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년 봄, 광주시민들이 80년 오월 광주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으며
또 그 기억을 오늘에는 어떻게 되살릴 것인가를 보여주는 거리문화제를 갔습니다.

대학에 들어와 518을 알고, 그 이전에 소설을 통해서 알고는 있었지만 그땐 느낌이었죠,
광주에 3번을 갔지만 오월에 그것도 518로 간 것은 처음이라 마음이 들떴습니다.

01.

518관련 행사가 메인으로 열리는 곳은 도청앞이었습니다.
금남로라고 하시면 들어본 적이 있을테지요?  도청앞으로 도로가 금남로였습니다.
금남로 넓은 도로는 제가 버스에서 내릴 즈음부터 모든 차량이 통제되기 시작했습니다.

거리문화제를 준비하는 모습들을 찍고 싶었지만
금남로에 울리는 노래소리 때문에 손이 떨려서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가 없었습니다.('' ):
그곳에 있지 않고서는 그 떨림을 전해드릴수가 없네요.

마음을 가라앉히며 각 단체들이 준비한 전시물들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02.

도청 앞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전시하고 있는 것은 친일 문학인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이들의 친일문학,
문학활동 뿐 아니라 천황을 찬양하는 등 선전활동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이광수, 서정주는 이미 아실테고 노천명 등등 몰랐던 사람도 많더군요.

운보 김기창.
얼마전 세상을 떴을 때 DJ가 조의를 표하고 그랬다지요?
이름만으로 알기 어려우시다면 그의 작품을 볼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지갑을 열어보시지요.
그 속에 든, 지폐들... 그 그림을 그린 사람입니다.

03.

미당 서정주.
알만한 사람들은 이미 그의 친일 행적을 알죠.

고등학교 때 그의 친일에 대해서 언니와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 언니는 그의 작품은, 작품대로 인정해야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달라진 탓인가요? 이제는 언니도 그의 작품을 교과서에서 빼야한다고 이야기합니다.

04.

한 어르신이 통일단체에서 내오놓은 방북사진들을 보고 계십니다.

친일, 518, 노동자, 통일...
이런 내용이 난무(?)하는 문화제에는 '일부' 젊은 층만 참여하리란 생각을 하시지요?
저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5월에 광주는 그렇지 않답니다.

05.

한총련 이적규정철회.
이걸 외쳐본지도 한참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한총련'이란 세글자를 보고 무심해 질 수가 없는 것이 솔직한 마음입니다.

06.

요즘 떠오르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
그것도 이야기 될 수 있고, 외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이 거리문화제였습니다.

07.

얼마전 이런 신문기사를 읽었습니다.
이전까지는 보안법위반 구속자가 많았는데
90년대 후반 들어서면서 노동관련 구속자들이 많다는.
저 노동자들의 목에 걸린 형틀을 이젠 함께 나서 풀어줄 때가 아닌지요.

08.

518 광주민중항쟁 정신, "사회당"이 계승한다네요.

가끔 보면 사회당은 자의식이 매우 강한 것 같습니다.
518 광주민중항쟁 정신도 자기들이 계승한다고 하고,
진짜 좌파는 자기들이라고 하고 말입니다.
...
길어지면 돌 맞을 것 같아 관둘랍니다.(__ )a

09.

이 노란색, 분홍색, 하늘색 종이를가 도청앞에 있는 큰 건물에서 뿌렸습니다.
누가 뿌린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걸 보는 순간에도 가슴이 떨려왔습니다.
내용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누가 뿌렸을까요? 설마 이것이 광주의 민심?

여기서 '거리문화제 둘러보기(1)'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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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식이 있는 10시 보다 늦게 518묘역에 도착했습니다.
어디가 공원묘지인지 몰랐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버스 안의 사람들이 거의 모두 내리는 곳, 그곳이 공원묘지임에 틀림없었기 때문입니다.

10시에 시간을 맞추어온 이유, 기념식을 보기 위해 신묘역에 있는 광장으로 발걸음을 두었습니다.

01.

신묘역에 들어서자 말자 가장 먼저 사람들을 맞은 것은
바로 이 버스들이었습니다.

02.

기념식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민주의 문.
그 민주의 문 아래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대통령이 참석한 기념식이어
참석 초대(?)를 받은 사람을 제외한 일반인의 입장을 금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 같은 경우에 참배를 온 많은 시민들, 그리고 학생들이 항의 했습니다.

03.

시민들은 신문이나 방송에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이런 경우가 어디 있냐며 항의했습니다.
그때 북부서 경비과장(검은 양복)이라는 사람이 나와서
이미 사람들에게 전해들은 이유, 대통령이 어쩌고...를 되풀이해서 말하더군요.
대학생들이 항의하자 바로 이 인간이 말했습니다.

"새끼 조용하지 못해?"
이때 이말을 옆에서 들은 시민이 이 인간에게 말했습니다.
"너 누구더러 새끼래?  너 한대 치겠다?(때릴 폼이다) 어디 한번 여기서 때려봐라"며
멱살잡이를 시작했습니다.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항의하는 시민들 속에서 밀어 부치자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하자 바로 파란색 모자를 쓴 전경들이 배치되기 시작했구요.
게다가 그들 앞엔 치마를 입고 모자를 쓴 여자 경찰들이 폴리스 라인을 만들었습니다.

여자 경찰들의 폴리스 라인... DJ정부가 들어서면서 우리에게 익숙해진 풍경이죠.

04.

이런 경우가 어디있냐며 시민들이 거세게 항의하자 한 여자 경찰이 우리는 모르는 일이니
시민단체의 대표를 불러주겠다고 했습니다.
'초대 받은' 시민단체는 기념식장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한참이 지나서 시민단체대표(회색양복)라는 사람이 나왔습니다.
그도 안에서 왔으니 그는 초대를 받았던 모양입니다.

그에게 시민들이 항의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답에 다시 한번 기가 막혔습니다.
30분이면 끝나니 기다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시민들이 거세게 항의하자, 참배를 왔는데 30분도 못기다리냐는 것이었습니다.
진실로 참배를 하러 온 사람들은 30분이 아니라 한 시간이어도 기다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앞에서 싸우는 중에 제 바로 옆에서 한 어르신의 화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05.

"너희가 광주를 지켰냐?"
"20년동안 광주를 지킨건 우리야!"
"너희들이 한게 뭐가 있어!"
그 어르신의 화난 음성을 들으며 점점 목이 매여왔습니다.

06.

시민들의 항의, 시민단체대표라는 이의 말도 안되는 답변..
그렇게 말이 오가는 사이 참배를 온 시민들은 지쳐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앉아서 기다려야했습니다.

07.

어른들의 싸움에, 그 무거워진 분위기에 아이도 시무룩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08.

시간이 길어지면서 아이는 가져온 화환을 놀이기구 삼아 놀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09.

시민들의 거센 항의에 일단 나이드신 어르신들에 한해서 입장을 시키기 시작했습니다.

10

행여나 옆으로라도 들어갈까봐
민주의 문 옆으로 있는 잔디밭에도 경찰이 지키고 서서 시민들을 출입을 통제했습니다.

11.

한참동안의 입씨름이 끝나고 기념식이 끝나면서 시민들도 추모탑이 있는 광장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정말 속으로라도 욕 한바탕 하고 돌아서고 싶었지만
분을 접고 저도 광장 안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저기 산 아래 보이시는지요.
사진에서는 점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저 잘난(?) 유명인사들 때문에
이 못난(?) 광주시민들이 광장에 들어오지 못한 것입니다.

12.

그 잘난(?) 유명인사들의, 그들만의 기념식이 끝나고서야
시민들의 추모인사가 시작되었습니다.

13.

신묘역으로 들어가면서 입구에서 잠시 보았던 명계남씨도 추모인사를 하기 위해
광장으로 왔더군요.

14.

명계남씨를 알아본 대학생이 수첩과 카메라를 들고 다가갔습니다.

"왜 오셨는지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왜라고 이유를 묻나니...", "이유를 모르는거야?  공부 좀 해야겠네."

15.

이부영씨.  단 두명의 보좌관과 함께 하고 있더군요.
의외였습니다.

16.

붐비는 추모행렬이 줄어들기를 기다려 광장 구석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한 무리의 대학생들을 만났습니다.
선배 열사인 유동훈 열사를 뵈러 종이학까지 고이 접어온 한신대 학생 16명.
사진 한장 찍어도 되냐고 물었더니 처음엔 안된다고 하더니
결국은 웃음을 지어 보였습니다.

이들이 있어 이 신묘역이 그나마 덜 더러워 보였습니다.
물론 이들도 기념식이 끝나고서야 들어왔습니다.


이 신묘역에 침이라도 뱉고 싶은 불경한(?) 마음을 누르고
민주열사들이 있는 구묘역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여기서 'DJ와 그들만의 기념식'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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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여행을 준비하면서 주요 목적지는 광주비엔날레였습니다.
광주비엔날레를 518이 들어있는 주의 주말에 가겠다고 마음을 먹었드랬는데
마침 그날이 5월 18일이더군요.
그때부터 조금씩 여행의 일정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518을 중심으로 말입니다.

01.

5월 18일, 망월동에 있는 518묘역에 가기 위해 전날 묵었던 월출장(inn)을 나섰습니다.
10시에 518묘역에서 있을 기념식(행정자치부 주최)에 가기 위해 월출장을 나서며
망월동을 가는 방법을 물었더니 뉴계림극장 앞에서 타면 된다고
아주머니가 친절하게 일러주시더군요.
늦잠 탓에 밥을 먹기엔 시간이 부족한 듯하고, 이용할 버스 노선도 물을겸
정류장 뒤에 있는 조그만 가게로 들어갔습니다.
오렌지쥬스를 손에 들고 망월동으로 가는 노선을 물었더니
518묘역으로 가는 버스노선이 평소에 비해 무척 자주 있으니
몇번, 몇번을 타라고 일러주셨습니다.
(사실, 전라도말이 들을 땐 인상적이었는데 지금은 전라도말이었다는 것만 기억에 남았습니다.'_':)
오렌지쥬스를 손에 들고 사진 몇장 찍으니 버스가 오더군요.
버스앞 유리창엔 하얀 종이에 '공원묘지'라는 글자가 있었습니다.
그날 하루종일 시내에서 그런 종이가 붙은 버스를 많이 봤습니다.
배차간격이 평소보다 좁다는 것, 그리고 단지 네글자지만 '공원묘지'라는 종이를 붙였다는 것..
광주라는 도시 전체가 5월 18일을 맞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02.

거리에 걸린 태극기를 보면서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서울에도, 부산에도 태극기가 걸렸을까...'

03.

버스표지판을 보니 제가 하루를 묵은 곳이 '대인시장'이더군요.
곽재구 님의 시에 나오는 대인동...

04.

배차간격이 좁았지만, 그래서 버스가 자주 왔다고는 하지만
518묘역으로 가는 버스는 금새 사람들로 가득찼습니다.
광주시민은 물론이며 타지에서 온 대학생들로 말입니다.

05.

버스를 타고 도시의 외곽지역에 있는 518묘역으로 가던 중 10시가 되었습니다.
라디오에서 518민중항쟁 22주년 기념식 방송이 흘러나오더군요.
TV에서도 생중계된다는 말과 함께.
518 영령들을 위한 묵념의 사이렌이 방송을 통해 전도시에 울렸습니다.
그때 옆에 있던 대학생이 버스 손잡이를 잡은채로 눈을 감더군요.
그리고 머리를 숙이더군요.
피곤함을 달래기 위해 눈을 감은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의 친구를 보는 순간 피곤때문에 눈을 감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친구로 보이는 사람도 함께 옆에서 눈을 감고 머리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버스 안에서 묵념을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버스 손잡이를 잡은 채로 말입니다.  

여기서 '518묘역 가는 길'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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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4-'접속'이 전시되어 있는 공간은 다른 어떤 전시관과는 달랐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재래시장통을 걸어가다 보면 공터가 나옵니다.
그 곳에서 보았던 작품으로 추정해보건데 그 공터는 장날이면 장이 서는 공터로 추정됩니다.
하여간 이곳을 지나면 목적지인 도심폐선부지가 나타납니다.

프로젝트4-'접속'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제가 추정해보는 것으로 말입니다^^:,
접속, 그러니까 만남입니다.
전시장소인 폐선부지는 예전에는 광주시민들의 주요한 이동수단이었던 철도를 걷어낸 곳입니다.
그 폐선부지는 현재 어떠한 공간으로 쓸껀가를 고민을 진행 중인 것 같았습니다.
그 고민의 내용 하나 하나가 작품이구요.
폐선부지 활용방안에 대한 고민, 그러니까 폐선부지의 미래도 있었고,
생활의 중심이었던 기억들, 그러니까 폐선부지의 과거도 있었죠.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곳.  그래서 접속이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그런데 사진은 좀 동떨이진 것들을 찍었습니다.
조금 지쳤던 탓인지 장난기가 동해서...^^:

01.

어디서 많이 보던 것이지요?
적어도 바다를 보며 자라온 우리들은 이것이 바다에서 몰아치는 파도를 부수는 기능을 하는 것이고,
그래서 이 구조물이 어울리는 곳도 바다라는 것쯤은 알고 있죠.
그러나 지금 이 구조물이 놓여 있는 곳은 육지랍니다.
찍을때 부터 '육지가 바다라면'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었습니다.
원래는 '바다라 육지라면'이죠?

02.

어.울.리.지. 않.는. 부.조.화.
그러나 과거와 미래라는 반대의 개념이 만나고 융화되는 곳에서
어울리지 않을 것이 무어 있겠습니까.

03.

이건 작품이 아닙니다.  의도된 작품인가?(.. )a
거미에게도 공간이 필요하죠, 집 지을 공간이.
너무나 친환경적이지 않습니까?^^

04.

방명록 같은 용도로 쓰는 노트에 누군가가 써놓았더군요.

"하루종일 보느라 힘들다"
저는 하루 건너뛰어 쉬어가면서 봤는데도 힘들더군요.

"누군가 이야기하더라"
"예술가들은 몽땅 구라쟁이여"
동의하세요?


2년에 한번씩 열리는 광주 비엔날레.
평소에 전시문화를 즐기며 살만큼 여유있게 살지 않는터라
이틀동안 2년치를 몰아서 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름대로 의미를 추측해보고,
작가의 해설을 보고 스스로에게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라고 강요도 해보고..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이해하지 못하면 내가 모자란 것이 아닐까라며 머릴 쥐어뜯으면서 말입니다.

생활하면서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들어보는 기회, 이해하는 시간들이 너무나 적습니다.
내가 내 주장을 남에게 표명, 강요하는 시간에 비하면 말입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이해하고자 애썼다는 그 과정 하나만으로도
제게 의미있는 시간이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광주, 멀게 느껴지죠?
그러나 멀지 않습니다.  
버스표에 표시된 시간은 3시간 55분, 버스 기사아저씨가 과속 좀 하고, 차선 위반 좀 하고
그러면 3시간 30분이면 충분히 가는 거리입니다.
눈 한번 질끔 감고 떠나보세요.

여기서 프로젝트4-'접속', 전체로 `02광주 비엔날레는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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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3-'집행유예'를 찾아가는 길은 멀고도 험난했습니다.
아니 멀지는 않았지만 찾아가는 길이 힘겨웠습니다.
이유는 프로젝트3-'집행유예'가 전시되고 있는 '518자유공원'을 찾기가 어려웠던 탓이지요.
자세한 이야기는 '518자유공원'을 찾아가던 과정에 본의 아니게(?) 들렀던
'518기념공원'관련 글에서 하겠습니다.

'집행유예'는 '범죄자에 대하여 단기(短期)의 자유형(自由刑)을 선고할 때에
그 정상을 참작하여 일정 기간 그 형의 집행을 유예하는 제도'입니다.
그러나 프로젝트3에서 '집행유예'가 가지는 의미는 '정상을 참작하여'부분 보다
'그 형의 집행을 유예'라는 부분에 포커스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형이 '유예'되었을뿐 아직 끝나지않은.
그러니까 계속되는 형벌 말입니다.

프로젝트3-'집행유예'가 전시되고 있는 518자유공원은 광주에서 상무지구라고 불리는 곳에 있습니다.
518 당시 부대가 주둔했던 곳이고 지금은 고양의 일산이나 대전의 유성구처럼,
그리고 부산의 해운대구처럼 신도시로 개발되고 있는 곳입니다.
518 당시 수감시설로 이용되던 당시의 건물들을 쓸어버리고
지금은 아파트들이 즐비한 곳이 되어버렸지요.
이런 세태에 대해서 광주에서도 고민이 많더라구요.
역사의 의미를 불도저로 밀어버리고 난개발을 그대로 묵인 하는 것이 맞느냐, 그렇지 않느냐라고 말입니다.
어쨌든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는 곳은 당시의 상무대 시설을 재현하여 지은 건물들입니다.
상무지구와 집행유예, 이제 더 긴밀하게 느껴지나요?

01.

전시관의 첫 건물에 있는 작품입니다.
518 당시 군법에 의해 시민들을 재판했던 현장을 재현하고 그 속에서 의미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02.

군법관들이 앉았던 곳에서 재판정을 바라본 사진입니다.

03.

518 당시 잡아온 광주시민들을 수감한 시설 입구에 있었던, 아니 있었을 표시입니다.
출입이 '허가'된 자들은 지휘관, 지휘관이 허락한자, 형무장교 및 서기병, 주번사관이었구요,
출입이 '허가'되지 않은 이들은 바로 광주시민들이었습니다.
518 이전까지는 특별할 것도 없었던 광주시민들 말입니다.
이후 이들은 이 나라 언론, 콕 집어 조선일보의 당시 평기자 김대중에 의해서 '폭도'가 되었죠.
그 유명한 김대중 주필말입니다.

04.

가둬둔 광주시민들을 감시하기 위한 시설입니다.

05.

그리고 광주시민들에게 휘둘렀을 '무기'들이구요.

06.

유리로 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앞에 무릎 꿇은 사람들이구요.

07.

있지도 않은 허상, 내용도 철학도 없는 그 유리로 된 사람에게
무릎 꿇었던 시절이 우리에겐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무릎 꿇었던, 그 시대를 힘겹게 살았던 사람들을 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단지 그런 유리로 된 허상 앞에서 무릎 꿇도록 만들었던 사회,
그리고 중간에서 이득이란 걸 챙긴 놈들에게  %$#%!$!#$%$@#.

08.

뜻밖의 만난 첫번째 작품입니다.
어쩌면 이 작품이 끝나지 않은 현대사를 이야기 하는 그곳에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공동생산을 표현, 그래서 이북의 사상을 찬양했다는 해설로 국가보안법 위반의 논란을
일으켰던 신학철 님의 작품입니다.
저는 문제화 된 부분만 잡지에서 봤었는데
그의 작품 전체를 보고 그런 해석이 지나치다라는 결론을 내어올 수 있습니다.
현대사 전체 과정에서, 해방이후의 공간 또는 공동체 문화가 많이 남아있던 시대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를 담고 있는 작품에서 부분, 앞부분만을 강조, 확대해석하여
국가보안법으로 옭아맸던 작품입니다.
저는 그 중에서 우리 역사에서 도려내고 싶은 부분을 찍었습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09.

뜻밖에 만난 두번째 작품입니다.
한때 자신의 누드사진을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 갤러리에 올려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김인규 선생님의 작품입니다.
김인규 선생님의 작품은 일반적인 가정의 안방을 떠올리는 공간을 구성하고 있었습니다.
약간은 촌스러워 보이는 이불도 있고, 화장대도 있고 그리고 화장대 위엔
이러저러한 사물들, 그리고 부부의 사진이 있습니다.

10.

부부의 나체,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완벽한 몸매의 남녀의 사진이 아닙니다.
임신한 그래서 추하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는 나체입니다.
많은 이야기들을 하고 싶지만, 사진에 대해서가 아니라
이런 작품 활동이 용납되지 않는 우리 사회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들을 하고 싶지만 말을 아끼렵니다.
그래도 꼭 하고 싶은 말은,
적어도 예술활동은, 부부생활은 그 모든 것은 김인규 선생님의 생활이고 삶일꺼라는 것입니다.
이 작품은 그 삶에 대한 고민의 과정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함부로 외설이니 어쩌니 이야기 할 수는 없는게죠.

11.

작품들을 둘러보고 나오니 마당 한가운데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더군요.
태극기.
518 당시 조직도, 지도부도 제대로 없었던 광주시민들은 태극기를 그들의 '깃발'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광주시민을, 광주를 짓밟았던 군부대도 태극기를 '깃발'로 삼았겠죠?
그리고 오늘 우리도 여전히 이 태극기를 '깃발'로 삼고 있습니다.

12.

프로젝트4-'접속'이 전시되고 있는 도심폐선부지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프로젝트3-'집행유예'는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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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단체로 관람을 온 아이들이 들어가보고 왁자지껄하길래 저도 들어가보았습니다.
'이게 어디로 통하나...'
그리고 전시관의 공간상 '더 낮은 공간이 있을 수 있나...'하는 의문을 가지고.
그런데 뭡니까.
걸어가는데 머리가 약간 아찔하면서 어지럽더니 머리가 '턱'하고 부딪히는 것이 아닙니까.(__ )a
착시를 이용한 공간이었던게죠.

02.

보시는 바대로 '땐스홀'입니다.
이도 당연히 쉼의 공간, 기쁨을 주는 공간이겠죠?

03.

이건 '땐스홀'의 벽지입니다.
'땐스홀' 답죠?^^

04.

이곳은 전시관 2관과 3관 사이에 있는 공간에 마련된 간이매점입니다.
의도한 바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쩌면 이곳은 제가 프로젝트1-'멈춤'의 주제라고 생각한 것에
가장 충실한 공간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05.

할말이 없네요.
이 철구조물로 만들어진 공간도 공간은 공간이니까.
그러나 이해가... 잘...^^:

06.

올해 비엔날레가 개막할때 특별방송에서 보았던 작품입니다.
유네스코에서 특별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큰 비행기 앞에..

07.

작은 오사마 빈 라덴.
옆에 만지지 마시오라는 표지판처럼, 제발 만지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더 이상 뺏을 것도, 때릴 것도 없는 아프간을 말입니다.('' )

08.

정확한 작품의 이름은 기억이 안나는데
자본주의의 붕괴를 뜻하는, 혹은 바라는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자본주의가 싫어요.
자본주의는 대안이 될 수 없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바입니다.('' )m

09.

제 관람을 때로는 방해하기도, 때로는 즐겁게 하기도 했던 초등학교 단체 관람객.
어디서 왔냐고 물으니까 여수서 왔다더군요.
부러웠어요. 우리는 93년에 '엑스포'같은 걸 봤는데 이 친구들은 어려서 이런걸 보니까요.
어려서부터...

10.

현대사회에서 숫자가 지배하지 않는 공간은 없습니다.
적어도 이 아이처럼 어려서 숫자를 알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11.

'명품'이라는 말이 있지요.
말 그대로라면 좋은 제품이어야 하는데,
우리 사회에선 '값이 비싼' 그래서 '품위유지가 목적'인 제품을 이르는 말로 바뀌었죠.
명품이 즐비한 사회를 이야기 한 작품입니다.
저는 사실 작품 의도, 이런 것 보다는 테디라서 찍었습니다.^^:

여기서 프로젝트1-'멈춤(2)'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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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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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홈페이지의 존재의 이유를 '잡문과 사진을 위한'으로 잡았는데
처음부터 어렵네요.
어떻게 써나가야 할지 말입니다.
그냥 얼마전 광주 다녀온 이야기로 어물쩍 시작할랍니다.^^:

01.

정말로 간만에 떠나보는 가출.
그 사실 하나만으로 흥분해서 출발하는 터미널에서부터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했습니다.

올해 광주행은 올해가 시작되면서 아니 더 이전,
2000년에 광주 비엔날레에 다녀오면서부터 마음먹었던 결과입니다.
처음, 2002년 광주 비엔날레가 이번 가출의 주요목적이었지만
준비하면서 약간 방향이 수정되었습니다.
그래도 이번 가출에서 광주 비엔날레를 완전히 뺄 수는 없었죠.

02.

광주에 도착하자마자 2년전 기억을 더듬어 셔틀버스 정류장을 찾았습니다.
2년이라는 시간이 너무 긴탓일까요?
아니면 2년전 셔틀정류장에 대한 인상이 선명치 않았던 탓일까요?
한참을 헤매서야 찾았습니다.
너무 작고, 높아서 찾을 수가 있어야지요.(__ )a

03.

셔틀 정류장에서 만난 여행자입니다.
그 사람이나 저나 집 떠난 행색이 비슷했기 때문에
서로 눈치를 보며 그 근처를 서성이다 버스가 오자 함께 타게 되었지요.
물론 말 한마디 안나눴습니다.('' ):
(사실, 전시관에서 계속해서 마주쳤기때문에 용기를 꺼내 말을 걸어볼까 하기도 했지만^^:)

04.

바로 이곳이 광주 비엔날레가 열리는 중외공원 전시관입니다.
이곳에서 프로젝트1-멈춤, 프로젝트2-이산의 땅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그럼 안을 들어다 볼까요?

05.

아, 그전에 제가 가장 먼저 한일은 배를 채우는 일이었습니다.
2년전 셔틀정류장은 기억이 안나는데 매점이 어딘지,
그리고 전시관을 돌아보는 일이 얼마나 힘이들고
그래서 배가 고파올지는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보이세요?
삼각김밥.  전라도라 그런지 삼각김방 종류에 '전주비빔밥맛'이 있더군요.^^
뭐.. 그 속은 그냥 고추장에 비벼진 밥이 전부였습니다.
그래도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메뉴다 싶어 한장, 찰칵~

06.

전시관을 들어서며 가장 먼저 마주친 작품입니다.
포장마차를 연상시키는 수레에 컴퓨터, 비디오, 오디오 등등이 얹혀 있더군요.
저런 수레하나 있어도 나쁘지 않겠죠?

07.

프로젝트1-멈춤에서 담아내고자 했던 바를 한마디 말로 줄이긴 어렵지만,
제가 받은 인상은, 그래서 정리한 생각은 바로 '공간'이었습니다.
쉼의 공간, 예술과 창작, 대안의 공간.
그런 공간을 만들어보이고자 했던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제는 그런데 전시관에 앉아서 쉴 공간은 없더군요.(__ )a

08.

동양의 느낌이 물씬나는 공간입니다.

09.

이것도 창작된 대안공간입니다.
자동차는 늘 우리를 어딘가로 데려다주지만, 그것이 주요한 기능이지만...

10.

이렇게 휴식의 공간, 생활의 공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죠.

여기서 프로젝트1 - '멈춤(1)'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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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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