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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03.23 [film] <송환> : '아주 특별한 기억'

송환(Repatriation,2003)
148분 / 다큐멘터리 / 한국
감독 : 김동원
출연 : 조창손, 김선명, 김영식, 류한욱, 김석형
공식홈페이지 : http://www.songhwan.com





서울에 있는 며칠 동안 나는 나대로, 친구는 친구대로 바빠서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친구가 영화 <송환>을 보자고 하여 볼 일은 목요일에 끝났지만
하루 더 머물며 금요일에 개봉하는 영화를 보기로 하였다.
집으로 얼른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그런 생각은 언제 그런적이나 있었냐는듯 싹 사라지고 없었다.

비전향 장기수들의 송환
영화 <송환>은 감독 김동원의 아주 특별한 기억이다.
92년 비전향 장기수 어르신들이 출소 후 감독이 살고 있던 봉천동에 살터를 잡으면서
감독의 '습관'과도 같은 촬영이 시작되었다.
어르신들과의 만남 이후 12년 동안 테입 500여 개 분량이 찍었고
그 기록은 감독의 아주 특별한 기억이 되어 영화 <송환>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감독은 '왜?'라는 질문을 던졌다.
29년, 30년, 44년, 45년에 이르기까지 그 긴 세월을 왜 전향하지 않고 감옥에서 보냈냐는 것이다.
어르신들의 답은,
'정치적 신념'과 '민족·민중을 위해서'였다.
감독은 그 답을 공허하게 받아들였다.
오히려 감옥에서 인간성이 말살된 살인적인 폭력이 그 긴 세월을 버티게 만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더 공감했다.

7.4 남북공동성명, 그것은 비전향 장기수들에게 희망이라기보다 절망이었다.
성명 이후 서로 체제 우월 과시를 위해 정권은 전향공작에 더욱 힘을 쏟았으며
'비전향 장기수'와 '국군포로'라는 존재도 냉정하게 부인했다.
전향공작은 살인적인 폭력 그 자체였으며
그 과정에서 많은 비전향 장기수들이 전향하였고, 또 사망하였다.
비인간적인, 살인적인 폭력이 오히려 '오기'를 끄집어 올렸다.
그래서 그들은 30여 년이 넘는 세월을 버텼고, 그렇게 살아남았다.

감독이 '후회는 없는지' 또 물었다.
임종을 앞두고서도 '당과 조국에 임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는 어르신의 말씀 앞에서
자신의 질문이 얼마나 부질없는가를 알게 되었다.

멀게만 느껴지던 어르신들의 송환은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을 계기로 급물살을 타게 된다.
그리고 어르신들은 그렇게도 가고 싶은 고향, 또는 정치적인 고향으로 돌아갔다.


영화 <송환>
◁ 김선명 선생님

영화 <송환>을 보면서 나는 끊임없이 영화 <선택>과 비교했다.
혹시나 영화 <선택>에서 보는 이의 마음을 터지게 만들었던 장면이
역시나 영화 <송환>에도 나왔다.
비전향 장기수로 45년간 감옥살이를 하고 나온 아들에게
병석에 누운 노모는,
'그러길래 애미말을 듣지'라고 말한다.
한번 보았던 장면이라 터지려는 마음을 지긋히, 그러나 힘겹게 누를 수 있었다.

  ◁ 김영석 선생님

폭력적인 전향공작을 버티지 못하고
결국은 전향하고 만 어르신이 불만이 있으시단다.
이 땅에 아들들은 모두들 '나이팅게일'처럼 거룩하게 길러야 한단다.
아마도 어르신에게 나이팅게일은 마냥 착할 것 같은 천사의 이미지인가보다.
그리고 구두 만드는 사람들은 구두코를 '몰랑몰랑'하게 만들어야 한단다.
구두코에 어찌나 까였던지 아직도 얼룩진 정강이를 보이시면서 말이다.

◁ 마지막 여행

어르신들은 송환을 앞두고 이남땅을 여행하셨다.
"김선명 선생 장가가야지~"를 반복하시면서 마냥 즐겁다.
그러나 어르신들의 송환은 남는 자와 돌아가는 자 사이에 갈등을 만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그들은 '돌아갔다'.  그들이 왔던 곳으로.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후배와 친구가 송환되고 난 이후
어르신들의 생활을 담은 인터뷰에서 '행복합니다'라는 말이 거슬렸단다.
정말 행복해서 행복하다는 것인지, 누군가 행복하다고 말하래서 행복하다는 것인지
의심이 갈만큼 똑같이 행복하다는 어르신들.
누가 시켜서 그런 말을 했건, 그렇지 않건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는 영화를 보고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남녀가 만나서 12년 동안 사랑이라는 감정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그건 단순한 남녀의 만남뿐 아니라 그 남녀의 관계가 배우자가 되어도 마찬가지이다.
적어도 나는 12년 동안 일관된 마음으로 관심과 애정을 유지할 자신이 없다.
그러나 감독은 12년이라는 시간동안 곁에서 어르신들을 카메라에 담아왔고
그것을 한편의 영화로 만들었다.

지금 다시 생각을 해보니
12년이라는 시간은 어르신들이 감옥에서 보낸 시간에 비하면 무색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대단하고 대단한 영화다.
12년 동안 만든 영화나 영화 속의 그들의 삶이나 모두 대단하고 대단하다.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멀어도 챙겨봐야 할 영화다.
그것은 감독에게만 아주 특별한 기억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게도 아주 특별한 기억이기 때문이다.


덧,
부산 화명동 DMC에서도 2주간 상영한다고 합니다.

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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