음에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고 한다.  사람이 죽으면 죽은 이의 소지품을 차지하기에 바빴고, 더 위쪽 침상을 쓰기 위해 사투가 벌어졌다고 한다.  아래쪽 침상일수록 오물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당시 성인들의 몸무게가 2~30KG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가이드가 나는 배우 같다고 생각했다.  빼어난 외모도 그랬지만, 전달하는 목소리에 호소력이 있었다.  질문 시간에 한 관람객은 가이드에게 개인적으로 아우슈비츠와 관련된 가족사가 있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그 어느 투어보다 관람객들의 집중력이 높았다. 



아우슈비츠에서는 처형 못지 않게 많은 사람들이 강제 노역, 질병, 의학실험에 의해 죽었다고 한다.  장소가 장소여서 적극적으로 사진을 찍지 못했고, 날씨도 도와주지 않아 어둡게 찍힌 사진들이 많다.  하지만 혹시라도 이후에 다녀가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많은 사진을 올린다.




아쉽게도 한국어로 진행되는 투어가 없지만, 어떤 블로그에서 보니 박물관 기념품 코너에 한국어 가이드북이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다녀가거나, 영어가이드 투어가 부담이 되는 사람은 투어 전후에 가이드북을 사보면 도움이 될 것 같다.


☞ 참고1. 영어 https://en.wikipedia.org/wiki/Auschwitz_concentration_camp

☞ 참고2. 한국어 아우슈비트 강제 수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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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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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행을 가게 된 이유가 지비 친구의 결혼식이었다.  내 결혼식도 아니고 다른 사람 결혼식 사진이라 주저하다가 분위기만 구경하라고 올려본다.

크라코프에서 진행됐지만, 지비의 폴란드인 친구가 크라코프 출신도 아니었고 그 친구의 아내는 영국인이었다.  주로 해외에서 찾아오는 하객들을 위해 폴란드에서 볼 거리 많은 크라코프가 결혼식 장소로 선택됐다.  결혼식 자체도 주요 관광지인 마리아 대성당에서 진행되서 가볼만한 결혼식이었다.



폴란드어로 진행되는 미사라 나는 흡사 무성영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소리가 있으나 이해가 되질 않으니. 

신부님 말씀 중에 지비가 통역해준 유일한 부분은, 신부님이 말하시길 요즘 사람들은 (이혼할 것이 두려워) 결혼 자체를 하지 않는데 참으로 용감한 두 사람이라는 칭찬이었다.  진정 칭찬인지, 걱정인지.



이 친구들은 런던에 북쪽에 살다보니 잘 만나지 않게 됐다.  그 집도 아이가 둘이니 아이 하나 있는 우리 두 배로 바쁠테다.

사실 결혼식을 하기 전까지는 이 커플이 아들이 있긴 했지만 과연 오래 갈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만날 때마다 하도 투닥거려서.  그런데 결혼식 후 지금까지 서너번 밖에 만나지 못했지만, 잘 산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주는 무게인지, 서로가 함께한 세월이 길어진 탓인지 알 수 없지만.



결혼식을 마치고 대절해놓은 시티투어 차량으로 피로연 장소로 이동.  연고가 없는 크라코프를 결혼 장소로 정한 것에서부터도 그렇지만 여러 가지 하객들을 많이 신경 쓴 결혼식이었다.  먼 걸음한 하객들이 여행객으로도 즐길 수 있도록.



피로연 장소도 바벨성을 전망으로 하고 있는 호텔이었다.  기회가 되면 한 번쯤 묵어보고 싶은 호텔이었지만, 이번 여름에도 비용절감을 위해 우리는 에어비앤비로.



피로연 시작에 양가 부모님이 준비한 빵과 소금을 신랑 신부가 나눠먹었다.  이유는 모른다.  지비에게 물어보니 저도 모른다.  꼭 필요한 존재의 의미가 아닐까 추측만 해본다.



축의금은 영국 암 관련 자선단체 기부금으로.  유일하게 가본 다른 결혼식도 축의금은 성경관련 프로젝트에 기부하게 되어 있었다.  금액의 크기를 떠나 좋은 문화인 것 같다.



식사 후 본격적인 음주가무는 신랑신부의 댄스로 개시된다.



흘러간 팝송에 맞춰 (주로) 아이들과 아주머니 다 출동.  이후엔 발이 아픈지 맨발의 투혼을 보여주셨다.



춤에도, 술에도 별로 관심이 없던 '지금보다 젊은' 지비는 머리띠에서부터 날개, 꽃 등등을 부착하며 피로연을 즐겼다.  지비는 더 있고 싶어했지만, 그날 여정을 새벽 3~4시에 시작했던터라 우리는 12시까지만 그 자리를 지키고 숙소였던 친구네로 돌아갔다.


영국에서 진행된 것은 아니였지만, 이곳에서 처음 가본 결혼식이라 흥미로웠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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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2011년 크라코프-바르샤바 여행 사진을 들춰보고 있다.  지워지지 않고 또렷한 기억도 있고, 사진을 봐도 잘 떠오르지 않을만큼 새로운 기억도 있다.  아직 폴란드는 인기 있는 여행지는 아니라서 그렇게 많은 정보가 없다.  이 기록이 여행에 도움이 될 정보를 담을리 없지만, 느낌이라도 가지게 된다면 좋겠다.


01.  친구네

이 여행을 할 때 지비는 미국계 IT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본사는 미국, 영업지사는 영국, 개발지사는 폴란드.  지비의 팀장은 미국의 유타에, 시니어는 폴란드 크라코프에, 지비는 영국 런던에 근무하고 있었다.  이 여행을 앞두고 크라코프에 있는 시니어에게 시내에 아는 사람 빈 방 놓으면 소개해달라고 했다.  시니어가 자기 집은 시내는 아니지만 공항하고 가까우니 그냥 와서 묵으라고 해서 그 집에 3일 신세를 지게 됐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그 시니어집에 도착하니 차를 주신다.  나는 여전히 커피파.



찻잔의 크기가 유럽인 얼굴만한.  그런데 이 시니어뿐 아니라 지비의 사촌도 집에서 이 정도 크기의 찻잔을 쓴다.

폴란드에 가면 우리도 빼놓지 않고 사오던 것이 차였다.  티백 스타일.  히비스커스부터 고수까지 정말 다양한 맛의 차가 있다.  혹시 폴란드에 가서 어떤 기념품을 살까 생각한다면 추천 3위가 차.  참고로 1위는 보드카, 2위는 진저브래드.


그리고 이 시니어와 함께 개발지사에 들러 잠시 인사를 나눈 후, 칼 퇴근이 삶의 목표이자 지향인 지비에겐 참 흔하지 않은 일이다, 그들이 소개해준 폴란드 전통음식점에 갔다.  전통음식이라기보다는 그들이 좋아하는 종류의 음식점이었다.  그날은 무거운 저녁식사가 이미 예정되어 있어 간단하게 먹기로 하고 작은 포션의 플레이트와 고로케였는지를 시켰다.  맥주와 함께.



맥주는 참 맛있었다고 기억되는데 메인이었던 플레이트 - 모듬소세지들은 고기파가 아닌 나로써는 신기할 따름 맛있게 기억되지는 않는다.  지비는 무척 반겼던 것으로, 어렴풋이.



계산서를 달라니 식후주로 체리보드카가 나왔다.  맛있다고 마셨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38도.

벌써 6년전이라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음식 가격은 저렴했다.  이렇게 먹고 마신 게 당시 10파운드 근처.  물론 요즘 환율로는 15파운드는 되겠지만.  브렉싯으로 파운드가 바닥이라.  그래도 크라코프에 간다면 다시 가고 싶은 음식점이다.  위치도 바로 크라코프 여행의 주요지인 바벨성 아래다.



음식점을 나와 우리는 바로 바벨성으로 올라갔다.


02.  바벨성 Wawel - Wawel Castle


바벨성은 1000년경 크라코프 주교가 세워 500년 동안 왕들이 살았던 성이다.  그래서 나는 종종 크라코프를 '폴란드의 경주'라고 소개한다.



의미 없어보이는 이 사진에 보통 Krakow라고 쓰는 이름을 Cracow라고 쓰여진 버스가 있다.  한국에서도 Korea가 아니라 Corea라고 쓰자는 사람들이 있는데 크라코프도 그렇다고 한다. 



바벨성 초입에 놓여진 바벨성 모형.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데, 유럽에 관광지나 박물관에선 이런 조형물을 흔히 볼 수 있다.  전체를 보여주는 역할도 하고, 아이들이 만져볼 수 있고, 시각장애인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입장권을 사고 들어가면 왕들의 묘지를 지나게 된다.  당시 역사적인 추모식에 참가하러 가던 폴란드 대통령 일행이 탄 비행기가 추락하여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정부요인들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그 사고 뒤 바벨성에 안치된 대통령의 묘지.  바벨성은 왕들이 묻혀 있는 곳인데 대통령을 안치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고.



성 안에 넓은 광장이 있다.  한 장의 사진에 담을 수 없어 나눠 찍었는데, 앞으론 이런 시도를 하지 않는 것으로.  그때만해도 내 휴대전화에 파노라마 모드가 없었다.  이 즈음해서 이런 사진들을 제법 찍었는데 잘 붙이는 방법 있으면 누구 알려주시길.  그런 프로그램이 있었던 것도 같고.



지나는 관광객에게 맡긴 기념 사진.  성 자르고, 다리도 자르고.  셀프스틱도 없던 시절이었다.  물론 우리는 지금도 없지만.



우리가 '요한 바오로 2세'라고 알고 있는 전 교황님도 폴란드인이다.  한국의 원효대사 버금가는 분으로써 폴란드 전역에 그분이 태어나신 곳, 미사드린 곳, 방문하신 곳 등등 타이틀이 붙은 곳들이 많다.   영어로 '존 폴'이라고 해서 몰랐던 그 분.  그 분과 비슷한 유명 폴란드인으로는 코페르니쿠스, 쇼팽, 퀴리부인 등이 있다. 

그 분이 바벨성에 오기도 했겠지만, 그 분의 고향이 또 크라코프에서 멀지 않다.  그런 이유로 한국인들이 이 크라코프를 찾기도 하는 걸로 알고 있다.



성의 지그문트 탑에 오르면 16세기에 만들어졌다는, 폴란드에서 가장 크다는 종이 있다.  이 종의 중심을 왼손으로 만지면 다시 돌아온다는 이야기 때문이 많은 관광객들이 줄서서 사진을 찍고 있다.  우리도 그 관광객들 중 하나였는데, 그 때문인지 올 여름 다시 크라코프에 가게 됐다.



곳곳에 요한 바오로 2세 전 교황과 관련된 그림들, 전시물들, 광고물들이 많다.  크라코프뿐만 아니라 폴란드 전역에.



지나는 길에 환율 계산하려고 사설 환전소에서 찍어둔 환율표.

폴란드는 유럽경제연합에 속해 있지만, 유로를 쓰지 않고 즈워티/즈로티라는 자국통화를 쓴다.  폴란드를 여행할 땐 미국 달러나 유로를 준비하는 게 가장 좋고, 파운드도 어느 곳이나 환전된다.  한국과 달리.   이번에 한국가서 파운드를 아무곳에서나 환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절망했다.  그렇지 않아도 파운드 환율이 바닥이라 서러운데.  파운드는 기타통화에 불과했던 것이다.



바벨성에서 걸어 크라코프 여행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중앙시장 광장으로 갔다.  먼 거리는 아닌데 새벽 비행기를 타고 갔던 날이라 벌써 무척 지쳤던 기억.


03.  중앙시장 광장 Rynek Glowny - Main Market Square


친절한 여행책자님의 말씀에 따르면 이 광장은 이탈리아 베니치아에 있는 산마르코 광장에 이어 유럽에서 두번째로 큰 광장이라고 한다.  이 글을 쓰면서 나도 처음 알았다.  1978년 유네스코에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첫도시가 크라코프라는 건 누가 알까?  나는 지비에게서 들어본 것도 같다.



광장 중앙엔 시장 건물이 있다.  다시 친절한 여행책자님의 말씀에 따르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쇼핑몰 형태의 시장 건물이라고 한다.  이 부분은 사실 확인이 좀 필요하다.  폴란드인들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나중에 언급하겠지만 쇼팽도 그렇다.  쇼팽은 아버지가 프랑스인, 어머니가 폴란드인이다.  폴란드에서 태어났지만 프랑스에서 자랐고 이름도 그러해서 '프랑스인 아닌가' 싶은데, 폴란드인들은 쇼팽이 폴란드인이라고 생각한다.  프랑스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싶다.

1층은 공예시장이고, 2층은 박물관이라는데 이 역시 이 글을 쓰면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아는 사람이 있다는 이유로 별로 준비없이 떠났던 여행이기도 하고, 여행이 목적이 아닌 여행(?)이라서 더 모르고 갔던 여행이었다.



시장 건물 안에 있던 도시별 문장.  Szczecin이 지비의 고향이다.  한 번 읽어보시길-.  나는 아직도 정확한 발음이 안된다.



중앙시장 광장에 있던 폴란드 시인 아담 미츠키에비치 Adam Bernard Mickiewicz 탄생 100주년 기념 동상을 뒤로하고 광장 한 켠에 있던 성마리아 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04.  성마리아 성당 Bazylika Mariacki - Basilica of the Assumption of Our Lady


이 글을 정리하면서 여행전에 봤던 폴란드 여행에세이와 론니플래닛을 함께 보고 있다.  '성마리아 성당'은 에세이에 있던 이름이고, 'basilica of the assumption of our lady'는 론니플래닛에 있는 이름이고, 'bazylika mariacki'는 지비가 부르는 이름이다.  한국인이 쓴 에세이처럼 성마리아 성당이면 church of maria쯤 되야 할 것 같은데, 지비말로는 bazylika는 영어로 church가 아니라고 한다.  그보다 큰 규모인데 영어로는 모르겠단다.  지비의 설명으로 추론해 한국불교에 넣어보면 말사가 있는 큰절 정도인데, 아무래도 기독교인이나 카톨릭신자에게 물어봐야할 듯 하다.  영어 한국어가 동시에 되는 종교인에게.

이처럼 폴란드에 관련된 정보들은 폴란드어를 영어로, 그 영어를 다시 한국어로 옮기면서 폴란드인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으로 바뀐다.  여행에서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또 아예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고 그렇다.  나 역시 론니플래닛의 기본정보와 현지에서 본 정보, 지비에게 들은 정보를 더하기는 하지만 사실여부를 따져본 것은 아니라서 모든 내용에 자신이 없다.  혹시라도 잘못된 정보가 있거나 도움되는 정보가 있으면 알려주세요.


이 성마리아 성당이 유명한 이유는 서로 다른 모양의 두 개의 탑이다.  형제가 지어 올렸으나 화려하게만 지은 동생탑과 달리 견고하게 지은 형탑을 동생이 시기하여 형을 죽였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다.   또 유명한 이야기는 타타르족 침입을 알려주던 나팔수가 곡을 마치지 못하고 화살에 맞아 숨지면서 지금도 매시간 나팔수가 연주하던 지점까지만 나팔을 부는 퍼포먼스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는 알지 못했고, 그래서 챙겨보지 못했다.  이번 크라코프 방문에서는 볼 수 있을까?





우리가 이날 크라코프를 찾은 이유는 이 성마리아 성당에서 친구 결혼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쯤 이날 여행을 마무리하고 친구를 만나러 성마리아 성당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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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리핀 2017.07.04 13:30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바실리카 Basilica 라는 단어 자체가 대성당을 뜻하고 영어로는 cathedral 정도? 보통 특정 지역을 총괄하는 주교 관구를 맡은 대성당, 주교좌 성당을 카테드랄이라고 하던데요. 서울은 명동성당, 부산은 남천성당 등등.
    어디선가 굴러다니던 카톨릭 신자 입문교육 자료에서 읽은건데 제 기억이 정확한지는 자신이 없습니다;;

    • 토닥s 2017.07.05 04:10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척척박사 우박사 리턴즈!
      (어디 인터넷 없는 무인도에 이른 휴가 갔나 메일 넣어보려던 참이었다. 인터넷이 없는데 메일이 무슨 소용일까만은)

      basilica는 대성당이로군. 그럼 '(성)마리아 대성당'이로군.
      cathedral은 the mother church of catholic church. 지비님이 영어 cathedral을 모르시네.

  2. snoflake 2017.07.08 12:48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폴란드는 저와 관련없는 참 먼 나라 이 포스팅을 보고 나니깐 왠지 조금 가까워진 것 같아요. 그나저나 폴란드 찻잔 사이즈에 깜짝 놀랐어요! 마음에 꼭 들어요. :)

    • 토닥s 2017.07.11 06:19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제게는 가깝고도 먼 나라 - '시월드'지요. :)

      찻잔의 크기가 인상적이기는 하지만, 알고보면 별다방의 벤티 사이즈 정도 아닐까요?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한국에 가면 꼭 먹어야 하는 음식, 만나야 하는 사람은 줄어든다.  믿기지 않겠지만 먹는데 취미를 잃었다.  물론 여전히 먹는 건 즐겁지만, 3인 가족 먹거리를 내 손으로 지어먹고 살다보니 한국에 가면 내 손으로 하지 않은 모든 음식에 감사하고 즐겁다.   필드 밖으로 벗어나니(튕겨나니) 만나자는 사람들은, 멀리서 달려와주는 사람들은 오랜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너무 고맙다.  때로는 쓸모가 없어진 사람같아 서운한 마음도 없지 않지만.

나뿐 아니라 외국에 사는 사람들은 한국에 가면 꼭 하는 일이 병원과 미용실 방문이 아닐까 싶다.  이곳은 미국과 달리 기본적으로 무상진료라 병을 미뤄두고 살지는 않지만 치과는 거의 유상진료일뿐 아니라 한국만큼 해내질 못해 영국의 지인들은 한국에 가면 꼭 치과에 간다.

런던으로 돌아올 날을 앞두고 나도 누리를 데리고 치과에 갔다.  그보다 며칠 앞서 나도 치과에 가서 치석제거를 했다. 

나도, 누리도 치료할 곳이 더 없어 안도했다.  누리는 아기때부터 쓰던 무불소치약을 써서 저불소라도 바꿔야 하냐고 물어보니 치약보다는 칫솔질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해주셨다.  맞는 말씀.  나도 지난해 방문에서 큰 돈 쓰고나서 열심히 칫솔질을 했다.   치간 칫솔도 사용하며.  치약도 손에 잡히는대로, 할인하는대로 쓰던 것에서 평이 좋은 상품으로 바꾸었다.  하지만 비싼 가격 때문에 그 상품이 할인을 하면 여유 있게 사둔다.

한국을 떠나오기 바로 전날 미뤄둔 미용실에 갔다.  영국을 떠날 땐 첫번째 할 일로 꼽았는데 마지막 날에야 가게 됐다.  정말 그 전에는 갈 시간도 없었지만 염색을 하거나 퍼머(넌트)를 하는 것에 관해서 갈등하고 있었다.  일단 염색은 하지 않고 머리를 자르기로 했다.
내가 머리를 자르는 동안 누리를 보게 했고, 저도 자르겠냐고 했더니 자른단다.  예전 같았음 울고 불고 했을텐데 나의 나아진 모습(?)을 보고 마음을 바꾼 모양이다.

앞머리 자른다고 눈 감으라니 눈 감는 누리를 보고 '참 많이 컸다'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도 아직은 '다 키웠다'하려면 갈 길이 멀다.

한국여행의 마지막으로 미용실에 간 뒤 마무리하지 못한 숙제 같은 여권사진을 다시 찍기 위해 사진관을 찾았다.  지난 번 글( '아들의 귀환' http://todaks.com/1522 )을 읽은 사람은 알겠지만 더 이쁘게 찍으려고 한국에서 찍은 여권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미용실에 간김에 다시 찍기로 마음 먹었다.

같은 사진관에서 사진을 다시 찍는다고 했을 때 센스 있는 분이면 돈을 좀 깍아 주었을텐데 그대로 다 받으셨다.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두 번째 찍은 사진도 별로였다.  첫번째 사진도 거칠게 포토샵으로 잔머리를 다 지워 아들처럼 만들어놨더니 두번때 사진도 마찬가지.  포토샵을 못하시나.  여권사진 일년에 몇 번 보나, 여권사진은 여권용이라며 돌아와서 그 사진으로 영국여권 갱신 신청을 했다. 

아이용 영국여권은 갱신이라도 한국처럼 구청에 가서 신청하고 그런게 아니라 일종의 증인 서명countersignature을 받아야 한다.  이 사진의 아이가 여권을 신청하는 사람의 것이라는 증인 서명.  누리 어린이집 친구의 아빠가 그 서명을 해줬다.  그러면 여권발급기관은 그 아빠의 직장으로 다시 서류를 보내 한 번 더 그 아빠의 서명인지를 확인받는 내용을 묻는다.  자필로 그 서류를 여권발급기관에 보내면 비로소 여권을 내준다.  왜 이렇게 구구절절 쓰냐면, 이렇게 복잡한 절차를 거쳐 보낸 신청서가 반려됐다.  사진 때문에.  한 달안에 사진만 다시 증인 서명을 받아 보내면 여권을 내줄 모양이지만, 이 반려 편지를 받고 한국에서 두번이나 여권사진을 찍은 사진관에 항의하고 싶었다(요즘 영국의 상황이 그러하여 함부로 폭파하고 싶었다는 표현은 못쓰겠다).

반려를 알리는 편지에 '저급한 사진품질poor quality'이라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었다.  영국여권사진을 한국사진관이 어떻게 아냐고 할 수도 있지만 여권사진은 그야말로 세계공통이다.  여권의 모양은 다르지만 갖춰야하는 내용, 증명하고자 하는 내용은 같기 때문이다.

편지를 받은 다음날 아침인 어제 아침 어린이집에 가기 전에 이곳 사진관에 들러 여권사진을 다시 찍었다.  받아보니 영국여권사진이 요구하는 바를 알겠다.

한국여권사진에서 요구하는 배경, 옷색깔, 어깨선 그런 것들이 중요한게 아니라 사진의 인물과 실제 인물이 같아보이는지 확인하는게 더 중요하다.  기계판독 같은 걸 위해서 두 귀와 눈썹/눈/이마를 드러내는 게 중요하다.  그러니 과도한 포토샵이 문제가 된 것 같다.  사실 사진의 질로 봤을 땐 조명이나 초점 같은 건 한국에서 찍은 여권사진이 더 낫다.  그런데 과도한/거친 포토샵이 인물을 인공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영국에선 이렇게, 포토샵 없이 사진을 찍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이쁜 사진 찍어주려고 한국가서 찍었던 것인데.  좋은 & 비용이 드는 경험을 했다.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사진은 사진사에게,
영국여권사진은 영국사진사에게.

+

그럼 내년에 여기서 한국여권을 갱신해야하는데 그 사진은 또 어디가서 찍나.  런던의 한인타운에는 사진관은 없는데.  잇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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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프라우지니 2017.06.10 04:55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한국 다녀오셨군요. 부럽습니다.^^

    • 토닥s 2017.06.10 07:09 신고 Address Modify/Delete

      다녀온지 한 달인데 언제 다시 갈까 생각하니 아득..합니다.
      어제 오랜만에 지니님 블로그가서 필리핀 여행 구경했는데요. :)

누리는 한국에 올때마다 성큼성큼 자란다.  그에 따라 취향도 바뀐다.
2015년, 2016년 두 해 동안 누리의 취향은 딱 냉장고나라 코코몽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로보카폴리와 강철소방대 파이어로봇(?).  그런 와중에 이틀 머문 후배네에서 로보카폴리 변신로봇을 보았다.  너무너무 좋아해서 엠버라는 자동차 한 대만 들였다.  한 동안 영국에서 데려온 토끼도 뒷전 엠버만 친애하였다.  그 마음이 너무 애틋하여 어린이날을 맞이 나머지 3개 - 폴리, 로이, 헬리도 사줬다.  한 대는 작은 이모가, 한 대는 큰 이모부가, 한 대는 할머니기 사주기를 누리는 희망했지만 사는김에 내가 다 사버렸다.  그런데 폴리가 어린이날까지 도착하지 않았다.

그래도 어린이날 눈뜨자말자 포장을 뜯으며 기뻐했다.  비록 왜 폴리가 없는지 여러 번 묻기는 했지만.
사실 숨겨놓은 장난감을 전날 잠들기 전에 발견했다.  어린이날에 맞춰 뜯자고 설득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

케이크도 뽀로로 케이크만 찾던 아이가 이제는 콩순이 케이크를 골랐다, 큰 이모의 생일 케이크로.  큰이모의 생일은 며칠 전에 지났지만 어린이날에 맞추어 케이크 절단 및 시식.
누리는 사실 콩순이를 모른다.  핑크라서 골랐을뿐.

생각보다 비쌌지만, 생각보다 맛있었던 케이크.  피규어도 밀가루/설탕이 아니라 플라스틱이어서 소장가능하다.

+

이런저런 어려움을 뚫고 선배네와 만났다.  체육공원에서 만나 자전거도 타고 비누방울도 불고.  이번 한국행에서 정말 많이 간 체육공원.

궂은 날씨 때문에 빨리 놀이터에서 나왔다.  더 놀고 싶다고 우는 누리 때문에 당황한 선배네.  결국 아이스크림을 사준다고 하여 체육공원을 떠날 수 있었다.  체육공원을 떠나는 발걸음은 무거웠으나 누리가 터닝메카드 장난감의 세계에 눈을 뜨면서 까페에서 커피 한 잔 할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이렇게 누리의 취향은 넓어지고(?) 어린이날은 저물었다.  누리야, 3일 뒤는 어버이날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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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5.08 06:40 Address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토닥s 2017.06.06 18:51 신고 Address Modify/Delete

      듣기로 아들들의 변신합체 로보트는 딸들의 장난감 가격과 비교가 안된다고 하더군요. 어린 쪼꼬미가 벌써 그 세계에 발을 들였다니 심심한 위로를..(^ ^ );;
      어린이집에 안가도 그런 일이 생기는군요. 신기방기. 누리는 어린이집에 가기 전에, 심지어 디즈니랜드에 가기 전에 미키마우스, 미니마우스 이름을 몰랐어요. 그런 아이를 디즈니랜드에 데려간다고 다들 주변에서 뭐랬네요. 왜 굳이 부모가 그런 걸 소개해주냐고요. 그런데 어린이집 아이들이 다들 미키, 미니 캐릭터를 가지고 있고, 겨울왕국 캐릭터를 가지고 있어 누리는 몰라도 궁금해 하긴 하더라고요. 몰라도 가지고 싶어하고.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적정한 정도를 찾아주는 것 외엔.ㅎㅎ

어제 지비가 런던으로 먼저 돌아갔다.  일년 중 가장 긴 휴가, 가장 비싼 휴가를 한국행에 써주신데 감사하며 2주 동안 정신없이/빡세게 다녔다.  블로그를 쓰기는 커녕 들아와볼 기력도 없었다는 진실과 변명.

김해공항에서는 입술만 씰룩거리던 누리.  차에 타서 부산시내로 향하면서 아빠가 보고 싶다고 눈물바람.  있을 때 좀 친하게 지낼 것이지.  지비가 인천공항에 도착해서야 영상통화가 연결됐다.  그때는 또 자전거 탄다고 정신이 없던 누리.  

며칠 뒤면 본다는 내 말을 이해했나 싶었는데 잘 때 누워 또 아빠가 보고 싶다고 운다.  우리도 며칠 뒤면 비행기를 타고 간다고 반복해줄 수 밖에 없었다.

6주나 됐던 휴가가 이제 1주일 정도 남아 나도 이제 짐쌀 준비를 해야한다.  어제 만난 친구가 만날 사람들 다 만났냐고.  휴가를 반복하면 할 수록 만나는 사람들의 수는 적어지고, 만나는 사람들의 범위는 달라진다.  누군가를 만나지 못한 아쉬움보다는 누군가를 만날 수 있어 더 고맙다.  이번에 만나지 못한 사람은 또 다음에 만나면 되니까.  그렇게 믿는다.

+

친구 둘과 친구 한 명의 조카 포함 아이들 넷을 데리고 커피를 마시러 갔다.  한 마디로 북새통.

회동 그릿비커피

얼마전에 한 친구와 아들을 만났을 때 누리의 그리기 세트를 부러워하던 친구 아들에게 같은 세트를 지비편에 가져오라고 해서 어제 선물했다.  까페에서 북새통이라 모든 아이들에게 풀 수 밖에 없었다.  옆에서 우리 일행을 주시하던 50~60대 여성분 3명.  아이들이 어울리지 않는 까페라 그런가 싶었는데, 한참 뒤 한 분이 말을 붙이신다.  아이들이 하고 있는 그리기 세트가 뭐냐고.  손녀 손주에게 사주고 싶으시다며.  부러우셨던 거다.

아이들은 북새통이었지만 그렇게 만나도 반가운 시간.  또 하나의 추억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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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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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도착하고 허리가 탈이 나서 병원에 다닌다고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썼더니 여기저기서 "나도!", "나도!".  한 때 따로 또 같이 공부하고 일하던 이들이었다.  지금은 서로 다른 공간에 있지만 육아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게 된.  이들과 '육아인부흥회'라도 열자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서 날을 잡았다. 
표면적인 타이틀은 '해운대에서 아이들이랑 모래나 파자'였지만 결과적으로 '아빠들에겐 아이들을, 엄마들에겐 커피를'이 됐다.  5집 7명의 유아동들.


다 같이 한 시간 모래 파고, 한 시간 커피마실 계획이었는데 어쩌다보니 엄마들만 시원한 까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물론 아빠들은 아이들과 더더더더 행복한 시간을 가졌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누리와 자신을 두고 한 시간 반이나 커피를 마셨다고 징징.  누리가 아닌 지비가 징징.

듣자하니 누리는 아이들과도 어울리지 않고 지비를 들들 볶은 모양.  그러고보니 위로 셋은 오빠들이고 아래로 셋은 어린 여동생들이어 그런 것도 같다.  특히 요즘은 심기가 불편하시니.

+

집에 돌아와 엄마들이 해변에서 사라진 사이 지비와 누리에게 있었던 일들을, 지비가 이해하는 상황에서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그러면서 한 지비 말은 아이들이 7명이나 모였는데 그 중에 별난 아이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영어로 nauty인데 '별난' 정도의 느낌.  다들 그 엄마들의 그 아이들인지.  다들 아이들 곱게 키운다고 수고 많았네.

+

오늘을 앞두고 다른 집은 아빠가 오는지, 지비가 오는지 궁금해했다.  누구는 영어가 안되서 걱정하고, 누구는 부끄럽고 해서 아빠들이 올런지-하고 이야기가 오갈때 '그 아빠들 참 착한 아느님과 사시네' 생각했다.   누리네에선 통하지 않는다.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눠보니 신기하게도 자신의 캐릭터대로 육아하고, 아이들도 그런 엄마들을 닮아 있었다.  신기방기.

요즘들어 자주 언급되는 누리의 지나친 예민함이 나로부터 온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나부터 둥글어져야겠다.  덩치는 내가 참 둥글한데 말이다.

+

단체사진을 못찍은 게 아쉽다.  그래도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징검다리를 오늘 놓았다.

다음에 또 만나요!  정말 반가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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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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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5.02 10:15 Address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토닥s 2017.05.21 06:49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지금은 더더더더 몸이 무거워지셨겠어요. :)

      늦게야 댓글봤네요. 영국으로 돌아온지는 일주일이 넘었는데 아직 적응이 안됩니다. 시차가. 누리가 아니라 제가. 어제 오늘 늦도록 정신차리고 있어 제 블로그도 다시 들여다볼 여유가 생겼습니다.

      바쁘시죠? 어렵겠지만 둘째를 위해 에너지 많이많이 충전할 수 있도록 지금 많이 쉬세요. 더 잘 아시겠지만. 요기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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