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도 아니고 무려 지난해 여름 방학 때 일본에 다니러 가는 누리 친구 엄마에게 부탁해 구입한 고양이밥틀.  주먹밥틀이라고 쓰려니 주먹을 이용하지 않으니 주먹밥이 아닌듯하다.  한국서는 2~3만원 대인데 일본서는 990엔 정도.  한국돈 만원. 마침 가지고 있는 엔이 있어 고양이 쿠키틀과 함께 부탁했다.  고양이 쿠키틀은 작년 크리스마스 페어(학교 행사)에서부터 틈틈이 부지런히 썼는데 밥틀은 쓸 일에 없었다.  지비가 하는 운동의 승격 시험 준비 때문에 요즘 평일 저녁, 주말 집을 비우는 일이 많다.  평일 저녁 지비가 운동으로 늦는다하니 누리가 꿀꿀해져 기분전환 겸 만들어본 고양이-밥.
(지비-누리 둘이 붙어 있으면 투닥 거리면서 또 없다하면 서운해하는 건 뭔가.)

틀이 있으니 밥을 만드는 건 어렵지 않은데 김을 잘라 붙이는 일은 틀이 있어도 쉽지 않았다.  김으로 밥을 다 싸고 치즈로 눈코입을 붙이는 검은고양이-방법이 쉬워보였지만, 그런 경우 여기서 구입한 김은 질겨져서 먹기가 힘들다.  특히 누리는. 
그래서 토비코(날치알)과 김으로 주먹밥을 만들고 김으로 만든 눈코입을 붙였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아서 분기별로나 해줘야겠다.
치즈 눈코입 고양이-밥도 만들려고 했는데 만들다보니 크기가 상당해서 두 개면 되겠다 싶어서 치즈 눈코입은 반찬이 됐다.

+

그나저나 이날 토비코를 넣은 밥은 정말 성공적인 시도였다.  이번 여름 한국에 갔을 때 지인과 함께간 일식당에서 세트 메뉴로 누리와 나눠 먹자니 작아서 추가로 시켜본 주먹밥이 날치알+김으로 만들어졌었다.  누리가 너무 잘 먹어서, '어렵지 않으니 한 번 해주지'하고 생각했는데 토비코를 사는 일이 쉽지 않았다.  살 수야 있지만 우리가 한 번에 먹을 량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얼마전에 가본 일본 푸드홀에서 파는 걸 보고 다음에 가서 사려니 없고, 이번 주에 다시 그 푸드홀에 갈 일이 있어 찾았더니 있어서 사왔다. 40g에 2.6파운드면 싼 식재료는 아니지만 정말 잘 먹어서 갈 때마다 사올 생각이다.  고양이-밥만 아니면 주먹밥 만들기도 쉽고.  더 간단한 밥틀이 있다.  날치알 주먹밥은 이제 우리집 단골메뉴가 될듯하다.

+

고양이-밥이라니 고양이가 먹는 밥 같은 느낌.  정확히는 고양이-모양-밥.  그렇게 쓰자니 길다.
Posted by 토닥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아직 '시월의 마지막 밤'을 추억할 연배가 되지 못한 탓에 하루 종일 아이 뒷바라지 종종종. 

누리를 학교에 넣어놓고 장을 보고, 저녁을 미리 준비했다.  아이를 하교 시간보다 일찍 데려와 9월 초에 수술한 귀를 체크하러 갔다가 발레를 마치고 오면 할로윈 밤나들이를 하러 가기 전 저녁을 준비해 먹을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간단하게 그리고 누리가 빨리 먹을 수 있는 메뉴 - 주먹밥을 만들어 싸놓고 반찬으로 먹을 샐러드, 숙주나물을 준비했다.  숙주나물은 요즘 누리가 좋아하는 메뉴 1~2위를 다툰다.

그 쉽다는 숙주나물은 몇 번을 이래 해보고 저래 해봐도 맛이 없어서 인터넷에 조리 방법을 찾아봤다. 몇 개를 정독하고 일관된 점을 추려냈다.  우리 입맛에 맞는 조리법과 비율을 몇 번의 시도 끝에 찾아냈고, 그 뒤로 일주일에 한 번쯤 해먹는 반찬이다.  반찬이 없는 우리 밥상이건만.

다듬은 숙주를 데치는 건 1~3분인데 다듬는 건 20분이다.  여기 사람들은 숙주를 다듬어야 한다는 걸 상상도 못할테다.  나도 그랬다.  숙주의 꼬리가 질기다고 투정한 누리 덕에 다듬어보니 꼬리를 떼어내 다듬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하늘과 땅 차이.  꼬리를 다듬은 숙주(콩나물도 그럴테지)는 사각사각 맛과 기분이 두 배가 된다.  왜 나는 이 기초적인 것도 몰랐을까 꼬리를 다듬으며 생각해보니 신문지 펼쳐놓고 콩나물이나 숙주나물 꼬리를 다듬는 풍경은 텔레비전에서만 봤지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일상이다.  일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 오래 먹을 수 있는 반찬이 대부분이었고, 그나마도 부모님이 일터에서 만들어오시니 과정을 볼 일도, 경험할 일도 적었다.  그러니 금새 데쳐 고소하게 버무리는 나물반찬은 흔하지 않은 반찬이었다.  여기까지 쓰고보니 언니들이 "너만 안했지 우린 했거든"하고 궐기할지도 모르겠다. 

누리 입맛에, 내 입맛에 맞게 만들고 나니 이 간단한 걸 왜 나만 몰랐나 싶다.  어느 지인의 말씀처럼 나는 정말 요리/조리 센스 꽝인 것인가.

요즘들어 느끼는 것은 음식도, 조리도 모두 문화자본이라는 것.   특히나 척박한 영국의 음식문화, 저소득층의 식생활을 보면 그런 생각이 더더더더 든다.

 +

이상 숙주나물을 다듬으며 했던 자투리 생각.
Posted by 토닥s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colours 2018.11.04 14:55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사실 저도 올 여름에 처음으로 숙주나물을 무쳐봤답니다.^^;; 그것도 팟타이 하고 너무 많이 남아서 에잇 한 번 시도해보자! 하고서요. 조미액(?)인 '연두'를 사다둔게 있어서 그걸 이용해서 - 아마도 인터넷에서 본 레서피였던 듯 합니다- 시도했는데 너무 맛있어서! 스스로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하하하. 다시 하라면 또 잘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네요. 그런데 저도 꼬리는 안 떼고 그냥 했는데 ^^ 토닥님 사진 속 숙주나물을 보니 반성 + 도전 정신이 생깁니다. 오늘 낮에 새로 한 봉 사왔어요. 성공하면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

    • 토닥s 2018.11.05 09:03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저만 기본요리가 어려운 게 아니었군요. 참고로 저는 된장국도 인스턴트로 사먹거나 역시 인스턴트 미소로 대체해서 먹습니다.^^;

      요리초보의 전형적인 특성이라고 해요. 같은 책을 보고 해도 할때마다 맛이 다른 게. 저도 늘 그렇습니다.

지난 토요일 잠들기를 거부하며 빠져나갈 구멍을 찾고 있던 누리.  지비와 둘이서 어떤 대화를 나누다 펑펑 울며 누리 방에서 책을 읽고 있던 내게로 왔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성(姓) family name을 바꾸고 싶단다. 

학교에서 받은 노트들에 자기 이름과 성이 적혀 있는데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나보다.  자기는 김누리하고 싶다고.  그러라고 했다.  이제 사람들이 물어보면 '김누리', '누리 김'이라고 말해주라고.  사실 누리의 성을 제대로 발음하는 영국인은 없다.  폴란드 성이니.  집에서 발음 다르고 학교에서 발음 다르니 구두로라도 김누리 하는 게 별로 나쁘지 않다 싶었다.  더군다나 나는 여기저기 아이의 본명이 적혀 있는 게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  학교에서 자기들 편의대로 보이는 곳에 커다랗게 아이의 가방에 매직으로 이름을 적어 놓은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름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개인정보인데 말이다. 

내 대답을 들은 누리가 그렇게 마무리 할 줄 알았는데, 여권의 이름도 바꿔 달란다.  아 - 그것은 좀 어려운데.  여권을 지난 봄에 갱신했으니 5년은 써야 한다, 5년 뒤에 여권 이름을 바꾸자고 했다.  누리가 10살 11살이 되면 성을 바꿔 달라는 요구는 하지 않겠지, 그 나이가 되면 이 가부장적 사회의 시스템을 알게 되겠지 하는 얄팍한 속셈이었다.  그런데 당장 바꿔 달라고 30분을 우는 누리.

어떻게 어떻게 달래놓고, 많이 울어서 빨리 잠든 누리를 두고  왜 지비의 성을 그대로 아이에게 주었을까 생각해봤다.  나는 이곳에서는 결혼하면 다들 바꾸는 성을 바꾸지 않고 내 이름을 고집하며 타이틀(미스터라던가 미세스라던가)도 Ms로 쓰면서 말이다.

몇 년 전 한 부부가 결혼하면서 두 집안의 성을 조합해 새로운 성을 만든 기사를 봤다.  예를 들면 '크로와상'씨와 '도넛'씨가 가정을 이루어 부부가 다 '크로넛'씨가 됐다.  ('크로넛'은 실제로 존재하는 크로와상+도넛츠다)  지금 검색해보니 미국에서는 법적으로 수용되지 않는 모양이다.  하지만 서구의 여성들이 결혼하면 무리 없이 남편의 성으로 바꾸는 걸로 봐서 여차저차하면 아예 안될일도 아닌 것 같다.
부모의 양쪽 성을 다 넣는 방법도 있지만, 실제로 스페인은 아이가 태어나면 엄마의 성과 아빠의 성을 같이 쓴다고 들었다, 그러면 쓰기가 너무 힘들어진다.  엄마와 아빠의 성을 함께 쓰는 두 아이가 결혼하면 그 집 아이는 성이 네 개가 되는 거냐는 내 질문에 "그건 아니지 하하하"했던 스페인 친구.  그럼 어떻게 된다는 건가.

한국에선 어렵지 않은 내 이름이 이곳 사람들에겐 무척 어려운 이름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누리 이름을 정할 때 동과 서를 넘어 한국과 이곳에서 발음하기 쉬운 이름을 골랐다.  한국어 이름 중에서.  가능하면 P, F, G, J, Z, L, R이 들어가는 이름을 피하고 싶었지만 어쩌다보니 R이 들어가는 이름이 됐다.  한국어 이름과 폴란드 성이라는 절충에 사람들은 적절하다고 생각했지만, 누리 본인은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다.  성에 차지 않는 성.(-_- )

지금에서야 나도 왜 새로운 성을 만들거나, 내 성을 아이에게 주거나 하는 생각들을 하지 않았는지 - 뒤늦은 후회가 생긴다.  나도 모르게 제도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런 건 페미니즘도, 진보주의도 아닌 그저 제도가 상식적인가 한 번 더 생각해보는 정도일 뿐인데.  정말로 아이가 크면 자기 성을 선택할 수 있다고 알려줘야겠다.  아버지의 성을, 남편을 성을 이어 받는 제도가 절대로 당연하지 않다고. 

+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 성을 바꿀 수도 있다.  그렇데 어떻게 하지? - 생각하니 무척 복잡하다.('_' )::  일단 누리가 성인이 될 때까지 숙제로 남겨두자.  성인이 되면 제 숙제, 지금 하면 내 숙제.( ' ')a

+

그래서 일요일부터 김누리.
공원에 간 김누리 https://youtu.be/vPiS3N9vNB0
Posted by 토닥s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프라우지니 2018.10.19 10:49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저도 결혼할때 남편성으로 바꾸지않고 그냥 내가 가지고 있는 한국이름을 그대로 고집했습니다.

    우리 결혼할때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엄마,아빠의 성중에 어떤 것을 줄것인지에 대한 항목도 있었씁니다. 한국에서는 아이들이 당연히 아빠성을 따르니 아빠성을 주겠다고 결정을 했지만..
    아이를 낳지않아서 이 부분은 하나마다였습니다.^^

    • 토닥s 2018.11.05 16:41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저는 성을 바꾸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는 없는데요. 가끔은 제 이름이 이곳 사람들에겐 너무 낯설어 영어이름으로 개명할 걸 그랬나도 싶고요.ㅎㅎ

  2. 2018.11.05 21:49 Address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토닥s 2018.11.08 19:38 신고 Address Modify/Delete

      헛! 그런가요? 저는 보통 모바일 앱을 쓰는데요. 지금보니 모바일 앱 기본 세팅이 보통크기로 되어 있어요. 크기는 큰크기-보통크기-작은크기 셋이라 티스토리 기본세팅-보통크기면 작지 않을 것 같은데.. 앱에서는 글자를 키우면 스크롤을 너무 많이 해야해서 번거롭답니다.ㅠㅠ

      지니님은 컴퓨터로 보시죠? 저는 컴퓨터로 잘 보지 않으니 몰랐어요. 다음에 컴퓨터로 한 번 볼께요. 의견 고맙습니다.

  3. 2018.11.09 15:33 Address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토닥s 2018.11.17 23:47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여기서 아는 분도 한국에 출생신고를 할 때 본인성을 썼다하더라고. 남편성이 안될줄 알고. 누리는 지비 성으로 했다니 본인도 바꾸고 싶다고 하시던데, 이름 변경에 여권에 복잡한 게 한 둘이 아니라 어디서 풀어야할지 모르겠다고 하시더라고. 단순한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가능할 때 이름/서류는 통일시켜 정리해주는 게 좋을 것 같아. 시간이 지나면 되돌리기 더 복잡해질듯.ㅠㅠ

요란하지 않은 누리의 생일을 보내며 몇 가지 이야기가 남았다.

누리의 생일에 같은 반 아이들과 나눠 먹을 생일턱 - 누리가 그린 파티 모자를 쓴 작은 귤을 보냈다.  누리는 아파서 등교 30분만에 하교했지만 그 사이 아이들이 불러준 생일노래가 누리에겐 소중한 기억이 됐다.  작년에는 누리가 생일날 아파 학교를 안가서 친구들이 불러주는 생일노래를 듣지 못했다.
올해는 생일노래와 함께 또 하나의 추억이 남았다.  준비해간 생일턱이 학교 레터에 실렸다.  건강한 생일턱 덕분이었다.

작년 초만해도 이 스쿨레터를 출력해서 금요일마다 나눠줬는데 요즘은 학교 홈페이지에만 올라간다.  리셉션(안내데스크)에 몇 부만 출력해서 올려두는데, 그 중 한 부를 나는 누리가 방과후 마치기를 기다리다 받았다.  누리가 그린 그림들을 보관해두는 파일에 잘 넣어뒀다.  홈페이지에만 올라가는 뉴스레터 누가보나 싶었는데(나는 매주 확인하지 않았다), 그 뒤 대 여섯 명의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해와서 좀 놀랐다.  심지어 다른 학년에 아이를 보내고 있는 이웃도 나를 보더니만 이 뉴스레터 이야기를.^^:  그렇지 않아도 극성스러운 아시안 엄마 이미지인데, 이 뉴스레터로 그 이미지가 더 확실하게 굳어질 것 같다.

+

누리 생일을 기념해 며칠 앞서 누리 친구들과 공연을 보러갔다.  티켓을 구매하면서 이름란에 누리 이름을 쓰지 않고 메시지를 썼다.  누리와 함께 보는 공연은 보통 누리 이름으로 예매해서 티켓을 보관중이다.

이름 란에 Nuri's birthday를 쓰고 성 란에 Thank you for coming이라고 썼다.
보통 티켓에 이름 + 성순으로 프린트되니 Nuri's Birthday Thank you for coming 라는 메시지가 써질 것이라 기대하면서 그날 온 누리 친구들에게 기념품(?)으로 나눠줄 생각이었다.  생각대로 티켓이 프린트되긴 했는데-.

그룹티켓을 샀더니 티켓이 두 장 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기념티켓은 못주고 우리만 가지기로 했다.  그룹티켓을 안사봐서 몰랐던 일.  다음엔 좀 더 꼼꼼하게 해야지.

+

..라고 생일 뒷이야기를 남겨둔다.
Posted by 토닥s

댓글을 달아 주세요

누리가 드디어 여섯 살이 됐다, 어제.

작년까지 생일 파티 같은 건 모르고 생일과 케이크의 연관성 정도만 알고 있었던 누리.  유치원이지만 학교 생활 1년을 통해 '생일 파티'도 알게 됐다.  그럼에도 1년을 돌아보니 절친의 생일 한 번 생일 파티에 참석한 게 전부.  토요일마다 주말학교를 가니 대부분의 생일 파티에 갈 수가 없었고, 어쩌다 비는 시간에 있는 생일 파티엔 누리가 가지 않겠다고 했다.  같은 반 남자 아이들의 생일 파티였다.  지난 3월 절친의 생일 파티 이후 자기 생일을 기다려온 누리.  누리는 변했어도 생일 파티에 관한 내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주변 엄마들의 경험과 조언을 통해 친한 친구 두 명과 공연을 보고, 케이크 한 조각씩 먹는 걸로 절충안을 냈더니 누리도 오케이.  지비도 오케이.  생일이 평일이라 지난 일요일 누리가 꼽은 두 명의 절친과 Five little monkey라는 공연을 보러 갔다.

마침 더워진 날씨에 케이크 한 조각은 아이스크림으로 변경됐다.  아이들 만장일치로.  공연이 지금까지 본 공연 중 가장 재미없었다는 건 안비밀.  불행히도 누리의 두 친구는 공연을 처음으로 봤단다.  첫 경험이 그래서 무척 미안했다.  그래도 재미있었냐는 물음에 재미있었다고 대답하는 아이들을 보며 이 아이들은 참 영국적으로 친절하다고 지비와 나는 웃었다.

그리고 누리 생일 전날 저녁 먹고 둘러 앉아 학교에 보낼 생일턱(?)을 만들었다.  작은 귤에 생일파티 모자 씌우고 눈과 입을 그렸다.

그런데 생일 날 새벽 열 때문에 잠이 깬 누리.  이런.  해열제를 먹여 두 시간 더 자고 일어나니 열이 좀 내려 학교를 보내긴 했다.  학교를 보낼까  말까 고민했는데 만들어 놓은 생일턱 때문에 누리가 학교를 가고 싶은 의지가 강했다.  학교에 넣어놓고 돌아와 잠시 정리를 하고 있는데 학교에서 누리가 열이 많이 나니 데려가란 연락이 왔다.  결국 등교 40분 만에 출석 확인하고 하교.  다행히 먼저 하교하는 누리를 위해 생일 축하 노래는 불러준 모양이다.
그래서 누리는 생일 날 집에서 생일 선물로 받은 번개걸 셔츠를 입고 모여라 딩동댕 - 번개맨을 보며 보냈다.

https://youtu.be/K_dPlawge9M

하루를 쉰 덕에 저녁에는 누리의 희망대로 회전초밥집에 가서 밥을 먹었다.

작년에도 누리의 희망대로 이 회전초밥집에 갔는데 그때만해도 누리는 새우튀김옷(새우 말고 튀김옷만), 과일, 디저트만 먹었는데 이제는 연어호소마끼, 캘리포니아롤, 가라아게를 먹었다.  누리의 생일엔 회전초밥집에 가는 게 의례가 되는 걸까.

저녁 나들의 마무리는 레고샵.  지비가 주는 생일 선물로 저렴하고 작은 레고 하나 사서 귀가.

+

가만히 생각해보면 누리는 생일 때마다 아팠다.  만 3살 생일을 한국에서 보냈는데 딱 그 때만 빼고.  돌 때는 아파서 돌 촬영을 연기해야 했고, 두 돌 때도 아파서 선물 받은 스쿠터를 집안에서 밀어보고 그랬다.  5살이었던 작년엔 아파서 학교를 안갔다.  4살 생일은 기억에 없지만 아팠을듯.  생일 때마다 아픈 게 이 아이의 생일 전통인가도 싶다.

아이들이 태어날 때 경험이 트라우마로 남아 생일 때가 되면 아프다는 말도 어디선가 본듯하다.  앞으로도 생일 때마다 아프면 재미난 이벤트는 계획하기 어렵겠다.  내년도 그런지 두고 봐야겠다.  한국의 엄마 말로는 아이를 낳은 사람도 아프다는데 정말로 그런지 요며칠 허리가 묵직.  그건 한 달째 운동을 안하니 그런 것도 같고.

아프고 그랬지만 누리만큼은 즐거운 하루였다.  선물/축하/카드 주신 분들 모두 고맙습니다.
Posted by 토닥s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겨운 2018.09.27 14:32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이제야 보네요~
    누리야~^^ 늦었지만 여섯 살 생일 너무너무 축하해~~♡♡♡

  2. 2018.09.28 07:11 Address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3. 2018.09.28 15:50 Address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토닥s 2018.09.30 21:59 신고 Address Modify/Delete

      한국이 아닌 곳에서 외국인으로 살면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시는 글 - 늘 고마운 마음으로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네, 당연히 이메일 주소 알고 있지요. 메일 한 번 드리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6주마다 돌아오는 누리 학교의 방학.  이번에는 일주일 길이의 중간방학이 끝났다.  중간방학이 블로그가 뜸한 이유였다면 이유.  보통 방학이면 아이를 TV 앞에 두지 않기 위해서 밖으로 밖으로 다닌다.  그러니 집에 돌아오면 아이가 8시가 넘어 잠들어도 리모콘 누를 기력도 남아 있지 않는다.  보통 휴대전화로 다음날 할거리, 먹거리 정도를 찾아보다 잠이 든다.

이번 방학은 그래도 좀 나은편이었다.  월요일은 공휴일이라 지비가 있었고, 그래도 밖으로 돌아야 하는 건 똑같다, 화요일과 수요일은 지비에게 누리를 맡기고 교육을 받으러 갔다.  소아응급처치 Pediatric First Aid라는 자격증 교육.  사실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에너지를 쓰는 건 아니지만, 생전 처음들어보는 의학용어들을 사전 찾아가며 머리 속에 집어넣는 일도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어쨌든 오랫동안 기다렸던 교육도 완료.  다만, 교육이 만족스럽지 못한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았다는 뒷담화.  그럴 수 없다는 건 잘 알지만, 내가 자격증을 점검할 수 있는 자리에 있다면 싹 바꿔버리고 싶은 내용이었다.  소아응급처치라는 특화된 교육임에도 불구하고, 응급저치에 대한 일반론을 98%로 다룬 다음 심폐소생술에서만 2% 정도 유아와 소아의 경우를 다룬 교육이었다.  끝났으니 3년 간은 불평도 잊는 것으로.



누리 중간 방학이 시작될 때 앞으로 남은 6주간 진행될 교육의 커리큘럼이 안내됐다.  영국 초등교육에는 교과서가 없다.  반학기 6주 동안 주제학습으로 이뤄진다.  나도 글로만 알고 있던 사실을 직접 경험하니 아직도 신기하고, 교실에선 어떻게 구현되는지 궁금하다.

이번 학기는 교통수단, 주거, 지역이 주제다.  이와 관련된 책을 읽고, 셈도 하고, 야외학습도 한다.  마지막 반학기를 남겨놓고 일년 여 누리 학교생활을 돌아보니 남겨두고, 공유하고 싶은 생각도 많다.  그때그때 했어야 하는데 반쯤은 잊혀져 지금  와서 후회한다.  그래본들 늦었다.  욕심내지 않고 9월에 시작하는 새학기엔 조금씩 남겨봐야겠다.  그때야말로 본격적인 학교생활이니까.  

주변에서 누리가 언제 가냐고도 묻는다.  작년 가을에 시작했다면, 그건 유치원이잖아 하는 반응인데, 한국식으로 풀면 그렇지만 꼭 유치원인 것은 아니다.  누리가 다니고 있는 과정은 리셉션 reception인데 학교 안팎에서는 0학년으로 불린다.  초등학교 예비과정인 셈이다.  초등학교 학생들과 학기도 같고, 등하교 시간도 같고, 지켜야할 교칙/교복도 같다.  교육의 프레임도 같은데 그 수준이 다른 정도.  나도 이 개념을 이해하는데 한참 걸렸다.  나만 그런가?




여하튼 9월에 시작해서 7월에 마무리되는 학년이 마무리 되는 시점이라 학교 행사도 많고 이래저래 바쁜 시간이다.  2주만에 컴퓨터 앞에 앉았더니 어제는 업데이트를 장장 3시간에 걸쳐 하느라 하루를 날려버렸다.  오늘은 무리 없이 켜진다고 생각했는데, 또 이 티스토리 사진 업로드가 안되서 크롬을 설치하고 이동.  영 이상하네.


오늘은 간단히 살아있다는 소식만 남기고 - I will be back



'런던일기 > 2018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life] 또 중간방학이 끝났다.  (3) 2018.06.06
[life] 나이  (1) 2018.04.27
[life] 변화의 시작 - 플라스틱 공해  (3) 2018.04.19
[life] 부활절 방학 전야  (2) 2018.03.29
[life] 토닥s와 쿠키 공장  (2) 2018.03.27
[life] 추울땐 라면  (8) 2018.03.01
Posted by 토닥s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18.06.11 15:29 Address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2. 겨운 2018.06.11 19:01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언니 이 코스가 몇일 코스 인가요?
    하루 짜리
    일주일짜리
    몇개월 짜리해서
    자격증종류가 좀 다양하더라구요
    저도 몇년전 윔블던 적십자사에서 하는 프로그램 신청하려했다가 이 증이 유효기간이 있는거 확인하고 미뤘거든요.
    애기 엄마들, 차일드캐어나 교육에 관련된 사람들 많이 듣더라고요.
    암튼 짬내서 조금씩 성취해 가시는 모습 보기 좋아요! 홧팅잉에요!!! :)

    • 토닥s 2018.06.11 19:10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제가 한 건 Pediatric First Aid 14시간 이수(이틀)이고 3년짜리 유효 기간이 있는 건데요, 이런 자격증을 갱신하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해요. 사람이 살다보면 아는 것도 잊는 법인데, 특히나 우리는 이런 지식을 매일쓰는 의료인이 아니니 교육을 받아도 잊기 일수.ㅎㅎ

      맞아요, 교육이 아주 다양한데. AED 사용만을 배우는 교육도 있다고 하더군요. 솔직히 말하면 교육이 별로 내실이 없었어요. 제대로 받으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개인적으론 각종 상처나 증상을 영어로 들어보는 것도 의미있었어요. 물론 지금 벌써 가물..ㅎㅎ

요며칠 기온은 20도가 넘지 않지만 넉넉한 햇빛 때문에 밖에서 놀기 딱 좋은 날씨들의 연속이었다.  누리는 학교 마치고 다시 친구들과 학교 앞 공원 안에 있는 놀이터에서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 더 놀고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했다.  저도 피곤해서 골골하면서도 친구들의 엄마들이 나눠주는 간식과 친구들과의 시간에 빠져 즐거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에 반해 엄마들은 언제 비오나, 비와서 놀이터 가지 않는 날들을 기대하기만하고.  나도 그런 엄마들 중 1인. 

누리는 젊으니 견디는데 나는 그렇지 않으니 탈이 났다.  기온이 높아지며 공기중에 폴폴 날리는 꽃가루 때문에 "에취 에취".  알레르기 약을 먹어도 잠을 잘 이루지 못하고, 낮은 밤에 잠을 자지 못하니 피곤하고.  결국 몸살 감기가 나서 목금토 집콕.  금토 쉼없이 잠을 자고서야 한결 나아졌다.  덕분에 누리와 지비는 스케줄 없는, 별일 없는 주말을 보냈다.

그나마 폴란드 주말학교의 '파자마 입는 날'이 아이에게 즐거움이 됐다.  아이들 재미있으라고 가끔 이런저런 기획이 있다.  크리스마스 점퍼 입는 날, 캐릭터 의상 입는 날.  이번 주는 느닷없이 파자마 입는 날.  우리는 없던  가운인데 잠옷만 입혀보내려니 이상해서 급하게 저렴한 가운을 구입했다.  디자인은 누리가 고르고.  좋다고 주말내내 집에서 입어 8파운드 본전을 벌써 다 찾은 느낌이다.


그리고 내가 잠든 어제 오늘 누리는 지비와 함께 자전거 보조바퀴를 떼고 자전거 타기 연습을 했다.  지비 말로는 2주만 더 타면 될 것 같다는데, 과연!


주말을 집에서만 보낸 것 같아 오후에 장을 보고 오면서 세차를 하러 갔다.  얼마전에 처음으로 자동세차를 해본 지비가 누리가 좋아할 것 같다고해서.  누리가 보던 어린이 드라마에서 아이들 기분을 살려주기 위해서 자동세차를 하러 가는 에피소드가 있어 누리도 자동세차가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다.  아이도 좋아하고 차도 깨끗해지니 1석 2조. 





그리고 집에 돌아와 씻고 저녁 먹고 일요일을 마무리하고 있다.


+


금요일 내가 잠과 사투(?)를 벌이는 동안 지비가 누리를 데리고 놀았다.  그때 나눈 이야기 한 토막을 오늘 오후 커피를 마시면서 들었다.  둘이서 이름name과 성family name에 대해서 이야기 한 모양이다.  그 뒤로 누리는 자기 이름이 '김누리'란다.    내 성이 '김'이라서.  지비가 누리에게 엄마의 이름이 뭐냐고 물었더니 '마미, 김마미'라고 했단다.  사실 누리는 내 이름을 영어로 쓸 수 있다.  지비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이름을 보고 알게 됐다.  그런데 말로 물으니 '김마미'라고 답한 모양.  지비가 '마미'는 이름이 아니잖냐며, 잘 생각해보라고 했더니 누리가 긴 생각 끝에 한 대답은 - '하니?'였다.  개명을 할까보다, 김마미 아니면 김하니로.

'탐구생활 > Cooing's' 카테고리의 다른 글

[+2206days] 생일 뒷담화  (0) 2018.10.04
[+2192days] 생일의 전통 - 여섯 살 누리  (6) 2018.09.19
[+2063days] 내 이름은 김마미  (2) 2018.05.13
[+2050days] 반려OO 키우기  (4) 2018.04.30
[+2036days] 여름학기 개학  (0) 2018.04.16
[+1983days] 식겁하다.  (0) 2018.02.22
Posted by 토닥s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18.05.14 05:03 Address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토닥s 2018.05.16 13:10 신고 Address Modify/Delete

      귀엽게 봐주시니 고맙습니다. 사실 아이가 나이에 비해 좀 어린 것 같아요. 덩치는 큰데. 저는 그게 언어능력과 비례한다고 보는데요, 어떤 사람은 아이가 혼자라서 그렇다고 이야기하기도 하데요.

      자동세차요, 저희도 종종 하게 될 것 같네요.
      그 동안 저희는 세차를 분기별로 했습니다만.ㅎㅎ

[life] 나이

런던일기/2018년 2018.04.27 22:04 |

좋아하는 음식을 꼽으라면 1번이 커피, 2번이 라면이다.  커피와 라면이 음식일 수 있는지 모르지만.  커피는 하루에 2잔으로 정해 마시지만 라면은 가능하면 먹지 않는다.  그 좋아하는 라면을 먹고나면 속이 불편해서 먹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라면을 먹고난 뒤 더부룩함이 배부름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보니 배부름이 아니라 불편함이다.  물론 그래도 불편함을 감수하고 가끔 먹기는 한다.  요즘 라면을 대신해서 먹는 게 떡국이다.  너무나 쫄깃해서 과연 쌀떡국인지 의심이 가지만, 재료를 확인해보니 100퍼센트 쌀이라고 한다.  누리도 떡국을 좋아한다.  그래서 집 냉장고에 늘 있는 게 떡국떡.  혼자서 따끈한 국물과 함께 점심으로 먹기도 좋다.  떡국을 몇 달에 한 번 끓일 때는 몰랐는데, 그때는 어떨 때는 떡이 말랑하고 어떤 때는 떡이 딱딱하더라니, 떡을 미리 불려야 맛있는 떡국을 끓일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렇게 나이가 드는 것인지.



오늘 아침 누리랑 나란히 이를 닦는데 누리가 내 머리에서 흰머리를 발견하고 물었다.

"마미도 할머니가 되는거야?"

간단하게 설명하기 쉽지 않은 아이의 질문이라도 가능하면 정면으로 답해주려고 하기 때문에 "그럼 나도 언젠가는 할머니가 되지"라고 답해줬다.  이를 먼저 닦고 학교 교복을 입으러 간 아이를 뒤따라 가니 소파에 앉아 울고 있다.  "마미가 할머니가 되는거 싫어"하면서.  "누구나 할머니가 돼.  마미도 할머니가 되고, 너도 할머니가 되고."  더 크게 울어서 "지금 당장 할머니가 되는건 아니야.  나중에.  나중에."라며 달래주었다.


누리야 나도 너 만큼/보다 내가 나이 드는 게 슬프단다.  그래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자연의 부분이야.  멋지게 늙도록 노력해볼께.  하지만 외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흰머리는 나도 어쩔 수가 없구나.  미안-.


+


이렇게 나는 나이를 먹으며 늙어가고, 누리는 나이를 먹으며 자라고 있다.



'런던일기 > 2018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life] 또 중간방학이 끝났다.  (3) 2018.06.06
[life] 나이  (1) 2018.04.27
[life] 변화의 시작 - 플라스틱 공해  (3) 2018.04.19
[life] 부활절 방학 전야  (2) 2018.03.29
[life] 토닥s와 쿠키 공장  (2) 2018.03.27
[life] 추울땐 라면  (8) 2018.03.01
Posted by 토닥s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18.06.25 21:24 Address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작년부터 급격하게 뉴스 등장 빈도가 높아진 플라스틱 쓰레기 이슈.  그걸 볼 때만 해도 '이제야 사람들과 정부가 생각이라는 걸 하나' 싶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생각도 자의적이기라기보다는 그 동안 쓰레기를 중국에 떠넘기기 하다가 그 길이 막히자 시작된 타의적 문제 제기였다.  세계 각국의 쓰레기 수입국이었던 중국은 올해부터 쓰레기 수입을 금지했다.  영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 비상이 걸렸다.  부끄럽지만 나도 우리가 만드는 많은 쓰레기들이 중국이 수입하고 있다는 걸 몰랐고, 재활용 분리수거를 잘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냥 이 나라 어디쯤 매립되고 있겠지라고 생각했고, 내가 분리해서 버린 쓰레기도 잘 자원재활용되는 줄 알았다.  듣자하니 재활용 쓰레기의 재활용 비율도 상당히 낮다고 한다.  오늘도 뉴스는 영국 정부의 플라스틱 쓰레기 대처 방안에 대해서 대대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정말 경각심을 일깨우는 뉴스들이 영향이 있는지, 작은 변화들이 관찰할 수 있었다.


부활절 방학 기간에 누리의 어린이집 친구 남매와 실내 놀이터에 놀러갔다.  아이들을 놀이터에 풀어놓고 친구 엄마랑 차를 한 잔씩 사러 갔다.  우리 앞에 줄을 선 아줌마는 텀블러 3개를 부려놓으며 티를 거기에 준비해달라고 했다.  번쩍하고 정신이 들었다. 

심지어 우리 근처에 앉은 한 가족은 다 쓴 잼 유리병에 간식으로 손질한 과일을 담아왔다.  free plastic를 이야기하는 단체들이 권하는 방법 중 하나다.  또 한 번 번쩍하고 정신이 들었다.

나도 텀블러가 있긴 하지만 짐스러워서 들고 다니지 않는다.  얼마 전에 간 스타벅스에서 앞으로 텀블러를 이용하면 25p(한국돈 400원 정도)를 깎아준다는 내용을 봐도, '나는 잘 안가는 스타벅스인데'하고 말았다.  스타벅스 매장에서는 1파운드짜리 저렴 재사용 가능한 플라스틱 컵도 팔고 있었다.  이 플라스틱이 문제로 떠오르면서 각종 업체들은 테이크어웨이 컵을 사용하면 가격을 더 받을 수도 있다고 했다.  한 뉴스에서 리포터가 종이컵 값이 25p일 때, 50p일 때 종이컵 사용을 주저하겠느냐고 시민들에게 물어봤더니 다들 별로 영향받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1파운드쯤 되면 달라질까. 


이 테이크어웨이에 사용되는 종이컵이 특히 재활용 비율이 낮다고 한다.  안에 필름이 코팅되어 있어 그렇다는데, 지난 주말 누리와 햄튼 코트 팔래스에 있는 놀이터에 갔다가(나의 생활은 주로 이 놀이터에서 저 놀이터로) 매립-분해가 가능한 종이컵을 까페에서 받았다.  일반적인 플라스틱 필름 코팅이 아니라 식물을 주재료로 한 필름 코팅이었다.




그걸 보면서 지비와 업계가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하는 거란 생각을 했다.  이런 컵들은 사실 비용이 비싸다.  놀랍게도 이 종이컵은 로컬의 업체가 만들고 있었다.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단가 면에서 기존의 컵들과는 경쟁이 되지 않을테다.  햄튼 코트 팔래스는 일종의 홍보비용까지 더해 이런 컵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이런 친환경 제품 제조업체와 친환경 제품 사용업계에 혜택을 주면 달라지지 않을까.  나는 사실 플라스틱 공해 문제를 소비자에게 짐지우고, 비용마저도 지불하게 하는 것이 무척 불편했다.  알고보면 소비자는 음료마저도 부당하게 과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셈인데.  커피는 단가가 낮기로 유명하지 않은가.  소비자 만큼이나 업계도 책임을 지는 모습을 좀 봤으면 좋겠다.


+


오늘 페이스북에서 건져 올린 게시물.  영국에 피자익스프레스pizza express라는 레스토랑이 있다.  거기에 5살짜리 아이가 빨대를 요구하는 사람에게만 달라고 편지를 보냈고, 물론 이유는 플라스틱 공해, 피자익스프레스가 이를 게시했다.  분명 소비자는 변하고 있다는 생각을 받았다 - 고 썼다가 지울까 말까.  이 사연은 다음에 폴란드 여행기에서.



그리고 아디다스가 5월에 내놓을 신상품 관련 뉴스.  바다에서 수거된 플라스틱 쓰레기를 재활용해 만들어진 신발이라고 한다.  물론 아디다스니까 가격은 비싸겠지만 생각만큼은 너무너무 멋지다.  재활용 제품들이 그 공정 비용 때문에 더 비싼 경우가 많다.  혹은 가격이 비슷하면 품질이 떨어지거나.  제조 업체는 품질을 보완하고, 가격 경쟁력을 좀 가질 수 있게 정부가 세금 같은 면에서 도와주면 좋을 것 같다.



누리 신발이 작아져 새 신발을 사려고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는데 괜히 마음이 쓰인다.  신발은 당장 필요하고, 아디다스니까 비쌀테고, 나는 온라인 장바구니에 담아둔 '그냥 신발'을 사야하니.


우유만해도 그렇다.  한국의 쌀과 같이 이곳에서 빵, 우유, 치즈, 버터 같은 것들은 생필품이다.  이들 포장재 중에서도 우유는 소비량 만큼이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우리 어릴 때처럼 유리병에 담긴 우유를 배달하는 곳도 있는데, 주로 잘사는 동네,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해서라면 유리병 우유로 바꾸고 싶지만 2배 이상의 가격은 부담이라는 뉴스를 지난 주에 봤다.  사실 우리는 식구가 작아서 1리터 짜리 2~3개를 일주일에 먹으니 나는 바꿀 용의도 있다.  하지만 동네가 안-잘살고, 집이 플랏/아파트라 배달을 안해준다는 불편한 진실.  옆동네는 배달하는 업체가 있던데.  물론 마트에 가도 팔기는 팔지만 그 무거운 유리병 우유를 집까지 - 사실 엄두가 안난다.


'런던일기 > 2018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life] 또 중간방학이 끝났다.  (3) 2018.06.06
[life] 나이  (1) 2018.04.27
[life] 변화의 시작 - 플라스틱 공해  (3) 2018.04.19
[life] 부활절 방학 전야  (2) 2018.03.29
[life] 토닥s와 쿠키 공장  (2) 2018.03.27
[life] 추울땐 라면  (8) 2018.03.01
Posted by 토닥s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18.06.02 10:29 Address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토닥s 2018.06.04 11:56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스테인리스 빨대를 생각해본적이 있지만 씻고 관리하는 게 이곳같이 석회질이 많은 물에서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스테인리스라도 철인데 산에는 괜찮을까 궁금하기도 하고요. 그보다 저는 컵으로 가려고요. 산이 이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인데요, 그래서 쥬스를 착즙에서 착즙+물로 이뤄진 Cawston press같은 걸로 바꿔볼까 생각중이예요. 산도 산이지만 당 레벨을 봐도 그렇고요. 그런데 착즙+물로 이뤄진 쥬스가 왜 완전 착즙보다 비싼 것인지, 2배보다 더 비싸요, 이해가 안가네요.(^ ^ );;

  2. 2018.06.11 18:56 Address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2주 반 부활절 방학이 끝나고 드디어 여름학기가 개학했다.  3월말 써머타임이 시작되고, 시간이 1시간 빠른 폴란드에서도 7시 전후로 잘만 일어나던 누리가 오늘은 늦잠을 잤다.  역시 학생과 기상시간, 그리고 방학의 상관관계를 학인할 수 있었다.


올해 첫 물놀이.



3마리 획득 - 지비와 나도 열심히 답안을 작성했다.



어제는 런던 근교 햄튼코트 팔래스에 있는 매직가든이라는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고, 팔래스에서 진행된 부활절 초코렛 토끼 찾기를 하고, 집에 돌아와 '늦도록' 방학 숙제를 하면서 부활절 방학을 마무리했다.



역시 방학 숙제는 방학 마지막 날 하는 게 묘미.

방학 숙제를 여행에서 돌아와 펼쳐보니 방학 기간에 한 활동에 관한 기록을 만들어 가는 것이었다 - 여기서는 저널 journal이라고 한다.  활동 사진과 팜플렛, 티켓을 붙여달라는 가이드가 있었지만 그런 것들은 긴 여행 끝에 다 버리고 돌아온 길이었다.  몇 가지 짐 속에 끼여온 것들 그러모아 완성한 방학 생활 저널.

방학 숙제를 너무 열심히 하는 것 아니냐는 페이스북의 반응이 있었지만, 사실 이런 숙제를 4-5살 짜리 아이들이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  더 말 안되는 영작문 숙제는 그냥 패스해버렸다.  그래서 보통 방학이 끝나면 뭘 하고 지냈는지 발표할 때 도움되는 자료/사진 정도, 누리가 빈 칸 채워넣기 할 수 있는 정도, 풀칠이라도 해서 붙일 수 있는 정도를 내가 마련하고 누리가 완성했다 - 고 부연설명.


+


부활절 방학의 절반을 폴란드에서 보냈다.  한국인과 기질이 무척 비슷한 나라라고 늘 느끼는데, 이번엔 육아와 관련해서도 참 비슷한 나라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의 대부분은 잊혀졌지만 생각나는대로 메모했다가 올려보고 싶다.  다만, 발등에 떨어진 불 몇 개가 있어 그것 먼저 끄고서야 블로그로 돌아올 수 있을 것 같다.  (절대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밀린 여행기의 압박에서도 어서 벗어나고 싶다.

'탐구생활 > Cooing's'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63days] 내 이름은 김마미  (2) 2018.05.13
[+2050days] 반려OO 키우기  (4) 2018.04.30
[+2036days] 여름학기 개학  (0) 2018.04.16
[+1983days] 식겁하다.  (0) 2018.02.22
[+1938days] 방학생활 2 - 만들기  (4) 2018.01.08
[+1935days] 방학생활 1 - 나들이  (0) 2018.01.05
Posted by 토닥s

댓글을 달아 주세요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