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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2.13 [+878days] 아빠들의 착각 (4)

누리를 키우면서, 대하면서 생기는 지비와 나의 차이가 남녀간의 차이인지, 문화간의 차이인지 가끔은 궁금하다.  하루하루 흘러가면서 혼자서 내리는 결론은 서로 다른 문화의 차이보다는 남녀의 차이가 더 크다는 점이다.  적어도 내 경우 그렇고, 특히 육아에서는 더 그런 것 같다.


아이가 울지 않으면 괜찮다.


누리가 한 돌이 되기 전엔 이 문제로 참 많이 다퉜다.  상황은 이렇다.  아이를 두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내가 지비가 퇴근해서 돌아오면 저녁 준비를 하곤 했다.  그러면 지비는 아이를 바운서에 놓고 앉아 휴대전화를 보거나 하며 자기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 나는 아이가 하루 종일 나만 보며 얼마나 지루했겠냐며 좀 놀아주라고 했는데.  그 때마다 지비는 그래야 할 이유를 알지 못했다.  지비의 말은 아이가 울지 않는데 뭘 어떻게 더 잘해 주냐는 것이었다.

이건 몇 번을 반복해도 까꿍 한 번 해주고 마는 식이어서, 지비더러 저녁 준비하라고도 해보고, 저래도 해봤지만 답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누리가 자라면서 퇴근한 지비를 가만히 두지 않는 나이가 되서 이 문제로 다투는 일은 없어졌다.


이 일을 겪으면서 느꼈던 것은 구체적으로 할 일을 던져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건 육아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청소를 하라면 진공청소기로 휙 돌리고 끝.  막대걸레로 바닥을 좀 닦으라면 휙 닦고 끝.  청소기 안 먼지며 쓰레기를 좀 버리라면 그때서야 버린다.  청소하는 지비는 시키는대로 하기는 하지만, 차례로 말해야 하는 나는 입이 피곤하다.  요령이 생겨,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한꺼번에 그리고 구체적으로 말해준다.



아이 놀이를 잘하는 아빠


언니님이 오셨을 때 한국의 할머니가 누리 장난감 사주라고 용돈을 보내셨다.  그 돈으로 기차놀이 세트를 샀다.  그걸 사려고 산 건 아니고, 장난감 가게에 갔는데 그걸 가지겠다고 울고 불고.  "그래 그래 사자"하고 들었다가 누리가 한 눈을 팔 때 슬쩍 두고 왔다.  집에 돌아와서 아마존uk에서 찾아보니 훨씬 싼 가격으로 살 수 있어 집으로 주문했다.  그렇게 해서 가지게 된 기차놀이 세트.  현재까지 가장 핫한 장난감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한 번 짓고 시작한다.




나는 이 기차놀이세트를 받았을 때 상자에 보여지는 예시대로 지어볼려고 애를 썼다.  알고보니 그 한 세트로는 예시대로 지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지비는 상자에 보여진 예시대로 대충 다 해본 다음 창의적으로, 그리고 더 복잡하게 짓곤한다.  전에도 말했지만 이런 면에서의 창의력은 지비가 나보다 낫다.


지비가 돌아오면 둘이서 놀라하고 나는 저녁을 준비하는데, 지비는 열심히 레일을 짓고 누리는 나한테 와서 매달린다.  기차세트 말고 둘이서 놀때는 잘 노는데 유독 기차세트와 블록으로 놀땐 그렇다.  왜 그런지 관찰해보니, 누리가 노는 걸 지비가 도와주는 게 아니라 지비가 놀고 있고 누리는 그걸 방해하고 있다.  지비가 지어놓은 레일을 누리가 손대면 그러지 말라고, 그럼 누리는 흥미를 잃고 내게 달려오는 식이다.  그래서 "지비에게 그건 누리 장난감이지 네 장난감이 아니야"라고 말해줬다.  그것도 잠시,  놀이의 주도권을 다시 지비가 가지고 있다. 

아이들 놀이를 잘하는 아빠는 아이보다 더 잘 만들고, 잘 쌓는게 아니라는 걸 왜 모를까.  우리집만 그런가?



+


언젠가 페이스북에 어떤 님이 나의 육아노동을 치하하며 "그래 옛말에 밭 맬래 애 볼래하면 밭 맨다 하더이다.  그만큼 어려운 육아노동"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 말씀 듣고 "맞다 맞다"하고 손바닥을 마주쳤다. 


누리가 생기고 내가 더 많은 가사 노동을 하는 것 같다.  지비와 함께하는 순간에도.  그건 내가 집에 있기 때문이 아니다.  아이와 한 순간이라도 멀어지고 싶은, 떨어지고 싶은 마음인데 남편이라는 존재는 그 마음을 모르는 것 같다.  안되는 영어로 그 옛말도 설명해줘봤고, 버럭하며 "너는 내가 집안일이 좋아서 하는 줄 아냐"고 이야기도 해봤지만, 남편은 소님.  소귀에 경 읽기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시키면 시키는대로 불만없이 & 해맑게 한다는 점 정도.  답답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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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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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리핀 2015.02.16 14:53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아이돌보기가 빨래하기보다 선호도가 낮은 가사활동이라지요. 지금 읽고 있는(2년째 읽고 있는!!!ㅜㅅ ㅠ) All joy and no fun, 한국 번역제목은 '부모로 산다는 것'. 육아노동보다 해도해도 티 안나는 다른 가사노동이 차라리 나은 듯...

    • 토닥s 2015.02.16 21:00 신고 Address Modify/Delete

      해도해도 티가 안난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건 시작과 끝이 있는데, 육아는 그런게 없어서 지쳐. 24시간 1초 대기 모드.

      all joy and no fun..이라. 갑자기 joy와 fun의 차이가 뭔지 궁금하네.ㅋㅋ

  2. 혜령 2015.03.16 02:24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아빠장난감이 아니라 아이 장난감이라는 것. 당연한 말인데 신선하네요~ 애도 없고 계획도 없지만 배우고 갑니당ㅋㅋㅋ

    • 토닥s 2015.03.16 22:08 신고 Address Modify/Delete

      그렇게 말해줘도 늘 둘이서 싸운다. 결국은 지비가 주도권을 잡고 누리는 내 다리 부여잡고 우는 것으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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