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야이어(2006).  ≪그들은 꿈이 있었다≫.  이선희 옮김.  검둥소.

내친김에 읽은 토마스 야이어의 다른 소설.  1960년대 초반 미국 남부 인종차별과 이를 극복하기 위해 두려움을 극복하기 시작하는 흑인들을 다룬 소설이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는 소재나 문체 면에서 청소년 수준의 책이다라고 생각했다.  크게 틀리지는 않지만 인종차별문제는 내가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은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미국내 인종차별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경우 미국이라는 사회 자체가 악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그 속에 우리가 연대해야 할 그 누군가가 있다라는 생각은 못하고 산 것이다.

오드리라는 흑인여성은 버밍햄의 흑인거주지역에 살며, 학교에서 일한다.  부모님은 작은 가게를 기반으로 변화보다 현실에 순응하여 살아가는 1960년대 평범한 흑인들이다.  그러던 어느날 오드리는 뒷날 KKK단에 들어가는 스티브와 덩크로부터 테러를 당한다.  그러고도 두려움에 떨고만 살았지만, 테러를 당한 날 도움을 준 에드워드를 통해 인권운동에 눈뜨고 참여하게 된다.  에드워드라는 인물은 마틴 루터 킹의 일을 돕은 청년이다.  에드워크가 있긴 했지만 오드리가 흑인인권운동에 눈뜨고 참여하는 과정은 선택이라기보다 어쩔 수 없는, 자신이 흑인이기에 마주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뭐 이건 보기 나름이다).
KKK단이 유독 기승을 부리는 버밍햄에서 마틴 루터 킹과 그의 동료들은 비폭력으로 인종차별에 대항/대결(confrontation)하는 C프로젝트를 제안한다.  흑인출입금지 지역, 쇼핑몰이나 식당 등에 그냥 단지 출입하고 그것을 이유로 연행되고, 그러기를 반복하는 것이 바로 C프로젝트이다.  불매운동까지 겸한 이 프로젝트는 부활절까지 진행되 결국 지역 상공업자들이 상업지역의 흑인출입금지 표지 등을 철거하게 만든다.

이 후 마틴 루터 킹와 그의 동료들은 워싱턴 DC에서 25만이 참여하는 시위행진을 하고, 그곳에서 한 연설이 바로 그의 자서전 이름이기도 한 "I have a dream"이다.  그 대목을 읽고서야 '아, 그래서 책 이름이-.'하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 책은 마틴 루터 킹과 그의 동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종차별주의자들의 테러에 떨며 미틴 루터 킹이 하는 운동의 효력은 의심하며, 그러면서 기대하며 바라보는 평범한 흑인들의 이야기다.  결국은 지지하고 참여하긴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가끔씩 오바마를 생각했다.  그가 미국의 흑인을 대표할 수 있는, 흑인의 전형성을 조금이라도 가진 인물인가는 둘째치고 나는 오바마가 민주당의 후보가 되면 과연 민주당이 선거에서 공화당을 이기게 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흑인이나, 여성이나 우익들이 결집할 수 있는 빌미가 되지 않을까.  어쨌거나 굵직한 스캔들이 없는한 오바마가 민주당 대선후보로 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그가 후보가 된다고, 대통령이 된다고 미국 대다수 흑인들의 삶이 많이 개선될까?  글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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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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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야이어(2007).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염정용 옮김.  검둥소.

토마스 야이어는 독일인이다.  그런데 그는 북미 인디언, 흑인 인권, 베트남 전쟁에 관한 소설 등을 썼다.  미국에 관심이 많나보다.  하기야 미국은 이 지구별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의주시해야할 나라다. 
이 책은 북미 인디언 샤이엔족에 관한 소설이다.  책의 앞뒤 소개글로 추측해보면 샤이엔족은 미국인들에 의해 '서부 개척시대'라고 불리는 시기에 저항했던 인디언부족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 소설은 스스로를 샤이엔이라고 부르기도하고 치치스타스족이라고도 부르기도 한 인디언부족의 일원인 올빼미여자의 이야기다.

내가 '미국인들에 의해 서부 개척시대라고 불리는'이라고 쓴데는 나름 얼마전에 깨친 생각이 있어서다.  '개척'이라는 단어는 긍정의 의미 또는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기에 그 시대를 '개척시대'라고 불러서는 안된다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적으로 그 시기를 미국인들과 같은 입장에서 그 단어를 쓰고 있다.  새로운 지칭이 필요하고 새로운 지칭을 찾고 사용하기 위해서는 합의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는 그 합의를 이끌어낼 수 없다.  때문에 어떤 시대인지 알기 위해서 '개척시대'라는 표현을 쓰되 그 표현은 '미국인들에 의한' 것임을 밝혀둔다.

(이 책을 읽을 사람이 없을 것 같아 줄거리를 비교적 자세하게 쓴다)올빼미여자는 치치스타스족의 딸이었다 원수 부족인 오오에타네족에 잡혀가게 된다.  자신을 잡아간 노란손이 올빼미여자를 딸로 삼아 오오에타네족의 일원으로 살게 되면서 올빼미여자는 오오에타네족이 자신의 부족과 크게 다르지 않은 지혜로운 부족임을 알게 된다.  차이라고는 오오에타네족은 백인들과 덜 적대적인 부족이라는 점.  때문에 올빼미여자는 같은 인디언들이 왜 평화롭게 살 수 없을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원래 자기 부족이었던 치치스타스족도, 자신을 새로운 가족으로 맞아준 오오에타네족도 가족으로 인식하는 그녀는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는 현실에 괴로워한다.  
그러다 치치스타스족이 오오에타네족을 공격하러 온다.  이 사실을 미리한 그녀는 공격 사실을 고함으로 알려 오오에타네족의 피해를 줄이게 된다.  하지만 그 때문에 치치스타스족의 공격은 실패하고 만다.  그 뒤 올빼미여자는 자신을 구하러왔다 실패하고 돌아간 늑대얼굴의 가죽목줄을 찾아주기 위해 오오에타네부족을 떠나게 된다.  처음은 자신이 태어난 부족에게 돌아가기 위함이었으나 도중에 가죽목줄을 백인들에게 빼앗기게 되면서 올빼미여자는 멀고먼 길을 떠나게 된다.
마지막에 가서는 가죽목줄을 늑대얼굴에게 주게 되지만, 그 사이 자신의 부족이 백인 민병대에게 몰살당하는 인디언말살의 현장을 직접 경험하게 된다.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올빼미여자는 마지막에 가서 늑대얼굴을 만나게 된다는 이야기다.

땅과 사냥에 대한 가치 자체가 다른 인디언과 백인들, 그리고 백인들이 어떻게 인디언을 속이고 그 땅을 차지했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원래 아메리카의 주인이었던, 물론 그들은 땅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인디언은 저항하여 죽었거나 백인들과 협정을 맺어 울타리 안에서 가늘디 가는 삶을 이어가야만 했다.

예나 지금이나 미국은 나쁘기만 하다는 생각을 했고, 여성의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생존본능에 대해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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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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