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희(2000).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성과 힘.

어쩌다보니 지금 읽고 있는 두 권의 책이 세상에 나온지 30여 년이 흘렀다.  내친김에 고전읽기 첫번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고등학교 때 읽었다.  대입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고 말 못하겠다.  그 시절 많고 많은 중단편을 읽어 내용이 뒤죽박죽 섞인 가운데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관련해서는 난쟁이 이름이 김불이라는 것, 굴뚝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것 정도만 기억에 남아있었다.  
얼마전 200쇄 기념판이 나와 구입하면서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사놓고 읽을 틈이 없어서 두었다가 이번 설 연휴에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읽다보니 내가 읽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전부가 아니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연작 중 한 편이다.  이번에 읽은 책은 그 연작들을 묶어 놓은 것이고.
연작들 속에서 인물들은 얽히고 설키어, 단단하지는 않지만 인연으로 이어져 있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중심된 인물은 난쟁이 김불이와 그의 가족들이다.  아내, 아들 영수와 영호, 딸 영희.  그리고 난쟁이 김불이와 소통하고, 아들 영수의 운동을 도운 지섭.  영수와 영희가 일하는 공장/그룹의 일가족들.  앉은뱅이와 꼽추, 신애 등 1970년대를 산 사람들이 나온다.

연작이라는 형식이나 사실주의 기법은 이 소설의 특징이다.  지금에야 옴니버스라는 형식이 익숙해졌지만 30여 년 전엔 어땠을까 싶다.  1970년대를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으나 현재와 과거가 교차할때나 무엇인가를 꿈꾸듯 서술할때에는 사실주의보다 마술적 사실주의가 떠오른다.

연작들을 이루는 하나하나의 글을 보면 분명하지 않던 것들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으로 보면 그 시대가 분명하게 그려진다.  그 그림을 다 그리고나서 2008년 오늘과 비교해보면 놀랍다.  사회의 껍데기는 세련되게 바뀌었지만 그 속은 30여 년 세월이 무섭도록 변함없이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난장이'가 '난쟁이'로 쓰는 방법이 바뀌어도 우리 사회에서 그들의 사회적 지위가 바뀜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지 상에서는 시간을 터무니없이 낭비하고, 약속과 맹세는 깨어지고, 기도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눈물도 보람 없이 흘려야 하고, 마음은 억눌리고 희망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제일 끔찍한 일은 갖고 있는 생각 때문에 고통을 받는 일이다
- <우주 여행>


사람들은 사랑이 없는 욕망만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 한 사람도 남을 위해 흘릴 줄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만 사는 땅은 죽은 땅입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 죽은 땅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여전하다는 게 이 책이 200쇄가 나오도록 한 이유라는 점이 조세희는 부끄럽다고 한다.  요즘에도 낡은 카메라를 들고 집회와 시위현장을 찍는다는 그가 부끄러우면 우리는 어쩌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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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이야기한적 있는 것 같은데,
한 선배가 물었다.  왜 사진을 찍냐고.
당황하여 횡설수설했지만 내가 말하고 싶었던 건 '경험의 공유'였다.
사실 이 홈페이지도 그런 목적을 두고 있다.
경험을 공유하는데 있어 사진이 적합하면 사진을, 글이 더 적합하면 글을 이용할 뿐이지
굳이 사진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요즘은 게을러져 사진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많은 것 같다.
(물론 사진은 그 자체가 일정 정도의 부지런함을 요구한다고 생각한다.)

홈페이지, 사진의 존재이유가 요즘은 '경험의 공유'에서 '기록의 사명'으로 옮아가고 있는 중이다.
나에 대한 개인의 기록이 되었든, 이 시대를 산 사람의 기록이 되었든 말이다.
물론 아무도 내게 그런 사명을 요구하거나 부여하지도 않았다.
그냥 스스로 부여한 사명이다(거창도 하다.(__ ):).
솔직하게는,
백수라는 신분을 잊어버린 주제 넘은 사치에 대한 변명일지도 모르겠다.


조세희 연작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27년만 200쇄 기록
“세월 흘러도 ‘난쟁이 가족’ 삶 나아지지 않아”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연작을 쓸 때 제 심정은 벼랑 끝에 ‘위험’ 표지판 하나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이대로 끌려 가면 벼랑으로 떠밀리겠다는 두려움이었죠.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땅 밑 도처에 지뢰가 묻혀 있어서 언제고 폭발 가능성을 안고 있는 게 당시 제가 보는 세상이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자본에 착취 여전
소설 대신 집회장소 찾아 사진 찍어

1970년대 산업화의 그늘을 조명한 연작 장편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난쏘공>)이 200쇄를 기록했다. 1978년 6월 문학과지성사에서 초판이 나온 지 27년 만의 일이다. 문학과지성사로부터 <난쏘공> 판권을 인수해 지난 2000년부터 발행하고 있는 출판사 ‘이성과힘’은 <난쏘공> 200쇄를 기념해 한정본 특별판을 만들었다. 판화가 이철수씨가 제목 글씨와 뫼비우스 모양 띠 안에 난쟁이 가족의 팍팍한 삶을 담은 그림을 새겼고, 디자인 회사 ‘끄레’가 표지 디자인을 맡았다. 양쪽 모두 무료 봉사.

“27년 만에 <난쏘공>이 200쇄를 기록했지만, 지금 상황은 처음 이 소설을 쓰던 때와 똑같아 보입니다. 날마다 가난한 사람들은 자본에게 매를 맞고 착취 당하고 있어요. <난쏘공>을 처음 쓸 때는 상황이 그렇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는데, 지금은 소수만 알고 있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겠죠.”

1일 낮 작가로서는 좀처럼 경험하기 힘들 ‘200쇄 기념 기자 간담회’ 자리에 나온 조세희(64)씨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그에게는 당장 자신의 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간담회보다는 대학로의 농민 집회와 여의도에서 열리는 노동자 총파업 집회가 더 중요해 보였다.

“한국 사회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850만명이고 농민이 350만명입니다. 합해서 1200만명이죠. 이들은 대부분 한 가정의 가장이고 집안의 유일한 노동력이기 십상입니다. 이들이 하루하루를 희망 없이, 슬프게 사는 사회가 제대로 된 사회일 수는 없는 것이죠.”

미출간 장편 <하얀 저고리> 이후 십수 년 동안 소설 발표를 하지 않는 대신 그는 주요 집회와 시위 장소를 찾아 사진을 찍고 있다. 펜 대신 카메라로 그의 표현 수단이 달라진 것일까. 지난달 15일 농민 전용철씨가 희생된 여의도 집회장에도 갔다가 한바탕 물대포 세례를 받았다.

“당시 분위기는 엄청난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경찰의 곤봉과 방패에 맞아 피를 철철 흘리는 농민들 모습을 보면서도 저는 분노로 몸을 떨 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요. 그런데도 제가 계속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찾아 다니는 이유는 두 가집니다. 동시대인으로서 내가 보고 겪은 것들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책임감, 그리고 카메라를 지니고 있으면 현장에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이에요.”

그럼에도 작가는 카메라가 아닌 펜으로써 해야 할 일이 있음을 잊지 않고 있었다.

“사진을 찍는 일도 물론 중요하지만, 건강이 허락한다면 그동안 소홀히 했던 글을 다시 써야죠. <하얀 저고리>도 어떤 식으로든 마무리지어야 하고, 짧고 실험적인 방식으로 동시대의 사람과 사회를 담아내는 글도 쓰고 싶어요.”

간담회를 끝내고 그는 서둘러 가방을 메고 일어섰다. 사진기자들이 메고 다닐 법한 가방 안에는 <난쏘공> 200쇄 기념호와 함께 그의 또 다른 ‘무기’인 카메라가 들어 있었다.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인터넷한겨레 2005/12/01)

http://www.hani.co.kr/kisa/section-005001000/2005/12/005001000200512011917235.html


그는 1970년대를 소설로 기록했고, 2000년대를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다.
물론 그의 기록은 수준부터가 내가 하는 하잘것없는 기록과는 다르지만
그래도 나의 하잘것없는 기록은 계속 될 것이다.

<난쏘공> 200쇄 특별한정판 샀다.(^^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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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희(1985). ≪침묵의 뿌리 : 사진·산문집≫.  파주 : 열화당.

먼저 이 책을 손에 쥐게 된 사연.
이 책의 존재를 안 것은 꽤 오래다.
조세희, 얼마전까지 그는 '난.쏘.공'을 떠올리게하는 소설가일뿐이었다.
그런데 한 두해 전에 각종 집회에서 조세희 씨가 사진을 찍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찍는 사진은 어떤 사진일까 해서 찾아본 것이 이 책이다.
사진·산문집이라 사진책 치고는 글이 많은 편이었지만 오가며 서점에서 읽자 싶어 구입하지 않았다.  그러나 늘 기억할 것이 많은 만큼 잊는 것도 많은 나로서는 금새 잊고 말았다.
그런데-.

지난 늦가을 손석춘 기자의 강연을 들었다.  강연 뒤 저녁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나누었다기보다 손석춘 기자가 질문을 당했다.(-_- );
손석춘 기자는 저널리스트에도, 작가에도, 학자에도 욕심이 있어보였다.  그런 그의 욕심에 대해(나쁜 의미의 '욕심'아니다) '뜨아~'하고 입을 벌렸던 것은, 아무도 자신의 소설에 대해 리뷰를 써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그 리뷰는 단순 리뷰가 아닌 작가론에 버름가는 리뷰페이퍼를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작가 반열(리뷰페이퍼가 그 척도인가?(' ' )a)에 오르지 못했음을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내가 국문학도라면 한번 시도해보고 싶기도 하다만, 다행인지 나는 국문학도가 아니다.(^ ^ );;)
그래서 서운(?)하지만 한 분이 문단의 후배로 인정해주어 기분이 좋다고 하였는데 그 한 분이 바로 조세희 작가다.
(이런 말을 하는 그에게 삔과 나는 "자기 자랑이구만~"하며 쑥떡거렸다.(-_- );)
어쨌거나 이런 과정 거쳐 조세희 작가를 떠올리고 이 책을 주문하게 됐다.

이 책의 이야기들과 사진은 꽤 오래된 것들이다.
80년대 그는 이야기 한다.  그 시대의 문제, 부의 불균형 등은 누구의 책임인가?
50년대 이후 본격적인 산업화의 길로 들어서며 우리 세대에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폐혜를 반세기가 지나기도 전에 우리는 마주하고 말았다.  문제의 원인과 결과를 모두 체험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시대의 빠른 흐름을 보았을 때 이런 일들은 더 많이, 더 빠르게 생겨날 것이다.  인터넷을 보라.)
그러하기에 장기적인 안목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는 이렇게 표현하지는 않았다.  책임과 의무를 떠올리며 선택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그가 졌던 책임과 의무가 이 책에 담긴 글과 사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읽은지 오래되서 정리가 안됨.(-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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