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길을 떠났습니다.
따듯한 방바닥과 포근한 솜이불이 날 잡아끌었지만,
그래서 혼자였으면 포기하고 말았을 것 같이 추운 날, 길을 떠났습니다.

아는 얼굴 둘, 모르는 얼굴 하나 그리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2>.
또 이색적인 것은 그 길에 민중가요가 함께 했다는 것입니다.
모르는 얼굴 하나가 출발하기 전 묻더군요.
"민중가요 잘 들으세요?"
그리하여 간만에 떠난 길은 세 사람, 한권의 책 그리고 민중가요가 함께 했습니다.


괜히 왔나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구불구불 국도를 따라가다보니 그런 생각은 잊혀지더군요.

먼저, 청도역에 가서 추어탕을 먹었습니다.

생선, 특히 끓인 생선을 싫어하는지라 친구 녀석의 것을 한숟가락만 거들었죠.
나머지 사람들은 너무 맛나 하든데 청도역 옆에 있는 집이니 추어탕 좋아하시면 한번 들러보시죠.
그러고 보니 식당 이름도 모르는군요.(' ' ):
'의성식당', 이런 이름이었던가?

추어탕을 먹고 목적지 운문사로 항했습니다.
운문댐도 들러보았구요.  함께 한 사람들이 재미나더군요.
그들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2>를 발길마다 펼치며
'이 사진을 여기서 찍었네', '저 학교가 말야..'식으로 책과 견주는데
그들의 모습이 즐거워 보였습니다.

도착한 운문사.
운문사라고 하면 '비구니'라는 단어 밖에 모르는 저로선
모든 것이 그와 연결지어져 느껴졌습니다.

심지어 탱화라고 그러나요?
탱화의 주인공들도 여승들로 보이더군요.


수행도량이라는 이름으로 세상과 담을 쌓은 사람들.


닳아빠진 비.
수행의 흔적인가 싶더군요.


옛 대웅전앞 쌍탑에 있는 작은 인형.
탑 둘레로 난 탑돌이 길로 들어가 찍었습니다.


함께 가는 길,
어깨를 토닥이며 가더군요.


아직도 애띤 얼굴에 장난 치는 그들을 보니,
'그녀들'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어지러운 발자국만 가득한 세상을 떠나와서,


그 속에서 그녀들이 찾는게 뭘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조그만 방 문 앞에 놓인 겨울신 코에 쓰인 'ㅂ'과 'ㅊ'.
'부처'가 아닌가 했습니다.(. . )a


다른 방 문 앞에 놓인 겨울신 코에 쓰인 'a'과 'a'를 보고 조금전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았죠.
그러니까 앞의 방 스님은 신발을 짝짝이로 신으신겝니다.(__ ):








목을 축이듯 간만에 마음을 축이고 돌아왔습니다.

멀지 않은 길이나마 떠나기 전엔 그런 마음이 없었는데,
떠났다가 돌아오니 다시 길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모락모락 듭니다.
겨울엔 어디 안다니겠다는 것이 뼈까지 시리던 2년전 겨울의 교훈이었는데 말입니다.

꿈틀꿈틀 액운이 동할려고 합니다.
길을 떠나야만 하는 액운, 역마살 말입니다.


여기서 '길을 떠나다'는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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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일까?
드라마 <바보 같은 사랑>에 나왔던 음악이 나왔다.
sonata in A major, D959, Andantino
그 음악임을 알아채는 순간 심장이 멈출 것 같았다.

<바보 같은 사랑>을 보면서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영화 역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 것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이해못할 가혹행위가 아니었다.
드라마와 영화 속 남녀의 사랑, 그들의 사랑이었다.
'저것도 사랑인가?'


두번째 우연인가?
한국영화 <해피엔드>에 나왔던 음악도 나왔다.
Piano Trio No.2 2nd
그 음악임을 기억하는 순간 심장이 저려왔다.

<해피엔드>의 끝이 마음이 아팠던 것 처럼
이 영화의 끝도 마음이 아팠다.

해피엔드가 아닌 엔딩.


클레메의 연주를 듣는 에리카의 눈에 고여가는 뜨거운 눈물,
그 뜨거운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그래,
그게 사랑인 것은 아니지만
그것도 사랑인거야.
...


영화 <La pianiste> site click!


여기서 '바보 같은 사랑'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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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같은 것보다 다 다른 것이 좋아'

어릴때, 그러니까 중학교 때인가? 고등학교 때인가 읽었던 윤구병씨의 책제목이다.
지금 앉은 자리에서 내 시야에 그 책이 안들어온다.
제목이 정확한지 자신이 없다.
걸으면 몇걸음 되지도 않는 집안을 가로질러 확인 할 수도 있지만.
(사람 사는게 뭐.. 그런게.. 중요한게 아니지 않는가.(. . )::)

아이들이, 사람이 사는게 꼭 같을 이유는 없다.
머리가 좋아 공부가 즐거운 사람은 공부를 하고,
체력이 좋아 운동이 즐거은 사람은 운동을 하고,
목소리가 좋아 노래가 즐거운 사람은 노랠 하면 되는거다.
물론 목소리가 좋지 않지만 노래가 하고 싶은 사람도 노랠 하면 된다.

그런데 나와 내 친구들이 살아온 세상은 그렇지가 못했다.
서로 다른 아이들의 빛깔은 무시되어 지고 같은 길을 걸어왔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 고민에 빠졌다.
'도대체 내가 하고 싶은건 뭘까?'
뛰어나게는 아니어도 공부를 해왔고, 또 그래서 뛰어나지는 않지만
내가 사는 지역에서 빠지지 않는 대학, 학과에 들어왔다.
막상 들어왔는데, 그리고 4년여간을 보냈는데
내가 무얼하고 싶은지 모르는거다.
청소년기에, 자라나면서 했어야 할 고민을 뒤늦게 한거다.

그렇게 앞날이 어둡고 갑갑한 어느 겨울날 서울의 밤거리에서
무대위에서 춤추는 아이들을 보았다.
그 아이들이 너무나 행복해보였다.
어린 나이, 아니 어리지만은 않지만
내가 그러지 못했던 나이에 하고 싶은걸 찾은 그들이 너무나 부러웠다.

같은 아이들은 아니지만 이미 자신들의 행복을 찾은 아이들을 부산에서도 보았다.
그 아이들도 춤을 추고 있었다.
저때 난 뭐했을까 생각하면 아이들이 부럽다니까 같이 있던 사람은,
"니는 공부해서 대학갔잖아"라고 말했다.(__+)

그래 대학 갔지.
그래도 난 여전히 아이들이 부럽다.
자신의 행복을 찾은 아이들이..

2주 전쯤 초읍에 갔다가 이 아이들을 만났다.
사는 것에서 기쁨을 이미 찾았다는 점에서 나는 아이들이 여전히 부럽다.
아이들은 교육문화정보회관 한쪽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요요 묘기(?)를 부리고 있었다.
(묘기 외에 달리 적절한 말이 안떠오르는군.(' ' )a 그런데 정말 묘기에 가까웠다.)






이 아인 표정이 너무나 행복해 보였고


이 아인 너무나 수줍어했다.


이 아이의 솜씨는 정말 예술의 경지였다.

구경하던 조무래기 아이들,

입이 벌어질 수 밖에.






노래는 정태춘 박은옥의 "비둘기의 꿈"입니다.


여기서 '꼭 같은 것 보다 다 다른 것이 좋아'는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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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田園日記>에 대한 특별한 애정은 없다.
시간을 챙겨서 본적도 없으니까.
단지, 아침에 우연히 발견하곤
'이 드라마 오늘이 마지막인가?'라고 생각하며 앉아서 보기 시작했다.
마지막은 아니었다.
그러나 근래 나는 이다지도 정치적인 프로그램을,
그러면서도 마음에와 닿는 프로그램을 본 일이 없다.

오늘 방송분은 '숨쉬는 흙'이라는 제목으로 그 내용은,
용식이가 쌀농사는 돈이 안되서 그 땅에 창고를 짓고, 묘목을 길러
가계를 꾸리겠다고 김회장에게 말했는데 김회장이 반대했다.
용식은 더 이상 쌀농사로는 먹고 살 수가 없다며 김회장과 싸운다.
김회장은 이땅의 모든 농부가 쌀농사를 포기하면
밀농사가 이땅에서 전멸했던 전례를 밟을 수 밖에 없다며 안타까워 한다.

김회장의 허락을 받지 못한 용식은 일용에게 설득을 부탁하고
군청 앞에서 열리는 농민대회에 간다.
일용의 재설득을 듣고 김회장은 자신도 농민대회에 가겠다며 집을 나선다.
가족들이 말리지만 기어코 집을 나서는 김회장.
뒤따라 오며 김회장을 말리는 수남, 김회장은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수남을 보았다.
그러나 김회장의 눈에 들어온 것은 수남의 얼굴이 아니라
수남의 뒷편으로 논에 지어지고 있는 창고였다.
김회장은 가던 길을 멈추고 논에 들어가 눈물짓는다.

농민대회를 마치고 온 용식과 금동 일행.
이런다고 바뀔까 자신이 없지만 이마저도 하지 않으면 어쩌겠냐고,
그러면서 새로운 대통령이 바뀌면 달라질까라고,
그래서 꼼꼼히 따져보고 찍어야 한다고 대화를 나눈다.

집으로 돌아온 용식은 김회장이 속상해 술을 먹고 막 잠들었다는 수남의 이야기를 듣고
눈물로 김회장에게 용서를 구한다.

어찌나 마음이 아픈지 누워서 TV를 보던 나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앉아서도 안절부절하면서 이 드라마를 보았다.
어제 본 &ltTV 속의 TV>의 '이윤철의 옛날 TV'도 떠올랐다.
쌀에 관한 꼭지였는데, 우리나라가 식량자급을 100%이루게 된 것이 83년도의 일이란다.
그런데 채 20년도 안된 지금은
국민들의 식성도 바뀌었지만 쌀농사를 접는 농민이 한둘씩 늘어 식량자급률은 30%란다.

안타까운 마음과 눈물이 가득 찼다.


TV 프로그램 보기
- <田園日記> ->  바로가기
- <TV 속의 TV> -> 바로가기

관련기사 읽기
- "<田園日記> 최종회 어떻게 끝나나" -> 바로가기


여기서 '숨쉬는 흙, 신음하는 농촌'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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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것들과의 '차이'를 다시 한번 기대해본다.

[알려드립니다]
민주노동당 지지 방송출연으로 직무정지 처분을 받은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의 건과 기자들의 정당활동 권리에 대한 논의를 하기 위한 한겨레 윤리위원회가 소집되었습니다. 1988년 창간과 함께 한겨레 구성원들이 스스로 만들어 지키기로 한 한겨레 윤리강령에 대한 한겨레 내부 논의가 하루 아침에 결론지어질 수 없는 만큼 지켜봐 주시기를 바랍니다.

13일 오후 소집된 <한겨레> 윤리위원회는 사원의 정당활동을 금지한 현행 사규에 대한 공청회를 26일 열기로 하고, 윤리위원회의 이런 결정에 따라 편집위원장은 홍세화 기획위원에 대한 직무정지 조처를 즉각 해제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14일자 정태인씨의 시평도 한겨레에 실렸습니다.

구 본 권 <인터넷한겨레> 뉴스부장 /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
(인터넷한겨레 2002/12/14)


한겨레 기사읽기
-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 정태인 -> 바로가기


여기서 '차이'는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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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에 나는 부산시장선거와 관련하여 민주노동당에서 서포터로 활동했다.
주로 내가 하는 일은 TV 토론에 관한 것이었다.

TV 토론 후에 반응을 살피기 위하여,
그리고 계속해서 세상 돌아가는 일은 살피기 위하여 신문을 많이 보았고
그것이 내가 하는 일이기도 했다.
내가 주로 본 신문은 <한겨레>였다.
집에서 구독하고 있는 신문이 그것이기도 했고
그나마 내가 지지하는 민노당의 기사를 실어주는 곳이기도 했고
또 나와 같이 민노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는 신문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꼭 선거가 아니더라도 <한겨레>를 고등학교 때부터 나는 이 신문을 보아왔다.

올 봄 민노당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이 신문을 읽고 있자니 섭섭한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TV 토론이 있은 다음날 신문을 보면
이 기자가 과연 TV 토론을 보기나 하고 기사를 썼는지 의심이 갔다.
이제까지 언론에서 다루었던 대로, 그러나 사실과 다른데도,
TV 토론이 안상영과 한이헌의 판이었다는 것처럼 기사가 쓰여져 있었다.
그 기사를 쓴 사람은 노형석이라는 기자였다.
이뿐 아니었다.
노.사.모. 마저 갈등하고 그래서 쉬 입장을 나타내지 못했던 한이헌에 대해서
어찌나 관대하게 기사를 쓰는지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그럴 수 있는 일이다.  
노형석이라는 기자가 민주당을 지지할 수 있는 일이었고,
민주당이 아니라 노무현을 지지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때 민노당 안에서는 <한겨레> 절독 이야기가 나왔었다.
이건 부산에만 해당된 이야기가 아니었다.
민노당의 중앙당 홈페이지에서 그에 대한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한겨레>에 대한 입장은 정리되지 않은채로 선거가 끝났다.

민노당은 예상 밖의 좋은 결과가 나왔고,
(사실 난 예상 밖 노력 밖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십수년간의 노력의 결과다)
사람들은 그 결과에 도취되어 지난 날 설움도 잊었다.
<한겨레>도 그 결과로 민노당을 조금 대우해주었다.
민노당이 항의하지 않아서일까?
대선에서 <한겨레>는 똑같은 행태를 취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겨레>는 민주당 사랑, 노무현 사랑이다.
그게 역사의 진보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야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겠지.
하여간 이렇게 <한겨레>의 색깔은 명확한데도
다른 색깔을 인정하지 않았다.

민노당을 지지한다고 밝힌, 그래서 TV 토론에 나왔던 홍세화씨를 자격정지 시켰다.
색깔이 있는 것은 민주당 지지인 <한겨레>와 민노당 지지인 홍세화씨는 같은데
한쪽은 자격정지를 시켰고, 한쪽은 자격정지를 당했다.
물론 차이는 있다.
그 차이는 한쪽은 지지의사를 밝히지 않은 것이었고 한쪽 지지의사를 명확히 한 것이었다.

우리 사회는 진실한 고백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지난 봄 5000만원을 받았다고 양심선언했던 민주당 김근태의 경우가 그러하고
한때 남자를 사랑했었다고 밝힌 홍석천의 경우가 그러하다.
그러나 그때 세상이 그들에게 손가락질해도 그나마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봐준 것이
<한겨레>였다.
그래, 그래서 나는 이제까지 <한겨레>를 읽어왔다.

<한겨레>를 두고
형평성이 없다, 이제까지 입장들과 일관성이 없다와 같은 말을 하고 싶지 않다.
단지 <한겨레>가 미워졌다.
물론 나는 모질지 못하게(이전의 나의 모습에서 예외적인 것이다)
잠시나마 진중권처럼(아래 붙임) 구독정지를 결정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처음사랑을 깨끗이 끊어버린 사람을 본적이 있는가. 내겐 <한겨레>가 신문에 대한 처음사랑이다.
그러나 이일로 인해 생겨버린 나의 생각,
'<한겨레> 편파적이다'라는 생각을 쉽게 지울 수가 없을 것이다.

나는 언론이 당파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편파와 당파의 차이는 편파는 밝히지 않음이고 당파는 의견을 밝힘이라고 해두자.

이제 <조선일보>와 <한겨레>는 어떤 면에서 같아진 셈이다.

<한겨레>, 이제 만족하시는가?


아래 글들 각각 길이가 많이 깁니다.  그러나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글의 순서는,
article 1. 홍세화의 공개질의서
article 2. 홍세화의 견해
article 3. 진중권의 <한겨레>기고 거부 입니다.

article 1

'편집위원장에게 보내는 공개질의서'
-한겨레에도 힘의 논리가 관철되고 있다-

지난 금요일(12/6) 오후에 편집위원장은 나에게 ‘왜냐면’의 편집권을 박탈하고 이를 부국장단에게 넘긴다고 전화로 통보했다. 내가 그 전날 밤 MBC &lt100분 토론>에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 지지자로 참석하여 공개적으로 ‘선거운동’을 벌였다는 것이 이유였다. 나는 편집위원장에게 문서로 된 결정서를 요구했으나 편집위원장은 내가 입사하여 ‘왜냐면’ 편집을 시작했을 때도 문서작성이 없었다는 이유로 내 요구를 거부했다. 통화는 그렇게 편집위원장의 일방적 통보로 끝났다.

나는 지금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살아오면서 적지 않은 일을 겪었지만 <한겨레>에서 이런 인격적 모욕을 당할 줄 몰랐다. 외할아버님은 분노의 깊이가 깊은 그만큼 긴 시간을 참고 기다린 뒤에 대응하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씀을 돌이키며 사흘을 보냈다. 그 동안 한 가닥 희망을 갖고 편집위원장이 자신이 저지른 전횡에 대해 스스로 성찰하거나, 혹은 부국장단 등으로부터 시정 요구를 받는 등 <한겨레> 조직의 자정 능력을 통하여 이 폭력적 행위가 번복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한겨레>에 힘의 논리가 관철되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집단에 숨어 있는 구성원들의 편의적이며 이기적인 수구성을 확인한다.

‘똘레랑스의 부드러움은 앵똘레랑스에 대한 단호한 자세를 요구한다’는 내 원칙에 의해, 편집위원장에게 이 공개질의서를 보낸다. 질문은 아래와 같다(경어 생략).

1. 편집위원장은 나에게서 ‘왜냐면’의 편집권을 박탈한 근거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과정과 절차를 밟았는지 밝히기 바란다. 미리 지적하지만, 기자들의 정당활동을 금지하는 사규를 거론하지 않기 바란다. 사규의 그 조항은 상위 체계인 실정법에 어긋나거니와, 나에게는 이미 사문화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는 첨부 문서를 참조하기 바란다. 내가 지난 7월 하순에 작성하여 <한겨레> 윤리위원회 앞으로 보냈던 그 글에 대해 나는 아직까지 그 누구로부터도 반론이나 비판을 받아본 적이 없다. 사규에 대한 문제제기에 대해 반론이나 비판을 펴지 않으면서, 사규를 무기로 삼아 행동하는 것은 그 어떤 조직에서도 옳지 않다. 그래서 다시금 묻는다. 나에게서 ‘왜냐면’ 편집권을 박탈한 근거와 그 절차와 과정이 무엇인지를.

2. 편집위원장은 지금까지 ‘왜냐면’의 형평성에 문제가 ‘없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 구체적인 예를 적시할 것을 요구한다. 또 편집위원장은 특정정당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에게 여론 면을 맡길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편집위원장에게 그 특정정당 안에 민주당은 제외되는 것인지 묻는다. 멀리 되돌아갈 필요도 없다. 나에게 ‘왜냐면’ 편집권을 박탈한다고 통보한 바로 그 날에 출고된 12월7일치 신문 여론 면에는 최상천 씨의 ‘누가 옳은가’라는 글이 실렸다. 나는 조중동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이회창 선거운동’을 일상적으로 벌이듯이 한겨레 또한 ‘노무현 선거운동’을 일상적으로 벌이고 있다고 보는데, 그래도 그 글만큼 ‘노무현 선거운동’을 노골적으로 하는 글을 보지 못했다. 나는 편집위원장에게 논리적 정합성도 뒤떨어지는 그 글보다 더 심한 편파성을 보인 글을 ‘왜냐면’에 실린 민주노동당 당원의 글 또는 민주노동당에 관련된 글 중에서 적시할 것을 요구한다. 아니, 왜냐면의 모든 글 중에서 단 한 개라도 찾아서 적시할 것을 요구한다.

3. 모든 결정 과정이 무척 느리기로 정평이 나 있는 <한겨레>에서 나에 대한 ‘왜냐면’ 편집권 박탈은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윤리위원회의 소집과 그 결정을 기다릴 수 없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편집위원장의 답변을 요구한다. 또 MBC 백분 토론에 참가한 것과 비슷한 이유로 참가했던 대한매일 기고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태도를 180도 바꾼 이유는 무엇인가?

모든 조직은 구성원 사이에 지켜야할 최소한의 윤리가 있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바로 그것이다. 나는 이번 편집위원장의 폭거에서 ‘인간에 대한 예의’의 배반을 본다. 내가 왜 이런 수모를 받아야 하는가? 도대체 내가 한겨레에 무슨 누를 끼쳤단 말인가. 기가 막힌다. 50대 중반에 제3의 인생을 시작하면서 왜냐면 기획을 통하여 한겨레에 몸담게 됐다. 나에게서 왜냐면 편집권을 박탈한다는 것은 곧 한겨레를 떠나라는 말과 큰 차이가 없다. 한겨레에 힘의 논리가 관철되고 있다는 것 이상으로 한겨레에서 이런 비인간적 전횡과 폭력이 일어난다는 것에, 또 그것이 견제되지 않고 있다는 것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과 분노를 느낀다.

한겨레는 진정 ‘진보적 대중지’를 지향하는가? 나는 종종 한겨레가 조중동과 한나라당의 공격으로부터 민주당을 방어하는 야전사령부에 소속된 홍보실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갖는다. 또 나는 한겨레에 진보를 용인하지 않는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가 하는 의혹을 갖고 있다. 아무튼 편집위원장의 한겨레와 나의 한겨레는 다른 게 분명하다. 그러나 착각하지 말길 바란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든 진보정당의 육성에 이바지하기 위해서든 한겨레의 아우라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한겨레를 쉽게 떠나는 편리함을 택하지 않을 것이다. 누구의 한겨레가 진정한 ‘진보적 대중지’인지 또 <한겨레> 구성원들의 그것은 무엇인지 끝까지 검증해본 뒤에 내 거취를 결정할 것이다.

편집위원장은 나의 공개질의에 대해서 성실하게 답변하기 바란다. 이번 사태가 발생하게 된 데에는 사규와 관련하여 7월말에 제기했던 내 글에 대해 윤리위원회가 유야무야 구렁이 담 넘어가듯 대응했던 탓이 크다. 편집위원장은 그 전철을 밟지 말고 공개적인 글로 답변해주기 바란다. 모두들 이른바 기자 아닌가.

2002년 12월 10일, 작성자 홍세화


article 2

''견제권력'과 진보 언론인의 정당활동'
-일차원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7월24일(2002년) 오전 <한겨레>의 윤리위원장은 나에게 민주노동당에서 탈당할 것을 권유했다. 7월23일 오후에 열린 윤리위원회의 의결 내용이라고 했다. 입사 6개월밖에 안 된 사람으로서 ‘윤리위’의 심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에 착잡한 심정을 떨칠 수 없었다. 나는 위원장에게 일단 ‘생각해보겠다’고 답변했다. 그런데 한가지 물음이 영영 내 머리를 떠나지 않고 있다. 나에게 ‘세 개째의 개똥’을 먹으라고 요구하는 게 아닌가, 하는 물음이다. 누가 알았겠는가? 다른 조직도 아닌 한겨레가 나에게 세 개째의 개똥을 먹으라고 권유할 줄을!

한겨레 윤리위의 탈당 권유는 궁극적으로 한겨레냐, 민주노동당이냐의 양자택일 요구로 연결되는 듯하다. 그러나 나에게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지켜보려고 애쓴 하나의 원칙과 정면으로 부닥치는 문제이기도 하다. 한겨레의 탈당 권유는 부드럽게 이루어졌지만 내 가슴에 앙금을 남겼다.

한국사회 구성원들은 입당을 쉽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식인들도 젊은이를 비롯한 사회구성원들의 탈정치화를 걱정하지만 스스로 정당에 참여하는 일은 피한다. 예외는 오직 보수정당의 공천을 받을 때다. 풀뿌리 정당정치는 발전하지 못하고 보스 정당정치가 계속된다. 이와 같은 정치상황에서 진보정당 참여는 참여자 나름의 원칙과 세계관에 따라 행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탈당 권유를 1시간 여 동안의 회의를 거쳐 의결한 한겨레 윤리위가 과연 윤리적인가 묻고 싶기까지 하다. 탈당 권유를 받는 사람의 처지에 잠시 동안이라도 서보았다면 정치적 신념 표현을 스스로 부정하라는 요구안을 간단히 의결할 수 있었을까? 물론 정당활동을 금지하는 사규가 있긴 하다. 그러나 구성원의 정치적 신념 표현을 가벼이 여길 만큼 “일단 권유해 보자”라는 행정편의주의가 앞섰던 게 분명해 보인다.

감히 말하건대, 그 문제 조항을 지금까지 꿰차고 있는 것은 한겨레가 시대의 변화와 흐름을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그 동안 한겨레가 타성과 나태에 젖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창간 정신을 지키라는 말은 14년 전 창간 당시의 정치-사회적 상황이 규정했던 것을 계속 고수하라는 뜻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정치-사회적 상황변화에 끊임없이 긴장하며 대처하라는 요구일 것이다. 실정법이 허용한 자유를 사규로 금지하려면 누구나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나는 납득할 수 있는 그 어떤 이유도 찾을 수 없다.

나는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창간 정신이 구성원의 진보정당 입당을 가로막는다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권장해야할 일이라고 본다. 왜 그런가?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진보정당은 권력(pouvoir)이 아니라 ‘견제권력(contre-pouvoir)’이다. 기자의 정당활동 참여를 반대하는 논리는 아주 단순한 삼단논법에 따른 것이다. 즉, 정당은 권력 장악을 목표로 한다, 신문은 권력으로부터 독립되어야 한다, 따라서 기자의 정당 활동은 금지되어야 한다...그러나 단순 명쾌해 보이는 이 논리는 ‘권력’과 ‘견제권력’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 일차원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가령 “한겨레는 권력인가, 견제권력인가?” 이 질문은 우문이 될 것이다. 한겨레가 견제권력에서 조중동처럼 권력이 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지만 나는 그 때에는 한겨레에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진보정당이 견제권력에서 권력이 되기를 기대하지만 그 날이 왔을 때 나는 거의 틀림없이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한겨레 사규의 정당활동 금지조항은 본디 권언유착과 언론을 권력지향의 발판으로 이용하는 사이비언론인을 겨냥한 것일 터이다. 그것은 실상 선언적 의미가 컸을 뿐 실효성은 없었다. 그 점을 한겨레 구성원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반면에, 14년 전 창간 당시와 달리, 노동자, 농민 등 기층 민중을 대변하는 진보정당이 합법화된 오늘, 문제 조항은 다만 견제권력의 응집을 가로막는 데에만 작용할 뿐이다. 왜냐하면, 한국의 정당정치 현실에 비추어볼 때, 정당활동 금지조항은 실제에 있어서 기자직을 권력지향의 발판으로 이용하려는 기자에겐 그 어떤 구속력이나 규정력을 갖지 못하는 반면에, 우리가 지금 목격하듯이 진보정당 활동은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말한다. “기자가 무슨 정당 가입이냐?”라고. 그러나 이 질문은 “교사가 노동자냐?”라는 질문과 같은 차원의 것이다. 기자는 정당 가입의 투명성에 의해 자신이 작성하는 기사에 대한 자기검증을 더 철저하게 하고 일상화하게 된다. 이 점은 기자가 비밀당원일 때와 공개 당원일 때의 차이를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비밀 당원보다 공개 당원이 더 자신의 당파성에 합리적 논거와 균형감각을 요구받는 것이다. 가령 나는 ‘왜냐면’에 실릴 글을 선정하면서 공개 당원일 때와 그렇지 않을 경우 민주노동당 관련 글에 어떻게 반응할까? 똑같이 반응해야 마땅하지만 공개 당원일 경우 균형감각에 더욱 신경 쓸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왜냐면’에 민주노동당 당원의 글은 “진보정당 토론 참여 막지 말라”, “그렇더라도 장상 총리를 앉히고 싶다”의 두 개가 실렸을 뿐이다. 내가 만약 공개 당원이 아니었다면 한두 개의 글은 더 실렸을지 모른다.

요컨대, 한겨레의 문제 조항은 구성원들에게 자기성찰과 긴장을 덜 요구하는 비밀당원이 되도록 부추기는 어리석음을 저지른 것이다. 기자의 양식(良識)과 자율성에 맡겨두어야 할 부분을 침범한 결과다.

기자가 지켜야할 객관성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있다면 팩트 뿐이며 이에 대한 시각과 분석에 차이가 있다. 기자의 정치-사회적 의식과 가치관, 세계관은 그가 당원이든 아니든 기사 작성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기자의 당파성에 합리성이나 균형감각이 담겨있는가 없는가에 있다. 그리고 기자의 당파적 성격을 드러내는 것은 드러내지 않는 것보다 객관적 검증의 가능성을 높이게 된다.

하나의 예를 들어 보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칼럼 난에 이따금 등장하여 한국의 정치-사회적 현안에 개입하는 기 소르망이라는 프랑스인이 있다. 그는 ‘석학’, ‘문명비평가’라고 소개된다. 일반 독자는 그의 칼럼이 석학 문명비평가의 객관적 시각에서 나온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는 프랑스에서 신자유주의를 맹종하는 자유민주당의 이데올로그로서 ‘세계화란 곧 미국화’인데 그것을 열심히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프랑스에선 <피가로>지에 어쩌다 실리는 그의 글에 그의 당파성이 담겨있음을 알 수 있지만 한국에선 석학 문명비평가의 객관성이 담보된 글로 둔갑한다. 이 수법은 조선과 동아가 그들의 보수-수구적 편향을 신문에 철철 넘치게 하면서도 객관성이라는 외피를 두르고 있는 속임수와 같다. 그렇다면, 진보적 대중지를 지향하는 한겨레는 기자의 당파성을 드러내지 않고 객관성을 담보한 양하는 것과 오히려 그것을 투명하게 드러내고 자기 검증과 객관적 합리성을 요구받도록 하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을 택해야 마땅한가. 나아가 한겨레는 구성원들에게 민주노동당 등의 진보정당 공개 가입을 적극 권유하여 민주당, 한나라당 공개 가입도 이끌어냄으로써 권력 지향적인 비밀 당원이 없도록 하는 쪽이 더 바람직하지 않은가?

어떤 이는 말한다. “진보정당의 당원임이 밝혀진 한겨레 기자의 기사나 분석에 대해 조중동 등이 물고늘어질 것”이라고. 그러나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 시기는 지났다. 그 기사나 분석에 합리적 논거가 담겨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돌파할 수 있고 또 돌파해야 한다. 조중동은 한겨레의 준거 참조물이 아니다. 한겨레의 차별성은 조중동을 준거 기준으로 하는 차별성이 아니라 한국사회에 치열히 대면함으로써 획득되는 것이어야 한다.

또 어떤 이는 말한다. “한국에서 신문이 대선 후보중 지지 후보를 밝힐 때가 아직 못된 만큼 기자의 정당활동도 아직 시기상조다”라고. 그러나 신문이 대선 지지후보를 밝히는 것과 기자가 가입 정당을 밝히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각 나라 정당정치의 현실에 따라 신문이 대선 지지후보를 밝힐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기자의 정당 가입은 내가 아는 범위의 모든 나라에서 허용되고 있다. 지금 시기상조라면 그 때는 언제 오는가? 모든 사용자에게 주5일 근무제는 언제나 시기상조다. 진보적 대중지를 지향한다면 지금까지 잘못된 타성을 정면에서 깨부숴야 마땅하다. 진보적 대중지가 진보의 투명성을 회피해서야 되겠는가?

<경위와 요구>

나는 한겨레 사규가 구성원들의 정당 가입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7월22일 조상기 편집국장을 통해 처음 인지했다. 금년 1월16일의 귀국 이전까진 실정법 상으로 언론인의 정당 참여가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고, 2월1일 한겨레 입사 시에 나는 사규를 읽을 기회를 갖지 못했다. 3월에야 나는 언론인과 대학교수의 정당활동이 허용되었다는 점을 알게되었다. 김석준 부산대 교수가 민주노동당 후보로 부산 시장 선거에 나선 것을 보면서였다.

나는 3월30일 민주노동당에 입당했다. 프랑스에 있을 때부터 글쓰기를 통해, 또 나 자신에게 약속한 것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보잘것없지만 나에게 허용된 상징자본을 진보정당에 힘을 실어주는 데 써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입당하던 날, 나는 “내 생전에 기층 민중을 대변하는 진보정당에 합법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날이 올까?”라고 처연히 자문했던 30년 전의 내 모습을 되돌아보면서 잠시 감격스러워했다. 지금도 나는 민주노동‘당’에 입당했다기보다는 ‘진보’정당에 입당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당원으로서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매달 당비를 내고 당 기관지인 <진보정치>에 한 달에 한 차례 칼럼을 기고하는 일이다.

나는 언론인의 정당활동을 정당법은 허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불허되고 있다는 얘기를 몇 차례 들었다. 그런데 사람마다 서로 다른 근거를 댔다. 나는 막연히 기자들끼리 정당활동을 하지 않겠노라고 서약한 <기자윤리실천요강>같은 것이 있나, 하고 짐작했을 뿐이다. 워낙 정당활동 불허를 부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세히 알아보지 않은 탓도 있다. 그러나 정당법이 허용하는 것을 한겨레가 허용하지 않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무튼 나는 사규를 어겼다. 하지만 나는 한겨레와 진보정당이 양립불가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양립되어야 한다고 보는 편이다. 나는 한겨레를 떠날 의사가 추호도 없듯이 진보정당을 떠날 의사도 추호도 없다. 나는 문제 조항의 개정을 요구한다. 앞으로 정해진 날까지 개정 여부를 심의해주길 바란다. 그 날까지 사규를 어긴 구성원으로서 불이익을 준다면 감수하겠다.

홍세화


article 3

한겨레에 기고를 거부하며-
주인과 머슴의 변증법

진중권 기자 mkyoko@chollian.net

한겨레 신문에서 홍세화씨의 '직무'를 정지시켰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가 한겨레의 내규를 어기고 특정 정당에 가입했다는 것이라 한다. 홍세화씨가 민주노동당원이 되어 정당활동을 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따라서 뒤늦게 대선을 맞은 이 시점에 튀어나온 그 징계의 배경에 관심이 쏠릴 수 밖에 없다. 한 마디로 그것은 그가 MBC의 <백분토론>에 나가 공개적으로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그 발칙한 짓에 대해 한겨레는 '조직의 쓴 맛'을 보여준 것이다. 원래 조직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나는 그가 민주노동당에 가입한 이후 한겨레 '왜냐면'이라는 지면이 민주노동당의 당파적 이익에 맞게 왜곡된 사례를 알지 못한다. 아울러 그의 인격으로 보아 앞으로도 그가 자신의 당파적 이익 때문에 그 지면을 왜곡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 그가 MBC 방송에 나갔다는 사실이 '왜냐면'이라는 지면의 공정성과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겨레는 그의 직무를 정지시켰다. 단지 그가 개인의 자격으로 특정 정당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에서 그에게 징계를 내렸다. 이것이 소위 '진보 언론'를 자처하는 한겨레에서 한 짓이다.

1988년 아침에 배달되어온 네 면 짜리의 조촐한 창간호를 보며 감격에 젖었던 기억이 난다. 그 기억 때문에 오랫 동안 외국생활을 하고 돌아와서도 직접 찾아가 구독을 신청을 했던 신문. 바로 그 신문이 '진보'의 이름으로 이런 만행을 저질렀다. 아마 그들은 이 만행을 '내규' 운운하며 실정법 논리로 정당화할 것이다. 그럴 것이라면 국가보안법도 분명히 실정법이니 한겨레 신문은 앞으로 그 법을 착실히 지킬 일이다. 악법도 법이니 신성하게 지킬지어다. 그 빌어먹을 내규도 내규니 신성하게 지킬지어다. 내규도 신성하게 지키는 한겨레는 당연히 서슬퍼런 국법도 군말없이 지키는 충실한 신민이 될지어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은 만세다.

정작 당파적인 것은 누구인가? 최근 한겨레의 보도는 위험수위를 넘었다. 서울시장 선거 때의 일은 이미 지난 일이니 다시 거론하기 싫다. 대선을 맞은 이 시점에도 한겨레는 또 한번 제 정신을 잃기로 했다. 소위 '하니 리포터'라는 곳을 들여다 보라. 이미 특정 후보의 선전매체를 방불케 할 정도로 명백한 역겨운 정치적 편향을 드러내고 있다. 한겨레 지면 역시 대단히 노골적으로 특정 후보를 지원하고 있음을 누구나 다 알 것이다. 심지어 만화가까지 나서서 노골적으로 민주노동당을 견제하며 속들여다 보일 정도의 비열한 편파성을 드러내고 있다.

홍세화가 이미 지적했듯이 얼마 전에 실린 최상천의 글은 한 마디로 현대판 용비어천가다. 이회창도 서명하는 성명서에 정작 노무현은 서명하지 않았다. 그는 이것 역시 옳다고 주장한다. 사실 정치인인 노무현이 그렇게 주장하는 데에는 일리가 있다. 하지만 정치인 본인도 아닌 지식인이 나서서 행여 그에게 누가 될세라 그 짓을 옳다고 변명해주는 것은 내가 가진 윤리적 직관에 심히 거슬린다. 대통령도 되기 전에 부르는 이 함량미달의 용비어천가가 한겨레 신문에는 아무 여과 없이 그대로 실린다. 이런 편파성은 데스크의 심기를 하나도 안 거스르나 보다.

그런 한겨레가 아무 짓도 하지 않은 사람, 한겨레의 기자가 아닌 '아웃사이더 편집위원'의 명찰을 달고 나간 TV 토론을 문제 삼아 그의 편파성을 문제삼는다. 이게 소위 '국민주'로 만들어진 신문을 가지고 그 기자들이 하는 짓거리다. 한겨레가 당신들 기자의 것인가? 이 질문에 아마 이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것이 민의라고. 룻소가 말한 국민들의 일반적 의지라고. 우리 기자들만의 견해가 아니라 소위 국민주 신문의 주주들의 뜻이라고.

맞다. 그래선지 그 신문의 주주모임에서 오늘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공개선언을 했다. 한 마디로 한겨레 신문의 소유주를 자처하는 자들이 분명하게 자기의 정치적 색깔을 드러낸 것이다. 그들은 한겨레를 법적으로 소유한 자들이고, 홍세화는 한겨레에 고용된 피고용인에 불과하다. 따라서 한겨레를 소유한 자들은 자신의 정치적 색깔을 드러내도 되되, 거기에 고용된 자는 같은 일을 한 댓가로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소위 '국민주'로 만들어진 절대정신이 전개하는 주인과 머슴의 변증법이다.

한겨레의 주주들이 개인적으로 특정 후보의 지지를 선언하는 것은 아무 문제도 없다. 하지만 한겨레 신문은 소위 '국민주'로 만들어진 신문, 그 신문을 만든 주체는 민주당이 아니라 '국민'이다. 그런 모임에서 특정 후보의 지지를 선언하고 나선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적절하지 않다. 왜 그들은 한겨레의 모든 주주들이 자기들의 정치적 선택을 따를 것이라 착각하는가? 도대체 그들은 무슨 권리로 한겨레 주주들의 대표임을 자임하는가? 도대체 언제부터 한겨레가 특정 정당의 기관지였던가? 그 짓을 하라고 국민들이 주식을 샀던가? 한겨레 사옥 벽의 동판에 새겨진 그 많은 이름들을, 왜 한 줌도 안 되는 소수의 사람들이 독점해야 하나?

한겨레만이 아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오마이뉴스'의 행태 역시 도를 넘어섰다. 객관적으로 판단할 때, 오마이뉴스의 편향성은 분명히 조선일보의 그것을 넘어섰다. 내가 한 때 열심히 조선일보를 비난했던 그 이유들을, 오늘 나는 '오마이뉴스'에서 더 명확하고 분명한 형태로 본다. 지금 오마이뉴스는 전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편파적이며 선정적인 정치 황색지의 길을 걷고 있다. 당신들이 쓴 기사들, 당신들이 채택한 기사들을 보라. 그리고 객관적으로 당신들이 조선일보와 뭐가 다른지 나를 납득시켜 보라.

조중동이 특정 정당에 행하는 사소한 음해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오마이뉴스에서 정작 소위 진보언론인 한겨레에서 저지른 이 해괴한 짓거리에에 대해서는 보도를 안 하거나, 마지 못해 해도 그 기사를 저 구석에 쳐박아 놓을 것이라는 것을 나는 미리 안다. 이 자칭 '대안언론'에게 중요한 것은 더 이상 공정성도, 객관성도, 사회정의도 아니다. 그런 것은 미천한 시민들이 추구할 것이 아니라, 노란 슈퍼맨이 대통령이 되어 비로소 베풀어줄 시혜다. 그러니 신부의 화장을 하고 구세주의 재림을 기다릴지어다. 아멘.

분명히 경고한다. 당신들은 그릇된 길을 걷고 있다. 세상 모든 언론이 어차피 당파적이라 생각한다면, 앞으로 조중동에 대한 비난만은 삼가주시라. 다른 것은 다 이해해도, 조중동 못지 않은, 심지어 그들을 능가하는 편파성을 드러내는 이 매체들이, 편파적인 이유에서 조중동을 비난하는 이유만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 조중동은 한나라당의 기관지, 한겨레와 오마이뉴스는 민주당의 기관지, 피차 기관지이니 앞으로 자기의 당파성을 위해 누가 왜곡보도, 확대보도, 축소보도를 잘 하는지 선의의(?) 경쟁을 벌일 것을 선언하라.

언론개혁을 떠들던 지식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보라, 이것이 당신들이 만들어낸 대항언론의 유토피아다. 기껏 이 꼴을 보기 위해 사이비 언론들과 싸워 왔던가? 조중동이 하는 일에는 사소한 것까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던 당신들, 왜 이 순간엔 침묵하는가? 남에게는 침묵할 권리마저 부정하고 그 입장을 집요하게 묻던 당신들, 지금 무엇하고 있는가? 우리의 비판이 기껏 특정 당의 이익을 위한 립 서비스에 불과했던가? 오늘 나는 당신들의 진정성을 심각하게 의심한다.

한겨레 신문이 그 빌어먹을 징계를 철회할 때까지 오늘 부로 그 신문의 구독을 거부한다. 아울러 그 알량한 지면에 얼굴 내비칠 권리를 반납한다.

분명히 경고하지만 당신들은 그릇된 길을 걷고 있다. 집권하기 전부터 보이는 이런 행태로 보아, 당신들의 집권으로 약속하는 유토피아의 약속을 나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선거 때만 되면 다들 미쳐버리는 이 빌어먹을 사회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신문을 끊고 기고를 거부하는 것 밖에 없다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한다. 이런 짓을 하여 얻어질 '당신들의 천국'에 미리 조의를 표한다.



여기서 '<한겨레>, 만족하시는가?'는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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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이거였어.
요즘 느끼는 떨떠름함은 '뒤늦은 분노'때문이었어.
6월 대한민국의 하늘은 '태극기'로, '대한민국'함성으로 가득찼어.
6월 대한민국의 땅은 '붉은 셔츠'로 가득찼었고.
사람들은 광장문화가 어떻니, 탈레드컴플렉스가 어떻니 떠들어 댔어.
그 속에 묻혀버린 전동록씨, 미선이와 효순이를 입밖으로 꺼낸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어.
왕따를 자쳐하는 길이었지.
그래서 눈물만 흘리고 사람들에게 안타까워하면서 입을 닫았어.
부끄러웠지만 그래버렸어, 입을 닫아버렸어.

지금 사람들의 '뒤늦은 분노'가 싫지는 않아.
단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려울 뿐이야.

그때나 지금이나 부끄러움은 여전하고
이 부끄러움은 시간이 가도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아.

사람들이 느끼는 '뒤늦은 분노', 부끄러움으로 가슴에 새겨지기를
그리고 오래도록 잊지 말기를 바랄뿐이야.


여기서 '대한민국에게 분노한다'는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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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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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있는 토요일이면 가능한 'TV 속의 TV'라는 프로그램을 본다.
다른 방송국들의 옴브즈맨 프로그램은 자사 프로그램을 홍보하는게 그 기능이지만
mbc는 좀 낫다.  사실 많이 낫다.
하여간 이 프로그램을 기다리다가 발견하게 된 프로그램이 있다.
11시쯤 방송되는 '찾아라! 맛있는 TV'라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보는 사람을 고통스럽게 한다.
그 고통을 즐기면서(?) 이 프로그램을 'TV 속의 TV'라는 프로그램과 함께 주말마다 본다.
이런 프로그램의 경우, 소개를 주로하는, 지역민들을 더욱 서럽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맛나게 보여서 한번 가보고 싶어도 대부분 서울이거나 내가 사는 곳에서는 너무나 먼곳들이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부산의 맛집 7'이라는 꼭지로 부산의 맛집들이 소개되었다.
그날 잊을 수 없었던, 그래서 꼭 가고야 말리라 다짐에 다짐을 했던 집에 며칠전에 다녀왔다.

근래 과중한 과제에 시달렸다고 스스로를 생각한 나는
나에게 일종의 상을 줘야겠다 생각했다.
(지나고서 생각하니 없는 살림에 과하게 상을 줬다는 생각이 들었다.(__ ):)

인터넷에서 한번본 지도를 더듬어가며 찾아들어간 골목에는
'원조 동래할매파전'이라는 집과 '동래할매파전'이라는 집, 두 집이 있었다.
아는 사람은 알지만 외관이 깨끗한 shop을 좋아하는지라
공중파를 탔을것이라 추측되는 '동래할매파전'이라는 집에 들어갔다.
추측대로 그 집이 맞았다.

저녁시간을 조금 넘긴 시간이었지만 사람이 많아서 문간에 앉았다.
처음 날 반겨준 것은.. 숭늉.(<-이렇게 쓰는게 맞나?(' ' )a)


주요리인, 나의 발걸음을 그곳까지 이끈 파전.

'traditional pizza'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만큼 두께가 두꺼웠다.
그래서,
너무나 행복했다.(^^ ):

파전 한장을 헤치우고 부족한 느낌이 들어 시켜본 버섯파전.

취향따라 다르겠지만 그냥 파전이 더 권할만하다.

실 가는데 바늘이 안갈 수 있나?
그러니 파전 있는데 당연히 동동주가 있어야지.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을 가까이두면 술을 마시지 않으리란 생각을 할런지도 모르겠다.
마실 기회가 줄어들긴 하지만.
그러나 내 경우엔 아닌 것 같다.
나누어 마실 술을 혼자 다 먹게되니 말이다.

요건 이른바 '찌게다시'.
이름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해초와 식초의 하모니'라고 명명하겠다.


시끌한 방안에 흥건한 음식냄새.
틀어놓은 TV에선 창과 노 그리고 권영길이 전투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대화를 듣지는 못했지만 다음날 반응을 살핀 결과 전투적이었으리라 추측된다.)


전날 잠을 제대로 못잔 탓인지 간만에 취했다.
다음날 두통에 시달려야했지만(파전은 맛나지만 동동주는 맛이 그다지..( __)a),
그리운 벗들과 함께라면 다시 찾고 싶은 곳이다.
언제 한번?(^^ )

지도보기
- 동래할매파전 -> 바로가기


여기서 '동래할매파전'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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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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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창에 기대어 집으로 돌아오는 12월의 첫날.
이 차량 행렬, 스타렉스 동호회,을 보고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도대체 난 뭘 해야할까?

바쁘다는 핑계로 이것저것 미루며 여기까지 왔는데, 그래야 하는 건줄 알았는데
그게 답이 아니었던거야.

비겁하게 미루어왔던 시간들이
이 차량 행렬을 보는 순간,
목구멍을 통해서 뜨거운 핏덩어리로 울컥하고 올라오는 것 같았어.

뭘 해야할까?


여기서 'what can I do?'는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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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경남 & 채현 선배님의 결혼을 축하합니다!

지난 부산시장선거 때 만난 선배님들입니다.
제가 이분들을 만난 것도 그때지만, 이분들이 서로 만난 것도 그때지요.
16.8%라는 민주노동당의 득표율만큼 의미(?)있는 성과입니다.(^^ )

선배님들! 행복하게, 이쁘게 사세요!(^^ )

여기서 '아름다운 구속'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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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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