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홈페이지 공사중입니다.
오늘은 요기까지 하고 잠자리에 들랍니다.  런던시간 저녁 7시 44분.(-_- );
시차적응 완전 실패라 며칠 동안 저녁 9시를 넘기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냥 이대로 살기로 했습니다.  사실 이대로 살려고 해도, 오래 지속되진 않겠지만.
왜냐면 9시에 잠이 드니 자연스레 4시나 5시쯤 일어납니다.  것도 나쁘지가 않아요.  아침을 일찍 시작하니 좋아요.  물론 방을 함께 쓰는 친구가 꿈나라라 뽀시락 거리기가 미안하지만.

다시 공사로 돌아가 대단한 공사를 하는 건 아니구요, 일년이 조금 못되는 시간 동안 안쓸 컨텐츠들을 보고 있는게 마음이 불편해서 여기 있는 동안 주로 쓸 컨텐츠만으로 간단 버전을 만들어볼까 합니다.  그렇다고 있던게 없어지고, 없던게 생기는 건 아니구요.  그저 간단한 메뉴를 만드는거죠.  하여간 오늘 내일 중으로 그렇게 공사는 진행될껍니다.

이곳에 있는 동안은 'window'로 이름 붙인 이 게시판보다 저-기 맨 아래 'uk'라는 이름의 게시판을 주로 쓸 예정입니다.
물론 내용은 여전히 시덥잖은 내용들로 채워지겠지만 꼼꼼히 기록해둘려구요.  아, 시간 많다고 너무 인터넷에 붙어 있으면 안되는데.  그래서 내일부터는 도서관도 가고 그럴 생각입니다.  당분간은 제가 살게 된 동네 탐색기 정도.  부산에서 얼굴은 못보지만, 인터넷에서 자주자주 만나요.

모두들 건강하세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오래된 정원 > 2008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diary] '런던일기'  (0) 2008.09.02
[etc.] '영국으로 떠날 준비'  (0) 2008.08.27
[photo] '홀리시티'  (0) 2008.07.27
[taste] '문화 섭취 주간'  (0) 2008.07.07
[taste] '부산의 로스팅 까페, 도피오와 휴고'  (0) 2008.07.04
[people] '가정방문기'  (0) 2008.07.04
Posted by 토닥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요며칠 정말 정신이 없습니다.  지난 금요일에서야 영어수업과 진행하고 있던 교육이 마무리 돼서 본격적으로 준비라는 걸 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가방 싸는 중.
지금에서야 드는 생각은 너무 욕심을 부렸나 싶네요.
가기 전까지 영어공부 열심히 하려고 지난 금요일까지 진행되는 수업을 들었는데요.
하루에 4시간 수업듣고, 1~2시간 과제하고, 또 나머지 시간엔 일을 하거나 사람을 만나거나 하니 바쁘기 이를데 없는 몇 주였습니다.  그 와중에 제주도까지 다녀왔으니-.
그래도 그러기를 잘했다고, 영어수업도 일도 제주도도, 그렇게 생각할껍니다.

9월에 영국으로 가겠다고 마음 먹은 것이 5월 말,
어학원 등록 및 서류준비를 시작한 것이 6월 말,
비자를 받은 것이 거의 7월 말,
그리고 8월 말 영국으로 갑니다.

영국으로 가겠다고 마음을 먹고서는 전략적으로(?) 그러한 결심을 지지해줄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준비가 꽤 많이 진행되고서 만날 사람들, 이에 반대할 사람들을 대비해서였죠.
나름 대비를 한다고 한들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 때로는 노(怒)를 접할 땐 마음이 착찹하더군요.
그래도 '나는 간다'고 마음먹고 가는 수 밖에 달리 방법이 없지요.
어째도 가는 거, 꼭 사람 마음 불편하게 그렇게 화를 내야하나도 싶지만-.

불편한 마음 한 구석에 쟁여두고 8월 한달을 보냈지만 그 기간 동안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떠나기전 급하게 챙겨 연락한 사람들은 부답이었지만(반성해라, 동기들아.  기념품 쪼가리는 기대하지 말라.(-_- );;),
'얼굴 한 번', '밥 한 번'을 청해준 사람들이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마음씀이 고마운 어릴적 동네 친구 희경, 제주에서 늘 나에게 아낌없이 주는 부부, 사회대 동기 엄양의 남편 김서방 그리고 사회과학연구소 조교선생님께 감사드려요.(' ' )(_ _ )
(이 사람들은 이 글을 못보겠지만)
아, 그리고 나의 런던행에 큰 가르침(?)을 더해준 삔양에게도.(' ' )(_ _ )





런던으로 떠나면서 꼭 배워가려고 애썼던 자전거.  
삔양의 스파르타 1시간 코스로 패스했습니다.(^ ^ )v
런던뿐만 아니라 앞으로 여행에서 유용하게 쓰일 기술(?)이죠.  때론 경제적이기까지 한 자전거.  내년 오사카행 때문에라도 꼭 필요한 능력이었죠.

8월 28일에 떠나구요, 내년 8월 10일 전후 돌아옵니다.
내년 7월 말부터 8월 초엔 열흘 정도 오사카에 있을껍니다, 아마.
혹시 런던 오실 일 있으면 연락주세요.  오셔서 가난한 학생 맛있는 거 사주세요.(^ ^ );
크리스마스엔 런던에 없을 껍니다, 아마 스페인에.
(이런 걸 염장이라고?( >.<))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오래된 정원 > 2008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diary] '런던일기'  (0) 2008.09.02
[etc.] '영국으로 떠날 준비'  (0) 2008.08.27
[photo] '홀리시티'  (0) 2008.07.27
[taste] '문화 섭취 주간'  (0) 2008.07.07
[taste] '부산의 로스팅 까페, 도피오와 휴고'  (0) 2008.07.04
[people] '가정방문기'  (0) 2008.07.04
Posted by 토닥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이십일 전쯤 화덕헌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사진전을 하게 됐다고, 시간있으면 보러오라고, 팜플렛을 보내겠다고.
와..부럽..( i i)





sony w70

이건 보내온 팜플릿의 사진.
처음 계획은 지난 주 토요일에 가는 것이었는데, 서울에 일보러 다녀오느라 어제야 가게 됐다.
오늘(27일,일요일)이 전시회 마지막이라 가보라고 하기도 뭣하다.  그래도 시간되시는 분들은 가보시길-.  장소는 해운대 디자인센터 전시실이다.
나는 꽃다발을 사들고 가기도 뭣하고, 음료수를 사들고 가기도 뭣해서 책 한 권 사들고 갔다.






한 2년 전쯤 아파트 사진을 찍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결과물이 이제야 나온 것이다.
한국을 말해주는, 그 중에서도 가장 문제있는 단면이라고 생각한 점 두 가지를 찍었다.
그 두 가지는 아파트와 교회다.
가장 문제있는 단면이지만 찍을땐 미학적으로 찍으려고 노력했다는.
그래서 함께 사진을 보고 설명을 들은 분의 질문이,
"마냥 아름답게만 보이는 사진도 있다.  그럼 의도 실패 아니냐?"는 것이었다.

한 컷에 A4 만한 필름으로 촬영하고, 국내에서 인화 할 수 있는 범위에서 가장 큰 사이즈로 인화를 했다고.
화덕헌 선생님의 설명과 함께 사진을 본 건 30분이고, 나머지 30분은 삔이 화덕헌 선생님에게 질문 공세를 하고 있는 동안 화덕헌 선생님의 손님들과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노닥노닥-.

▷ 화덕헌 선생님 홈페이지 http://www.raysoda.com/badak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어 '화덕헌'이라는 이름을 검색했더니 놀라운 정보가 달려나왔다.  그가 지금도, 예전에도 기독교인이고 또 그의 아버지가 목사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겨울, 이랜드의 비정규직 노동자 탄압에 대해 이랜드 박성수 회장이 다니는 순복음교회에서 '네 이웃의 비정규직을 사랑하라'는 퍼포먼스를 벌였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고.
그런데 그가 몇 년전 이문열의 미친 행동에 반해 책 돌려주기 운동을 한 사람이라는 건 처음 알았다.

늘 반짝이는 화덕헌 선생님,
사진 잘 봤습니다.







EV-K170

전시회를 보고 디자인센터를 나오니 디자인센터 바로 앞에 The Home이라는 까페테리아가 개업을 했다.  모든 음료 Free라고.  이런 집을 삔과 내가 그냥 지날쏘냐.  Free 음료와 식사를 시켜 먹으려고 했는데, 어제가 오픈이라 음료밖에 안된단다.  그래서 마신 까페라떼.  맛은 별 다섯개 만점에 별 한개.(^ ^ );
앉아서 잘 쉬고나서 이런 평가를 내려 나도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피해자 재발 방지를 위한 선의의 리포트로 이해해주길 바란다.

개인 사진전이라-,
그저 부럽기만 하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오래된 정원 > 2008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diary] '런던일기'  (0) 2008.09.02
[etc.] '영국으로 떠날 준비'  (0) 2008.08.27
[photo] '홀리시티'  (0) 2008.07.27
[taste] '문화 섭취 주간'  (0) 2008.07.07
[taste] '부산의 로스팅 까페, 도피오와 휴고'  (0) 2008.07.04
[people] '가정방문기'  (0) 2008.07.04
Posted by 토닥s

댓글을 달아 주세요

01. JUMP 





갑자기 전에 없던 문화 자양분을 흠뻑 섭취한 한 주였다.

아는 분이 점프를 보러가자고 했다.  a선배가 준 티켓으로 본적이 있었는데, 미안한 말이지만, 그렇게 좋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냥 '아, 저런 거구나'하고 말았다.
점프를 보러가자고 한 분도 그랬다고.  하지만 이번 공연은 얼마전 해운대 그랜드호텔에 생긴 전용관에서 하는 것이니 비교해보자는 말씀.  옳거니-, 하고 따라나섰다.

정말 전용관은 달랐다.

평일 목요일 저녁인데도 앞에 한 줄 정도를 빼고서 좌석이 다 찼다.  얼마전 만난 삔양의 말로는 장사가 잘 안된다고 하던데, 하여간 내가 간 날은 그랬다.

사실 무술이라는 소재가 내겐 매력적이진 않다.  그런데 똑같은 이야기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 이유는 뭘까?  소극장, 전용관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김장훈의 소극장 공연도 보고 싶은데, 김장훈이 MB의 취임식날 노래만 안했어도 망설임 없이 가는건데.(-_- );


02. 돌아와요 부산항에

 





지난 주쯤엔가 이 전시 소식을 들었다.  전시가 시작된게 5월 29일인데 전시 마지막주에야 이야기를 듣고, 언제 가야하나 종종 거리다 마지막 날인 오늘 갔다.
정말 잘 갔다는 생각이 든다.
아쉬움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추천해도 보러 갈 수가 없다는 점.

부산시립미술관 개관 10주년 프로그램으로 부산의 작가, 부산을 소재로 한 작품 등 '부산'과 인연이 있는 작가와 작품들의 전시다.
프로그램 이름도 '돌아와요 부산항에', 맘에 들지 않는가?

부산을 다룬 몇몇의 작품은 우리가 아는 지명과 이미지와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었고, 도대체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들은 그런대로(이해하기 어려운대로) 또 재미가 있었다.

비록 부산 인근 도시에 살아도,
내게 '부산'은 생각만해도 참 좋은, 애틋한 공간이다.
그런 부산을 담은 프로그램이니 재미가 있을 수 밖에.

게다가 700원으로 2시간을 놀았으니, 그것 또한 만족스럽다.

만족스럽지 못했던 점은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보니 전시를 보고 있는데 철시하느라 관람을 제한 또는 방해했다는 점.(-_- )a

sony w70

예전에 부산항을 배로 돌며 찍은 사진이 있는데, 그건 어디에 있지?
한 번 찾아봐야겠다.( ' ')a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오래된 정원 > 2008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tc.] '영국으로 떠날 준비'  (0) 2008.08.27
[photo] '홀리시티'  (0) 2008.07.27
[taste] '문화 섭취 주간'  (0) 2008.07.07
[taste] '부산의 로스팅 까페, 도피오와 휴고'  (0) 2008.07.04
[people] '가정방문기'  (0) 2008.07.04
[etc.] 'sensibility'  (0) 2008.06.27
Posted by 토닥s

댓글을 달아 주세요

내일 대구에서 친구 성은을 만나기로 하였다.  뒤늦게 올 친구 정언을 기다리며 예전에 한 번 가보자고 말해두었던 '커피명가'에 가기로 하였다.  T브랜드의 수프리모 커피 광고에 나오는 안명규의 커피명가 말이다.  
그곳에 간다고 생각하니 떠오른 사진들.  지난해 찾아갔던 부산의 로스팅 까페들, 도피오와 휴고.

01. 도피오 doppio : 051-253-0515






도피오에 함께 간 두 사람, 선영과 민희.
센터에 일하면서 가까이 지낸 두 사람.  간식 먹는 취향이 비슷해서 함께 다니기도 했지만, 그 보다 비슷한 건 분노지수.  같은 사물, 사건, 인물을 보고 함께 느끼고, 그래서 공감대를 가졌던 사람들.  사실 동생 같은 사람들이어서 더 가깝게,  그리고 편하게 느껴졌다.

남포문고에서 만나 밥을 먹긴 뭣해서 빵을 먹으러 갔다.






다들 그 여름 처음 먹어보는 팥빙수와 빵으로 배를 채우고 용두산 공원으로 이동.







용두산 공원에 올라가는 계단에 있는 새점을 봤다.
'직장을 옮길 운이 있다'는 점괘의 선영.
맞는 점괘인 것 같다며 웃었지만, 나는 마음이 쓰렸다.

설명을 덧붙이자면, 선영과 민희는 센터에서 364일 밖에 일하지 못하는 친구들이었다.  1년 이상의 비정규직은 사용하지 않는다는 방송위원회(現 방송통신위원회).
그래서 선영은 7월까지, 민희는 8월까지 일하기로 되어 있었다.  2008년 7월인 지금 선영은 반여동에 있는 지역아동센터에, 민희는 평택에 있는 재활복지대학에서 각각 일하고 공부하고 있다.






용두산 공원에서 수다 좀 떨다 도피오로 출발!





도피오는 남포동 지오다노 매장 근처다.  로엠 매장 지하아니면 그 옆 건물 지하다.
지하인 탓에 커피는 그럭저럭 좋았는데 지하 특유의 냄새 때문에 감점, 감점!

그래도 선영 내려가는 그림은 좋구나-.





그날의 커피는 만델린이었다.  하지만 나는 브라질 커피를 마셨던 것 같다.  오래되서 기억이-.(-_- )a
그런데 다 마시고 나니 한 잔 더 만들어주신다고.  그래서 냉큼 만델린을 부탁하였다.
브라질 커피가 더 입에 맞았던 것 같다.

가격대는 한 잔에 5,000원.




도피오라는 이름의 까페는 서면 교보문고에도 있고, 학교앞 청하서림 1층에도 있다.  교보문고에 갔을때 물어보니 남포동 도피오와는 상관없는 곳이란다.  그래서 청하서림에 있는 도피오에 갔을땐 물어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청하서림 도피오는 한 번 가보고 만족스러운 맛과 가격에 요즘 학교앞에서 가장 자주 가는 까페가 됐다.  그건 다음에 따로 소개.

지하인 것만 빼면 나쁜 것이 없었던 곳이지만,
그래서 그것이 치명적인 결점이었던 도피오.
남포동에서 커피 마실 일이 생기면 다시 갈 생각이다.  별다방보다는 나으니까.

konica centuria 200, canon AE-1


02. 휴고 hugo : 051-256-0258

두 번째로 찾아간 부산의 로스팅 까페 휴고.  사실 도피오보다 휴고의 명성이 더 높았다.
함께 찾아간 이는 도피오 때와 같은 민희와 선영.  선영이 늦어져 민희와 남포동에서 미리 만났다.  이날은 휴고를 가려고 작정한 날이었다기보다, 병원에 가려고 남포동에 갔다가 집이 가까운 민희에게 연락.  다시 선영과 연락, 그렇게 갔다.





휴고의 위치는 지하철 동대신동에서 가깝다.
동네 아주머니들 사랑방 같은 분위기였다.  참 좋은 분위기.

도피오처럼 바리스타 언니는 친절했다.








이곳에서도 두 잔의 커피를 서비스 받았다.  한 잔은 모카 마따리, 그리고 나머지 한 잔은 오래된 탓에 무엇을 마셨는지 기억에 나지 않는다.  그래도 밝은 분위기 탓인지 도피오보다 더 좋은 느낌으로 남아 있다.





이 집은 토스트가 환상적이더라.  걸음 하시는 분들은 커피도 커피지만 토스트 먹어보시길-.




휴고의 지하에는 로스팅 시설이 있다고 한다.  까페 한 가운데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내려갈 수 있냐고 바리스타 언니에게 물었더니, 지금은 공개 불가라고.  청소를 안해서.(^ ^ );
다음에 아카데미를 열 예정이니 그때 오라는 말씀을 하셨다.

휴고는 분위기면에서 도피오보다 낫지만, 위치가 동대신동이라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물론 그 동네 사시는 분들은 좋겠지만.  그나마 남포동은 일년에 한 두번은 가지만, 최근에는 남포동에 있는 병원에 다니면서 매달 가긴 하지만, 동대신동은 그럴 일이 없다.

휴고는 어디 분점 안내시나?
서면쯤-.  그러면 사랑해줄텐데.( ' ')a

kodak pro image 100, canon AE-1

내일, 벌써 오늘 가보게 될 커피명가, 기대된다.
그나저나 대구는 덥겠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오래된 정원 > 2008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photo] '홀리시티'  (0) 2008.07.27
[taste] '문화 섭취 주간'  (0) 2008.07.07
[taste] '부산의 로스팅 까페, 도피오와 휴고'  (0) 2008.07.04
[people] '가정방문기'  (0) 2008.07.04
[etc.] 'sensibility'  (0) 2008.06.27
[etc.] '비극(悲劇)'  (0) 2008.06.25
Posted by 토닥s

댓글을 달아 주세요

그러니까 이번 여행의 시작은 지난 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포항에 가서 일을 하게 됐다는 m선배를 만나 대화를 나누다 내가
"이번엔 늦었지만 다음 게(crap)철엔 게 먹으로 갈께"라고 했더니
"그러던지"라는 말 뒤에, m선배와 어울리는 대답아닌가(-_- )a,
"근데 새우는 계속 먹는 것 같더라"라는 말을 덧붙였다.
"정말, 그럼 여름에 동해로 놀러갈께"하고 말을 맺었다.

그러고 잊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전 TV에서 무심결에 VJ프로그램을 보다 지금이 새우철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새우는 안녕하시냐"고 문자를 보낸 것이 발단이 되어 급(急)여행이 계획되었다.  그게 지난주 목요일 밤이었다.  그 밤에 서울에 있는 사과양과 토요일에 포항에 가기로 하였으나, 사과양이 일이 생겨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금요일 오전 실의에 빠져 있던 내게 전화를 걸어온 곤을 낚아, 새우로 유혹하여 다시 포항행 결정.  그런데 곤에게 일이 생겨, 일정을 급(急)조정하여 금요일 저녁 포항으로 출발!




그렇게 여차여차 저차저차 포항에 가게 됐다는 설명.

01. 포항 가정방문기




오랜만에 만난 m선배와의 반가움도 잠시 '새우'를 만나러 영일만으로 향했다.

사실 차를 타고 가면서 곤과 계속 배고픔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새우를 생각하며 배고픔을 달래며 9시가 넘어서 포항에 도착했다.




m선배가 말한 닭새우.  회로도 먹고 쪄서도 먹는다.
그 맛은 쫄깃! (♡♡ )
한참을 먹고 있는데 m선배가 말한 닭새우의 특징.  얘들은 익히기 전에도 주황빛이다.
"맞네, 맞네"를 연발하며 입으로는 계속 새우를 먹는다.




새우회를 먹고 있는 사이 가져갔던 새우 머리는 달걀과 함께 쪄서 내온다.




그저 새우 머리라고 얕볼 일이 아니다.
츄릅-.




한 사람 앞에 하나씩 나온 달걀을 두 개나 먹어버렸다.(-_- );
배부름을 호소하며 조개구이와 해물칼국수를 먹으러 이동.(-ㅜ )







나는 양념장을 얹은 조개구이보다 치즈를 얹은 조개구이를 먼저 먹겠다고 했더니 아주머니 말씀,
"이 아가씨 먹을 줄 아네."
그럼요, 아주 잘 먹습니다.(♡♡ )

배 두들기며 집으로 들어가면서는 내일 일찍 일어나 뭐할까 고민하다, 늦잠자고 일어나 아침과 점심 겸으로 칼국수를 먹고 지난밤 새우를 먹으러 갔던 해변에 커피를 마시러 갔다.




엔제리너스.
지난 여름 여수에 놀러가서 사과양과 커피전문점을 찾아 헤맸던 것을 떠올리며, 이렇게 간단히 커피를 마실 수 있음에 감사.

그런데 담배피러 동시에 나가버리는 두 사람.
이 사람들 앞으로 계속 싱글로 살겄네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아니 싱글로 살아 그런게 몸에 베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 그들이 싱글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
특히, m선배는-.  
새벽에 문자를 보내주시는 분이 있으시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으흐흠.( -_-);




이 자리를 빌어 m선배에 대해 이야길 해보면-,
이 선배를 겪어본 결론은 '참 알 수 없는 사람'이다.

여행같은 걸 워낙 좋아해 한 두번쯤 먼길을 동행한적이 있는데, 때마다 사람들의 반응이 '의외의 구성이다'였다.
m선배와 친하냐고 묻는 이도 있었다.
'그렇다'라고 답할려니 m선배가 부정할 것도 같고(-ㅜ ) 하여간 복잡 미묘한 사이임은 분명하다.

이미 지나버린 웃긴 이야기를 더하자면, m선배도 모르는,
이 m선배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혹은 예전에 그랬던 것 같다고 내게 말해온 후배가 둘쯤 있다.
속으론 '글쎄다'하고 말았지만 굳이 아이들의 감흥을 깰 필요가 없을 것 같아 그냥 두었다.  본인들도 아니었다고 생각했는지 그 후배들과 m선배가 잘됐다는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다.

m선배는 친절한 편이다.  이게 이 사람의 전략인지도 모르겠다.( -_-)a
가끔은 누구에게나 친절한 탓에 그야말로 '날개 없는 천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말이 마냥 좋은 의미만은 아닌 것이, 그래서 때론 인간미가 없어보이기도 한다.  뭘 좋다, 싫다라고 말하는 걸 들어본적이 없다.  특히 '싫다'는 말.
뭐 나나 후배들은 아우에 해당하는지라 우리들 앞에선 그런걸 내색않는지도 모르겠다.
예전엔 이런 m선배를 연구대상이라고 생각하고 알려고도 애썼던 것 같은데, 이젠 만난지도 십년.  '그대로'를 인정하기로 했다.  '알 수 없는 사람'으로.




뭐 곤은 설명해서 무엇하나.
궁금해 할 사람이 없을듯.(>.< )

곤은 요즘 제천에서 언론사 입사시험을 준비중입니다.




포항의 m선배 방문은 엔제리너스 커피로 마무리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다.

02. 부산 가정방문기

그러니까 부산 가정방문기의 시작은 이랬다.
포항에서 늦잠을 자고 일어나니 비가 오고 있었다.  어딜 가면 뭐하나 TV보고 부침개나 구워먹자는 이야길 했더니, "후라이팬이 없다"는 m선배의 대답.(-_- );
"부산에 가서 구워줄까?" 질문에 당연히,
"YEAH~~".
그래서 부산에 돌아온 다음날 얼마전 독립한 m선배의 부산집 방문을 약속했다.

일요일에 만나 장보고 근처사는 이송도 부르고, 역시나 곤은 늦게 도착.
장은 많이 본것 같은데 먹을 게 별로 없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역시 또 쉼 없이 배부르게 먹었다.




알아서 잘하시는 맹가이버, m선배.





어쨌거나 시작이 '비오는 날 부침개'였기 때문에 메뉴는 파전과 김치전.
맛있었다.(♡♡ )







처음으로 기네스도 먹어보고.
음, 맘에 드는 맛이었어.  비싸다는 것만 빼고.




뭔가를 보는척하며 기네스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이송.
얼마전엔 꿈에서 맥주 마시는 꿈을 꾸었단다, 불쌍한 이송.
임신 10개월+수유 1년 끝나면 내가 박스로 사줄께, 이송.(-ㅜ )

아래는 셀카 퍼레이드.  바로 아래 두 장은 m선배가, 마지막 장은 내가.







우린 '셀카불가'야.(-_- )a

sony w70

다 자라고 나서는 친구집을 갈 일이 잘 없다.  특히 나이들어 만난 친구들.  그런데 시기가 조금 더 지나면서 결혼이다, 집들이다, 출산이다 하면서 사람들을 집에서 만나는 일들이 생겼다.
그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젠 밖에서 먹는 음식들과 늘 갈 곳 없음이 지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게 있어 아주아주아주아주 조금 부족한 건 커피를 마실 수 없다는 것.  그래서 나는 방문 선물로 커피를 종종 하는 편이다.  내가 가서 마실려고, 흐흐흐.

03. 또 다른 가정방문기

1박2일이 아닌 대략 2박3일을 보내고서 새로운 한 주를 맞고서는 교대앞에 사는 나령이를 만나러 갔다, 삔양과 함께.
집에 들어서자 말자 나령이의 아들 '시우'를 보고 있으니,
"오랜만에 언니들 와서 이야기하고 싶은데 시우만 보네"하는 나령.

나령이는 아들 시우가 잠든 사이 조·중·동에 광고를 낸 기업에 열심히 격려(?) 전화를 하는게 요즘 일이라고 한다.  신문기사에 나오는 '그 주부님'이 바로 우리 곁에도 있었던 것이다.  삔과 나는 '대단하다'라는 말을 연발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결론은,
방학을 맞아 찾아본 사람들은 잘~ 살고 있더라는 것.
그래서 다시 결론은,
내나 잘 살자라는 것.

여름 방학 동안 학교에서 진행하는 영어프로그램을 신청했다.
PIEP라고 pusan univ. intensive english program이다.
하루 4시간씩 6주 동안 진행하는 영어프로그램.  너무 인텐시브해서 망설였으나, 기왕 하는 거 잘해보자는 마음으로 결심하고 신청했다.

여름 방학은 이렇게 시작됐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토닥s

댓글을 달아 주세요

방학 첫날은 늦잠을 자야 마땅하지만, 미루어 놓은 일 하지만 오늘엔 다해야 하는 일이 있어 6시에 일어났다.  컴퓨터 앞에 앉아 열심히 두들기다, 병원 예약시간에 늦어 허겁지겁 나갔다가, 금성마을가서 교육하고, 끝으로 부산민언련에 들렀다 왔다.
오늘 부산민언련에서 시청자주권협의회 총회가 있었다.  총회에 대한 연락이 하도 없어서 총회 하는 게 맞는가하는 의문이 들어 금성마을을 나서면서 전화를 하였더니 일찍 올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해서 그러겠다고 했다, 지금 그리로 가는 길이라고.
나는 총회 준비를 도와달라는 건가 싶었는데 가서 보니 신태섭 교수님 건, 물론 MB의 언론장악… 이런 식의 머릿말은 붙어 있다, 공대위 출범 기자회견이 있더라.  오랜 만에 교수님도 뵙고, 연이어 진행된 총회에 참석한 사람들에게서 세상돌아가는 이야기도 듣고 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감이 떨어졌나'하는 생각.

나는 지금 한국에 벌어지고 있는 이 모든 일들에 감정이 이입되지 않았다.  MB가 좋아하는 단어를 빌면 몰입이 안되더라.

촛불시위를 보면서는, 분명 주목해야 할 운동임은 맞지만
일종의 서운함 같은 게 있어서 마음이 가지 않았다.
'소고기, 그거 FTA 때는 그렇게 이야기했지 않았느냐'하는 서운함.
타고난 그릇이 작아서인지는 모르지만 그때는 몰라주던 사람들이 갑자기 일어난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저 크기만 큰 집단행동이 무섭기도 했다.  월드컵 응원을 볼 때의 느낌이었다.
서운함 반과 두려움 반, 그것이 지금 한국 사회를 보면서 느꼈던 마음인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치고서라도 내가 지금의 상황을 너무 무덤덤하게 받아들인 것 같다.  좋다가 아니라면 싫다라고도 말 할 수 있을 입장이 내겐 없었던 것이다.  그게 문제다.
책보고, 신문보고, 그리고 생각해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는 결론을 오늘 얻었다.  감 또는 민감성이었다, sensibility.

지금의 상황에 이르러서도 그게 없다면 문제 아닌가.
그런데 내겐 없었다는 거.









sony w70

신태섭 교수님 해임 관련 뉴스 읽기

요즘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깊어져야겠다'라는 생각.
그래서 지금도 넓지 않은 활동의 범위를 줄이겠다, 아예 부산을 넘어서지를 말아야겠다라고 생각했다.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고집스럽게 깊어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흔들리지 않으면 안되는 것 같다.  그저 깊어지는 게 답이 아닌 것 같다.
그런데 대체 뭘해야 하지?

정말 감 떨어졌나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토닥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정말 비극이다.

어제까지 내야할 과제를 아직 붙들고 있다.
과제 마감일인 어제가 되면서부터는,
자의적으로 '24일 마감이라 함은 24일 24시야'하고 해석하였고
24일 24시가 되면서부터는,
자의적으로 '내일 아침 9시 전까지만 하면 될꺼야'하고 추가 해석하였고,
그 아침 9시를 넘겨버린 지금으로서는 더 할말이 없다.
어흑-.

6시 반까지 앉아서 꿈지럭대다, 두 어시간 눈붙이고 일어났는데
눈이 안떠진다.
그런데 목이 쉬었다.
대체 왜 이런거야.
비극이다.

포털사이트 메인화면에는
(내가 과제 하면서 이 말을 백번은 썼다 90번은 지운듯)
'민족의 비극, 6.25'란다.
민족의 비극 맞는데,
가능하면 전쟁 휴전일 그런 날을 기념하면 안될까?
좀 평화적으로, 미래지향적으로 말이다.

월요일 저녁도, 화요일 저녁도 지금 앉은 이 자세로 저녁 9시 뉴스를 봤다.
(그래서 지금 허리가 몹시 아프다.)
월요일, 동의대 신태섭교수님 해임안이 통과 되었다는 뉴스를 봤다.

KBS이사였던 교수님은 일년반 동안 학교의 자랑이었다.
그런데 MB가 대통령이 되고서 그 자랑은 권력에 대한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교수님을 KBS이사에서 물러나게 하려는 이유는 KBS정연주 사장 퇴임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다.

결국 교육과학부가 나섰다.
교수님을 KBS이사에서 물러나게 하지 않으면 족벌운영하는 동의재단을 감사하겠다고.  그래서 겁 집어 먹은 동의재단이 권력을 향해 아첨의 액션을 취했다.  그 액션이 교수님의 해임안 통과이다.
나는 교수되기가 하도 어려워서, 동의재단이 그렇게 쉽게 해임안을 통과시킬 줄 몰랐다.
물론 교수님은 법적 투쟁을 하시겠다고 선언하셨다.
이런 게 비극이다.
이런 진짜 비극을 눈뜨고 보면서, 내 과제에 매달릴 수 밖에 없는 것도 비극이다.

동의재단..
망해뿌라..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토닥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전진성(2008)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휴머니스트.

이 책은 스스로가 원폭 2세 환우인 故김형률씨의 평전이다.

故 김형률씨는 2005년 서른 다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어머니 이곡지님이 어린시절 히로시마에서 피폭을 당했다.  어린시절부터 병치레가 잦았던 김형률씨는 2002년 원폭 2세 환우로서의 정체성을 공식적으로 커밍아웃하고 원폭 2세 환우회를 결성하는 등의 활동을 벌였다.  부산에서 출생,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그는 2~30%의 폐기능을 가지고 원폭 피해자, 원폭 2세 환우 문제를 다루는 곳이라면 합천, 서울, 대구, 히로시마, 도쿄 등을 가리지 않고 다녔다.  그리고 2005년 5월에 숨을 거두었다.

평화기행을 떠나던 날, 원폭 2세 환우 故김형률씨의 3기 추모제가 있었다.  추모제가 끝나고, 참여한 원폭 2세 환우들과 평화기행을 갔다.  그날 소개된 책이다.
돌아와서 구매해두고, 방학되면 읽을 책 목록 상위권에 올려두었다.  아직 방학은 아닌데, 오가며 버스에서 읽자라는 마음으로 펼쳐 들었다가 틈틈이 다 읽어버렸다.
  
평전을 써본 일은 없지만 그 일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 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런 어려움과 수고로움을 감안하고서도 아쉬움이 남는 책이다.
글쓴이는 전진성 부산교대 교수다.  '김형률을 생각하는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김형률씨가 살아 활동할때부터 인연을 맺었고, 이후에도 잊지 않고 있다.  그런 사람이 쓴 글이지만, 이건 평전이라기보다 원폭 2세 환우 운동 또는 한국 원폭피해자 운동에 대한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생각하는 평전이라는 건, 한 사람의 생애를 통해서 그 사람의 삶과 생각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글이다.  그런데 이 글은 김형률씨가 활발한 활동을 벌인 죽기전 3년여의 시간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고, 그나마도 운동과 관련된 부분이라 평전이라기보다 운동을 정리한 글 같다.  그런 이유로 원폭 2세 환우 운동을 이해하고, 결결이 갈라진 운동 내부의 이견을 아는데는 도움이 되지만 김형률이라는 사람을 더 깊이 아는데는 큰 도움을 받지 못했다.

글쓴이가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니, 나 보다 평전이라는 장르에 대한 이해가 더 많겠지만 나는 좀더 쉽게 쓰여졌으면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 없이 이 글을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한 사람에 대한 인간적 흥미가 그 사람이 하고자 했던 일과 운동에 대한 이해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그게 대중적인 평전의 역할인 것도 같은데-, 잘 모르겠다.  좀더 꼼꼼하게, 그리고 한 인간을 중심으로, 인간적인 시선으로 쓰여졌으면 이 책에 대한  故김형률씨 부모님이 느끼는 아쉬움도 그 크기가 줄어들지 않았을까.
그래도 참 고생하셨다.  글쓰는 재주가 없는 나로써는, 아쉬움이 남아도 그 재주와 용기가 부러울따름이다.

이 책을 통해 공개된 몇 가지 내용은 추후 논란이 될 것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원폭 1세와 2세 간의 입장 차이.  원폭 2세 환우와 환우가 아닌 2세들의 입장 차이.  한국 원폭 피해자들과 일본 원폭 피해자들의 입장 차이.  다 같은 피해자로써 연대의식이 존재할 것 같지만, 큰 입장 차이가 존재하는데 이를 공개한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일본 정부와 원폭 피해자들은 유전, 즉 2세 환우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는 한국의 원폭 피해자도 그렇다.  유전을 인정할 경우 받게 될 사회적 차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이 기막힌 입장의 차이가 현재 원폭 피해자 운동의 현실이다.  이런 논란 거리들의 공개가 새로운 갈등이기보다 운동을 원칙에서 화합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토닥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얼마전에 다녀온 일본행의 정식 명칭은,
'원폭 피해자와 함께 떠나는 나가사키-히로시마 평화기행'이다.

언제나 그렇듯 정리는 한참 뒤에나 될 것 같다.  그 전에 어떤 여행이었는지 정리하는 마음으로 주최측에서 보내온 설문 응답을 먼저 작성했다.  그저 관광이 아니었다는 증거라고나 할까.

다녀오고서 느낀 점 하나, '정말 할 일은 많다'.
다녀오고서 결심 하나, '외국어 공부하자'.

[설문조사]

1. 견학, 방문했던 장소 중에서 가장 좋았던 곳은 어디입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가. 군칸지마
당시 국가와 산업이 식민지 수탈을 바탕으로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곳으로 일제의 속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곳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접근해서 볼 수 없음이 아쉬웠습니다.  기회가 되면 군칸지마에 직접 들어가 보고 싶습니다.

참고. 군칸지마
나가사키 앞바다에 있는 섬으로 미츠비시사의 탄광이었다.  조선인을 비롯 중국인 징용자들의 강제로 동원된 곳이다.  묘지를 제외한 모든 생활시설을 갖춘 곳으로 최초의 아파트가 지어진 곳이라고한다.  1970년대 폐광이후 지금은 사람의 출입을 금하고 있다.  군칸지마, 군함도는 군함을 닮아 지어진 이름이다.


나. 치쿠호 강제연행 유적/묘지
원폭문제와 강제연행의 문제를 별개로 생각하였데, 그것이 별개의 문제가 아님을 느끼게 해주는 곳이었습니다.

참고. 치쿠호
후쿠오카의 탄광지역으로 산업, 군수산업의 중심지였다.  강제연행자를 비롯 조선인 노동자의 수가 많았던 지역으로 현재도 그 후손들의 수가 많다고 한다.


다. 고요 제1 병원
이번 기행을 하면서 일본에서 조선인 강제연행 문제, 원폭 문제를 다룬다는 것이 참 힘들겠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누구탓이라고도 할 수 없지만 대안적인 활동들이 참 힘들겠구나, 때로는 미약하구나라는 생각을 했는데요.  고요 제1 병원에 가서 그 생각을 부분적이나마 고칠 수 있었습니다.  70년대 시작된 운동의 성과가 지금은 운동적인 모습을 띠지는 않지만 지역 병원의 모습으로 생활 속에서 원폭 문제를 진지하게, 오래도록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곳에서 만난 분들의 이야기가 현재 일본(정부)이 원폭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 등을 아는데 도움이 됐습니다.

참고. 고요 제1 병원
히로시마 인근에 위치한 고요, 고요에 위치한 의료생협 개념의 원폭전문병원이다.  히로시마 피폭 당시 많은 사람들이 히로시마를 빠져나왔고, 그 길목에 있었던 고요의 주민들은 피폭자들을 도와주었고 이로 인해 2차 피폭되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고요에 원폭전문병원이 세워지게 되었다고 한다.





2. 앞으로 또 방문하고 싶은 장소가 있습니까? 있다면 그곳은 어디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가. 기타규슈 조선학교
하는 일이 보통사람들, 주로 아이들에게 미디어를 가르치는 일이다보니 그런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사실, 오래전부터 그럴 계획이 있기는 하였는데 그걸 실행에 옮기기가 여건 상 쉽지가 않네요.

나. 고요 제1 병원
제가 많은 것을 느꼈던 곳이고, 다른 방문지(유적지)와 달리 사람이 있는 곳이라 그들과 함께 무엇인가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기타규슈 조선학교와 고요 제1 병원은 방문 프로그램이 아니라 ‘교류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게 있어 방문과 교류의 차이는 교류는 함께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인데, 두 곳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므로 그들과 1회적 만남에 그치지 않는 교류 프로그램을 진행해보고 싶네요.  그래서 ‘또 방문’하고 싶은 곳을 꼽았습니다.  ‘또 방문’의 의미는 1회적인 방문이 아님을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참고. 기타규슈 조선학교
규슈 지방의 조선인 교육을 위해 설립된 학교.  영화 <우리학교>를 통해 조선학교에 대해서는 조금이나마 이해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자세한 설명은 생략.


3. 다시 방문하고 싶거나, 지인에게 권하고 싶은 곳이 있습니까? 이유는 무엇입니까?

가. 오카마사하루 기념관
나가사키 평화박물관이나 히로시마 평화박물관은 가이드북에서 찾을 수 있는 곳이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다는 생각에 추천하고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기행의 방문지(유적지)가 모두 그렇지만, 그나마 대중 교통 수단을 통해 접근이 가능한 곳이기에 알려만 진다면 일반 여행객들도 찾을 수 있는 곳이라 지인에게 권하고 싶은 곳으로 꼽았습니다.  접근성 이외에도 일제 강점기, 강제연행에 대한 관점 부분이 나가사키와 히로시마 평화박물과는 차이가 있어 가볼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내용의 차별성, 접근성이 쉬운 장점에도 불구하고 오카마사하루 기념관을 방문하여서 볼 수 있는 자료들이 모두 일어로만 안내되어 있는 점은 단점으로 꼽을 수 있겠습니다.

참고. 오카마사하루 기념관
1995년 일본의 전쟁책임과 가해책임을 내용으로 활동한 오카 목사를 기리는 사람들이 뜻을 모아 만든 민중 자료관.


4. 이번 평화기행 일정에서 부족한 점, 고쳐야 할 점에 대해 말씀해주시겠습니까?

가. 교류회 진행
사실 저는 아직도 교류회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간담회라고 부르는 것쯤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간담회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런 자리를 마련하기까지가 쉽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각자의 의견을 전달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물론 원폭 문제의 미세한 결을 알지 못하는 제가 더 문제일 수도 있지만 비슷한 자리가 지역과 사람을 달리하며 진행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또 교류회라는 이름에 걸맞는 활동이 되려면, 인사나 의견을 전달하는 것 외 논의, 토론 같은 것들이 진행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전에 함께 할 수 있는 공동행동 같은 것이 준비되어 그걸 함께 수행함으로써 공동의 경험이나 느낌을 가짐으로써 각자가 가진 시각의 차이를 줄여나가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나. 설문지
평화기행의 부족한 점은 아닌데요, 설문지가 1~3번 문항, 5번 문항이 중복된다고 생각합니다.
나름대로 1번은 가장 인상적인 곳, 2번은 ‘또 방문’에 차이를 두어 지속적인 교류가 필요한 곳, 3번은 일반 여행객에게 추천 가능한 곳으로 구분하여 이 설문지를 작성하기로 하였습니다.

5. 이번 평화기행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 사람, 장소, 사건 등등…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가장 인상적인 순간, 사람, 장소는 아무래도 배동록 선생님과 함께 했던 순간과 장소가 아닐까 합니다.  특히 치쿠호 강제연행 유적/묘지는 저뿐 아니라 많은 분들이 그렇게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그 분 자체가 일본 내 조선인의 역사와 현재를 보여주는 증거/증인이기도 하고요.

6. 기행 일정 중 먹었던 음식 중 무엇이 가장 좋았습니까?

고요 제1 병원에서 먹었던 점심이 가장 좋았습니다.  채소를 많이 먹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특히 완두콩깍지.  아, 그러고보니 앉아서 도시락을 먹을 수 있었던 점도 좋았군요.

7. 한국원폭피해자 및 2세환우운동을 함께 하고 싶거나, 이 활동에 도움을 주실 수 있다고 생각되는 추천해주실 만한 지인이 있으십니까?

지금 당장 떠오르는 사람들은 없네요.  하지만 원폭 피해와 관련해서 부산지역 활동을 (영상)촬영하거나 하는 일이 생기면 연결시켜드릴 수는 있겠네요.  
부산에는 동포넷이라는 단체를 통해서 강제연행 유적지나 조선학교를 방문하는 팀이 있습니다.  그 방문이 정기적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하지만 그 팀과 어떤 일을 같이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끝으로,
이번 기행이 여행자 혼자서 갈 수 없는 곳을 갈 수 있어 좋은 점도 있었지만 저는 무엇보다 함께 했던 일행들이 기행의 의미를 더해준 것 같습니다.  참여했던 모든 분들이 원폭 문제, 강제연행 문제의 당사자로서 잠시 잠깐 듣는 그 분들의 인생 이야기가 우리가 기행에서 마주치는 유적들이 단지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오늘도 현재 진행 중인 역사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기행 중이나 또는 사전, 사후에 이런 이야기들, 참가자들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개개인이 겪어온 삶의 어려움들이 결코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번 기행을 하면서 기록을 해야한다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물론 부분적으로 구술-채록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채록 과정에서 의미나 느낌이 반감되는 경우도 있고 또 우리에겐 영상이라는 좋은 기록 매체도 있기에 원폭 1세를 비롯한 2세, 3세들에 대한 기록을 해두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제 강점기와 관련된 사안들은 특히, 직접 경험한 세대들이 사라지고 있는 시점이기에 그런 작업들이 더욱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토닥s

댓글을 달아 주세요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