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닌'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3.11.19 [book] 전쟁의 슬픔 / 바오닌
  2. 2003.11.06 [etc.] '전쟁에 대하여 생각하다'



바오닌(1999). <<전쟁의 슬픔>>. 박찬규 옮김. 서울 : 예담.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과 닮은 책이다.
이른바 지난 시절에 대한 소설들은 그것이 푸념이거나, 후회이거나, 변명이거나, 과장이기 쉽다.
그러나 황석영의 소설이 그랬던 것 처럼
<<전쟁의 슬픔>>에서는 그 시대를, 베트남전쟁을 살아야 했던 젊은이들을 그리고 있다.

작가 김남일의 말처럼,
이 소설은 <<사이공의 흰옷>>처럼 단단하기만 한 베트남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전쟁으로 '황폐'라는 단어 조차 사치스러울 것 같은,
회복 불능토록 부서져버린 베트남과 베트남 사람들을 보여줄 뿐이다.
부서진 것은 건물만이 아니다.
부서진 것은 그들의 삶이다.

전쟁이란 그런 것이다.
누군가의 승리와 누군가의 패배가 중요하지 않다.
모두가 부서져 버릴 수 밖에 없는 것이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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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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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話頭)1'에 이어서 씁니다.


01.
읽기 전에

베트남은 10세기부터 독립왕국을 이루었으나 19세기에 프랑스 식민지가 되고, 20세기 전반에는 일본의 침략을 당한다.

1941년 호치민이 주도하여 베트남독립동맹(베트민)을 결성하고 일본군과 싸우다, 45년 일본이 연합국에 항복하자 베트남민주공화국의 독립을 선언한다.  제2차 세계대헌 기간에 독립을 약속했던 프랑스는 태도를 바꾸어 이를 인정하지 않고, 그 결과 이듬해부터 54년까지 베트남과 프랑스는 제1차 인도차이나전쟁을 치른다.

1954년 5월 7일 프랑스군의 거점인 디엔비엔푸를 함락하면서 독립한 베트남은 7월 제네바휴전협정에 따라 북위 17˚선을 경계로, 베트남민족인민저선(베트민의 후신)이 주도하여 하노이가 수도인 북베트남과, 프랑스군의 지휘를 받던 베트남인들이 주도하며 사이공이 수도인 남베트남으로 나뉜다.  이에 수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남으로 혹은 북으로 향했다.

제네바협정은 남북 베트남을 통합하기 위해 56년에 국제감시위원회의 감독 아래 베트남 전역에 걸쳐 자유선거를 실시하도록 했다.  그러나 남베트남의 고 딘 디엠 총리가 이를 거부하고 경찰정치를 펼치자 제대군인과 지식인들이 베트콩(Viet Nam Cong San)을 결성, 게릴라전을 전개한다.  베트콩은 1960년에 베트남민족해방전선(NLF)의 군사조직이 된다.  북베트남은 1959년 조직으로 이들을 지원하기 시작, 라오스·캄보디아 국경을 따라 남베트남에 이르는 호치민로 건설에 착수한다.  사회주의 체제인 북베트남 주도로 베트남이 통일되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이 개입힌다.  이것이 제2차 인도차이나전쟁, 곧 '베트남전쟁'이다.

1961년 1월 캐네디 대통령은 비전투군사요원을 파견하여 이른바 '특수전쟁'-게릴라전·비밀전(정보수진·선전·파괴활동)을 전개한다.  64년에 미군 구축함 매독스호가 북베트남의 초계정들에게서 사격을 받았다는 이른바 통킹만 사전이 일어난다.  뒤에 미 국방부의 베트남비밀보고서(펜타곤 페이퍼)가 폭로됨으로써 미국의 조작이었음이 드러나지만, 당시 존슨 대통령은 이 사건을 계기로 북베트남 폭격명령을 내린다.  이때부터 전투부대가 투입되기 시작하여, 1969년에는 참전미군 규모가 최대 54만 9500명에 이른다.  우리나라도 파병, 그 인원이 모두 31만이 넘었다.

베트남전쟁은 동원병력·사상자 수·항공기 손실·사용탄약량·전쟁비용 면에서 제1차 세계대전을 웃돌았고, 사용탄약량·투하폭탄량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의 규모를 훨씬 넘어섰다.  역사상 가장 큰 파괴전쟁이었다.

1968년 1월 30일 북베트남군과 NLF는 무신년 뗏(음력설날)을 기해 대공습을 감행한다.  그 전해부터 미국내의 반전운동이 힘을 더해갔고, 미국정부는 남베트남 반군을 진압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점점 잃게 된다.  파리에서 평화회담이 시작되고, 73년까지 회담이 지지부진하게 진행된 끝에 미군과 외국군이 철수한다.

1975년 NLF와 북베트남군은 총공세를 시작, 4월 30일 남베트남정부는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고, 사이공이 함락된다.

1976년 남북베트남통일국회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국가를 선포,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이 성립한다.  수도는 하노이로 정하고, 사이공은 호치민 시로 이름이 바뀐다.

- 바오닌의 <전쟁의 슬픔>



02.
개인적인 관심과 애정이기도 한 베트남, 그리고 베트남전쟁.
베트남전쟁이 오늘날 나에게 유효한 이유는
그 모습이 지금 이라크전쟁과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 한국전쟁과도 너무나 똑같이 닮은 꼴이다.


03.
'베트남전의 베트남화'전략은 1968년 1월 30일 북베트남과 비엣공들의 '구정대공세'이후 미국이 베트남전쟁에서의 승리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비로소 인정하고 추진한 전략이다.
미국은 1964년 8월 2일 이른바 '통킹만 사건'을 조작해 북베트남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고 나서, 늦어도 1965년 말까지 전쟁을 끝낼 수 있으리라 장담하고 있었다.  최초의 전쟁전략은 이른바 '베트남을 구석기시대로 돌려놓겠다'는 '대대적인 융단폭격 전략'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초토화 작전에도 불구하고 북베트남과 비엣공들의 기세가 전혀 꺾이지 않자 미국은 1966년에 접어들어 '평정작전'이라 불리는 '강력한 전략촌 계획'을 추진한다.  
초토화작전의 실패가 비엣공들과 주민들의 교류 때문이라고 판단한 미국은 주민들을 '전략촌'이라는 '집단강제수용소'에 수용시키고, '전략촌' 외의 지역은 '자유살상 지역'으로 선포해 전략촌 입촌을 거부하는 주민들을 비엣공으로 간주, 무차별적으로 살상한다.

- 반레의 <그대 아직 살아있다면>



04.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태백산맥>에도 '부락 소개 작전'이라는 것이 나온다.
빨치산과 주민들의 교류를 막기 위해 부락을 이전시키는 것이다.
살 곳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았음은 잠시 뒤로 미루고.

1952년 당시 강제 이전을 거부한 사람들이 빨치산과 교류, 이른바 내통한 사람들인지 아닌지 지금의 나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아마도 그들이 땅을 일궈 먹고 사는 농민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1966년 전략촌으로의 이주를 거부한 베트남 사람들 또한 비엣공이 아니라 다수가 농민이 아니었을까?

어쨌거나,
'베트남을 구석기시대로 돌려놓겠다'는 미국의 오만함에 치가 떨린다.


05.
얼마전 KBS 1TV <일요스페셜>에 한국이 파병하려는 지금 바그다드의 모습이 나왔다.
미군은 게릴라 토벌, 치안유지를 하면서 아이들에겐 학용품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마침 학교를 마친 아이들은 거의 모두 미국과 이라크의 국기를 배경으로 맞잡은 손 그림이 있는 똑같은 가방을 메고 있었다.
그 가방 속에 든 노트며 다른 학용품에도 같은 그림이 있었다.
이런 학용품을 주니 미군이 좋지 않냐는 물음에
미군에게서 그 가방과 학용품을 받았다고 말하는 아이가 말했다.

"낮에는 좋지만 밤에는 싫어요."

파병을 지지하기 전에, 아니 파병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전에 한번쯤 지난 역사를 돌아보았으면 한다.
꼭 지난 역사가 아니어도 지금 바그다드를 뚫어져라 바라보았으면 한다.

바그다드, 그곳에서는 수많은 이라크인들과 미국의 젊은이들이 죽어가고 있다.
미국의 젊은이들도 이제는 고향,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한다.


여기서 '전쟁에 대하여 생각하다'는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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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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