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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12.19 [+1186days] 학부모 (2)
  2. 2015.11.05 [life] 기름 한 방울의 일기
오늘로 이곳 대부분의 학교들은 2주간의 크리스마스 방학에 들어갔다. 종교재단의 학교들이나 사립 학교들은 지난 주부터 방학에 들어간 곳도 제법된다. 종교재단의 학교들이 크리스마스를 맞아 방학이 긴 건 이해를 하겠는데(이곳들은 부활절 방학도 길다), 수업료가 비싼 사립학교들이 긴 방학을 하는 건 이해가 안간다면서 지비와 웃었다.

누리가 가고 있는 어린이집 역시 학교와 같은 시스템으로 운영되기에 오늘로 2주간의 방학에 들어갔다. 오늘은 이번 학기의 마지막으로 오전/오후 반 아이들 모두 모여 캐롤을 부르고 부모들이 준비해온 점심을 먹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갈까 말까를 끝까지 벼르다 마지막에 누리에게 좋은 경험이 되길 바라며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유일하게 있는 다른 한국 엄마가 파전을 준비해간다고 음식 리스트에 적었길래, 나는 베이컨과 각종 채소가 들어간 치즈 번을 구워갔다.

일단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정신이 없었다. 더군다나 3~4살 아이들이니 통제불가. 그런 와중에도 틈틈히 스토리타임에 불러온 캐롤들을 부르고 야외 가든(놀이터)에서 점심을 먹었다. 요즘 이곳 날씨는 11~13도라 상쾌한 느낌이었다.
역시나 아이들은 먹는 건 뒷전이고 평소처럼 뛰어다니며 놀았다.

그런 와중에 한 아이가 어제 누리가 장난감으로 때려서 머리에 상처가 났다며 그 아이와 그 아이의 엄마가 내게 와서 말했다. 정말 미안하다고 하고서 나중에 선생에게 물어보니 그 사고는 누리가 아니라는 다른 아이였다고. 다친 아이가 헛갈린 모양이라는데, 이미 그 아이와 엄마는 내 시야에서 사라진 뒤. 그런데 극적으로 어린이집을 나서기 전 그 엄마를 다시 만나 이야기하니, 그러면 이번엔 누리에게 미안하다며 하.하.하. 웃으며 갔다. 그 동안 내 입술을 바짝 말랐네.

+

음식은 뒷전인 누리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노는 동안 나는 사람구경을 했다. 정확한 비율은 아니지만 이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은 크게 4가지 그룹이다, 내 생각에.
첫번째 그룹은 영국 아이들, 두번째 그룹은 부모들이 스카프를 쓴 무슬림 아이들, 세번째는 폴란드 아이들, 네번째는 나머지. 앞의 세 그룹 아이들의 부모들은 각자의 언어로 이야기하니 별로 끼어들 틈이 없다. 누리는 아빠가 폴란드인이지만 내가 한국인인 관계로 네번째 그룹에 속한다. 특히나 내가 폴란드어를 못하니.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서서 아이들 마치는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일본 엄마들하고 안녕-안녕 인사 정도만 한다.

오늘 헤어지면서 그 중 한 엄마와 연락처를 주고 받았다. 그나마 자주 이야기하는 엄마였지만, 내가 좀 벽을 세우고 있었던 것 같다. 같은 방향 길을 가다 헤어지는데, 내 이름과 누리 이름을 종이에 적어 달라는 것이었다. 들어도 잘 모르겠다고, 글자로 보면 외워질 것 같다고. 아주 소극적인 사람으로 보였는데 그런 용기(혹은 적극성)에 내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름과 함께 연락처도 적어주었다.

+

여행 다녀온 기간을 빼면 4주 정도 어린이집을 다녔지만, 그 기간 동안 누리가 많이 자랐다. 잘 모르는 영어로 누리를 지비에게 대화를 시도한다. 내게 짧은 자유 시간이 생겼다는 것 외에도 누리가 저녁을 잘 먹는다는 점 그리고 쉽게 잠든다는 점이 장점이다. 예전엔 책 열 권쯤 읽어도 힘들게 재웠는데, 이젠 책 세 권만 읽으면 자기가 자겠다고 돌아눕는다.
누리가 어린이집에서 노는 걸 보면서 이 아이가 어떤 게 장점인지, 단점인지도 보게 되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내 아이만 보면 안되는데, 아직은 그 시야가 넓혀지지 않는다. 아이가 자라는 만큼 나도 좀 자라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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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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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프라우지니 2015.12.26 09:54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누리가 조금씩 크는 모양입니다. 잠잔다고 돌아누울때 엄마가 조금 외롭게 느끼시는건 아니죠? 방학이라 조금 편한 나날이 되실거 같습니다.^^

    • 토닥s 2015.12.28 07:52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아하하.. 그럴리가요. 자겠다고 돌아누우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방학이라 잠시도 쉴틈이 없는 하루하루가 이어지고 있지만 누리는 매일매일이 즐겁습니다. 그게 정말 다행이지요. :)

런던의 물가는 여행객들에게만 비싼 것이 아니라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그렇다. 차이라면 여행객들은 며칠 아끼다 가면 그만이지만, 이곳 사람들은 그냥 살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가끔 내 블로그에 등장하는 이웃가족과 우리가 함께 커피를 마신적이 있다. 누리가 백일도 못되었던 때. 지하철역 근처 프렌치 까페에서. 그때 이웃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 자기는 "이 곳(우리가 살고 있는 옆동네)이 참 좋다"고, "이 곳에서 쇼핑을 하고 차를 마시면 나도 마치 부자가 된듯한 기분이 든다"고. 그리고 "이 곳의 채리티 숍에 가면 부자들이 내놓은 헌 옷을 아주 저렴하게 살 수 있다"면서.

그 때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이상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부자가 된 기분이라니'. '우리가 부자가 아닌데 무슨 소용이람'하고 잘라서 생각했다. 아니 잘라서 생각했다고 생각했다.

한국에 다녀와서 누리가 만 3세 이후 9월이 되면 갈 수 있는 학교 부설 어린이집에 들어가기 이전에 갈 수 있는 어린이집을 열심히 알아봤다. 한국에 가기 전에 몇 군데 신청서를 던져놓고 갔고, 돌아와서는 뷰잉을 했다.
정부에서 만 3세 이상은 15시간 무료 돌봄/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 그런 줄 알았다. 과정생략하고 말하자면, 정부(기초자치) 부설은 그러한데 자리가 없고, 사설은 '내부 규정'이라는 것이 있어 약간의 할인을 받을 뿐 1시간도 무료가 아니었다. 정부 보조를 받아 6시간 혹은 10시간(일주일에 이틀) 맡기는데 한 달 대략 3~400파운드 정도가 든다. 집주변의 어린이집들이 그렇다.
이 현실을 마주하고 깜짝 놀랐고, 그럼에도 사설도 받아주는 곳이 없다는데 놀랐다. 개인적인 느낌은 사설은 정부 지원을 받는 만큼만 아이를 맡기는 사람들에겐 자리를 잘 주지 않는다.

동네마다 다르니까 영국이 그렇다고 일반화 할 수는 없다. 같은 런던의 동북쪽에 사는 지비의 사촌형에게 우리가 마주한 현실에 대해서 이야길하니 놀랄 정도니.

며칠 이 현실이 나를 끌어내렸다. 내가 살고, 생활하고 있는 이 곳에서 내가 마치 동동 뜬 기름 한 방울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제서야.
흙에 작은 씨앗 하나 밀어놓고 물만 열심히 주면 싹이 자라듯이 아이가 자란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몰라도 너무 몰랐구나 하는 생각도 이어서 들었다.

정신차리고 내년 9월 학교 부설 어린이집 자리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이틀 동안 인근 학교들에 서류를 내밀었다.
오늘 오후 어느 공립 학교에 들러 서류를 내고 장을 보러 가는 길에 골목골목 들어선 사립학교에서 하교하는 아이들과 부모들의 뒷모습을 봤다. 예전과 다르게 그들과 나 사이가 아주 멀게 느껴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때때로 나랑 지지고 볶아도 누리가 아프지 않고 자라고 있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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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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