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떠나다./2003년 베트남 Vietnam'에 해당되는 글 18건

  1. 2017.11.27 [road] 길 위에서 만난 베트남
  2. 2017.11.27 [hochiminh] 여행의 끝
  3. 2017.11.27 [mytho] 메콩델타
  4. 2017.11.27 [cuchi] 구찌터널
  5. 2017.11.24 [nhatrang] 베트남을 느끼다.
  6. 2017.11.23 [nhatrang] 나짱
  7. 2007.01.27 [mylai] 미라이, 아니 선미
  8. 2007.01.27 [hoian] 볼 거리 살 거리
  9. 2007.01.27 [hoian] 오래된 도시, 호이안
  10. 2007.01.27 [haivan] 하이반 고개

(2007년 6월 25일)

하노이에서 호치민시티까지 그 먼길을 타고 다닌 미니버스다. 24인승 버스 미니버스이지만 그야말로 미니버스이고, 짐들이 많아 남는 공간이 없었다. 아마도 여행 중 다들 잠든 시간에 찍은 사진인 것 같다.

달리는 미니버스 안에서 찍은 사진들.

잠시 쉬어가는 휴게소에서 찍은 사진.

한밤 중에 어느 시골도로 휴게소, 그냥 가게라고 해야 적당한 규모,에 들렀더니 주인이 띄엄띄엄 한국말을 한다. 자세한 내막을 들어보니 한국의 그것도 부산의 신평공단에서 일했던 노동자라고 한다. 한국에서 돈을 벌어 돌아와 가게를 차리게 됐다고 반가워 한다. 우리는 그가 반갑고 고마웠다. 분명 고생 많았을 한국에서의 시간을 그렇게 기억해줘서. 그가 끓여주는 라면으로 야식을 즐긴 후 다시 가던 길을 재촉하여 갔다.

주인이 한국과 인연이 있는 사람이라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 사람이라서 나는 진열된 과자들을 편하게 구경하고 사진찍을 수 있었다. 정말 배낭여행객처지만 아니라면 기념품 삼아 사고 싶은 것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어릴 때 먹던 과자들과 한국에서 이름있는 과자들의 이미테이션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뒤에 알게 된 사실인데 한국의 과자들은 대부분 일본의 이름있는 과자들을 따라 한 것이었다.( ;; )

여행을 준비하여 샀던 카메라가방. 여행을 다녀오고서도 매일 같이 들고 다녔다. 카메라가방 같지 않아서 좋았는데, 매일 들고 다니다보니 이젠 낡아서 쓸 수가 없는 지경이 됐다. 오죽했으면 같은 모양의 가방을 사려고까지 했다. 그런데 살 수가 없었다.
카메라 그리고 여권과 돈을 담은 가방은 어디를 가도 몸에서 놓지 않았다. 그래야 한다.


하노이에서 호치민시티로 간 길은 1번 국도였다. 그 도로가 아직 부분부분 비포장구간이 있었다. 그 것 하나만으로도 베트남의 사정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쉼없이 달린 길이라 빨래를 할 틈이 없었다. 다 말리지 못한 양말을 이동하면서 차창으로 들어온 햇빛으로 말리는 중. 시간이 흐르면서 이럴 일이 없어졌다. 왜, 계속 맨발로 다녀서.( ;; )

하교하는 아이들.

립톤티는 여행중 내가 가장 즐겨마시는 음료수다. 어느 곳을 가도 콜라는 있지만, 탄산을 즐기지 않는 내가 가장 쉽게 마실 수 있는 음료이기 때문이다.
립톤티를 즐겨마시게 된 것은 유럽여행 때부터다. 만만한게 물이라고 생각없이 마시던 나는 물이라고 다 같은 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물이라고 생각하고 산 물이 탄산수라는 것을 알고 벌컥하고 마셨다가 고생을 하였다. 그 뒤엔 세상말로 '안전빵'으로 립톤티를 마시게 됐다.

이 기차는 베트남에서 처음으로 본 기차였다. 기념삼아 찍었다.
하노이에서 호치민시티까지 기차로 타면 39시간이 걸린다. 좌석의 종류가 두어 가지 있긴 하지만 비행기를 타지 않는 이상 꼭 그만큼의 시간이 걸린다. 기회가 되면 꼭 타볼 생각이다.

전봇대의 생김이 한국과 달라 찍었다.

주요소에서 찍은 사진이다. 뭘까 뭘까 궁금해 하고 있는 낡은 모터사이클 한대가 탈탈탈 와서 기름을 넣고 간다.

선미마을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등 뒤에서 '낄낄'한다. 놀라서 돌아보니 망태기 안에 돼지가 있었다. 어디 돼지를 팔러가는 길인가 보다. 저렇게 돼지를 기르지는 않으니 말이다. 이 또한 신기해서 찰칵.

이 돼지를 보고 난 뒤에는 이렇게 싸여진 돼지가 종종 보였다.


구아바. 맛은 푸른 대추맛. 베트남 남부지역의 특산물이다.

한국으로 돌아오고서 얼마 뒤 구아바 쥬스가 상품으로 나왔다. "구아바~구아바~"하는. 당장 사먹었다. 실망스러운 맛이었다. 거의 설탕물이었다. 구아바는 그런 맛이 아닌데-.


+ 베트남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서 나는 가기전보다 더 많은 책들을 보았다.  '아, 그거구나'하는 것도 있었고, 여전히 모를 것들도 있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알면 알 수록 베트남을 좋아하게 된다는 사실.

모든 여행이 그런 것 같다.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에서 고미숙의 말처럼 알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알게 되는 것 같다.  

+ 여행을 다녀오고서 베트남에 관한 정보를 끌어모으던 중 나와우리라는 단체를 알게 됐다.  나와우리에서는 교류사업으로 묘지조성사업을 하고 있었다.  이를 오현씨에게 소개하였다.  묘지조성사업은 농촌활동과 비슷한 형태로 이루어진다.  한국군이 민간인을 학살한 지역에 들어가 묘지 만드는 일을 한다.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해 공부하는 계기가 됐다.

나와우리를 통해서 선미마을에서 영상을 가져와 번역하고, 자막을 넣어 다시 보냈다.  나와우리의 간사인 김정우 선생님은 뒤에 알게 된 베트남 친구 투항에게 호치민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친 사람이다.  김정우 선생님은 코이카로 2년 동안 베트남에 갔었다.

베트남 여행에서 통역을 했던 쑤언을 통해 부산외국어대학에 다니고 있던 투항을 알게 됐다.  투항은 뒤에 우리과 대학원에 들어와 후배가 됐다.  지금도 연락을 하고 있는 투항은 석사과정을 마치고 현재는 서울에서 일하고 있다.

+ 베트남에 관련해서만도 인연들이 실타래처럼 엮였다.  이 실타래 안에는 인연이 되지 못한 인연들이 또 있다.  
김정우 선생님을 통해서 영상을 가져올 것을 부탁한 사람은 이마리오라는 감독이다.  이 감독은 당시 베트남에서 어떤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이후 이 작품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봤다.

또 pal방식을 ntsc방식으로 변환하기 위해 한 기관에 문의를 했었다.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회원이 아니면 어렵다는 것이었고, 그를 위해서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뭐 이런데가 다 있어'하고 말았는데, 그 기관이 미디액트다.
이 정도면 인연이 된건가?

+ 기회가 된다면 한 일년쯤 베트남에 살아보고 싶다.  내 나이 서른다섯이 되기 전에 그런 시간을 가지게 될 줄 알았는데,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그래도 난 꼭 간다.  
뭐, 할 일이 있는 것은 아니고 살면서 사진을 좀 찍어보고 싶다.  낮엔 사진 찍고 저녁엔 커피나 맥주를 마시고.  그냥 살면서 느릿느릿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런 날이 올까?

+ 이렇게 베트남 여행기는 끝!



뜬금없는 옛글이라 놀라시겠지만 오래된 홈페이지에서 블로그로 이사중이랍니다.  끝내지 못할 숙제 같지만 천천히 옮겨 보려고요.  예전에는 티스토리가 과거날짜로 발행이 됐는데 이젠 안되네요.  그래서 오늘 날짜로 발행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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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25일 작성)


베트남 여행을 가면서 입고간 청바지. 아무데나 털썩털썩 앉고 계속 입다보니 헤져 구멍이 났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호텔에 버리고 왔다. 조금이라도 짐을 줄여보려고.
그땐 여행에 대한 노하우가 없어, 사실 지금도 없기는 매 한 가지다만, 옷짐이 가장 많았다. 지금도 그런 경향이 없지 않지만. 비교적 물가가 저렴한 나라를 여행할때는 현지에 가서 사입는 방법을 권하고 싶다. 저렴하기도 하고, 돌아오면 기념품이 되기도 한다. 단, 그러한 여행법은 표준체형 또는 그보다 작은&날씬한 경우만 해당한다. 나는, 나는 안돼.(ㅜㅜ )

호치민시티에 가서는 메콩강 투어다, 구찌터널이다 시외로만 나돌아서 정작 호치민시티에서 찍은 사진은 없다. 아침저녁으로 밥 먹으며 어슬렁 거린 거리가 전부이니. 하지만 그도 나쁘지 않다고 스스로 평가하고 있다.

베트남 커피. 여행을 하면서 이미 사둔 커피가 있어 새로이 구입하지는 않았다.
베트남의 커피 생산량은 세계 3위다. 놀랍다. 하지만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커피에 밀려 품질을 알아주는 커피는 아니다. 맛은 잘모르지만 좋아라 하고 먹는다. 베트남에 다녀오고서 계속. 베트남 여행을 통해 알게 된 친구들이 집에 다니러 갔다올 때마다 커피를 선물로 사가지고 온다.

호치민시티는 모방그림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렇게 듣고보니 이런 장면도 기념이 될듯하여 한 장 찍었다.

앞서 말했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의외로 육식을 즐긴다. 더운 날씨를 이기기 위함이라고 우리끼리 생각하고 말았다.

베트남 커피를 내려먹는 방식이다. 철제로 된 드리퍼에 커피를 꼭꼭눌러담고 커피를 내린다. 진하게 내려진 커피와 연유를 섞어 먹는 것이 베트남에서 커피를 먹는 방식이다.
여행에서 돌아올때 철제 드리퍼를 사오기는 했는데 베트남에서 먹던 것과는 달랐다. 언니와 함께 베트남에서 마셨던 커피를 재현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모두 실패. 철제 드리퍼는 기념품으로만 남았다.

떠나오던 날 아침 미니호텔 창에서 내려다본 풍경. 한참 동안 내려다봤다.
베트남에서 보낸 열흘이 너무 꿈만 같고, 너무 좋아서.( ˇ_ˇ)


처음 베트남 여행을 할 때, 그리고 하노이 어느 시장 어귀에서 돼지기름에 볶은 밥그릇을 앞에 놓고 내가 왜 베트남에 왔을까를 생각했다. 말이 '생각'이지 '후회'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땅에서 열흘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은 '간사한 사람 마음'이 떠오를 정도로 180˚ 바뀌어 있었다. 이제야 정이 들 것 같은데 떠나야 하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정 들자 말자 이별이라더니-.

호치민시티의 공항은 하노이 공항과는 달리 분주했다. 시간이 늦어 생각할 틈도 없이 짐을 붙이고 보니 나는 반바지 차림인 것이다. 돌아가야할 한국은 2월인데.( ;; )

정신없이 자다보니 밥을 먹으란다. 빵조각 조금 뜯어먹고 다시 잠을 청하려고 하는데, 조그만 창으로 보이는 풍경이 장관이다.


+ 돌아오는 날 공항에서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던 쑤언의 표정이 눈에 보이게 좋지 않았다.  

쑤언은 나이 스물여섯에 한국에 왔고, 그의 나이 서른 둘인 지금도 한국에 있다.  그때 쑤언의 나이 스물여덟.  언제가 끝인지 알 수 없는, 끝나도 미래를 약속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는 유학길에 다시 올라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만든 것이었다.

그때 일행 중 가장 연장자였던 김남기 선생님이 쑤언의 어깨를 토닥이며, 얼른 열심히 공부해 돌아오면 되지 않느냐는 말씀을 해주셨다.  베트남은 미국과의 전쟁에서 이기고 우리나라가 하지 못한 통일을 이룬 나라라며, 그런 나라에서 열심이 일할 일꾼이 되라는 말씀을 해주셨던 것 같다.  그런 쑤언은 아직도 베트남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당시 석사과정에 있던 쑤언은 석사과정을 마쳤고, 지금은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함께 해야하는 처지라 공부만 하지 못하다보니 박사논문이 계속 늦어지고 있다.  그러고보니 쑤언을 만난지도 조금 됐다, 지난 겨울에 보았으니.  오랜만에 쑤언에게 연락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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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2월 8일 작성)

미토mytho는 호치민시티에서 두어 시간 떨어진 곳이다. 작은 도시지만 이 도시엔 많은 여행객들이 찾는다. 그 이유는 메콩강 크루즈 때문이다. 베트남에서 어느 곳 하나 인상적이지 않은 곳이 없었지만 메콩강도 그 중에 하나다. 이 곳 역시 호치민시티에서 약간의 거리가 있는 곳이라 호치민시티만 찾은 사람이 찾아가기 쉽지 않지만 꼭 가보라고 권하고 싶은 곳이다. 호치민시티에 있는 크고 작은 거의 모든 여행사들이 미토에서 출발하는 메콩강 크루즈 상품을 다룬다. 왜 그렇겠는가. 여행상품이 된 곳은 그만한 볼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여행상품을 이용하는 방법은, 앞에서 언급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도착한 도시에서 작은 여행사를 찾는 방법이다. 거의 대부분의 여행사들이 해당도시와 그 근교를 루트로 한 하루 또는 며칠 짜리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비용도 줄이고, 또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기회이므로 이용해도 좋을 것 같다. 나도 베트남을 다시 찾게 되면 여행상품을 이용하여 여행할 생각이다.

사진을 찍은 곳은 선착장의 매점이다. 일행이 흥정에 들어간 사이.

일행이 빌린 중형 보트다. 이 보트를 타고 3시간짜리 투어를 시작했다. 일행이 모두 탈 수 없어 중형보트 2대로 나누어탔다. 여기에서도 알 수 있겠지만 중형이라 하여도 그다지 크지 않다.

메콩강변에 가기전까지 그렇게 강이 큰지 몰랐다. 한강보다 폭이 넓다. 강폭에 깜짝 놀랐다.
사진으로 보기에 강이 깨끗해보이지 않지만 강은 무척 깨끗하다.

메콩강 투어는 강을 따라가다 몇개의 작은 섬에 내려 구경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작은 섬은 저마다의 특산물을 판매하는 형식이다.
투어는 짧은 것에서 하루 넘는 것도 있다고 들었다. 우리는 시간이 없어 짧은 투어를 선택했다.

강에서 목욕하는 아이들. 물놀이에 가까운 목욕이었다. 비누도 없고, 투브도 없고, 수영복도 없었다.
급하게 카메라를 들었는데 담지 못했다. 아이들은 보트를 향해 웃고 있었다.

첫번째 우리가 내린 섬은 과수원이 있었다. 찾아보니 타이선이라는 이름의 섬이다.

섬에 내리면 가이드가 과수원 안쪽으로 안내한다. 작은 오두막이 나오고 오두막에 이르면 과일과 차를 내온다.

과일과 차에 대한 댓가를 지불하지 않지만, 과수원에서는 발효된 술을 판다. 사람들은 기념품 삼이 그 술을 사고, 과수원 사람들은 그렇게 생계를 이어간다.
이런 방식의 투어라는 것을 알게 된 나는 여기서부터 흥미가 확 떨어졌다.


라임이다. 한국에서 퍼를 먹으로 가면 숙주와 함께 레몬을 내어준다. 고기 육수로 된 퍼 국물에 넣어먹는 것이다. 한국에서 레몬이라는 것은 크기는 주먹만하고 색깔은 노란 것이다. 하지만 베트남에서는 우리가 라임이라고 알고 있는 것을 레몬이라고 내어왔다. 베트남에서 라임을 접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과일을 먹고, 차를 마시고, 사람들은 기념품으로 술을 사고. 사실 물건을 팔기는 하지만 베트남의 물가가 그러하듯 그렇게 비싼 수준이 아니어서 부담이 되는 정도는 아니다.

과수원이 있는 섬에서 다음으로 간 곳은 코코넛으로 사탕을 만드는 곳이었다.

말은 사탕인데 엿에 가깝다. 더군다나 베트남의 남단에 이르러 날씨는 절정으로 더웠고 사탕은 더 엿처럼 늘어졌다. 몇 개를 맛보게 하고, 기념품 삼아 사탕을 사는 식이다. 언니와 나도 사탕을 샀다.
집에와서 엄마에게 주니 어릴 때 먹던 사탕이 생각나신단다. 엄마가 어릴 때 먹던 사탕이라면 언제적 이야기인 것인가.
맛은 무척 달지만 뒷맛이 설탕의 단맛과는 다르다.

한 두개의 섬에 더 들렀는데 자세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투어의 방식이 기념품을 파는 것이라는 점에서 반감이 들었지만 메콩강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았다. 올려다본 하늘도 좋았고.

강렬한 햇볕에 반나절만에 피부가 껍질이 벗겨질 정도로 타버렸다. 내 평생 처음 있는 경험이었다.

과일과 사탕만 먹어 투어를 마치니 배가 고팠다. 취향대로 점심을 해결하기로 한 우리는 뿔뿔히 흩어졌다. 우리는 식당에 들어가 만만한 퍼를 시켰다. 영어가 통할리 있나. 손짓발짓으로 주문을 했다. 허기를 달랠 무엇이 나오긴 했는데 퍼가 아니었다. 분이라고, 일종의 비빔 국수였다. 분과 함께 아이스티로 목을 축였다.

식당에서 화장실을 이용하면서 찍은 개와 화로.
베트남에서 만난 개는 모두 이런 식으로 자고 있었다. 날씨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보는 우리는 신기해하며 즐거웠다.

짧은 메콩강 투어를 마치고 우리는 서둘러 호치민시티로 돌아갔다.


+ 메콩강에서 보트를 타고가며 강물에 손을 집어 넣었다.  강물의 냄새를 맡아보았다.  냄새도 없고 물은 깨끗했다.

볍씨가 강물에 떠다니고 있었다.  어느 강가에서 누가 뿌린 볍씨겠지.  
그 볍씨를 보고 있자니, 이렇게 수량이 풍부한 강과 식물이 잘 자라는 기후를 가진 베트남이 왜 가난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농경민족인 베트남 사람들은 부지런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왜.  
사실 답은 간단하다.  미국의 경제봉쇄때문이다.  러시아의 페레스트로이카에 비유되는 도에모이라는 개방정책으로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베트남은 가끔 한국의 TV에 높은 건물과 수많은 모터싸이클의 모습으로 비춰진다.  그 모습은 베트남의 모습이 맞다.  하지만 중부지역이나 북부지역의 모습은 대도시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의무교육이 있지만 학교에 다니기를 포기하고 농사일에 매달려 할만큼 가난하다.  심지어 의무교육을 받지 못할만큼 가난하기도 하다.

풍요로운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메콩델타였지만, 상대적으로 가난한 베트남 사람들의 모습이 짠한 느낌을 주었다.


뜬금없는 옛글이라 놀라시겠지만 오래된 홈페이지에서 블로그로 이사중이랍니다.  끝내지 못할 숙제 같지만 천천히 옮겨 보려고요.  예전에는 티스토리가 과거날짜로 발행이 됐는데 이젠 안되네요.  그래서 오늘 날짜로 발행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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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2월 8일 작성)

호치민시티에서 떨어진 구찌cuchi, 그리고 구찌 시내에서도 떨어진 구찌터널. 짧게 베트남 또는 호치민시티를 방문한 사람이라면 가기 쉽지 않은 여정이지만, 그래도 갈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꼭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구찌터널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두어 시간 걸린 것 같다. 가는 길에 발견한 삼륜자동차. 우리나라 TV에도 가끔 등장한다,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골동품으로. 그런데 베트남에서는 이 삼륜차가 아직 굴러다니고 있었다.

카메라에 담아보려고 노력했지만 달리는 버스안에서 찍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비교적 많은 부분을 담은 삼륜자동차.

길을 묻고, 간식으로 과일을 사려고 잠시 세웠을 때 찍은 사진. 사진의 제목이 왜 '반미노점'이냐. 베트남에선 바케뜨를 '반미'라고 한단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들은 놀라운 우연성에 키득거렸다. "역시 반미의식이 투철해"하고. 베트남에선 바케트를 파는 노점을 발견하는 것이 쉽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은 내가 유일하게 열심히 먹었던 것이기도 하다.

구찌터널이라는 이름은 몰라도 베트남 전쟁당시 베트남 사람들이 터널에서 생활했다는, 그 규모가 적지 않다는 이야기를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 길이가 250km에 이른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다. 대략 부산에서 대전까지 거리가 아니던가.

당시 병사들의 복장이라고 한다. 인형이 목에 두르고 있는 스카프를 기념품 가게에서 판매하고 있었다. 일행 중 몇 사람은 그걸 사기도 하였는데, 나는 그런게 왠지 싫었다.

투어로 운영되는 구찌터널에 가면 안내원이 터널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들려준다.

터널의 끝은 강가와 닿아있으며 온도와 습도, 환기가 자연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하지만 노출은 되지 않도록 만들어졌다고 한다. 터널은 손으로 만들어졌다.

안내원이 설명하는 동안 탈탈탈 돌아가던 선풍기의 스위치.

숲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안내원.

우리는 안내원을 따라 한 숲으로 갔다. 어디를 가나 싶었는데 한 곳에 멈춰서 발로 나뭇잎을 쓸어내고 터널의 입구를 보여줬다. 일행은 탄성을 내뱉었다. 터널 입구의 크기에 말이다. 작아도 너무 작았다.

이 터널의 입구가 진짜다. 가이드가 누가 들어가보겠냐고 하였지만 아무도 나설 수가 없었다. 그나마 체구가 작은 일행이 시도를 해보려고 하였으나 역시 무리였다. 그럼 우리는 못가는건가하고 당황하고 있을때 가이드가 친철하게 여행객들을 위한 터널의 입구로 우리를 안내했다. 이미테이션인 것이다.

여행객을 고려해 높이와 폭을 넓혔다고 하였지만 그래도 좁았다. 공간과 공간을 잇는 터널을 지날땐 쪼그려 걸어야 했으니까.
이 사진을 찍다 '이크'하고 앞으로 넘어져 카메라 앞부분을 찍고 말았다는.(ㅜㅜ )

터널과 터널로 회의실, 식당 등의 공간이 연결되어 있다.

만일의 경우, 외부 침입이 있을 때를 대비하여 곳곳에는 트랩이 있다. 하지만 그 트랩이라는 것이 좀 원시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밝은 조명아래 보아서 그것이 위협적이지 않지만 깜깜한 터널 안이라는 상황으로 가정한다면 이런 트랩도 위험할 것도 같다.

당시 쓰던 타자기.

이곳은 여행객을 위한 터널과 본래의 터널이 연결되는 곳이다. 다시 보아도 도저히 들어갈 수 없을 것 같다.

전쟁당시 폐타이어를 이용하여 만들어 신었다는 샌들. 호치민 샌들이라고들 부른다. 지금은 기념품이 되어 기념품매장에서 구입할 수 있었다.

투어를 끝내고 우리는 땀범벅이 되어 쉼터에 앉았다. 고구마도 아니고, 감자도 아닌 먹거리와 차를 내왔다. 지금 생각하면 마가 아닌가 싶다. 마? 토란?

투어를 담당했던 아저씨. 너무 잘생기셨습니다.(^ ^ )

호치민 샌들을 만드는 작업장.

고무 채취의 흔적.

미군이 떨어뜨렸던 폭탄에 비해 베트콩의 무기는 너무 원시적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무기로 끝까지 싸웠고, 그들은 미국을 이긴 유일한 나라가 됐다.

철장안에 있지만 호락호락하지 않은 눈빛이 베트남과 같다는 생각을 하였던 것 같다.
오래되나서.(-_- )a

대중교통수단인 미니 버스.

기념품 가게로 간 사람들을 기다려 코코넛을 마셨다. 그러는 동안 해가 졌다.

+ 구찌터널 투어에 앞서 설명이 끝나고 나면 전쟁 당시 필름으로 기록한 영상을 보여준다.  한국어로 더빙된 것도 있어 우리는 그 영상을 보았다.  그 영상을 보면서 목소리의 주인공은 누굴까가 나는 궁금했다.  
어색하고 우습기 그지없는 더빙이었지만, 우리는 옛운동권쯤이 아닐까 추측했다, 고맙게도 그 더빙된 영상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내가 할 무엇인가를 찾기도 하였다.  한국어로 더빙된 영상을 열심히 보는 일행을 보면서, 선미마을의 본 영상을 한국에 가져와 번역해 선미마을을 찾는 여행객들이 볼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뜬금없는 옛글이라 놀라시겠지만 오래된 홈페이지에서 블로그로 이사중이랍니다.  끝내지 못할 숙제 같지만 천천히 옮겨 보려고요.  예전에는 티스토리가 과거날짜로 발행이 됐는데 이젠 안되네요.  그래서 오늘 날짜로 발행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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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 27일 작성)

나짱에는 참파유적지를 빼면 이름난 볼거리가 없다. 그래서 나는 그때까지 하지 못한 일들을 해야겠다라고 마음을 먹었다. 조카들에게 엽서쓰기, 그리고 내 홈페이지에 자랑질(?)하기 등등.

별 다른 볼거리가 없었다고는 하지만 여행이 중반을 넘어가던 때라 조카들과 부모님께 엽서를 쓰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 어디 자리를 잡기만하면 졸음이 쏟아졌으니. 단단히 마음 먹은 나는 어두운 호텔방에서 전날 저녁 산책길에 사둔 엽서에 인사를 쓰고 날이 밝기를 기다려 우체국을 찾아갔다. 여행자들이 잘 찾는 곳이 우체국이기도 하지만, 베트남 사람들의 생활의 일부분이기도 해서 호텔에 부탁을 하기보다 꼭 가보고 싶었다.

생각보다 국제우편보내는 절차가 너무 간단해 아쉬웠다. 베트남 사람과 간단한 인사라도 하게 될줄 알았는데. 아쉬운 마음에 이리저리 길거리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내가 우체국을 간 시간은 아이들이 등교하는 시간이었다.

초등학교 학생같은 아이들. 아침에 씨클로를 타고 가는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a

아오자이 교복을 입은 여고생들.
정말 '베트남스러운' 풍경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들에겐 일상이지만, 이방인인 나에게는 가슴이 뭉클한 특별함이 됐다.

음료 한 병 사먹고, 뭘 마셨던가? 오래되서 기억도 안난다.(ㅜㅜ ), 찍은 사진.

다시 작은 가게 앞에 서서 주변을 구경하는데 뒤에서 '부시럭'. 돌아보니 한 아주머니가 재활용품을 정리하고 계신다. 재활용 쓰레기를 수거하는 일은 베트남과 같은 나라에서는 무척 중요한 일이다. 사실 어느 나라가 그래야는 것인데. 자원의 소중함과 자연의 소중함을 생각할 때 말이다.

선미마을을 찾아가는 길에 우리는 길을 물으면서 음료수를 사먹었다. 차를 몰던 사람이 우리가 마시고 남은 음료수 캔, 병을 그냥 창 밖으로 던지라고 했다. 우리는 '엥?'하는 표정이 됐다. 그냥 단지 차안에 쓰레기를 만들지 않으려는 마음인 줄 알았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던지라고 해도 워낙 바른생활인들인 우리들은 주저했는데, 덧붙이는 말이 알루미늄 캔이나 유리 병과 같은 재활용 쓰레기는 그걸 수집하는 사람들에게는 적으나마 도움이 된다고 한다. '아-'하고 신음이 흘러나오긴 했으나, 그렇다는 사실이 신기하다기보다 슬프게만 다가왔다.


나짱에서 만난 쑤언의 사촌동생 순남. 정말 '미소년'아닌가. 순남의 여동생도 정말 이뻤는데 이름이 기억이 안난다.

순남의 나이는 12살쯤이었던 것 같고, 쑤언 이모의 아들이었다. 쑤언의 이모는, 쑤언의 어머니와 정말 닮았었다, 결혼하여 중부지역인 나짱에 살고 있었다. 쑤언은 이모가 결혼하고 처음 만나고 14년 여만에 처음 만나는 것이라고 하였다. 여행이 일반화되어 있지 않은 베트남이다보니, 더군다나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다보니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베트남을 갔을 때 1번 국도가 한참 공사중이었으니-.

호텔 입구에서 찍은 아이들. 함께 등교하기로 한 친구를 기다리는 중이었을까? 아니면 오후반 등교를 기다리는 아이들이었을까?

일행은 베트남에 오고서 처음 한국식당을 찾았다. 여행의 경험이 많지 않은 나지만, 나는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여행 중에 한국식당을 찾은 것이다. 아, 이후 도쿄 여행에서 부대찌게 집을 간적이 있구나.

그래도 배운 게 그거라고 바닥에 신문이 있길래 펼쳐봤다. 무슨 말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설명을 들으니 베트남의 주요미디어는 국영 체제라고 한다. 민영 체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경우라도 정부의 운영지침을 충실히 따른다고. 언론과 출판에 자유가 없다고 했으나, 그럼에도 사회변화를 희망하는 많은 활동이 언론과 출판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했던 것 같다. 그때 마음으로는 베트남의 미디어에 대해서 알아보자고 하였으나, 돌아와서는 잊기도 하였고 사실 정보를 얻을 곳도 없었다.

일행이 찾은 식당은 현대식당. 그 식당에서 한국 영화스텝들과 마주쳤다, 배우 감우성이 포함돼 있었다.

현대식당에서 먹은 메뉴는 비빔밤.

밥을 먹고 주변을 얼쩡거리다 찍은 아이들. 애들이 왜 그렇게 이쁘게 생겼던지. 웃음도 너무 좋다. 찍은 사진을 바로 보여주니 너무들 좋아했는데, 보내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베트남에서 놀랐던 것이 내가 생각했던보다 베트남 사람들은 육식을 즐긴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스테이크와 같은 고깃덩이를 주식으로 한다는 것은 아니다. 바케뜨와 같은 빵을 즐기는데 그 안에 고기류 등을 넣어 프렌치 샌드위치처럼 먹는다. 그외에도 주식인 밥에 고기를 얹어 먹는 식이다. 쌀국수만, 아니 적어도 많이 먹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은 빈약한 지식에서 나오는 오해였다고나 할까.
일행들끼리 더운 나라니 고기를 먹어 기운을 유지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들을 나눴다. 우리나라에서 더위에 삼계탕을 먹는 것처럼. 아, 베트남에도 개고기를 먹는다고 한다.

베트남에서 한글이 쓰여진 중고차를 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특히 버스 종류는. 그런 버스를 처음 볼땐 반가움이 들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버스 꼬리로 나오는 시커먼 연기를 볼 때마다 걱정이 됐다.

씨클로 타기. 앞 글에서 말한대로 1시간쯤에 1$를 주었다. 적은 돈도 아니지만, 많은 돈도 아니라는 생각에 달라는 대로 주었다. 60분은 나짱을 한 바퀴 도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신나게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아저씨가 내리라는 것이다. 처음 돈을 주면서 한 시간 뒤 내릴 곳을 말해주었는데, 그와는 전혀 상관 없는 길 한 가운데서 내리래서 당황을 하였다. 당황해하며 씨클로에서 내리니 '역시나' 말 없이 그냥 가는 것이 아닌가.( i i)
그런데 앞서 가던 아저씨가 뒤를 돌아보고 따라오라고 손짓한다. 머뭇거리며 따라갔다. 따라가며 보니 내리라고 한 곳은 오르막길이었다. 걷기도 힘든데 씨클로에, 무거운 아이(?)에 얼마나 힘에 부쳤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르막길의 정점에서 아저씨는 씨클로를 세우고 다시 타라고 손짓했다. 그렇게 시원한 바닷가길을 달려 목적지인 스파에 갔다. 내가 씨클로를 타는 사이 일행들은 스파에 갔기 때문이다.

스파로 가는 길 오르막이 한 번 더 나타나 한 번 더 걸어야 했다.
스파에 도착하니 일행들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옛 정취가 느껴지는 병에 담긴 환타로 목을 축였다.

밤에 해변 레스토랑에서 음료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마신 음료는 파파야. 이때 처음으로 파파야가 얼마나 맛있는 과일인지를 알게 됐다. 적당히 익어야는데, 많이 익으면 먹어보지 않은 우리는 적응하기 힘든 맛이다, 쥬스로 나온 파파야는 적당했다.

밤하늘을 보니 소설가 방현석의 말대로 깍이고 차오르는 모양이 다른 달이 떠 있었다.


+ 얼마전 후배가 베트남 여행을 간다기에 권해준 책이 소설가 방현석의 하노이에 별이 뜨다이다.  여행을 다녀온 후 베트남과 관련된 책을 몇 권 읽었지만 이 책만큼 잘쓰여진 책이 없는 것 같았다.  지금은 품절되서 구하기 쉽지 않지만, 베트남을 여행할 계획이 있다면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호텔이나 식당 등의 정보가 있지는 않지만 알고 가면 좋을 베트남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뜬금없는 옛글이라 놀라시겠지만 오래된 홈페이지에서 블로그로 이사중이랍니다.  끝내지 못할 숙제 같지만 천천히 옮겨 보려고요.  예전에는 티스토리가 과거날짜로 발행이 됐는데 이젠 안되네요.  그래서 오늘 날짜로 발행이 됐습니다.

출처: http://todaks.com/1577 [토닥씨의 런던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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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 27일 작성글)

나트랑, 베트남 사람들은 나짱이라고 부르는 휴양도시다. 나트랑이라는 이름은 프랑스 식민역사의 잔재다. 나짱이라고 불러야는데 나트랑이라는 이름이 먼저 입에 붙었다.

나짱의 중심은 해변이다. 해변에 가면 비치배드에 누운 관광객을 볼 수 있다. 그들은 비치배드에 누워 그늘에서 책을 읽고 있다. 그렇게 휴식을 즐기는 곳이 바로 나짱이다.

이 곳에서 처음으로 나는 씨클로를 탔다. 정확한 금액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1달러(US)를 주고 한 시간 정도 시내구경을 했던 것 같다. 나짱은 정말 바닷가에서 쉬는 것 말고는 달리 볼 거리도, 할 거리도 없어보였다. 씨클로 에피소드는 바로 다음 글에.

그렇다고 이른바 여행 포인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곳은 참파유적지다. 대부분은 전란에 타버렸고, 전탑같은 탑만 몇 개동 남아 있다.

참파유적지는, 유적지의 탑들은 베트남의 신앙과 깉은 관계가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특별할 것은 없고, 어디에나 가도 있는 향, 향꽂이가 있고 유적지내 점포에는 향과 같이 기복을 위한 용품들을 팔고 있다.

여기도 시바.

참파유적지는 유적지라기보다 그냥 흔적 같았다. 그다지 보존에 심혈을 기울인 것도 같지 않고. 전선은 어지럽기 그지 없었다. 어지럽고, 낡고, 낡다못해 부서지고 무너진 곳이었다.

아무리 좁은 유적지였지만 이 청년은 처음 그 곳에 들어섰을때나 한 바퀴를 돌았을때나, 그리고 주변에 사진을 찍을때나 모두 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하릴없다'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여기서부터는 씨클로를 타고가며 찍었던 사진들이다.

금성홍기. 베트남의 국기다.

+ 나짱의 씁쓸했던 기억은 그것이다.  나트랑이라고 불리는 이름에서도 알겠지만 나짱을 좋아하는 건 유럽에서 온 관광객들이다.  그 중에서도 프랑스인들.  

베트남은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역사가 있다.  바게뜨, 에스프레소식(진한) 커피의 식문화로 남아 있는 문화들이 있기도 하다.  그 비슷함과 익숙함 때문인지 프랑스인 관광객이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아시아 중에서는 일본인들이 단연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사실 일본인의 흔적은 지구 어디를 가도 찾기 쉽고, 그들의 비중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프랑스인 관광객들이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 나는 못마땅했다.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도시가 아닌 관광지에서는 영어만큼 프랑스어가 통한다.  한국이 그런 것처럼.  그나마 한국은 '가까우니까'라는 이해할만한 이유가 있지만, 베트남에 프랑스인 관광객들이 많다는 건 어떻게 봐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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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이, 아니 선미 마을은 가이드북엔 나와있지 않다. 내가 정리를 위해 빌린 가이드북 <세계를 가다>, 이것도 나름 이름있는 가이드북 시리즈다, 뒤쪽에 2도 컬러로 한 단락쯤 나와있다. 그래서 방현석의 여행기에 나온 단 한 줄, 끄앙응아이로 들어가 갈림길에서 왼쪽길을 따라 간다,는 글을 보고 찾아갔다.

다낭 가까이 꼭 가볼만한 곳으로 호이안과 미선 유적지를 꼽는다. 다낭을 출발하며 미선 유적지냐, 선미 마을이냐. 갈 곳을 정하는데 의견의 갈림이 있었다. 결론은 미선 유적지는 다시오면 갈 수 있는 곳이다, 여행지니까. 하지만 선미 마을은 쉽지 않은 곳이다라는 이야기들이 오갔고, 가보고 싶다는 의견이 다수인 가운데 미선을 꼭 가보고 싶다는 의견을 가진 이는 없어 선미 마을로 가게 됐다.




선미 마을이 어떤 곳이냐고? 베트남에 대해 쌀국수, 아오자이, 하롱베이 외 조금만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이라면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미군에 의한 '미라이 민간인 학살'을.

선미는 미라이mylai의 베트남 지명이다. 미라이는 미군이 임의대로 구획을 나누어 자기들 편의대로, 군사용으로 나눈 지명이다. 베트남 지명 발음이 쉽지 않아 그랬다는 이야기들도 있다. 예를 들면 우리 지명에 노근리가 있다고 치자. 미군이 발음하기에 쉽지 않음으로 자기들에게 익숙한 노엘 등으로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노근리를 그렇게 불렀다는게 아니라 예를 들자면. 그래서 선미 마을 인근 지역은 미라이1, 미라이2, 미라이3 등 이렇게 나뉜다.

선미 마을에서 일어난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네이팜탄에 화상을 입고 뛰어가는 어린 킴푹의 사진과 더불어 베트남전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그것이 얼마나 비양심적이며 반인류적인 전쟁인가를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이런 계기들이 쌓여 전세계적으로 반전운동이 일어났고 이런 흐름과 베트남 저항으로 전쟁은 끝이 났다.




선미 마을터에 지어진 이 기념관은 선미 마을 민간인 학살에 대한 정보가 있는 전시관도 있고, 당시 마을터의 흔적을 그대로 살려두었다. 그리고 이런 총탄의 흔적까지도.





기념관에 가면 단체의 경우 영상을 보여준다. 미군에 의한 선미 마을 민간인 학살에 대한. 그 영상은 베트남어, 불어, 영어 버전이 있다. 영상에 대한 글을 읽기도 하였고, 또 선미 마을에 대한 글을 읽기도 하였기 때문에 그림과 같이 보면 대략 이해가 간다, 일행은 영어 버전을 봤다. 그런데 같이간 분들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을듯. 그래서 각자가 느끼는 공포(또는 분노)의 정도가 달랐다. 영상을 보는 동안 지루해하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집으로 돌아와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그 영상의 한국어 버전을 만드는 작업을 하였다. 번역과 자막이 작업이 전부였지만.

나와 우리라는 단체의 도움으로 영상을 한국으로 가져왔다. 인편으로 가져오는데만 거의 1년이 걸렸다. 베트남에 가는 사람은 많지만 선미 마을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사실, 반 년만에 한국에 가져왔으나 어처구니 없게 pal변환을 부탁했던 후배가 지하철에서 잠들었다 급하게 내리다 두고 내려 잃어버렸다.(ㅜㅠ )). 다시 가져와 한글 자막을 넣어 다시 보냈다. 그때는 아무의 도움도 빌리지 않고, 직접 변환했다. 그 뒤 내가 베트남을 다시 갈 기회가 없어서 그 영상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알 수가 없다. 불행히도 그 기념관은 홈페이지 같은 것도 없다.
















당시의 방공호. 아이들의 키높이다.



기념관 내 마을터는 당시의 집터를 그대로 두었다. 재현이랍시고 어설프게 만든 집들이 있었다면 내가 받은 강렬함이 지금과 같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내버려둔, 더 이상은 사람이 살지 않는, 하지만 시간이 흘러 초록풀이 뒤덮은 집터가 나에게 강한 인상으로 남았다.



전시관의 일부에서 영상을 보고 나와 가이드와 함께 마을터를 둘러보았다. 이 가이드는 지역 주민이다. 이 지역 출신인데, 일반적인 설명이 있고서 사람들이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물론 그 질문의 강도는 셌다, 일행들의 대부분이 역사를 전공한 사람이다보니. 답을 하는 가이드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분명 이 가이드는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일텐데 말이다. 베트남어를 모르지만,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는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이 도랑은 예전부터 있어오던 것으로 마을을 가로지르는 농수로 같은 것이었다고 한다. 선미 마을 학살 당시 이 도랑은 핏물이었다는 가이드의 설명. 무성하게 자란 물풀이 무섭게 느껴졌다.







마을터를 둘러보고 사진과 자료를 보여주는 전시관에 들어갔다. 설명을 보던 중 무엇인가를 발겼다. 그 전시관의 설명은 우리가 베트남 전쟁이라고 부르는 전쟁을 America's war in vietnam이라고 쓰고 있었다.

어떻게 이름짓고 부르는가에 그에 대한 인식이 담겨 있는 것이라고 봤을때 베트남전쟁에 대한 베트남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나도 글을 쓰면서 가능하면 '미국에 의한 전쟁'이라고 쓰려고 노력한다. 물론 습관적으로 써버리는 말들도 있지만.




그렇다면 선미 마을 민간인 학살의 내용은 어떠했길래 그렇게 큰 파장을 불러 있으켰는가. 500여 명이 조금 넘는 마을 주민 중 미군이 마을에 들어왔을 때 마을엔 507명의 민간인이 있었고, 이들 중 504명이 죽었다. 단 3명이 살아남아 그 현장을 증언했다.

미군이 마을에 들어와 찾았던 것은 베트콩이었다. 베트콩이 있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당시 마을에 있었던 대부분은 아이들과 노인, 그리고 여성이었다. 이는 나이와 함께 쓰여진 사망자의 명단을 보면 알 수 있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베트남식 이름에 '티'thi라는 것은 여성의 이름에 잘 쓰는 일종의 중간 이름middle name이다. 베트남친구 투항의 풀네임도 응웬 티 투항이다. 학살당한 많은 이의 이름에는 thi라는 글자가 분명하다.












이 나무 부조도 어린 킴푹의 사진만큼이나 유명한 사진, 미국에 의한 베트남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사진을 형상화했다.



선미 마을의 학살을 살아서 증언한 세 사람의 생존자의 사진이 전시관에 걸려있었다. 이름을 써두었는데, 찾을 수가 없다. 이 사진 속의 할머니가 바로,



이 할머니다.

할머니는 마을을 떠나지 않고 그 때, 학살이 일어났던 때,도 그랬던 것처럼 마을터에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손녀와 먹을 수 있는 풀을 뜯으며 말이다.


+ 기록에 의하면 선미 마을에서 미군에 의해 학살당한 베트남 민간인의 수는 504명이다.  그리고 이날 미군도 한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마을에서 미군이 다쳤으니, 베트콩이 있었던 게 아니냐고?  단 한 명의 부상자인 미군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 학살의 현장을 견딜 수 없었고 그 현장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를 쏘았다.

좀 더 적극적으로 학살을 막았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러면 그 미군은 미군의 총에 맞아 죽었을 것이다, 군인이니까.  자신의 발을 쏘았던 그 미군은 살아 남아 그날을 증언하는 또 한 명의 증언자가 되었다.

그날 선미 마을에 있었던 사람human은 마을주민 507명과, 그 중에 504명이 죽었다, 자신의 발을 자기 총으로 쏜 한 명의 흑인 병사뿐인 것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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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안은 베트남다운 기념품을 사기에 딱 좋은 것이다. '베트남다운 기념품'이라고 쓰고 보니 이런 표현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인지 모르겠다.
베트남 수공예품을 사기 좋은 곳으로 정정. 물론 같은 물건들을 호치민 시티에서도 살 수 있지만, 가격대비 종류대비 호이안이 낫다. 호이안이 더 좋은 것은 그런 기념품을 만드는 가내 수공업형태의 공장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전시겠지만, 그 전시가 그렇게 좋아보일 수 없다. 이것도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구석이 있다. 어린이 노동까지는 아니지만 그에 가까운 소녀들이 수작업으로 등을 만들고 직물을 짜고 있기 때문이다.



저녁과 함께 마신 333 beer, 바바바 비어라고 부른다. 방현석이 그의 책에서 설명했듯 베트남 어디를 가나 만날 수 있는 보편적인 맥주다. 탄산도, 맛도 적당해서 올때 기념품 삼아 사오기도 했다. 가끔 비라 같은 곳에서 만날 수도 있다. 그래도 바바바는 베트남에서 마셔야 제맛.



다양한 맥주를 먹어본다는 취지에서 시켜본 타이거 비어. 그런데 시켜놓고 보니 싱가폴 맥주였다.



맥주 두 캔 비우고, 그것도 빈 속에 밥대신 마신 맥주라 두 캔에도 알딸딸하게 취한다. 그렇게 본 수공예 등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소녀들의 노동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말이다. 가져올 수만 있다면 하나쯤 사고 싶었지만, 배낭족이라 이런 기념품은 불가. 나는 언제쯤 이런 것들을 여행 기념품으로 살 수 있을까.













호치민 시티는 모사라고 하나, 이름난 그림을 베껴 그린 그림이 기념품으로 유명하다. 호이안은 이름난 그림은 아니고 토속적인 그림들을 많이 팔고 있었다. 혹여 내가 모를뿐 베트남에서는 이름 있는 그림이 아닐까? 알 수 없군.











다낭에서 출퇴근하며 이틀동안 호이안에서 본 것이라곤 올드 하우스가 전부지만 후에만큼이나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다. 작은 골목, 그리고 골목안의 작은 호텔들이 이뻤다. 그 호텔들을 보며, 나도 담엔 꼭 저기에 묵을꺼야고 다짐을 했던.

+ 여행에서 동행을 했던 김남기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  호이안에 다산초당 같은 문화관을 만들고 싶으시다고.  한옥을 지어 다산 정약용을 테마로 삼아 무엇인가를 해보고 싶으시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 만큼 호이안은 옛것이 고스란히 남아 멋스러운 도시다.  김남기 선생님이 그런 집을 지으시면 꼭 와서 묵겠다고 했다.  아니, 거기 취직시켜 달라고.  그렇게라도 머무르고 싶은 도시다.

김남기 선생님은 지금도 남양주 다산 유적지 인근에 살고 계신다.  남양주에 이렇게 저렇게 가볼 일이 가끔 생길 것 같아서, 가게 될 일이 생기면 그 댁에서 하루 묵겠다 마음을 먹었는데 그 마음 먹고 남양주에 갈 일이 없다.  잘 계시는지 모르겠다, 연락 않은지 2~3년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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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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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낭danang. 다낭은 중부지역의 중심지라 할 만큼 큰 도시지만 우리에겐 조금 다른 의미로 인연이 있는 도시다.



한국과, 정확히 말하면 한국군과 악연이 있는 곳인데 겉으로 보기엔 평화롭기만하다. 한 번 제대로 둘러보고 싶은 곳이지만, 그러지는 못했다. 호이안hoian을 둘러보기 위한 징검다리 정도의 방문이었다. 호이안은 베트남에서도 이름난 관광지라 숙소잡기가 쉽지 않아 큰 도시인 다낭에 숙소를 잡고 호이안으로 출퇴근을 하였다. 기회가 되면, 다음에 꼭-.



호이안hoian을 나는 사람들에게 한국의 안동이라고 소개해줬다. 가만히 생각하면 안동과는 또 다른 것 같다. 최근 몇 년 안동에 한 해 한 번씩 갈 기회가 있었다. 안동도 한국의 다른 지역들처럼 변화하고 있는 도시일뿐 예전에 가졌던 이미지와는 많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다시 수정을 하자면 한국의 경주? 경주라고 크게 다를까만은.

호이안은 접근이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오히려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 접근이 쉬운 면도 있겠다. 호이안의 터미널에 도착하면 관광안내센터가 있다. 이곳에 가면 호이안 여행정보도 얻을 수 있고, 필요한 티켓을 살 수도 있다. 기억은 잘 안나지만 여러곳을 둘러볼 수 있는 티켓 묶음을 사는 것이 개별 입장에 요금을 지불하는 것보다 저렴하다. 우리 일행은 다수여서 무료로 관광안내를 받을 수 있는 가이드까지 제공(?) 받았다.




호이안은 16~17세기 교역의 중심지였다. 상거래가 활발한 도시였고, 그래서 외국문화의 유입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처음 간 곳은 복건회관.




이름만으로도 알겠지만 화교들이 모이는 곳이다. 과거에도 그랬으며 지금도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아이들 너무 이쁘지 않나. 복건회관에서 만난 아이들이다. 외국인들을 구경하는게 일상인데도 주변을 따라다니길래 세워놓고 찍었다. 사진에 보이는 미소도 수줍지만, 찍은 사진을 액정으로 보여주자 더 수줍은 미소를 보였다. 이쁜 아이들.(^ ^ )



우리의 가이드. 이름은 모르겠네. 여행을 마칠무렵 일행들이 고마움의 표시로 선물을 하기도 하였다.





호이안의 거리. 호이안에서 볼거리는 몇 개의 박물관, 올드 하우스, 그리고 외국문화의 유입 흔적을 볼 수 있는 곳들이다. 해질무렵 도착해서 볼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았다.



이곳은 일본교라고 불리는 다리다. 이 다리를 경계로 한 쪽에는 일본인 중심지역이, 한 쪽에는 중국인 중심지역이 있었다고 한다. 이 다리는 일본인들이 만들었다. 일본 느낌 물씬?



호이안에서 박물관 관람을 포기하고 갔던 곳은 몇 개의 올드 하우스다. 올드 하우스는 말그대로 1~200여 년 전의 집들을 그대로 보존해놓은 것들이다. 현재는 후손들이 가업을 이으며, 부분적으로 관광객들에게 공개해 살아가고 있는 곳이다.

이곳은 추측하여 볼 때(정확히 기억이 안난다만) 떤끼tanky의 집이었다. 어부출신 화교의 집이었는데, 기억나는건 그 집 부엌에서 후손이 들려준 옛이야기였다. 한 남자의 아내를 탐했던 또 다른 남자는 남편을 눈멀게 했다. 눈먼 남편을 거두기 위해 아내는 이 집에 들어와 일을 했다고 한다. 아내는 남편을 부엌 짚더미 속에 숨겨두고 거두었는데 이 사실을 안 남자는 그 짚더미에 불을 놓았고, 아내는 그 불 붙은 짚더미로 뛰어들어 아내와 남편 모두 숨을 거두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그들을 위로하며 모시는 거라고 했던가. 그 이야기를 들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럼 그 나쁜 남자가 이 집 주인이야?'( ' ')a






관광객에게 공개하는 관광지이기도 하면서 후손들이 일상을 사는 곳이기도 했다.



어부출신 화교의 후손.



그 집에서 파는 기념품. 사람 팔뚝만해서 살까말까 한참을 고민하다 사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된다. 일본의 교토인형과 나란히 놓으면 좋은 기념품이 될텐데. 물론 나는 같은 이유로 교토인형도 없다. 여행 중엔 돈보다 짐이 늘어나는 것이 두려워 기념품을 살때 늘 망설인다.



이 집은 꾸언탕quanthang의 집. 정원이 아름다운 집으로 소개돼 있다.



실제 정원은 없다, 물리적인 공간이 좁아. 그래서 정원을 형상한 조형물이 집 중간 마당에 꾸며져 있다. 지붕의 잉어가 그렇고, 한 쪽 벽 면의 창 모양 부조가 그렇다.





수공예품을 살 수 있는 곳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합리적인 가격으로 베트남 기념품을 살 수 있는 마지막 동네였던 것 같다. 하노이-후에-호이안까지가 비교적 저렴하고, 나짱-호치민 시티가 약간 비싼 편이다.



씨바. 파괴의 여신이다. 파괴라고 해서 부정적인 눈으로 볼 것은 아니다. 여기저기 씨바는 중요한 신으로 모셔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파괴가 있어야 새 생산이 있을 수 있다는 의미다. 파괴-생산이 맞닿아 있는 셈이다.







수공예품 구입은 뒤로하고 마당에 앉아 베트남 커피를 시켜 먹으며 가이드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이때 반해버렸다, 베트남 커피에. 진한 아이스라떼다. 컵이 작아서 아쉬웠다. 에스프레소 추출방식은 아니지만, 진한 커피에 달콤한 연유, 그리고 얼음을 넣어준다.

+ 다낭은 미국에 의한 베트남 전쟁때 미군 기지가 있는 도시기도 했으며 청룡, 맹호, 백마 등의 한국 군인들이 베트남으로 들어간 관문이기도 하다.  

정치(결국은 경제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한국과의 관계가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그런 것들도 중부지역은 예외다.  한국군이 들어가 민간인 학살을 했던 곳이 바로 이 중부지역, 그 중에도서 중부내륙지역이다.  한겨레21이나 몇 권의 단행본에 실린 것처럼 이 지역의 어느 마을에 가면 증오비가 있다.  무엇에 대한, 누구에 대한 증오인지는 내 입에 담기 참으로 부끄럽다.

이 민간인 학살의 진실을 밝히는 작업은 참으로 힘들다.  나는 학살에 참여했던 모두를 가해자로 보지 않는다.  그들은 가해자면서 피해자다.  그러나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가해자로 인식될까봐 그들은 진실을 숨기려고만한다.  오히려 진실을 밝히는 작업을 앞장서서 막고 있다.  베트남의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조명했던 한겨레로 파월 군인들이 들어와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억울하기도 하겠지, 전쟁의 기억으로 몸과 마음이 그렇게 고통받게 사는데.   하지만 그들이 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먼저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  그게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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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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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에서 다낭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하이반haivan이 있다. 하이반 고개는 세계에서 경치가 아름다운 고개 몇 곳에 꼽히는 곳이라 한다. 나는 보는 눈이 없어서 그런지, 경주 남산 올라가는 것과 큰 차이를 모르겠더라. 하이는 바다고, 반은 눈인데 늘 운무가 끼어 있어 날씨변화가 예사롭지 않은 곳이라고 한다.

하이반 고개에 오르기전 잠시 쉰 곳이다. 왜 쉬는지 알 수 없었던 나는 쑤언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랬더니 쑤언이 기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라고 말해줬다. 저렇게 물기둥이 솟을땐 기차가 오고 있는 중이니 건널목에서 기다리는 것이라고 말해줬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아~"하고 끄덕였다. 그러나 나는 한참 뒤에 이상한 걸 느꼈다. 기차가 지나가지 않는거다. 이런, 뭐야하고 다시 물었더니 일행 중 한 사람이 화장실을 가느라 잠시 섰던 것이다. 이때 처음으로 특유의 허풍쟁이 기질을 쑤언에게서 느꼈다.(-_- );; 그는 늘 알듯모를듯한 농담을 한다.






비슷하지 않아? 남산 올라가는 구불구불한 길과. 규모가 다르기는 하다. 더 높고, 더 구불하고.



하이반 고개에 오르면 오래된 성곽을 볼 수가 있다. 높은 고개이다보니 오래전부터 군사요충지 역할을 해왔던 것이다. 붉은 벽돌이 베트남 사람들이 만든 성곽이다. 그 아래 시멘트는 미군이 만든 것이다. 문화유적으로서 가치가 큰 시설물인데 무식하게 시멘트로 '쳐발라' 자기들의 군사시설로 쓴 것이다. 왜 개들은 개념이 없는 걸까?(-_- )



프랑스와의 전쟁, 일본과의 전쟁, 그리고 미국과의 전쟁에서 고루 치열한 전투가 일어났던 곳이다. 앞과 뒤를 두루 볼 수 있는 높은 지형이, 군사적인 이유로 꼭 필요한 것이었으리라. 격전지였던 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그래서 위령비가 있다.





힘들게 힘들게 버스가 올라오는 모습을 보고 서둘러 셔터를 눌렀다. 부릉부릉 덜덜덜덜 그 소리를 들어야 힘겹게 올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데.

+ 하이반 고개는 경치보다 무개념한 미국을 다시 한 번 씹어주는 곳이었다.  그래도 정말 경치는 좋았다.

이때 화장실에 잠시 들렀는데 경악을 했다.  기대한 것처럼 화장실은 깨끗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경악을 한 것은 깨끗하지 않은 화장실이 아니라 내 앞에 이용한 사람 때문이었다.  중년의 백인 여성이었는데, 아마 프랑스 사람일 확률 70%다.  화장실은 좌변기였는데 좌변기에 신발자국이 고스란히 찍혀 있는게 아닌가.  그러니까 좌변기 위에 쪼그려 앉은 모양으로 볼 일은 본 모양이다.  뒷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것보다 그 위에 쪼그려 앉는 것이 더 놀라웠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일정부분 이해도 가지만 그래도…, 뒷사람 생각 좀 해주지.  나?  물 한 바가지 얻어와 끼언고 티슈로 닦았다.  신발자국만 아니었으면 그냥 물티슈로 닦고 말았을 것이다.  물티슈, 꼭 필요한 여행용품이다.  여성에겐.  나는 유럽여행을 하면서, 그러한 여행 습관을 가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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