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의 불빛'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5.12.06 [etc.] '공장의 불빛'
  2. 2005.03.28 [clip] '공장의 불빛'

언니의 도움요청으로 언니 수업에 쓰인 워크 시트를 정리하는 일을 했다.  기계적일 수도 있는 작업이었지만 아이들의 답이 때로는 기특하고, 때로는 안타까워 나름대로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수업 자료로 신경숙의 ≪외딴방≫이나 조영래의 ≪전태일평전≫ 또는 김민기의 ≪공장의 불빛≫을 보여주고 아이들에게 하게 한 글쓰기다.

글쓰기1. 늦은 밤 어머니나 남동생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보자.  '고향을 떠나 공장에서 일하는 나'는 어떤 생활을 하고 있으며, 아지고 마음 속에 품은 희망을 가족들에게 편지로 써보자.

오늘 시다일을 하면서 동생과 부모님 얼굴이 떠올라 편지를 씁니다.  전 어머니가 다정하게 내 이름을 불러줄 때가 그리워요.  여기에 오니 ‘5번시다-’라는 소리 밖엔 듣지 못했어요.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많이 붙여 보낼 수 있을지 참 고민이예요.  지금 제 옆의 언니도 편지를 쓰고 있어요.  이 언닌 오늘 일을 하다 배가고파 잠깐 빵을 한 입 문거 가지고는 버럭 화를 내며 뺨을 맞았어요.  옆에서 반발하고 싶었지만 그 불똥이 저한테 튀어 어머니에게 돈을 붙이지 못할까봐 어쩔 수 없이 조용히 있어야 했어요.  비록 여기는 환경도 좋지 않고 월급도 작지만은 우리 가족이 그나마 살 수 있어서 다행이예요.  그리고 내 동생, 공부는 잘 하고 있을런지.  그 아이만이라도 공부시켜서 성공시키고 싶어요.  그러니 제 걱정 마시고 동생 공부 열심히 시키세요.  전 괜찮으니까요.  그럼 다음에 편지 또 쓸께요.  그때까지 건강하세요. - 딸올림-

1학년 김○○



이 글을 읽으며 아이의 상상력에 놀랐다.

질문2. 전태일은 분신하는 순간 망설였을 것이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생명을 중요하게 여기니까.  하지만 그는 불을 붙이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쳤다. 그는 그 순간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그가 중요하게 여긴 것은 무엇이었을까?

살고 싶다.  하지만 이 나라는 우리에게 도움을 줄 생각은 없을 것이다.  어머니를 모셔야 하지만 친구들을 믿을 수밖에.  내가 죽은 뒤의 일 또한 친구들에게 맡겨야 되는데 많이 미안하다.  노동자들도 인간인 이상 똑같은 대접을 받아야 하기에 난 오늘 이곳에서 죽는다.  다들 미안하다.

1학년 김○○



언니의 일터는 부산 외곽에 위치한 산업고등학교이다.  첫 부임지가 상업고등학교였던터라 아이들 대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언니의 생각과 달리 현재의 일터는 언니에게 만만찮은 상대였다.

언니의 학교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그야말로 '양지의 양지의 양지의 … 양지, 그리고 음지' 정도만을 살아왔다는 생각을 했다.  사회와 학교는 물론 가정에서 조차 소외 당한채로 살고 있는 아이들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나는 그런 아이들에게 영어, 수학, 물리를 가르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아이들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으로서 직업교육이나, 주어진 권리를 올바르게 행사할 수 있는 시민으로서 교육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들의 대부분은 영세사업장의 노동자로써,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로서 살아 갈 것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언니는 노동운동에 초점을 맞춘 수업을 진행해왔다.  언니는 국사교사지만 이 아이들에게는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보다는 노동자들이 1970년대는 어떻게 살았고, 또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는가가 더 중요하다.  아이들은 대부분 멀지 않은 미래에 노동자가 될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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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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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004년 버전 <공장의 불빛>이 나오고서 인물현대사에 김민기가 나왔다.
정말 대단하고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민기라는 개인이 대단하기도 하지만 1970년대,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386세대를 홀대하는 것과는 달리 말이다.)

1978년 노래굿 <공장의 불빛>을 낸 김민기는 현대사 정점에 올랐다 사라졌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가 사라진 곳은 사북(舍北)*이었다.
(그가 사북의 아이들을 소재로 만든 노래는 또 놀랍고 놀랍다.)
조세희씨도 사북에서 사진을 찍었다.
정말 이 사람들은 조용하게 살 수 없는 사람들인지.
요즘 들어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자주쓰는 표현이 '피곤한 피를 타고난 사람'이다.
이들을 두어 딱 들어 맞는 말이다.

이 클립은 인물현대사 김민기 편에서 자료화면으로 나온 것이다.
1978년 김민기가 낸 것은 노래굿(노래극)으로 연극이 아니었다.  단지 노래만 녹음된 것이었다.
이 테입을 틀어놓고 각 집회장에서, 각 사업장에서 율동(김민기는 그렇게 표현했다)을 더해 노래굿을 완성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서로 다른 '현장'에서 서로 다른 '버전'의 노래굿 <공장의 불빛>이 생겨났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서로 다른 버전의 노래굿이 존재한다는 이 대목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현실에 맞게, 현실에 필요한 투쟁의 도구를 만든 것이다.  정말 대단하고 대단하다.

정재일이 리메이크한 2004년 <공장의 불빛>은 이적, 이소은, 전인권 등이 참여했다.
가창력도 좋고, 표현력도 세련됐다.
그러나 1978년 <공장의 불빛>을 처음 접했을때의 떨림은 없다.
김민기, <공장의 불빛> 제작에 참여했던 이들,
그리고 현장에서 서로 다른 <공장의 불빛>을 만들었던 이들
정말 대단하다.  대단하다는 말 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표현력이 아쉬울 따름이다.

친구의 말처럼
저 클립 속의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_사북사태 [舍北事態]*
1980년 4월 21일부터 24일까지 4일에 걸쳐 국내 최대의 민영탄광인 강원도 정선군 동원탄좌 사북영업소에서 어용노조와 임금 소폭 인상에 항의해 광부와 그 가족 6,000여 명이 들고 일어났는데, 이 과정에서 경찰과 충돌하면서 유혈사태로 발전한 대규모 노사분규를 말한다.
노사분규가 일어난 것은 이보다 앞선 4월 16일이었는데, 이 때에는 시위가 격렬하지 않았다. 광부들은 4월 18일부터 임금인상과 어용노조 지부장의 사퇴를 요구하였으나, 회사측이 요구를 들어주지 않은 채 경찰을 개입시키면서부터 유혈 폭동사태로 번져나갔다.
광부측에서는 경찰이 어용노조와 회사측을 두둔한다고 판단하였고, 더욱이 사건의 원인을 제공한 어용노조 지부장마저 도망쳐 버리자, 이후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었다. 4월 21일부터 광부들은 몽둥이·곡괭이 등으로 무장하고 경찰과 맞서 지서를 불사르는 한편, 철도와 사북읍 입구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열차를 세워 검문검색을 하기도 하였다.
이 과정에서 경찰관 1명이 숨지고, 160여 명의 경찰과 민간인이 부상을 당했으며, 사북읍은 4월 24일까지 치안 공백상태에 빠졌다. 사태가 진정된 후 당시 계엄사령부는 관련 인물 31명을 구속하고, 50명을 불구속 기소하는 등 총 81명을 군법회의에 송치하였다.
이 사태는 경직된 노사관계와 광부들의 누적된 불만, 값싼 노동력 등이 빚어낸 참사로서, 이 사건 이후 전국 각지에서 노사분규가 잇따라 일어나는 등 1980년대 노사문제를 가속화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네이버백과사전 http://100.naver.com/100.php?id=764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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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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