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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1.07 [etc.] 'KTX 풍경'

며칠 전 KTX를 타고 서울에 다녀왔다.  서울 가는 날 열차 안 풍경에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몰랐다.

풍경1.
참고로 내 자리는 열차 가운데 동반석에서 2줄쯤 뒤였다.  열차가 부산역을 출발하자 한 무리의 젊은 청년들이 동반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3명인 것으로 보아 일반좌석을 예매하였다가 함께 이야기 나누며 가기 위해 그런 것이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이 청년들은 자리를 잡고 안더니 비닐 봉투에서 맥주 피쳐 서너 개를 꺼내더니 떠들며 마시기 시작했다.  "내가 병장 때-"하고 끊임없이 군대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으로 보아 군대를 제대한지 얼마되지 않은 청년들인 것 같았다.
그들이 열차 안 다른 승객들에게 준 피해라고는 큰 목소리 뿐이었지만 약간 이상한 풍경이라고 생각했다.  그 시간이 아침 10시였으니.
물론 열차에도 맥주를 팔기는 하지만 그건 캔맥주고, 목덜미가 붉어질 정도까지, 그것도 아침 시간에, 마시는 경우는 흔한 경우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풍경2.
어디선가 끊이지 않는 최신가요 벨소리.  처음에 나는 휴대전화를 진동으로 바꾸지 않은, 하지만 본인의 휴대전화 벨이 울리는지 알지 못하는 어느 누구의 휴대전화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음주 청년들 바로 다음줄에 앉은 또 다른 청년들.  복사된 종이 쪽지를 보며 면접이 어쩌고 하는 대화 내용을 들으나, 양복차림을 보나 틀림없이 서울로 입사면접을 보러가는듯 했다.
근데 이 양복 청년들은 휴대전화를 좌석뒤, 그러니까 앉은 사람의 정면에 위치하는 그물주머니에 휴대전화를 넣어놓고, 휴대전화에 넣은 음악을, 스피커로 듣고 있었다.  음악은 최신가요.
좀 어이가 없었던 나는 언제까지 저렇게 듣나 지켜보았다.  양복 청년들이 잠들기 전, 한참을 그렇게 듣더라.
이 풍경이 어이가 없었다고 사과양에게 말하니, 그럼 선배는 왜 아무말 않았냐고 하더라만, 내측에 앉은 덩치 큰 아저씨가 아니었다면 갈 이유 없는 화장실을 핑계삼아 일어섰다 한 마디 했을 것이다.  인내력이 한계에 닿기 전 양복 청년들이 스스로 껐다는 게 그저 다행.

풍경3.
황당한 열차 안 풍경에 그냥 눈 감고 잠이나 자기로 했다.  노트북도, 읽을 거리도 많았지만 심신이 피로했다.  잠이 오지 않아 귀는 열어둔채로 눈만 감고 있었다.
멀리서부터 덜컹거리며 먹을 거리를 판매하는 손수레를 끌고 오는 소리가 들렸다.  옆에 잠들었던 덩치 큰 아저씨가 판매원 아저씨를 불러세운 모양이다.  사실 부르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내 옆에 앉은 덩치 큰 아저씨가 말했다.
"우유!"
그리고 이어 말했다.
"두 개!"
나는 옆에 앉은 덩치 큰 아저씨가 꽤나 과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포쯤에서 긴 통화를 하는 목소리를 들어 언어가 불편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단 마디로 이어지는 아저씨의 표현이 우습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나는 눈 감고 혼자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런데 아저씨가 내 팔을 잡아 흔든다.  그러면서 하는 말,
"자!"
나는 당황해서 "아니, 괜찮습니다"라고 말했지만 내 손에 단지모양의 우유를 강제로(?) 쥐어주고 시선을 거두어버리셨다.





sony w70

그리고 광명역쯤에서 내리셨던 것 같다.
내가 단지모양의 우유를 손에 받아들고 당황스러웠던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나는 단지모양 우유를 먹지 않는다.  아주 어릴때 한 번쯤 먹어본 것도 같은데, 단맛이 싫기도 하고 향이 너무 강해 먹지 않는다.  아주 오래된 기억까지, 초등학교 1~2학년 때까지 기억을 더듬어봐도 이 단지모양 우유를 먹어본 기억이 없다.  고마운 건 고마운 것이지만, 먹지도 않는 걸 어쩌나.  버리기도 뭣하여 들고 다니다 사과양의 냉장고에 넣어두고 왔다.
두 번째는 10시에 열차에 급하게 오른 나는 아침을 먹지 못해 열차에 타기 전 구입한 도너츠와 오렌지 쥬스를 먹었다.  혼자서.  밀양에 닿기도 전에 다 먹어버리고 혼자 팔짱을 끼고 눈을 감고 있었는데-.  아마 아저씨는 나에게 '사람이 세상사는 인정'을, '뭔가를 먹을 땐 주변에 권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 다음에 열차를 탈때는?  먹고 타야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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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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