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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1.08 [article] 인터넷한겨레 : '관찰-판단-실천-성찰'

새해 벽두부터 '옳거니'하고 무릎을 친 컬럼이었다.  
현실운동은 관찰과 성찰 없이 판단과 실천만 존재한다고 말했지만 과연 제대로 판단은 하고, 실천은 하기는 하는 건지 현실운동에 되묻고 싶다,
그리고 내게도.

[야! 한국사회]
성찰 없는 운동의 위험



우 리 사회에서 시민사회운동, 민중운동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되는 사례는 일일이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고, 정부와 민간의 구분이 모호하게 여겨질 정도로 인적교류도 활성화되어 있다.
그런데 운동 내부는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새해가 되었지만 민주노총, 전교조 등은 여전히 비상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도부 사퇴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더라도 비상한 상황에 놓인 조직 역시 한둘이 아니다. 커진 영향력만큼 실속을 갖추지 못하고, 관성의 위험을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관성은 진보와 짝하지 못한다.

운동은 기본적으로 관찰-판단-실천-성찰의 고리가 있어야 한다. 대응이 필요한 사안이 생기면 실천 이전에 판단이 선행되어야 하고, 판단을 위해서는 충분한 관찰이 필요하다. 실천 이후의 성찰이 꼭 필요한 것은 강조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운동은 관찰과 성찰 없이 판단과 실천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관찰과 성찰이 없으니 장기적인 전망이 있을 리 없다.

2004년 연말 국회의사당 주변을 가득 메웠던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은 어느새 증발해버렸다. 프로그램 없이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기대 국면만 보고 덤벼든 결과이다. 국가보안법과는 결코 한 하늘 아래 살 수 없다며 결의를 모으고 무려 1천여명이 단식농성을 했지만, 국가보안법에 대한 문제제기는 지난해 내내 거의 없었다.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이 차지했던 자리는 1년 뒤 농민사망사건에 대한 규탄 투쟁의 몫이 되었다. 지나간 1년을 돌이켜보면 정권이나 자본 등 상대방 실수로 시작된 국면을 파고들어 겨우 한 두 사람 문책하거나 또는 일방적 국면을 논란의 수준으로 만든 것이 전부가 아닌가 싶다. 우리가 의제를 만들고 그 의제를 중단 없이 집요하게 밀어붙여 기제를 바꾼 것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지난 한해의 성적표는 초라하기만 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싸우나 의심스러운 정파 간 싸움이 어느 때보다 가열되었던 것도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운동가들이 커진 영향력만 향유하려고 했지, 그에 맞는 책임의식을 갖고, 진정성을 갖고 지혜롭게 노력했던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연대 운동의 관성은 치명적으로까지 여겨진다. 어떤 사안이든 내용에 관계없이, 뜻을 함께 한 단체의 수가 많아야 일을 풀어가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팽배해있다. 관성의 전형이다. 수백개 단체가 뜻을 모았다는 기자회견이나 집회에 가보면 만날 보는 그 얼굴의 반복이고, 그나마 십수명을 넘는 경우는 드물다. 개별 단체들은 하도 많은 성명에 동참한 탓인지, 어떤 성명에 참여했다는 것은 아예 사업보고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내용 파악도 어렵고, 너무 많아서 정리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엄중하지 않은 시국이 없고 절박하지 않은 사안이 없겠지만,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운동방식으로는 정부, 국회는 물론 운동을 지원하는 선의의 시민들마저 설득할 수 없다. 우리 운동하는 사람들이 박봉에 고생한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이 이해되는 상황은 이미 넘어섰다. 우리에게도 엄연한 책임이 있고, 대중 앞에서 외치는 구호는 좀 더 정밀해져야 한다. 상대방의 실수에 기댄 투쟁보다는 우리가 만든 우리의 프로그램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개혁이 구호나 이념으로만 존재하고 구체적인 실행은 없다는 것이 노무현 정권에 대한 비판의 기조가 되고 있다. 우리는 노무현 정권과 어떻게 다른지 우리 자신을 성찰하며 새해를 시작해보자. 오창익/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인터넷한겨레 2006/01/01)

http://www.hani.co.kr/kisa/section-008003000/2006/01/008003000200601012113232.html


그의 컬럼에 충실하여,
현재로서 빈약한 관찰과 성찰은 누구에 몫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현장의 활동가들은, 그리고 민중들은 그럴 겨를도, 능력도 모자란다는 것이 이 컬럼을 두고 이야기나눈 언니의 생각이다.  맞는 말이다.  그렇다고 활동가들이나 민중들을 폄하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 몫은 학자라 불리우는 집단의 몫이라는 생각이 든다.  

학자는 그것이 자연과학이든 사회과학이든 사회의 요구와 동떨어져서는 안된다.  줄기세포도 사회적 요구가 없었어봐라.  논문조작까지 저질러가며 황교수가 만들어냈겠느냔 말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학자 집단은 물에 뜬 기름처럼 사회 속에, 대중 위에 군림하려할 뿐 스스로가 사회의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데 동조해야하는 이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생각을 못하고 있다.  
그러니 이 모양인 거지.

그런데도 내게 공부를 계속할 꺼냐고?(__ )( __)


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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