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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5.15 [+969days] 핑크본능 (5)
지난 화요일 이웃이 딸을 데리고 차를 마시러 왔다. 동네 놀이터에서 만나기로 하였는데 내가 몸이 아파 집으로 왔다. 이웃은 막 아이의 신발 쇼핑에서 온 길이었는데 노란색 새 신발을 벗기며 쇼핑에서의 실랑이를 이야기했다. 이웃도 나처럼 핑크는 피해가려는 입장인데 아이가 핑크가 아닌 것은 신어보지도 않으려고 해서 억지로 노란색을 신겨 구입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이야기가 멀지 않은 나의 미래, 혹은 이미 현실로 다가왔다.

핑크를 좋아하는 여자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볼 때 사실 '왜 그렇게 키웠을까' 싶었다. 그런데 내가 딸이 생기고보니 이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반강제다.

누리가 아기 때 옷을 사려고 보면 남아용 파랑, 여아용 핑크, 공용 (대체로) 회색 또는 (가끔) 노란색이다. 한번쯤 공용을 사보긴 하지만 같은 스타일의 옷도 공용이 1~2파운드 더 비싼 것이다. 이유는 알 수 없다. 옷을 선물 받은 일이 별로 없지만 있다면 90%쯤은 핑크 계열.
아이용 가구만 해도 그렇다. 놀이용 테이블을 사려고 하니 파랑과 핑크 그리고 흰색 밖에 없어 한참을 망설이고 미루었다. 아이용 가구니까 흰색을 가급적 피하려고 했다. 그러다 같은 디자인에 연두색이 추가 되어 냉큼 샀다. 얼마 전엔 누리 침대와 서랍장을 샀는데 역시 색상은 파랑과 핑크뿐. 한참을 미루어도 새로운 색상은 나오지 않고, 그렇다고 핑크를 피해가고자 파랑을 사자니 그것 역시 지나치다 싶어 그냥 핑크로 샀다. 놀라운 건 누리의 반응이다.

누리는 아직 '블루'라는 단어는 알지도 못하는데 '핑크'는 안다. 그리고 (나로써는 문제인데) 핑크를 좋아한다. 같은 물건이라도 다른 색상을 손에 쥐어주면 핑크를 외치는 누리. 거참 이상하다 싶다.

옷을 살 때 하도 아들이냐 물어서 파랑과 핑크 중에서 사야한다면 핑크를 사기는 했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핑크는 피하고, 옷 스타일도 너무 소녀스러운 것은 피했다. 그런데 집을 나설 때 누리는 서랍장에서 가장 소녀스러운 것들을 골라와 입겠다고 한다. "프리티 프리티 pretty pretty(예쁜 것 예쁜 것)" 외치면서. 주로 핑크 혹은 붉은 색상 계열. 그리고 원피스 등등. 처음엔 '애가 왜 이런가?' 생각도 했다가 '너무 피한 반작용인가?' 하고도 생각했는데 알 수가 없다. 영국 아이들 프로그램엔 여자 아이들이 주요 캐릭터로 많이 나오지만 특별히 소녀적인 캐릭터들이 아닌데 어디서 영향을 받은 것일까.

핑크는 여자 아이들의 본능인가?

심지어 오늘은 우유를 핑크 컵에 마시겠다고 난리. 우리 집엔 핑크 컵이 없다. 이유식 통이 절반은 파랑 절반은 핑크였는데 아직도 그 용기들을 냉동용으로 수납장에 넣어놓고 쓰고 있다. 수납장을 열고 닫을 때 본 것이다. 결국은 그 이유식 용기에 우유를 담아 마셨다.




처음엔 핑크가 유전인가 생각했지만 내가 물려준 게 없으니 유전이랄 수는 없고 본능인 것 같다. 사회적 본능. 알게 모르게 가랑비처럼 스며든 본능.

아.. 어쩐다.. 나는 싫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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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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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yul 2015.05.16 19:19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안녕하세요! 정말 오랜만이죠? 잘 지내셨어요?
    저는 바쁜일들이 하나하나 정리가 되고 있어서 오랜만에 블로그 여기저기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어요...^^
    그나저나 핑크, 공주옷, 뽀로로에 대한 본능은 어쩔수 없다는 친구들의 말이 생각이 나네요...
    우리집에 절대 캐릭터상품따위는 없다는 굳은 결심도요... ㅎㅎ

    • 토닥s 2015.05.19 20:40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사실 제가 캐릭터를 좋아하는 편이예요. 아주 사모으거나 하지는 않지만, 아마 경제력이 됐다면 그랬을지도요. 되려 아이가 생기면서 캐릭터를 좀 멀리했고, 또 아이들용 캐릭터(?) 상품은 좀 유치하기도 해서 멀리했는데.. 아이들의 본능과 캐릭터의 상술의 조합은 정말 강력해요. 여기서도 한국 마트에 가면 뽀로로, 로보카 폴리 뭐 그런 것들을 파는데요. 그래서 누리도 벌써 뽀로로 도시락 통과 물병을 가지고 있답니다.ㅋㅋ 뽀로로 젓가락은 한국에서 영국으로 오는 중이고요. 그런 상품들로 인해 아이가 밥 한 술 더 먹기만 한다면 아예 세트로 사주고 싶은 마음이예요. 누리에겐 그런게 조금 효과가 있긴 한 것 같아요. :)

  2. 유리핀 2015.05.17 08:01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그 여자아이들과 그 애들의 핑크 물건을 쭉 늘어놓고 찍은 핑크 프로젝트라는 사진 작업했던 사진가가 10년쯤 후에 같은 애들을 찾아가 다시 작업했는데 그땐 물건들의 색상이 아주 다채로웠대요. 어느 정도는 한때가 아닐까 싶어요. 주변 애들 보면 사실 핑크핑크 하는 것도 얼추 초등학생 나이대에서 끝나는 듯 하더라구요. 그래야 해;; 핑크 일색은 사실 보기 지겨워서라도요;;

    • 토닥s 2015.05.19 20:43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올해 초등학교 학생 학부모가 된 친구가 (페이스북에서) 그래.. 이젠 딸이 핑크는 '유치하다'고 다른 색만 찾는데. 정말? 정말? 하고 팔짝 뛰며 좋아했다는.

  3. aquaplanet 2015.05.20 03:47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여자=핑크, 남자=블루.. 사회적으로 자연스럽게 심어주는 관념인 것 같아요. 하지만 자기만의 스타일이 생기면서 크면 자연스레 다른 색에도 관심가지기 시작할 거에요~ 저 자신도 그랬고 조카들만봐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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