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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2.20 [book] 이슬람 정육점 (2)


손홍규(2010). 〈이슬람 정육점〉. 문학과지성사.


지인이 페이스북에 올린 감상(감상평이 아니었고 짧은 감상이었다)을 보고 낼름 손에 넣은 책이다.  한참 책을 읽을 때 같으면 4~5시간이면 읽을 책을 정말 4~5개월은 걸린 것 같다.  책이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영국이 비가 많은 가을/겨울이라 그랬다면 이해가 될려나.


한국전쟁 후 한국에 남은 터키인 하산이 몸과 마음 모두 상처로 가득한 아이를 입양한다.  정육점을 운영하는 무슬림과 알 수 없는 흉터가 온몸에 가득한 이 두 사람 이야기만으로도 차고 넘치는데, 이들 곁에 있는 역시 한국전쟁 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은 그리스인 야모스 아저씨, 충남식당의 안나 아주머니, 대머리, 말더듬 유정, 맹랑한 녀석, 쌀집 둘째딸과 그의 남친 등등을 섞고 버무려 1980년대 가난한 산동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 단어로 '찌질한 군상'이다.  '지질한'이라는 표준어에는 차고 넘쳐 담기지 못할 사람들의 모습.  정육점을 운영하는 무슬림이라는 소재는 아주 특이하지만, 찌질한 모습들은 너무나도 익숙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어린 시절 여러 세대가 모여살며 마당과 화장실을 공유하던 다세대집을 떠올렸다. 

그 집에 살던 시절이 1980년대고, 소설과 달리 서울도 아닌 부산이었기에 더욱 비슷한 것도 같다.  부산이 서울보다 3~5년 정도 뒤쳐져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비록 산동네는 아니었지만, 산동네에 버금가도록 가난하고 비좁았던 동네.  다 자라서 그 동네를 가보니, 한참 걸어가야했던 가겟집은 성큼성큼 걸어 몇 걸음이면 닿을듯한 거리라는 게 너무 신기했다.  내 이웃에 한국전쟁 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은 하산이나 야모스 같은 인물만 없었을 따름이지 그 가난하고 좁은 동네에도 이야기 꺼리는 수북했던 것 같다.  그런 시절을 기억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 책이 좀더 깊이 다가올 것 같다.  예전 한 총리처럼 "옥탑방이 뭥미?!"하면 이 책 열 번이 아니라 백 번을 읽어도 전혀 닿지 않겠지만.


이 책을 덮고서 떠올린 또 한 곳의 장소는 런던 근교 뉴몰든이다.  한인타운이라고 한국인들이 부르는.  주변 사람들 중에 한국인이 없으면 그곳이 한인타운이라는 걸 아는 사람이 없다.  거기에도 '찌질한 군상'이 있다.  그 군상은 한 때(1997년 이전) 잘나가던 사람들이 제법 많다고 한다.  그 시절을 추억삼아 잘근잘근 씹으면서 이민의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한국사람들이 있다.  때와 장소, 그리고 사람만 바뀔뿐 어디에도 '찌질한 군상'이 있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반갑다고 해야하나, 여기에도 있어줘서.


+


지난해 목표가 한국어책 12권 읽기였다.  그리고 영어로 된 책 4권.  각종 문제집 등등.  그런데 그걸 다 못읽었다는 놀라운 사실.  조금 실망스러운 사실이다.  책을 열심히 읽을 땐 일주일에 2권씩 읽었다.  관심 1권, 학업 1권.  그러고도 수업 준비하느라 책 1권까지는 아니어도 그에 가까운 분량들을 읽었다.  그야말로 읽고 또 읽고였다.  그게 생활이고, 미래에도 생활일 줄 알았다.  그런데 일년에 책 12권을 못읽으며 살고 있다니.  그래도 세상은 굴러가고 나는 또 살아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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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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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라오넬라 2015.12.22 23:09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이 책을 검색하다가 읽는 데에 오래 걸렸다는 문장을 보고 들어왔어요. 그러다가 뉴몰든을 발견했고요. 전 뉴몰든 도서관에서 카프카의 <성>을 빌렸었죠. <새의 선물>을 어느 한인 가정에서 얻어 읽었고요. 뉴몰든에 지금 계신지. 저는 2001년에 살았어요. 킹스턴, 레이니스 파크 등에. 2012년에 다시 가보니 엄청나게 한인타운이 됐더군요. 깜짝 놀랐어요. 그런데 뉴몰든 역 부근만 그렇고 나머지는, 그러니까 영국인 곳은, 그대로더군요. 우리 옆집 아저씨도. 암튼, 반갑습니다.

    (전 아직도 케밥은 영국이 최고라고 생각해요.)

    • 토닥s 2015.12.27 23:03 신고 Address Modify/Delete

      뉴몰든에 살지는 않아요. 한 달에 한 번 장을 보러가는 정도예요. 차로 30분 정도 거리니 멀지는 않은데 대중교통으온 한 시간쯤 걸리니 가깝지도 않지요.

      영국에서 산 경험이 있는 분들이 가끔 글을 남겨주셔요. 공부만 하였대도 쉽지 않은 시간이었을텐데 아련한 느낌들이 남으셨는지. 그 시간들이 도움되는 시간이었기를 바래봅니다. 지금 제가 지나고 있는 시간도 나중에 그랬음 좋겠어요.

      (전 딱 세 번 페르시안 레스토랑에서 케밥을 먹어봤는데-모두 닭으로만- 고기형 인간이 아니라 그런지 손님용 아니면 먹지 않아요. 그래도 한국서 손님이 오면 꼭 한 번 권하는게 케밥이긴 합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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