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강제위안부'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2.07.02 [coolture] 프로젝트 팀 금옥
  2. 2003.04.05 [people] '이용수할머니'

얼마 전 영국에 있는 한국 온라인 커뮤니티에 '금옥이'라는 창작 뮤지컬 소개·광고가 올라왔다.  영국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모여 일본군강제위안부를 다룬 창작극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영국에 이런 일이?'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에선 유학생 둘 중 하나가 예술 관련 공부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런 가운데 학생들이 모여, 아마도 연기든 연출이든 극 관련 공부를 하겠지, 이런 일을 벌인다는 것이 신기했고, 궁금했고, 기특했다.


요즘 아기 생기기 전에 할 수 있는 일들을 욕심내서 하고 있는 중이라 지비도 나도 따로 주말이 주중 만큼 혹은 그 보다 더 바쁘다.  그런 이유로 특별한 약속을 잡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주말 저녁은 한가한 편.  토요일 오후5시 공연을 보러 갔다.  8시 공연도 있었지만, 그 공연을 보고나면 일요일이 피곤할 것 같아 이른 공연으로 골랐다.  극장의 위치도 지하철로 닿지 않는 곳이라 애매한 가운데, 표를 미리 예매할 수가 없어 애매했다.  5시에 공연을 보러갔다가도 자리가 없으면 볼 수가 없는 셈.  더군다나 입장료가 £1 이상이라는 기부개념이었기 때문에 과연 공연을 원하는 시간에 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만일의 경우 오후 5시공연을 볼 수 없으면 저녁을 먹고 주변에 기다렸다가 8시 공연을 보겠다는 마음도 있어 이른 공연으로 고른 이유도 있다.



일본군강제위안부 할머니들은 공장에 취직을 하게되는 줄 알고 많이들 '자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대목이 전면적인 피해보상을 받는데 걸림돌이 되기도 하고, 할머니들이 바로 잡고 싶어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속은 것'과 '자원'은 다른 것이니까.  공연은 그 대목도 다루고 있었다.  5시 공연에서 120여 석의 90%정도가 찼다.  8시 공연에서는 가득 찼다고 한다.  일회성 공연이라 런던에서 다시 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한국 언론까지 노출된 것으로 보아 한국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언젠가는 생길지도 모르겠다.


내게 공연은 새로운 정보를 주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공연이 영어+한국어로 진행된 덕에 지비도 함께 볼 수 있었다는 점이 좋았다.  어제도 영국에서 제주 강정관련 캠페인을 하는 분과 잠시 이야기를 나눈 부분이지만, 한국 소식을 부지런히 영어로 번역해서 퍼뜨리기만해도 큰 일을 하는 거라는 이야기를 나눴다.  정부와 기업은 부지런히 자기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잘 포장해서 영어로 퍼뜨리지만, 다른 대안적인 목소리는 그렇지가 못한 현실이라 한국 밖의 사람들은 '한국'을 알 길이 없다.  영어 잘하는 사람들은 이런 이슈들에 관심이 없고.  내가 좀 영어를 잘하면 좋겠구만!  영어공부하자.( ' ');;


https://www.facebook.com/musicalGumok


'금옥'을 보고난 뒤 지비랑 그런 이야기를 나눴다.  1,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에는 이런 이슈가 없었는지.  강간이나 겁탈 같은 범죄야 있었겠지만, 현재까지 알려진바로는 일본군강제위안부 같은 건 없었다고.  그 대신 상업적인 매매춘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다음에 기회되면 한 번 파봐야겠다.


그리고 얼마 전 서울에 개관했다는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한국 서울가면 한 번 가볼 생각이다.  수첩에 적어둬야겠다.


극에서 주로 영어 대사를 진행한 배우는 영국에서 태어난 한국인 학생이라 이 이슈를 잘 몰랐다고 한다.  알게 되서, 뭔가를 해보면 좋겠다는 간단한 이유로 참여했다고 한다.  참 좋은 것 같다.

요즘 복잡하게 머릿속을 오가는 생각들과 맞닿아 '정말 그들 같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리숙한 그들은 '알맹이'지만, 내가 하려고 했던 건 '껍질'을 채우려는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는 생각.  좀 쉬워지고, 낮아지고, 깊어져야겠다.


'금옥'팀, 참 잘했어요!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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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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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뜻하지 않는 인연이 인생을 바꾸곤한다.
사실 내겐 그런 인연들이 적지 않았다.
이 사실 또한 나는 운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인연들을 적지 않게 만남에도,
그럼에도 내 인생이 '휘까닥' 바뀌지 않는데는 이유가 있다.
그것이 인연인지 모르고 스쳐지나는 경우도 있고,
많은 경우는 그 인연 앞에서 두려움에 떨다 눈을 질끔 감아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면 순식간에 시간은 흐르고 인연도 그냥 그렇게 흘러가고 만다.

또 하나의 인연, 이용수 할머니.
이용수 할머니는 일제 강제 군위안부였던 할머니다.
사실 나는 그런 할머니들을 정확히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모른다.
영어로 'a sex slave'라고 쓴다는 것 밖에 모른다.
한국어로는 어떻게 불러야 치우치지 않고, 옳은지도 모른다.
내가 이분과 무언가를 만들어가거나, 내가 어떤 모임에 참여하진 않겠지만
할머니와의 만남후에 하나의 목표를 세웠다.
peace boat.

peace boat를 통해서 한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모든 길은 하나로 통한다는 사실을.

peace boat에서 이용수할머니

ON THE SHIP

Lee You Su of South Korea was forced into service as a sex slave during WWII, a crime which to this day casts a shadow over her life. She shared with us on board her fight for compensation from the Japanese government.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나의 언니는 고등학교 역사교사다.
언니가 참가하는 모임이 하나 있는데 이름은 정확히 모른다.
회원은 한 4명쯤?
부산에 계신 강제 군위안부 할머니들을 돕는 활동을 한다.
돈으로 돕는 것보다(그건 국가가 해야할 일이다),
아프면 병원을 알아봐드린다든가,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불편한 곳이 없는지 살펴보는 것을 활동으로 한다.

하여간 그 모임+나눔의 집+부산대 총여학생회+기타등등이 모여서
2박3일간의 행사가 부산에서 있었다.
두번째날 행사인 일일찻집에 갔다가 다음날 부산대에서 이용수 할머니의 강연이 있다는 말을 듣고
세번째날 함께 움직이기로 하였다.
처음 부산을 구경시켜드릴려던 계획은(이용수할머니는 대구분이신데 행사를 위해 부산에 오셨다)
사정이 생겨서 취소가 되었고 부산대에서부터 함께 했다.







몇년전 할머닌 부산대 법대에서 모의재판할때 증인으로 오셨는데
그때 할머니가 일제 변호인인 학생에게 호통을 치셨다고.
어르신들은 그렇다.
하시는 말씀은 논리도 없고, 횡설수설.
그래도 그들은 역사의 산 증인이다.

몇년전 할머니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법원의 판결에 일본정부가 항소를 했단다.
그런데 이번봄 일본정부가 승소하여 배상금 지급판결이 취소가 되었단다.
역사라는 것이, 국가라는 것이 한번 지어진 매듭을 이렇게 풀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연을 마치고 할머니와 다른 두분, 그렇게 밥을 먹으러 갔다.
앉아서도 계속 이어진 할머니이야기.
나는 앉아서 꾸역꾸역 밥을 밀어넣었다.
계속해서 무심하게 가벼운 마음을 유지하려고 애 썼다.
그러지 않고선 마음이 너무 불편했고, 어줍잖은 눈물이 흐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용수 할머니와 정명희 선배님.
헤어지기전 부산역에서 한장.


두분이 나란히 앉아 나누고 있는 이야기는 할머니의 신발과 버선이었다.





할머니는 김천행 8시 30분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대구로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손에 초콜릿 한 알씩을 쥐어주셨다.
초콜릿을 좋아하신다고.
몇장의 사진이지만 찾아서 초콜릿과 함께 보내드려야겠다.
시간이 되서 할머니는 기차를 타고 떠나셨다.

간만에 명희선배랑 시간을 보내다 늦게야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는 전쟁의 피해자다.
그 전쟁의 피해.
50년의 세월이 흘러도 매듭이 풀리지 않는데
그런 전쟁이란 것에 내 나라의 대통령 盧는 파병을 한단다.
그것이 의료진이고, 공수부대이고 떠나
내 나라 50년 전 전쟁의 아픔을 치료하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강제 군위안부만 그런가?
얼마전 盧는 제주4.3에 대해서,
국가공권련인 군과 경찰이 제주인민을 강경진압-학살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특별조사위를 만들어 조사했다.  
그리고 4.3 기념행사에서 제주를 찾아 사과를 하기로 했다.
盧는 특별한 이유 없이 그것을 잠정 유보했다.

전쟁,
몇십년의 세월이 흘러도 아물지 않는 상처.
더는 만들지 말자.
그리고 우리는,
더는 잊지 말자.

그리고,
할머니 '무조건' 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여기서 '이용수할머니'는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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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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