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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6.17 [+637days] 아빠의 시간

지난 열흘 간 누리와의 치열한 대치(?)를 마무리하며 어제 내 마음도 조금 정리가 됐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빠의 시간'인 것으로.  '아빠와의 시간'이 아닌 '아빠의 시간'.


낮잠


갈등의 시작은 사실 낮잠이었다.  누리가 낮잠을 자야 나도 한 숨 쉰다.  누리도 밤잠에 들기 전까지 징징거리지 않고 오후와 저녁시간을 보내려면 낮잠이 무척 중요하다.  열흘 전 쯤 Y님 집에 놀라갔다 왔을 때 그 집의 장난감이 준 흥분이 누리를 잠들지 못하게 한다고 생각했다, 그 날만.  그런데 낮잠을 자지 않으려는 누리는 주말을 넘기고, 월요일부터 일주일 동안 계속됐다.


평소 낮잠을 자던 시간에 나는 누리를 재우려고 했고, 누리는 한사코 거부했다.  내가 멈추지 않으면 날도 더운데 30분이고, 한 시간이고 울었다.  나는 높은 기온과 밝은 창, 그리고 열어놓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깥의 소음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여름을 어떻게 넘기고 가을오고 겨울오면 낮잠을 다시 자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여름 동안 낮잠을 자지 않아도 괜찮은데, 문제는 저녁시간이 되면 몰려오는 피로에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짜증을 내거나 울면서 목욕하고, 너무 피곤한지 울다가 쓰러져 잠들었다.  그런 애를 붙들고 이 닦는게 또 너무 힘들었다.  그러면 누리는 또 운다.

특히 지난 주는 지비가 유난히 집을 많이 비워서 그 시간을 그런 누리를 혼자서 감당하는게 참 힘들었다.


지난 주와 주말을 밖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지비가 월요일인 어제 휴가를 냈다.  누리의 상황을 보고, 평일 2번 가던 운동을 1번으로 두 달간 줄여보는데 전격 합의했다.  그래서 내 마음이 정리가 된 것은 아니다.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어제 21개월 몸무게 체크를 위해 아동센터에 갔다.  보통 엄마들은 12개월까지 열심히 다니다가 잘 가지 않는데, 나는 지금도 권하는대로 3개월에 한 번씩 간다.  누리가 잘 크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때 그때 생기는 문제들에 관해서 물어보기도 한다.  그리고 아동센터에서 헬스 비지터 Health visitor로 있는 조산사들은 개월 수에 맞춘 접종이나 다른 사항들을 환기시켜주기도 해서, 이곳에서 아이 기르면서 물어볼 곳이 없는 나로써는 도움이 많이 된다.

낮잠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어보더니, 보통 밤잠을 잘 못자는 아이들의 경우는 수면장애로 보지만 누리의 경우는 '문제'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이들에 따라서 누리보다 훨씬 어릴 때부터 낮잠을 자지 않는 아이도 있다고.  지금 한참 호기심이 왕성할 나이라 그런 흥미와 긴장이 수면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누리가 낮잠을 자지 않은 며칠 동안 사실 그만큼 밤잠을 일찍자기도 했다.  그래서 수면의 총량에는 문제가 없으며 성장 또한 고르게 증가하는 게 지극히 정상이라고.  그래서 누리는 '그냥 그런, 낮잠을 안자는 아이'인 것이라고 말해줬다.  그렇게 듣고나니, 이제 낮잠을 억지로 재우기 위해서 분투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마음이 편해졌다.


최근 들어 누리가 이닦는 걸 너무 싫어한다.  아래 송곳니가 올라와서 그런가 정도만 생각했는데, 조산사도 이가 나는 아이들에게 '아주 공통되고 흔한'일이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귀가 팔랑귀인지 누군가에게서, 내게는 육아에 있어서는 권위자인 조산사에게서 그런 이야기를 듣고나니 내 마음이 나아졌다.  긴 하루를 보내기가 좀 피곤하긴 하지만, 그래도 누리가 일찍 잠드니 또 저녁에 시간이 생긴다.  지금 같은 시간.

누리는 이렇게 영국 아이가 되어가는 건가 싶다.  저녁 7시면 잠자리에 드는 영국 아이들.


아빠의 시간


열흘 전에 Y님 집에 놀러갔다.  비록 버스를 한 번 갈아타고 가야하긴 했지만, 멀지 않은 거리다.  주변에 아는 (한국)사람이라곤 없었는데 생기니 참 좋다.  Y님에 딸님은 4살이 넘어 병설유치원격인 곳에 들어가 있지만, 얼마 전에 내가 현재 지나가고 있는 시간을 지난 분이라 들을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 날 Y님이 아이들에겐 '아빠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그날 내가 이해한 의미는 좀 달랐다.


Y님 딸님은 알레르기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는데, 그래서 음식에 각별히 신경을 많으 쓰셨다고 한다.  비단 음식뿐 아니라 아이에게 좋은 것이라면 음식이든 놀이든 다 신경을 쓰셨을테다.  어느날 1박 2일 여행에서 돌아오니 아빠가 대충대충 해먹이며 날씨도 좋은데 집에서 나란히 낮잠을 자고 있더라고.

사실 나도 날씨가 좋으면 누리가 원하든 그렇지 않든 밖으로 데려가 산책이라도 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그게 아이에게 좋으니까.  먹거리도 나름대로는 신경을 쓰는 편이고.  내 편의대로 우동이나 간단한 음식을 해먹이면서 죄의식 아닌 죄의식을 느끼는데, 사실 누리는 그런 음식을 더 잘먹는다.  아이에겐 그런 게 재미있는 일탈인 셈이다.


그 날 내가 Y님과의 대화에서 내식으로 이해한 건 아이들에게 너무 잘하려는 마음에 엄마는 애가 탄다는 것이었다.  당연 애들은 알아줄리가 없지.  애들도 엄마가 신경쓰고 차려준 음식도 좋지만 아빠가 해준 대충대충 음식도 가끔은 먹어줘야 한다는 점.  맥도X드가 좋지 않다는 것 알지만, 해피밀 세트에서 받을 수 있는 콜렉션이 자그마한 행복을 준다면 먹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릴렉스형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내 아이에겐 좀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던 것이다. 

누리는 어려서 이러나저러나 상관이 없는데 나만 애가 탔다.  그래서 엄마인 내가 하더라도 아빠처럼'대충대충'도 필요한 것으로, 그렇게 마음을 내려놓기로 했다.  생각처럼 금새 내려지지는 않겠지만, 그러지 않으면 내 몸에 사리가 생길지도 모른다.


어제 지비와 한국슈퍼에 장을 보러 가면서 그런 이야기들을 나눴다.  그때 뒤에 앉아서 잠든 누리.







그래서 어제는 조금 가벼워진 마음과 한국식 간식 & 족발로 깔끔한 마무리.

다만1.  만쥬가 건조했다.  경주황남빵이 그립다.

다만2. 족발보단 순대가 먹고 싶었는데 얼떨결에 집어온 족발.  여기선 처음 먹어봤는데 먹을만 하다.  지비도 좋단다.


그런데, 오늘 또 나에게 좌절의 맛을 보여준 누리.  내일은 다시 희망의 맛을 보여줄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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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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