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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2.05.31 [photo] 518묘역 : '구묘역에서'
  2. 2002.05.31 [photo] 518묘역 : '518묘역 가는 길'
기념식이란 도대체 누가 와야하며, 또 누가 위로 받고 추모 받아야하는가를 생각하며
신묘역 옆으로 난 길을 따라 타박타박 걸어 구묘역으로 갔습니다.

01.

구묘역이라고 불리는 3묘역에는
518광주민중항쟁을 비롯 민주화운동을 하시다 숨을 거두신 열사들이 누워계십니다.

02.

91년 강경대 열사의 죽음 뒤 뒤따르던 분신 중에서
노동자로서, 그리고 여성으로서 처음으로 분신하신 이정순 열사의 11주기 추모식이
조용하게 치러지고 있었습니다.

03.

사회자가 말했습니다.
이정순 열사가 분신했을때 바로 옆에 사진기자라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그런데 그들은 불을 끄기는 커녕 사진을 찍기에 바빴다고.
동료들이 달려가 불을 껐을땐 이미 늦어버렸다고.

그말을 듣고서 카메라를 들고 있던 손목이 갑자기 무거워졌습니다.

04.

많은 어르신들이 함께 자리하고 계셨습니다.
그 분들은 자식을 저세상으로 먼저 보낸, 그래서 불효자식을 둔 부모님들입니다.

05.

박종철 열사의 아버님(가운데 남색 양복),
이한열 열사의 어머님(푸른색 양장),
사진 속에는 안계신 강경대 열사의 부모님,...
미쳐 기록하진 못했지만 우리의 아픈 과거에서 자식들을 먼저 저세상으로 보낸 부모님들입니다.

06.

한 어르신이 참배하러 온 묘를 등지고 먼곳에 시선을 두고 계셨습니다.

07.

묘비 앞에는 그곳에 누워 있는 사람의 이름, 'OOO의 묘' 이렇게 쓰여져 있습니다.
묘비 뒤에는 약력, 사망경위
또는 가족들이 그곳에 쓸쓸히 누워있는 이에게 하고픈 말이 쓰여져 있습니다.

'엄마 편안이'
그곳에 누워있는 무덤 하나하나가 마음 아프지 않은 것이 없지만
이 짧은 말에 정말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았습니다.

08.

우리학교 86학번 선배님이신 양영진 열사.
'어머니 손톱을 다 깎아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88년 재료관에서 투신, 지금 그곳에 누워계십니다.

09.

박종철 열사의 죽음 뒤 각계각층에서 잇달았던 시위.
그들 중 한 시위에서 최루탄에 맞아 숨을 거둔 이한열 열사.

10.

연세대 95학번 노수석 열사.
대선자금 공개, 교육재정 확보를 외치던 96년 3월
경찰의 폭력 진압으로 숨을 거둔 노수석 열사.

그때 저는 대학 1학년이었습니다.
'열사'라는 말이 체감되지 않았습니다.
저보다 한살이 많은 선배들도 이야기 했습니다.
95학번 같은 동기가 숨을 거두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그렇게 나누었던 이야기들, 그리고 사람들.
지금은 어디서 살아가고들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노수석 열사는 그대로 그곳에 누워있는데 말입니다.

저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져 봅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지만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현실에서
무얼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부끄럽지는 않은지...말입니다.

518이 민주화 운동으로, 민중항쟁으로 이름을 가지면서
보상되었다고 합니다.
돈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떳떳하게 광주를 이야기하고,
광주에까지 발걸음을 둡니다.

그러나 정말 보상이 된 건가요?
과연 그것이 돈으로, 돈만으로 보상이 가능한 것인지 생각해봅니다.

그걸 안다면 그들도 그렇게 떳떳하게, 난척하며 광주에
518묘역에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겠죠.

518묘역행은 지금의 '나', 그리고 변함없는 '현실'을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여기서 '구묘역에서', 전체로 518묘역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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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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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여행을 준비하면서 주요 목적지는 광주비엔날레였습니다.
광주비엔날레를 518이 들어있는 주의 주말에 가겠다고 마음을 먹었드랬는데
마침 그날이 5월 18일이더군요.
그때부터 조금씩 여행의 일정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518을 중심으로 말입니다.

01.

5월 18일, 망월동에 있는 518묘역에 가기 위해 전날 묵었던 월출장(inn)을 나섰습니다.
10시에 518묘역에서 있을 기념식(행정자치부 주최)에 가기 위해 월출장을 나서며
망월동을 가는 방법을 물었더니 뉴계림극장 앞에서 타면 된다고
아주머니가 친절하게 일러주시더군요.
늦잠 탓에 밥을 먹기엔 시간이 부족한 듯하고, 이용할 버스 노선도 물을겸
정류장 뒤에 있는 조그만 가게로 들어갔습니다.
오렌지쥬스를 손에 들고 망월동으로 가는 노선을 물었더니
518묘역으로 가는 버스노선이 평소에 비해 무척 자주 있으니
몇번, 몇번을 타라고 일러주셨습니다.
(사실, 전라도말이 들을 땐 인상적이었는데 지금은 전라도말이었다는 것만 기억에 남았습니다.'_':)
오렌지쥬스를 손에 들고 사진 몇장 찍으니 버스가 오더군요.
버스앞 유리창엔 하얀 종이에 '공원묘지'라는 글자가 있었습니다.
그날 하루종일 시내에서 그런 종이가 붙은 버스를 많이 봤습니다.
배차간격이 평소보다 좁다는 것, 그리고 단지 네글자지만 '공원묘지'라는 종이를 붙였다는 것..
광주라는 도시 전체가 5월 18일을 맞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02.

거리에 걸린 태극기를 보면서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서울에도, 부산에도 태극기가 걸렸을까...'

03.

버스표지판을 보니 제가 하루를 묵은 곳이 '대인시장'이더군요.
곽재구 님의 시에 나오는 대인동...

04.

배차간격이 좁았지만, 그래서 버스가 자주 왔다고는 하지만
518묘역으로 가는 버스는 금새 사람들로 가득찼습니다.
광주시민은 물론이며 타지에서 온 대학생들로 말입니다.

05.

버스를 타고 도시의 외곽지역에 있는 518묘역으로 가던 중 10시가 되었습니다.
라디오에서 518민중항쟁 22주년 기념식 방송이 흘러나오더군요.
TV에서도 생중계된다는 말과 함께.
518 영령들을 위한 묵념의 사이렌이 방송을 통해 전도시에 울렸습니다.
그때 옆에 있던 대학생이 버스 손잡이를 잡은채로 눈을 감더군요.
그리고 머리를 숙이더군요.
피곤함을 달래기 위해 눈을 감은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의 친구를 보는 순간 피곤때문에 눈을 감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친구로 보이는 사람도 함께 옆에서 눈을 감고 머리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버스 안에서 묵념을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버스 손잡이를 잡은 채로 말입니다.  

여기서 '518묘역 가는 길'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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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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