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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10.08 [+2211days] 김누리와 크로넛 (6)
지난 토요일 잠들기를 거부하며 빠져나갈 구멍을 찾고 있던 누리.  지비와 둘이서 어떤 대화를 나누다 펑펑 울며 누리 방에서 책을 읽고 있던 내게로 왔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성(姓) family name을 바꾸고 싶단다. 

학교에서 받은 노트들에 자기 이름과 성이 적혀 있는데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나보다.  자기는 김누리하고 싶다고.  그러라고 했다.  이제 사람들이 물어보면 '김누리', '누리 김'이라고 말해주라고.  사실 누리의 성을 제대로 발음하는 영국인은 없다.  폴란드 성이니.  집에서 발음 다르고 학교에서 발음 다르니 구두로라도 김누리 하는 게 별로 나쁘지 않다 싶었다.  더군다나 나는 여기저기 아이의 본명이 적혀 있는 게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  학교에서 자기들 편의대로 보이는 곳에 커다랗게 아이의 가방에 매직으로 이름을 적어 놓은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름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개인정보인데 말이다. 

내 대답을 들은 누리가 그렇게 마무리 할 줄 알았는데, 여권의 이름도 바꿔 달란다.  아 - 그것은 좀 어려운데.  여권을 지난 봄에 갱신했으니 5년은 써야 한다, 5년 뒤에 여권 이름을 바꾸자고 했다.  누리가 10살 11살이 되면 성을 바꿔 달라는 요구는 하지 않겠지, 그 나이가 되면 이 가부장적 사회의 시스템을 알게 되겠지 하는 얄팍한 속셈이었다.  그런데 당장 바꿔 달라고 30분을 우는 누리.

어떻게 어떻게 달래놓고, 많이 울어서 빨리 잠든 누리를 두고  왜 지비의 성을 그대로 아이에게 주었을까 생각해봤다.  나는 이곳에서는 결혼하면 다들 바꾸는 성을 바꾸지 않고 내 이름을 고집하며 타이틀(미스터라던가 미세스라던가)도 Ms로 쓰면서 말이다.

몇 년 전 한 부부가 결혼하면서 두 집안의 성을 조합해 새로운 성을 만든 기사를 봤다.  예를 들면 '크로와상'씨와 '도넛'씨가 가정을 이루어 부부가 다 '크로넛'씨가 됐다.  ('크로넛'은 실제로 존재하는 크로와상+도넛츠다)  지금 검색해보니 미국에서는 법적으로 수용되지 않는 모양이다.  하지만 서구의 여성들이 결혼하면 무리 없이 남편의 성으로 바꾸는 걸로 봐서 여차저차하면 아예 안될일도 아닌 것 같다.
부모의 양쪽 성을 다 넣는 방법도 있지만, 실제로 스페인은 아이가 태어나면 엄마의 성과 아빠의 성을 같이 쓴다고 들었다, 그러면 쓰기가 너무 힘들어진다.  엄마와 아빠의 성을 함께 쓰는 두 아이가 결혼하면 그 집 아이는 성이 네 개가 되는 거냐는 내 질문에 "그건 아니지 하하하"했던 스페인 친구.  그럼 어떻게 된다는 건가.

한국에선 어렵지 않은 내 이름이 이곳 사람들에겐 무척 어려운 이름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누리 이름을 정할 때 동과 서를 넘어 한국과 이곳에서 발음하기 쉬운 이름을 골랐다.  한국어 이름 중에서.  가능하면 P, F, G, J, Z, L, R이 들어가는 이름을 피하고 싶었지만 어쩌다보니 R이 들어가는 이름이 됐다.  한국어 이름과 폴란드 성이라는 절충에 사람들은 적절하다고 생각했지만, 누리 본인은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다.  성에 차지 않는 성.(-_- )

지금에서야 나도 왜 새로운 성을 만들거나, 내 성을 아이에게 주거나 하는 생각들을 하지 않았는지 - 뒤늦은 후회가 생긴다.  나도 모르게 제도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런 건 페미니즘도, 진보주의도 아닌 그저 제도가 상식적인가 한 번 더 생각해보는 정도일 뿐인데.  정말로 아이가 크면 자기 성을 선택할 수 있다고 알려줘야겠다.  아버지의 성을, 남편을 성을 이어 받는 제도가 절대로 당연하지 않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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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의견을 존중해 성을 바꿀 수도 있다.  그렇데 어떻게 하지? - 생각하니 무척 복잡하다.('_' )::  일단 누리가 성인이 될 때까지 숙제로 남겨두자.  성인이 되면 제 숙제, 지금 하면 내 숙제.( '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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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일요일부터 김누리.
공원에 간 김누리 https://youtu.be/vPiS3N9vNB0
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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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프라우지니 2018.10.19 10:49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저도 결혼할때 남편성으로 바꾸지않고 그냥 내가 가지고 있는 한국이름을 그대로 고집했습니다.

    우리 결혼할때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엄마,아빠의 성중에 어떤 것을 줄것인지에 대한 항목도 있었씁니다. 한국에서는 아이들이 당연히 아빠성을 따르니 아빠성을 주겠다고 결정을 했지만..
    아이를 낳지않아서 이 부분은 하나마다였습니다.^^

    • 토닥s 2018.11.05 16:41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저는 성을 바꾸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는 없는데요. 가끔은 제 이름이 이곳 사람들에겐 너무 낯설어 영어이름으로 개명할 걸 그랬나도 싶고요.ㅎㅎ

  2. 2018.11.05 21:49 Address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토닥s 2018.11.08 19:38 신고 Address Modify/Delete

      헛! 그런가요? 저는 보통 모바일 앱을 쓰는데요. 지금보니 모바일 앱 기본 세팅이 보통크기로 되어 있어요. 크기는 큰크기-보통크기-작은크기 셋이라 티스토리 기본세팅-보통크기면 작지 않을 것 같은데.. 앱에서는 글자를 키우면 스크롤을 너무 많이 해야해서 번거롭답니다.ㅠㅠ

      지니님은 컴퓨터로 보시죠? 저는 컴퓨터로 잘 보지 않으니 몰랐어요. 다음에 컴퓨터로 한 번 볼께요. 의견 고맙습니다.

  3. 2018.11.09 15:33 Address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토닥s 2018.11.17 23:47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여기서 아는 분도 한국에 출생신고를 할 때 본인성을 썼다하더라고. 남편성이 안될줄 알고. 누리는 지비 성으로 했다니 본인도 바꾸고 싶다고 하시던데, 이름 변경에 여권에 복잡한 게 한 둘이 아니라 어디서 풀어야할지 모르겠다고 하시더라고. 단순한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가능할 때 이름/서류는 통일시켜 정리해주는 게 좋을 것 같아. 시간이 지나면 되돌리기 더 복잡해질듯.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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