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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6.16 [etc.] '평화기행 설문지 작성'

얼마전에 다녀온 일본행의 정식 명칭은,
'원폭 피해자와 함께 떠나는 나가사키-히로시마 평화기행'이다.

언제나 그렇듯 정리는 한참 뒤에나 될 것 같다.  그 전에 어떤 여행이었는지 정리하는 마음으로 주최측에서 보내온 설문 응답을 먼저 작성했다.  그저 관광이 아니었다는 증거라고나 할까.

다녀오고서 느낀 점 하나, '정말 할 일은 많다'.
다녀오고서 결심 하나, '외국어 공부하자'.

[설문조사]

1. 견학, 방문했던 장소 중에서 가장 좋았던 곳은 어디입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가. 군칸지마
당시 국가와 산업이 식민지 수탈을 바탕으로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곳으로 일제의 속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곳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접근해서 볼 수 없음이 아쉬웠습니다.  기회가 되면 군칸지마에 직접 들어가 보고 싶습니다.

참고. 군칸지마
나가사키 앞바다에 있는 섬으로 미츠비시사의 탄광이었다.  조선인을 비롯 중국인 징용자들의 강제로 동원된 곳이다.  묘지를 제외한 모든 생활시설을 갖춘 곳으로 최초의 아파트가 지어진 곳이라고한다.  1970년대 폐광이후 지금은 사람의 출입을 금하고 있다.  군칸지마, 군함도는 군함을 닮아 지어진 이름이다.


나. 치쿠호 강제연행 유적/묘지
원폭문제와 강제연행의 문제를 별개로 생각하였데, 그것이 별개의 문제가 아님을 느끼게 해주는 곳이었습니다.

참고. 치쿠호
후쿠오카의 탄광지역으로 산업, 군수산업의 중심지였다.  강제연행자를 비롯 조선인 노동자의 수가 많았던 지역으로 현재도 그 후손들의 수가 많다고 한다.


다. 고요 제1 병원
이번 기행을 하면서 일본에서 조선인 강제연행 문제, 원폭 문제를 다룬다는 것이 참 힘들겠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누구탓이라고도 할 수 없지만 대안적인 활동들이 참 힘들겠구나, 때로는 미약하구나라는 생각을 했는데요.  고요 제1 병원에 가서 그 생각을 부분적이나마 고칠 수 있었습니다.  70년대 시작된 운동의 성과가 지금은 운동적인 모습을 띠지는 않지만 지역 병원의 모습으로 생활 속에서 원폭 문제를 진지하게, 오래도록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곳에서 만난 분들의 이야기가 현재 일본(정부)이 원폭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 등을 아는데 도움이 됐습니다.

참고. 고요 제1 병원
히로시마 인근에 위치한 고요, 고요에 위치한 의료생협 개념의 원폭전문병원이다.  히로시마 피폭 당시 많은 사람들이 히로시마를 빠져나왔고, 그 길목에 있었던 고요의 주민들은 피폭자들을 도와주었고 이로 인해 2차 피폭되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고요에 원폭전문병원이 세워지게 되었다고 한다.





2. 앞으로 또 방문하고 싶은 장소가 있습니까? 있다면 그곳은 어디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가. 기타규슈 조선학교
하는 일이 보통사람들, 주로 아이들에게 미디어를 가르치는 일이다보니 그런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사실, 오래전부터 그럴 계획이 있기는 하였는데 그걸 실행에 옮기기가 여건 상 쉽지가 않네요.

나. 고요 제1 병원
제가 많은 것을 느꼈던 곳이고, 다른 방문지(유적지)와 달리 사람이 있는 곳이라 그들과 함께 무엇인가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기타규슈 조선학교와 고요 제1 병원은 방문 프로그램이 아니라 ‘교류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게 있어 방문과 교류의 차이는 교류는 함께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인데, 두 곳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므로 그들과 1회적 만남에 그치지 않는 교류 프로그램을 진행해보고 싶네요.  그래서 ‘또 방문’하고 싶은 곳을 꼽았습니다.  ‘또 방문’의 의미는 1회적인 방문이 아님을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참고. 기타규슈 조선학교
규슈 지방의 조선인 교육을 위해 설립된 학교.  영화 <우리학교>를 통해 조선학교에 대해서는 조금이나마 이해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자세한 설명은 생략.


3. 다시 방문하고 싶거나, 지인에게 권하고 싶은 곳이 있습니까? 이유는 무엇입니까?

가. 오카마사하루 기념관
나가사키 평화박물관이나 히로시마 평화박물관은 가이드북에서 찾을 수 있는 곳이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다는 생각에 추천하고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기행의 방문지(유적지)가 모두 그렇지만, 그나마 대중 교통 수단을 통해 접근이 가능한 곳이기에 알려만 진다면 일반 여행객들도 찾을 수 있는 곳이라 지인에게 권하고 싶은 곳으로 꼽았습니다.  접근성 이외에도 일제 강점기, 강제연행에 대한 관점 부분이 나가사키와 히로시마 평화박물과는 차이가 있어 가볼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내용의 차별성, 접근성이 쉬운 장점에도 불구하고 오카마사하루 기념관을 방문하여서 볼 수 있는 자료들이 모두 일어로만 안내되어 있는 점은 단점으로 꼽을 수 있겠습니다.

참고. 오카마사하루 기념관
1995년 일본의 전쟁책임과 가해책임을 내용으로 활동한 오카 목사를 기리는 사람들이 뜻을 모아 만든 민중 자료관.


4. 이번 평화기행 일정에서 부족한 점, 고쳐야 할 점에 대해 말씀해주시겠습니까?

가. 교류회 진행
사실 저는 아직도 교류회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간담회라고 부르는 것쯤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간담회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런 자리를 마련하기까지가 쉽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각자의 의견을 전달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물론 원폭 문제의 미세한 결을 알지 못하는 제가 더 문제일 수도 있지만 비슷한 자리가 지역과 사람을 달리하며 진행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또 교류회라는 이름에 걸맞는 활동이 되려면, 인사나 의견을 전달하는 것 외 논의, 토론 같은 것들이 진행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전에 함께 할 수 있는 공동행동 같은 것이 준비되어 그걸 함께 수행함으로써 공동의 경험이나 느낌을 가짐으로써 각자가 가진 시각의 차이를 줄여나가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나. 설문지
평화기행의 부족한 점은 아닌데요, 설문지가 1~3번 문항, 5번 문항이 중복된다고 생각합니다.
나름대로 1번은 가장 인상적인 곳, 2번은 ‘또 방문’에 차이를 두어 지속적인 교류가 필요한 곳, 3번은 일반 여행객에게 추천 가능한 곳으로 구분하여 이 설문지를 작성하기로 하였습니다.

5. 이번 평화기행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 사람, 장소, 사건 등등…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가장 인상적인 순간, 사람, 장소는 아무래도 배동록 선생님과 함께 했던 순간과 장소가 아닐까 합니다.  특히 치쿠호 강제연행 유적/묘지는 저뿐 아니라 많은 분들이 그렇게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그 분 자체가 일본 내 조선인의 역사와 현재를 보여주는 증거/증인이기도 하고요.

6. 기행 일정 중 먹었던 음식 중 무엇이 가장 좋았습니까?

고요 제1 병원에서 먹었던 점심이 가장 좋았습니다.  채소를 많이 먹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특히 완두콩깍지.  아, 그러고보니 앉아서 도시락을 먹을 수 있었던 점도 좋았군요.

7. 한국원폭피해자 및 2세환우운동을 함께 하고 싶거나, 이 활동에 도움을 주실 수 있다고 생각되는 추천해주실 만한 지인이 있으십니까?

지금 당장 떠오르는 사람들은 없네요.  하지만 원폭 피해와 관련해서 부산지역 활동을 (영상)촬영하거나 하는 일이 생기면 연결시켜드릴 수는 있겠네요.  
부산에는 동포넷이라는 단체를 통해서 강제연행 유적지나 조선학교를 방문하는 팀이 있습니다.  그 방문이 정기적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하지만 그 팀과 어떤 일을 같이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끝으로,
이번 기행이 여행자 혼자서 갈 수 없는 곳을 갈 수 있어 좋은 점도 있었지만 저는 무엇보다 함께 했던 일행들이 기행의 의미를 더해준 것 같습니다.  참여했던 모든 분들이 원폭 문제, 강제연행 문제의 당사자로서 잠시 잠깐 듣는 그 분들의 인생 이야기가 우리가 기행에서 마주치는 유적들이 단지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오늘도 현재 진행 중인 역사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기행 중이나 또는 사전, 사후에 이런 이야기들, 참가자들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개개인이 겪어온 삶의 어려움들이 결코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번 기행을 하면서 기록을 해야한다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물론 부분적으로 구술-채록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채록 과정에서 의미나 느낌이 반감되는 경우도 있고 또 우리에겐 영상이라는 좋은 기록 매체도 있기에 원폭 1세를 비롯한 2세, 3세들에 대한 기록을 해두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제 강점기와 관련된 사안들은 특히, 직접 경험한 세대들이 사라지고 있는 시점이기에 그런 작업들이 더욱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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