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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6.24 [life] 되찾은 친구

친구가 있(었)다.  이곳에 살게 된 초기 요가를 하면서 알게 된 친구다.  우리가 만났을 때 막 아르헨티나에서 직장을 따라 이주해온 친구였다.  짐에서 진행되는 요가 수업을 진지하게 하는 사람들은, 그러니까 거르지 않고 하는 사람들은 그 친구와 지비 그리고 나 뿐이었다.  사람들은 늘 들쭉날쭉했고 우리는 십여 개월을 매주 두 번씩 함께 했다.  자연스레 친구가 되었다.


아르헨티나에 있을 때부터 영어에는 어려움이 없던 친구라 이곳에 금새 적응하는가 싶었지만, 친구가 없었다.  하지만 특유의 다정다감함으로, 이탈리아계 아르헨티나인이다, 직장 동료들과 걸그룹(?)을 만들어 펍도 다니고, 그 중 한 친구와는 집도 함께 세를 내어 살기도 했다.  그 집에서 열리는 바베큐나 파티에 우리도 가끔 놀러가 친구의 친구들도 몇 번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그 사이 우리가 그 짐에 더 이상 다니지 않게 되었지만 집에 멀지 않았기 때문에 가끔/자주 만나 차를 마셨다.


줄곳 싱글이던 친구가 런던정착 2년 여 만에 남자를 만나기 시작했다.  직장 내 소셜 파티에서 만난 남자, 그리고 그 남자는 곧 친구의 남자 친구가 되었다.  친구가 월화수만 자기 집에 머물고 나머지 4일은 남자친구의 집에서 머무르게 되면서 만날 기회가 확 줄어들었고, 우리가 만났던 주말을 이젠 남자친구와 보내니, 연락도 뜸해졌다.  어느 날 지비와 그 친구에 대해서 생각하다 "she's gone"이라고 부르짖었다.


그러다 그 친구가 아예 남자친구의 집으로 들어가버렸고, 우리에겐 누리가 생겼다.  양쪽 모두 '겨를 없는' 시간을 보냈지만 나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냈고, 친구는 가끔 한 번 보자는 연락을 해왔다.  그렇게 일년에 한 두 번 만나기를 3년.  그 동안, 솔직히 말하면, 그 친구에게 앙금이 조금 쌓였다. 

드물게 만나기를 몇 번.  한 번도 빠짐 없이 그 친구의 일정이나 친구의 남자친구의 일정에 우리가 맞춰야 했다.  친구의 남자친구는 일년에 한 번 전세계에 흩어진 지사를 2주 정도 일정으로 돌때가 있는데 그 때 친구가 얼굴을 보자고 연락을 해오곤 했다.  남자친구와 함께 볼 때는 맨체스터 시티 경기 일정에 맞춰 경기가 없는 날, 남자친구가 팬이어서 홈 경기는 꼭 맨체스터로 가서 봤고 어웨이가 런던에서 있으면 꼭 표를 구해 구장에서 본다,과 그 커플이 일정이 없는 날을 두 달전에 알려주면 거기에 우리가 맞춰야 했다.  알려준 시간에 우리가 맞추지 못하면 다시 두달을 기다려야 할 판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한국을 가거나 하는 정도의 일정이 아니면 두 달전에 잡힌 일정이 잘 없다.  사실 두 달전에 일정을 잡는 사람이 흔하지 않고, 우리는 first come first serve 형식이라(먼저 오면 먼저 서비스) 친구 일정에 맞췄다.  그런데 근래로 오면서 이 친구와 우리가 계속 친구가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지난 번 만날 장소를 잡으면서 친구는 차 마실 장소로 호텔 티룸을 제안했다.  지비와 나는 '뜨아'했다.  결국 만난 장소는 V&A 박물관 까페.  우리를 만난 뒤 친구들과 박물관에서 가까운 나잇브릿지에서 저녁 약속이 있다고 해서 우리가 제안한 장소다.


그날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묻고 들어보니 친구가 런던 정착 초기 시절 만나던 사람 중 계속해서 만나는 사람은 우리가 유일했다.  함께 살고, 펍에 다니던 직장 동료들과도 더는 만나지 않는다고.  이런저런 오해와 환경변화가 있었긴 했지만, 속된 말로 친구는 이제 레벨이 달라진 것이었다.  친구의 남자친구는 자신이 다니던 회사의 중역이고, 이제는 남자친구의 친구 와이프들과 친구가 되어 만나곤 한다고. '아 그렇쿤'하며 듣고 돌아와서 우리가 예전 같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 봄 그 친구가 출산을 하면서 마음이 쓰였다.  남자친구가 영국인이라 그나마 가족이 우리처럼 아예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다려도 기다려도 아이 한 번 보러 오라는 연락이 없길래 우리가 먼저 연락을 했다.  그래서 이틀 전 친구와 아기를 보러 다녀왔다.







만날 날을 잡아두고서도 마음이 계속 불편했다.  출산을 한 달쯤 앞두고 약혼했다는, 그러니까 반지를 받았다는, 문자를 받고서 축하카드를 보냈다.  받았다는 말이 없어 갔나 말았나 혼자 고민했다.  남자친구의 페이스북 포스팅을 통해서 출산 소식을 보고 축하 문자를 보내며  축하카드를 보내려고 주소를 물었다.  혹시 알고 있던 주소가 틀렸나 하면서.   한달 전 약혼 축하 카드는 받았나 모르겠다 하면서.  그제서야 카드는 받았으니 주소가 맞다는 답신이 왔다.  '내가 받았다고 연락 안했나'하면서.  묵직한 마음이 생겼지만, 털어내고 출산 축하카드를 보냈다.  역시 아무 연락 없었지만, 받았을꺼라고 믿었다.  그런 일이 있어 우리가 '괜히' 연락을 해서 친구와 아이를 보겠다고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소심한 마음이 들었다.  마침 지난 월요일 지비가 쉬게 되어 잠시 들렀다. 

친구가 살고 있는 집에서 저 런던 타워브릿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우리는 친구네로 가기 위해 타워힐에 도착해서 간단하게 까페에서 점심을 먹고 오랜만에 관광객이 된 기분으로 강변을 걸었다.


만나서는 친구의 출산 이야기며, 곧 이사가게 될 새집 이야기며, 아이들 학교 이야기며(벌써?) 유쾌하게 나눴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지비와 이야기를 나눴다.  레벨이 달라도 한참 달라진 친구와 우리가 더 이상 친구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그랬더니 지비의 말이 그랬다.


친구가 런던을 떠나 다른 도시, 하지만 기차로 30분 거리,로 이사를 가게되고 그 친구의 삶이 지금과 더 달라진다면 우리는 더는 만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고.  특히 우리가 연락을 지속적으로 하지 않으면 그 친구가 연락을 하는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고.  그래도 그 친구는 우리의 한국 결혼식에 와준, 우리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을 함께 해준 고마운 친구임은 분명하다고.  그 친구는 어떤지 몰라도 우리에게 그 친구는 여전히 '친구'고 그렇게 기억하고 추억할 자유는 우리에게 있다고.


맞는 말이었다.  앞으로 만나지 못해도 우리는 '친구'라고 기억할 수 있다.  그렇게 이야기하다보니 남자친구가 생기고, 환경이 바뀌면서 잃어버린 친구 하나를 다시 되찾은 기분이 들었다.  비록 우리끼리지만.


착하고 이뻤던 친구가 새로운 환경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진심 100%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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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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