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런던에 오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홀비시티 Holby city라는 병원 드라마를 열심히 봤다.  뉴스는 도저히 알아 들을 수가 없었지만 그나마 드라마는 그림만 봐도 이해가 되니까 즐겨 봤다.  주로 TV를 틀어놓고 얼굴은 노트북이 박고 있었지만.  그러던 어느날도 홀비시티를 보고 있었다.  보고 있었다기 보다는 듣고 있었는데, 켜놓은 TV에서 한국말이 흘러나왔다.  놀라서 고개돌려 자세히 보니 한국말이 맞았다.  한국말이긴 했는데 정확하게는 북한말이었다.  북한 난민인 부부가 샴 쌍둥이를 출산하면서 생기는 에피소드였다.  난민 지위인지라 보통의 케이스와는 약간 달란던 것이다.  그래도 그들 부부는 영국의 의료혜택을 받았다는 그런 에피소드.  그걸 보고 당시 룸메이트였던 아이에게 이야길 했더니 런던에 북한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마침 그 친구 주변에 난민 지위 신청을 한 알바니아 친구가 있어서 룸메이트도 난민에 관해 약간의 정보가 있었다, 북한 사람들을 포함해서.  그 때 그 친구의 말이 한인타운의 식당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북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서울의 식당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조선족인 것처럼.

#02.
이후에 스스로를 북한 사람이라고 이야기 한 사람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나를 보고 일본 사람 또는 중국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더듬더듬 영어로 말을 걸어온 분이었는데 내가 다른 사람들과 한국말을 나누는 걸 보고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한국 사람이냐고.  그렇다고 하니 본인은 북한에서 왔다고 했다.  그리고 직업군인이었다고.  50세가 훌쩍 넘은 분답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왔다.  부산이라 하니 친구들이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에서 일한다고 했다.  속으로 '북한 사람인데 부산 영도는 어떻게 알고, 한진중공업은 어떻게 알아. 간첩아냐?' 했는데, 그랬단다.  북한에서 직업군인이니 그런셈이다.  그 분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탈북한 군인인가보다, 친구들은 남한으로 본인은 제3국으로 왔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나서 안 일이지만 영국에 있는 북한 사람들은 탈북해서 남한으로 가지 않고 곧 바고 제3국인 영국으로 온 사람의 수도 적지 않지만, 남한으로 갔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남한의 여권으로 영국에 체류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안타깝지만, 그런 경우 관광비자로 들어와서 불법체류 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03.
W에 일하면서 북한말을 하는 청년 셋을 만났다.  만났다기보다는 봤다라고 해야 맞는 표현, 통성명을 하지 않았으니.  그냥 조선족이라고 생각했다.  조선족인 경우 국적은 중국인 셈.  그런 경우 여기서 일을 하고 있다면 대부분 학생비자 소지자.  어느날 그 청년 셋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한다는 걸 알게 됐다.  '어떻게?'라고 혼자서 생각하다 매니저에게 물었더니 탈북자란다.  그 이야기 들으면서 '헉'했다.
매니저가 덧붙인 말이 애들이 고생이 많다고.  그 친구들 경우는 남한을 거치지 않고 바로 제3국인 영국으로 와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고 한다.  난민들에겐 생활보조금과 주택이 주어지는데, 그 친구들의 경우는 버밍엄 지역을 배정받았다고 한다.  매니저 말이 생활보조금으로 살아가는 삶이라는 것이 그냥 시간을 죽이는 일, 그 이상도 아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친구들은 그 혜택을 포기하고 런던으로 왔다고 한다.  일하면서 제 힘으로 살기 위해.  W에서 했던 일은 힘은 들지만 배워두면 나중에 일본레스토랑에서라도 일할 수 있으니 열심히하라고 매니저는 그 친구들을 다잡곤 했다, 마치 동생들처럼.  그 이야길 들으면서는 '흑'했다.
그 친구들의 경우는 십대 초반에 탈북해 영국에 오기 전까지 제대로된 교육을 받지 못해 영어가 남한의 또래에 비해서 턱없이 부족했다.  영어 수업도 들으려고 하지만 W에서 하는 일이 고되다보니 그도 쉽지 않다는.  그런 아이들이 월급 날에 월급받았다고 스타벅스에 가서 까페라떼를 사들고 온거다.  마음이 씨려서 목구멍에 라떼가 넘어가질 않았다.
뭘 해줄 수 있을까, 뭘 도울 수 있을까 생각만하면서 그 청년들을 훔쳐봤다.  그러다 트레이닝 기간이 끝나서 나는 더 이상 그 W에서 일하지 않게 됐다.  더 연을 이을 기회가 사라졌지만 그 청년들을 계기로 이곳의 북한 사람들에게 좀더 관심을 가지게 됐다.
겁도 없이 그 북한 사람들을 다큐먼트리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꼭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04.
일년이 훌쩍 지나 내가 집에서 가까운 W에서 일하게 됐는데, 그 브런치로 이전에 봤던 청년이 옮겨 온거다.  일손이 모자라 매니저가 땡겨온 모양이었다.  몇 주쯤 지켜보다 한국말로 인사를 건냈다.  "아 한국 사람이세요?" 반갑게 말을 받는다.  내가 일년 전쯤 다른 브런치에서 봤다고 하니까, 자기는 기억을 못하는데 어떻게 자기를 기억하냐고 그런다.  다른 두 친구는 잘 있냐고 하니, 그건 또 어떻게 아냐며 화들짝 놀란다.  서로 뻔한 이야기지만, 당황스러운 소재일 것 같아서 '탈북자'같은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단지 검은 마음을 품고 좀 친해져야겠다고 혼자서 생각했다.
그 뒤로 볼때마다 반갑해 인사를 해왔고, 나는 틈틈이 그 친구를 관찰했다.  나름대로 외국인 스태프들과 영어 한 마디라도 써볼려고 애를 쓰고 있다는 게 눈에 보였다.  그리고 여자 스태프들에겐 흑기사마냥 나서서 도움도 준다는 것도 눈에 보였고.  내게도 틈틈이 말을 걸어 왔지만, 어느날 나는 내가 겁없는 마음을 먹었다는 걸 진심으로 깨닫게 됐다.  그 친구는 나름 자신을 포장하고 있었지만, 그 친구는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 거칠었다.  참 표현하기 힘들지만, 그 친구의 삶이 너무 거칠어서 감히 내가 다큐먼트리 할 수 있을까 스스로가 의심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론지었다.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거칠고, 내가 책임감 없이 그 친구들의 삶에 뛰어 들어서 할 수 있는게 없다고.  뛰어들 수는 있겠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게 없는거다.  그래서 이 주제는 그냥 엎기로 했다.  더 이상 생각도 하지 않기로 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주제는 이름도 정해지지 않고 엎어졌다.

#05.
한국에서 사진하는 최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영국의 탈북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눈을 반짝이며 '재미있겠다'고.  런던에 왔던 서선배도 그런 반응이었지만 나는 자신이 없다.  그래도 이 소재가 내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서선배에게 넘기고 나는 현지조사로 껴달라고 할까?  왠지 서선배라면 그 사람들을 꺼리로 써먹지 않고 나보다 더 따듯하게 감싸줄 수 있을 것 같다.  FTA 건으로 농촌에 취재가서 농민회 분들과 친구가 된 사람이니까.  정말 서선배에게 넘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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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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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9.10 21:31 Address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토닥s 2011.09.13 18:30 신고 Address Modify/Delete

      되려 맨투맨 친구 하기는 자신이 있지만, 그 이상이 어려울 것 같아 어려워. 또 사진 뒤 ' and then?'에도 답을 찾기 어렵고. 뭐 또 여러가지 문제가 있지. 난민지위로 대중에 노출되는데 제약, 그리고 북한과 남한의 관계 등등 좀 복잡해. 새로운 세기에 간첩이 되고 싶진 않아.

Migration And Refugees by Cath Senker (9780237532727) | Borders

이미지출처 : www.borders.com.au

Cath Senker(2008). <Migration and Refugees>. Evans Brothers Ltd.

 

처음 영국에 오고선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공부를 했다기보다 도서관 구경을 많이 한편이었다.  사진책이나 여행책을 가끔 들여보는게 전부였는데 어느날 발견한 'study'라는 푯말이 붙은 코너에서 내가 읽을 만한 책들을 찾을 수 있었다.  이 코너는 어린이보다 청소년이라고 불러 적당한 세대를 위한 코너다.  학업을 위한 책에서부터 그 시기 한번쯤 생각해야할 이슈들을 다룬 간단한 책들이 있었다.  인권이라든가, 테러라든가, 청소년 임신이라든가, 약물중독이라든가.  물론 그 이슈들도 학업을 돕기 위한 것들이겠지만.  책은 간략한 현상 기술과 생각할 거리, 토론할 거리를 제공하는 형식이다. 

 

내용도, 책이 분량도, 영어수준도 내가 읽기에 적당해 가끔 빌려 읽었다.  하지만 아무리 청소년을 위한 책이라도 영어라는 이유로 내겐 만만하지 않았다.

한국어로 된 책 같이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 탓에 40여 페이지 되는 책을 며칠을 읽었다.  읽다가 막히면 사전을 찾아야 하고, 그렇게 띄엄띄엄 읽다보면 속도감이 붙지 않아 흥미도 떨어져 그렇게 긴 시간이 걸렸다.

 

얼마 전 여행책자를 빌리러 도서관에 갔다가 그때 읽었던 책은 물론 그 비슷한 종류의 책으로 몇 권 빌려 왔다.  한가로운 오후 두 세시간만에 한 권을 읽었다.  영어가 늘었다기보다 영어책을 읽는 요령이 생긴 것 같다고나.  물론 알지 못하는 단어는 사전을 찾아가면서 본다.  하지만 꼭 알아야 할 단어가 아니라면, 의미가 짐작되는 단어라면 사전을 찾지 않고 그냥 읽었다.  그리고 이미 알고 있는 단어라도 중요하게 등장하는 단어라면 정확한 의미를 다시 찾아보며 읽었다.

 

한 때는 이런 책들, 사회적 이슈를 눈높이를 낮추어 다룬 책,을 번역해보면 어떨까 싶었지만, 영어실력도 턱없이 부치지만 한국의 현황을 담아야 할 책이기에 이곳에서 내가 하기란 쉽지도 않거니와 그만큼의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언제나 그렇듯 나는 읽은 책을 소개하는 수준의 역할을 하고, 능력되는 어느 누군가가 그런 일을 해주기를 바랄뿐이다.

 

이 책은 이민(migration)과 난민(refugees)를 다룬 책이다.  기본적으로 개념을 밝히고, 이 개념이 시작된 역사에서 현황까지 다루고 있다.  한쪽 입장에서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Push factor와 Pull factor로 나누어 이민을 가는 사람 입장에서 있을 수 있는 이유, 그리고 이민자가 유입된 국가와 사회의 입장에서 생겨날 수 있는 이유에 관해 서술하고 있다.  물론 모든 것의 양면을 서술함은 물론이다.

어떻게 보면 식민주의 사관(또는 자본주의적 입장)과 인도주의적 입장을 아주 아슬아슬하게 지나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도 있다.  사실 책이 그렇다기보다는 이 문제가 그렇다.

 

개인적으로는 이민자에 관심이 있어 이 책을 골랐지만, 난민에 관해서도 비중있게 다루고 있어 '이런 게 있구나'하고 새로운 영역을 넓힐 수 있는 계기였다.

대체로 이민에 관해서는 자본주의의 관점에서, 그리고 난민에 관해서는 인도주의의 관점에서 서술되고 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단순화할 수 없는 이슈인 것 같다.  우리는 종종 인도주의의 가면을 쓴 신자유주의도 쉽게 만나기 때문이다.

 

영국은 이민에 관한한 어느 나라 못지 않은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식민지 정복의 역사 때문이다.  그 긴 역사 때문에 이민, 이민자문화는 이미 영국의 일부가 되었다.  여전히 사회적 약자지만, 주목할 점은 소수가 아닌 거대한 규모라는 것.  어떤 책에선 이를 두고 'big minority'라고 표현했다.  이 표현에 나는 확 꽂히고 말았다.  사실 우리나라도, 아니 지구상 그 어떤 나라도 언젠가는 영국과 비슷한 모양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국은 이 이슈에 있어서 우리의 미래인 셈이다.  개인적인 결론은 그 미래가 그렇게 밝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있는 동안 꼼꼼하게 들여다볼 생각이다.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예견할 수 있는 부분들은 미리 준비하고 대비해야하기 때문이다.  할 수만 있다면. 

 

이 책의 장점은 개념의 이해를 돕는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는 점이다.  쉽게 풀어 개념을 설명하고, 이를 실제 상황에서 이해할 수 있는 예를 들어준다. 

 

For instance, Suekran Ezgimen left Turkey as a young woman to work in the Siemens engineering factory in Berlin, Gamany.  Now working as a dance teacher, she has settled permanently.  She is an immigant to Germany(and an emigrant from Turkey).


특히 책의 끝부분에 소개된 관련단체 정보, 정보 출처는 더 깊이 파고들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 듬직한 디딤돌이 된다.  개인적으로는 역시 끝부분에 담긴 용어정리(glossary)가 무척 도움이 되었다.  이 용어정리 부분을 통해 정확한 개념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asylum protection for people who had to flee their country because they were in danger.
brain drain the movement of highly skilled and qualified peopel to a country where they can earn more money and live in better condition.
persecution the cruel treatment of people, for example because of their skin colour, religion or political beliefs.
refugee a person who has been forced to leave a country because of war, natural disaster or bad treatment.
trafficker generally, a criminal who deceives peopel into leaving their own country and forces them into illegal work.

 

그 밖에도 차별(discrimination), 반이슬람주의(Islamophobia), 세계화(globalisation)과 같은 개념들에 관한 설명도 유용하다.

 

작은 사물에도 세계가 담겨 있다더니, '이민'을 이해하는데도 역사, 경제, 그리고 정치에 관한 이해가 동반되어야 한다.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슈들을 쉽게 풀어쓰려는 노력들은 계속되어야 한다.  이것은 어린 세대를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무책임하고 무식한 우리(어른)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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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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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호 외.(2006). ≪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 현실문화연구.

국가인권위원회가 만든 두번째 사진 책.
(내가 일하는 곳을 주관하는 ○○위원회와는 근본이 다른 곳이다.)
(나도 이런 책을 엮어내는 일을 하면 신바람나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성남훈, 이갑철, 임종진, 김문호, 박여선, 김중만, 이규철, 최항영, 노익상, 한금선이 사진으로 참여하고
공선옥, 방현석, 이문재, 조병준이 글로 참여했다.

농촌, 이주여성, 장애인,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난민, 독거인, 시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사진과 글로 담겨 있다.
어느 것 하나 인상적이지 않은 것은 없지만
'아-'하고 나도 모르게 신음을 흘려버린 사진은 한금선의 '꽃무늬 몸뻬, 막막한 평화'라는 섹션의 사진이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기만의 영혼을 가진 자, 세상사람들이 정신질환자로 부르는 사람들에 대한 사진과 글이다.

주제가 다르고, 찍은 사람이 다르니 느낌이 고를 수는 없다.
그런데도 뭔가 부족함이 드는 섹션이 있는데.
자의든, 타의든 화려한 생활로 미디어에 조명되는 사람이 찍은 사람의 사진이다.  화려한 사람이 찍은 화려하지 않은 사람들의 사진.  대부분의 사진이 생활 속의 사진인데, 한 섹션만 리터칭을 한, 그것도 스튜디오로 보이는 장소에서 찍은 사진이다.
그런 사진이 기술적으로 완벽해 보이더라도, 초점과 구도가 맞지 않아도 생활 속에서 찍은 사진보다 좋다라는 법은 없는거다.
(뭐래는거야..(o o )::)

처음 책을 펼치고 책장을 넘기며 나도 모르게,
'이건 디지털카메라로 찍었겠지'라고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재수 없어서.(-_- )

그리고,
나도 사진 찍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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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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