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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11.19 [article] 인터넷한겨레 : '젊은 벗과의 짧은 국보법 대화'

내일 있을 손석춘 기자 강연과 관련하여 부산민언련의 사무차장님과 이야기 나누다
생각보다 '지나치게 유(柔)한' 그의 일면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바로 얼마전 mbc 100분토론에서 패널로 나왔을 때 일을 함께 이야기했다.
그날의 상황에 대해서 손석춘 기자 스스로 쓴 글이 있어 옮겼다.

이 프로그램을 나도 보았다.
방청객으로 나온 젊은이의 발언이 나를 흥분하게 만들어 기억에 오래 남기도 했지만,
그런 경우 나는 "저것이 아주 돌았구나(-_- );"라는 감상을 내뱉는다,
그 젊은이를 바라보던 손석춘 기자의 안타까운 눈빛과 표정 때문에도 오래 남았다.

젊은 벗과의 짧은 '국보법 대화'

당신께 편지로 띄우는 다음 글은 월간<작은책>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젊은 벗들을 바라보는 저의 착잡한 심경을 담았습니다.

국가보안법 논란이 쉼 없이 불거지고 있다. 국보법이 없으면 나라가 곧 결딴이라도 날 듯이 부르댄다. 대형 기독교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한 '구국기도회'까지 열렸다.
비단 '대형 교회'만이 아니다. '대형 언론' 또한 비금비금하다. <조선일보>는 '국보법 논쟁'에 '무관심한 대학가'라는 기사까지 내보냈다. "국보법 폐지 문제로 교문 밖에선 보수·진보가 짝 갈려 논쟁을 벌이고 있지만, 요즘 서울의 대학가 교문 안쪽은 조용"하단다. 기사는 이어 "1980년대 초 국보법 폐지를 우리 사회에서 처음 큰 목소리로 제기했던 곳이 대학이란 점을 생각하면, 뜻밖의 풍경"이라고 진단했다. 심지어 국보법 문제를 거론하면 "눈총을 받는다"는 한 대학생의 발언도 소개했다.
실제로 젊은이들 가운데 국보법을 사수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아니, 솔직히 고백하고 싶다. 대학가에 강연을 많이 다녔지만, 내놓고 국보법 사수를 주장하는 젊은이를 필자는 최근에서야 처음 만났다. 그것도 국보법을 주제로 한 <문화방송>의 '100분토론' 생방송(9월16일) 자리에서였다. 방청객으로 참여한 '자유시민연대의 회원'이라고 밝힌 한 '청년'은 필자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국가보안법은 국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적 행위를 처벌하는 법입니다. 그 법이 나쁜 법입니까?"
이어 "97년 이후에 국가보안법으로 인권, 정말 인권적인 피해를 받은 사례가 있는지 밝혀달라"고 주문했다. 필자는 젊은 벗의 질문에 구체적 피해사례를 거론하여 답했다.
"남북공동선언을 이끌었던 김대중 정권 시절의 문제다.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마르크스의 사상을 번역해서 출판했다는 이유로 출판사 대표가 구속되었다. 실형을 선고받고 집행유예로 풀려났는데도 다시 구속했다. 2003년 스트라이커 부대에 항의한 한총련학생들이 구속되었다. 그 구속되는 학우들을 가로막은 학생들도 연행했다. 잡아간 뒤 마땅한 근거가 없자 이적표현물 소지 혐의로 구속했다. 한총련 자료집을 지니고 있었다는 이유이다."

절망을 느낀 것은 그 다음이었다. 젊은 벗은 필자의 답이 끝나자마자 "한총련은 이적단체"라고 주장했다. "자료집을 지닌다는 것만으로 지금 질문한 젊은이의 동료가 구속되는 게 국가안위의 문제인가"라는 필자의 반론에 그가 한 말은 아직도 생생하다.

"저는 한총련 근처에도 안 갔어요. (함께 나온 회원들인 듯 손으로 가리키며) 여기 있는 사람들은 상당히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단 한번도 국가보안법 그런 것에 신경을 안 썼습니다."
자유시민연대. 2000년 11월에 출범한 뒤 '나라 지키기 운동, 기업하기 좋은 나라 운동, 교육 살리기 운동, 밝고 힘찬 사회 운동'의 4대 운동을 벌여왔다. 딴은 좋은 말들이다. 그런데 안을 들여다보면 절로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가령 나라 지키기 운동으로 국보법 폐지 반대에 이어 '금강산관광 반대'까지 주장한다. '교육 살리기' 또한 전교조 선생님들에 대한 날 선 공격이다. 따라서 자유시민연대의 청년회원이 "국보법에 신경도 안 썼다"는 말을 마치 자랑이라도 되는 듯 말하는 게 새삼스런 일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겸임교수로 대학강단에 도 출강하는 필자에게 청년의 말은 충격이었다. 동시에 안쓰러웠다. 그래서였다. 절로 탄식이 나왔다.
"젊은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생각하지요?"

생방송에서 밝혔듯이 문제의 핵심은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에 대한 찬반에 있지 않다. 대학생들이 민주적으로 선출한 학생회 간부들을 곧장 수배하고 감옥에 가두어온 야만의 현실을, 자료집을 지녔다는 이유로 서슴없이 구속하는 현실을 바라보면서도 국보법은 "국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적 행위를 처벌하는 법"이라며 "나쁜 법입니까?" 되묻는 젊은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방송이 나간 다음날이다. 필자의 전자 편지함에 몇몇 분들이 우려를 보내왔다. 그 가운데 한 분의 글은 '무서움'을 토로했다.
"연세 드신 분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새파란 젊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더 무섭게 생각되더군요. 사고의 범위뿐만 아니라 그 어린 나이에 그렇게 확고하게, 논리적 바탕 없이 맹신하는 자신감이 무섭더군요. 다양성을 인정하고 싶지만 그 다양성도 논리적 기반을 가져야 하는데 뿌리깊은 유신향수가 느껴졌습니다. 우리 사회의 시스템 때문일까요?"

그랬다. 필자가 서글펐던 가장 큰 이유는 공안부장 출신의 50대 중반의원과 20대 중반의 청년이 거의 같은 시각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토론자로 나선 서울지검 공안부장 출신인 장윤석 의원(한나라당)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헌법을 고치고 형법을 개정하면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는 필자의 토론에 느닷없이 물었다.
"북한을 믿습니까?"
필자는 '공안검사' 다운 그의 기습적 질문의도를 알았지만, 작심하고 답했다.
"네, 믿습니다."

무릇 상대에 대한 믿음 없이 어떻게 대화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그 자리는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는 국보법을 주제로 한 토론 마당이었다. 생방송 토론이 끝나자 그 젊은이 옆에서 방청하던 30대가 다가왔다. 분노를 도저히 못 참겠다는 표정으로 그는 "역사공부 다시 하라"고 소리 질렀다.

다음날에는 예상대로 온갖 욕설과 협박의 전화가 줄을 이었다. "북에서 온 간첩 아니냐"는 질문을 진지하게 물어오는 사람도 있었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국보법은 민주주의의 기본인 사상의 자유를 부정하는 악법 아닌가, 하여, 마땅히 국보법의 폐지는 진보주의자가 아니라 보수주의자들이 나서야 할 과제 아닌가. 적화통일 위협을 내세우지만 오늘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있지 않고 미국에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도대체 왜 그럴까. 왜 우리 사회의 이념적 지형이나 토론의 수준은 저열한가. 모든 것을 언론의 책임으로 돌릴 뜻은 없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한국언론이 그런 선동에 앞장서온 게 사실인 것을. 심지어 내란을 선동하는 글까지 버젓이 신문에 싣고 있지 않은가.
문제는 내란을 선동하고 마구 좌우갈등을 부추기는 자들에게 일부 젊은이들까지 휩쓸린다는 데 있다. 물론, 모든 젊은이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대학학생회 연합인 한총련은 국보법 폐지에 적극 나서고 있다. 비단 한총련이나 대학생만도 아니다. 숱한 청소년들이 2002년 미군 장갑차에 깔려 참혹하게 숨진 두 여중생을 추모하기 위해 촛불을 들고 찬 거리로 나왔다. 중고생은 물론이고 초등학생들까지 촛불을 밝히며 검고 맑은 눈을 불태웠다.
그래서다. 벗들에 대한 비관은 현실과 다를뿐더러 옳지 못하다. 하지만 필자는 여전히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맞은 편 방청석에 앉아있던 젊은 벗들이 모두 질문자와 같은 생각이라 게 쉬 믿어지지 않는다. 순진한 탓일까. 그것은 아니라고, 질문한 젊은이를 포함한 그들 대다수는 곧 생각이 바뀔 것이라고 믿는다. 그들이 진실을 못 볼만큼 기득권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직 아니기 때문이다.
(인터넷 한겨레 2004/10/19)

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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