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회 외(2004). <<21세기를 바꾸는 교양>>. 서울 : 한겨레신문사.

  '교양'이란 무엇인가.  에둘러 설명할 것 없이 그것은 '교양없음'을 비웃는 지식이다.  '교양없음'이란 무엇인가.  현실에 뿌리를 대고 말한다면, 불량 깡패처럼 세계를 휘젓는 부시를 포함해 이땅에서 부당한 세도를 부리는 자들의 천박한 세계관을 총칭하는 말이리라.
- pp. 7~8



이 책은 <한겨레21> 10돌 기념이벤트의 일환으로 마련된 교양강좌묶음의 녹취다.
EBS에서 방송도 했다.  
챙겨 보고 싶었으나 정문태 기자의 그것만 보았을뿐이다(별로 재미 없었다.( - -)).

박노자, 한홍구, 홍세화, 하종강, 정문태, 오지혜, 다우드 쿠탑-알쿠드스(팔레스타인 지역) 교육방송국장이 강연자로 나섰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책 한권은 됨직한 이야기 꾸러미를 들고 있는데 이들을 한 권에 묶다보니 아쉬운 구석도 있다.
그러나 요점정리된 전과(참고서)처럼 한국사에서 세계사, 그리고 노동에서 전쟁까지 한 번에 훑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 사회자(김갑수, 배우 아님( - -)a)의 유치한 멘트들만 빼면 더 좋은 책이 되지 않았을까.

'천박한 세계관',
참 부끄러운 생각이 들게 만드는 말이다.
과연 나는 '교양인'인가 하는 점에서 말이다.
'교양없음'-, 적어도 부시 따위의 인간류가 되기는 싫은데.(-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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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자리에서 같은 사람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는데 남긴게 다르다.

홍세화씨로부터 이야기를 들을 즈음 고민하던 것이
'생존'과 '자아실현'이었다.

'생존'과 '자아실현'이라는 두 단어 위에서 고민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용은 그러했다.

많은 사람들이 길 위에 섰다.
그 길이 옳은 길임은 누구나 인정 하는 것이었지만
'먹고 사는 문제'라는 걸림돌에서 길 위에서 내려왔다.
물론 길 위에서 내려온 그들에게 '먹고 사는 문제'는 걸림돌이 아니라 삶의 문제일 것이다.

계속 길을 가느냐, 마느냐
그것이 홍세화씨가 말한 '생존'과 '자아실현'이라는 단어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바보 눈엔 바보만 보인다더니 그 격인 것인가.(__ )a

'생존'과 '자아실현'이 일치할 때 '존재미학'이 완성된다고 나는 이야기를 정리했다.
'생존'만을 좇을 때 내가 넉넉히 산다고 하여 '나'라는 사람의 존재가 완성되었다고 볼 수 없으며
'자아실현'만을 좇을 때 내가 곧게 산다고 하여 '나'라는 사람의 존재가 완성되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두 가지가 일치할 때 '나'라는 사람의 존재가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고.
나는 그렇게 내 머릿속에 그의 이야기를 남겼다.





그런데 지금 내 머릿속에 남은 그의 이야기는,
'참여하지 않는 자 비판도 말라'는 그의 맺음말이다.

'참여하지 않는 자 비판도 말라'는 그의 말이 서운한 것이 아니라
'참여'라는 말의 경계가 서운할 따름이다.


여기서 '홍세화'는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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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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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망명자로, 이주노동자로 23년간 프랑스에서 살아오신 홍세화선생님.

지치고 힘든 어느날 외국인 친구가 건네준 잡지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었단다.

1930년대 프랑코 독재에 항거,
조국 스페인을 떠난 2만여 명의 망명객들을 위해 그 망명객들이 만든 잡지.
그 잡지에 수염 하얀 노인이 이렇게 말했단다.

"우리 인생은 실패한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다.
그 기억만으로도 편안한 마음으로 눈을 감을 수 있다."

그 노인이 불렀던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니지만
나는 오늘 또 한곡의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들었다.

민중가요도, 투쟁가도 없던 시절 젊은 홍세화들이 대학로에서 불렀던 노래.
그 노래가 있기에, 그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있기에
오늘날의 그가 있는지도, 과거보다 조금 나은 오늘이 있는지도 모른다.


여기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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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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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것들과의 '차이'를 다시 한번 기대해본다.

[알려드립니다]
민주노동당 지지 방송출연으로 직무정지 처분을 받은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의 건과 기자들의 정당활동 권리에 대한 논의를 하기 위한 한겨레 윤리위원회가 소집되었습니다. 1988년 창간과 함께 한겨레 구성원들이 스스로 만들어 지키기로 한 한겨레 윤리강령에 대한 한겨레 내부 논의가 하루 아침에 결론지어질 수 없는 만큼 지켜봐 주시기를 바랍니다.

13일 오후 소집된 <한겨레> 윤리위원회는 사원의 정당활동을 금지한 현행 사규에 대한 공청회를 26일 열기로 하고, 윤리위원회의 이런 결정에 따라 편집위원장은 홍세화 기획위원에 대한 직무정지 조처를 즉각 해제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14일자 정태인씨의 시평도 한겨레에 실렸습니다.

구 본 권 <인터넷한겨레> 뉴스부장 /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
(인터넷한겨레 2002/12/14)


한겨레 기사읽기
-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 정태인 -> 바로가기


여기서 '차이'는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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