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Phuc'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3.02.27 [people] '행복한 아이, Kim Phuc'

베트남에 도착해서 며칠은 그런 생각을 했다.
'두번은 오지 말자.'
그런데
베트남을 떠나오면서는 이 땅과 어떻게든 인연(因緣)을 맺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진정리에서부터 시작한 일까지
빠져드는 나를 제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펼친 책, <LOVE>


이 책을 펼치는 순간, 인연(因緣)이 시작된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의 프롤로그로 '하필이면' Kim Phuc의 글이 있었다.


베트남의 비극, 그리고 한 장의 사진이 나를 전쟁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나의 진짜 이야기는 이 책의 이야기들처럼, 사랑에 관한 것이다.

식구들과 함께 장으로 보러 가거나 공항에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보면 사람들이 "그 유명한 사진 속의 주인공 아니신가요?"하고 물어올 때가 많다.  그들은 늘 호기심에 가득 차 있으면서도 호의적이다.  나는 그 사람들을 모르는데 그들은 나를 잘 아는 것 같았다.  한 장의 사진 때문이다.  화상을 입고 발가벗을 채 울면서 베트남의 길을 내달리던 소녀의 사진 말이다.  "네, 제가 그 사진 속의 소녀예요."  나는 웃으면서 대답한다.  그러면 그들은 나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그 사진이 자신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서로를 용서하는 데 얼마나 도움을 주었는지, 어떻게 사랑을 가르쳐주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그럴 때면 내 사진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다.


내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사랑에 관한 것들이다.  어머니가 만들던 음식 냄새, 7남매가 함께 살던 커다란 집, 큰아버지의 웃음소리, 안뜰에 있던 과일 나무들, 학교 친구들, 내 이름 '푹'은 '행복'이라는 뜻이다.  나는 행복한 아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모든 것이 변했다.  우리 마을에 전쟁이 닥쳤다.  우리 가족은 유일하게 '안전한 '피난처였던 근처의 답 안에 사흘 동안 숨어 있었다.  배행기가 그 성소를 폭격하려하자 군인들이 아이들에게 소리쳤다.  "어서 나와!  뛰어!"  나는 겁에 질려 사폰들과 함께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폭탄 네 개가 터지는 것을 보았다.  갑자기 네이팜탄이 사방에서 터졌고 내 몸에 격렬한 불꽃이 옮겨 붙었다.  내 옷과 살갗이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기적처럼 발에는 불이 붙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달릴 수 있었다.  나는 계속해서 소리를 질렀다.  "농 콰!  농 콰!"  너무 뜨거워요!  너무 뜨거워요!

1972년 6월 8일의 일이었다.  나는 아홉 살 소녀였다.

AP통신의 닉 옷이 그날 길을 내달리던 내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참으로 극적인 순간에 운명이 우리를 함께하게 했다.  이튿날 내 사진을 전 세계 시눈들의 1면에 실렸고 세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그들은 전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아이가 폭력에 말려든 모습을 본 것이다.  사진은 전쟁 중에는 어느 곳도 안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 사진은 베트남 전쟁뿐만이 아니라 전쟁 자체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을 바꿔놓았다.

그 사진을 퓰리처상을 받았다.  그런데 거기서 끝난 게 아니다.  그 사진작가는 내 생명을 구했다.  닉 웃은 그저 자기 일에만 충실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다른 사람을 도울 줄 아는 사람이었따.  그는 사진을 찍자마자 카메라를 내려 놓더니 나를 안고 인근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것은 사랑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사랑'하면 뭐가 떠오르지?"  친구가 내게 묻는다.  나는 대답한다.  내 삶을 바꿔주신 하느님의 사랑, 자족의 사랑, 나를 치료해준 의사들의 사랑, 자유와 용서의 사랑, 어머니의 사랑, 아이들의 너무나 아름답고 강인하고 기쁨이 넘치는 사랑, 넓은 바다의 사랑, 내 아픈 살갗을 진정시켜준 서늘한 날씨의 사랑, 사화의 사랑, 웃음의 사랑, 기도의 사랑, 핑크빛 사랑, 어디에서든 서로를, 특히 우리의 희망이고 미래인 젊은 사람들을 만나게 하는 사랑, 진지한 것들에 대한 사랑, 장난스러운 것들에 대한 사랑….

이 책에 실린 수많은 어머니, 아버지, 할머지, 할아버지들의 얼굴에서 나는 내 어머니와 아버지를 본다.  두 분은 지금 캐나다에서 우리와 함꼐 살고 계신다.  두 분 역시 손자를 보시게 되었다.  우리 두 살배기 아들에게 이 책에 실린 몇 장의 사진들을 보여주자 그애는 아주 즐거워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사진 속의 사람들을 알기라도 한 긋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실린 사진들은 여러 나라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단짝 친구들의 모습니다.  그들의 눈을 보면 그들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거리에서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처럼 나 역시 말할 수 있다.  "그 예쁜 아기를 낳은 어머니 아닌가요?  난 당신을 알아요!"

이 사진들을 찍은 작가들은 틀림없이 굉한한 연민을 지닌 사람들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아름다운 사진을 찍을 수 없었으리라.  우리는 이런 사진들을 찍은 작가들을 사랑해야 한다.  그들도 분명 닉 웃처럼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카메라를 내려놓았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118 쪽과 119쪽의 사진에서 나는 정말 깊은 감동을 받았다.  머리카락이 하나도 남지 않은 아이와 간호사.  그 아이는 암을 앍고 있는 것 같다.  간호사는 아이에게 부드럽게 입을 맞추고 있다.  그려는 나를 무척이나 아껴주었단 나의 간호사 홍Hong일 수도 있다.  사이공의 바스키 화상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때 나 역시 머리카락이 남아 있지 않았다.  게다가 화상 때문에 윗도리는 입을 수 없었다.  휘발유를 젤리처럼 만든 네이팜탄은 너무 잔인한 것이다.  그 폭탄은 살갗 아래 깊숙한 곳까지 태우는데, 끓는 물보다 더 뜨겁다.  매일 아침 간호사 홍은 특수 욕조에서 나를 씻겨주었다.  피부를 부드럽게 해서 좀더 쉽게 벗겨지도록 하려는 것이었지만, 나는 너무나 고통스러워 까무러치곤 했다.  그렇게 정신이 들락날락하면서 몇 달을 보냈다.

이제 나는 어느 할머니의 발을 주물러주는 수녀의 사진을 보고 있다.  접촉은 사랑을 치료하는 힘이다.  내가 회복되어갈 무렵 식구들은 매일같이 나를 찾아와 손가락 구부리는 운동을 시켜주었다.  내 왼속은 갈고리처럼 굽어 있는데다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레 다뤄야 했다.  나중에는 혈액 순환이 잘 되도록 내 등을 주무르고 두드려주었다.  내가 그 고통스런 재활 운동을 초기하려 할 때마다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킴.  불구가 되고 싶지 않으면 운동을 해야만 한다."  나는 어머지를 사랑했고 어머니의 말씀을 따랐다.

학교에 다닐 때 나도 다른 여자애들처럼 짧은 소매 셔츠를 입고 싶었다.  나는 종종 두 팔을 뻗어 들여다보곤 했다.  오른팔은 완벽하고 아름다웠지만 등과 왼팔은 심한 훙터로 일그러져 있었다.  왜 하필 내가?  나는 묻곤 했다.  나는 그저 '보통'만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언젠가 여자애들이 우리 반의 어떤 남자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그애는 잘생겼지만 손에 화상이 있었따.  한 여자애는 그 흉터 때문에 그애는 결코 자기의 남자친구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애의 흉터는 아주 작았는데도 말이다!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 흉터와는 전혀 달랐다.  그 여자애의 말이 내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었는지 여러분은 짐작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내 흉터 때문에 그 어떤 남자도 나를 사랑하지 않고 나와 결혼하지 않을 꺼라고 나는 확신했다.

나는 모두 열일곱 번의 수술을 받았다.  1984년 독일에서 마지막 수술을 받을 후에야 목과 어깨를움직일 수 있었다.  2년 뒤 나는 대학에 진학하며 쿠바의 하바나로 갔다.  거기서 나는 같은 베트남 학생인 토안을 만났고, 그는 내 잠자 친구가 되었다.  그는 내게 수영을 가르쳐주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해가 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불에 덴 살갗 때문에 나는 햇빛을 피해야 했던 것이다.

낭만적인 사랑, 결혼에 이른 사랑, 나는 이 사진들을 보면서 미소를 짓는다.  어렸을 때 흉터 때문에 어떤 남자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걸 기억하는가?  그 새각은 틀렸었다.  토안과 나는 사랑에 빠졌다.  1992년 9월, 친구들은 하바나에서 아름다운 결혼식을 마련해주었다.  우리의 새로운 삶을 향한 여행은 8년 전 캐나다로 도망치듯 떠나오면서 시작되었고, 그것은 우리 아이들을 위해 간직해둔 이야기가 되었다.  엄마와 아빠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단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였고 자유가 있었지, 그러니까 우리는 모든 걸 가진 셈이었단다.

나는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다.  캐나다에서 살게 된 뒤로 오랫동안 아는 그 사진을 잊고 싶었다.  그 사진은 어이든 나를 따라다녔다.  나는 새로운 나라에서 가족들과 함께 조용한 삶을 누리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사진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영국 기자들이 끝내 나를 찾아냈다.

그 무렵 놀라운 일이 생겼다.  낸시 포콕이라는 소중한 친구를 알게 된 것이다.  우리에게는 어머니와 같은 분이었던 낸시는 퀘이커 교도이자 평화 운동가였으며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분은 내 인생에 정말 큰 영향을 끼쳤다.  여든다섯의 나이에도 낸시는 사람들을 돕고 망명자와 새로운 이민자들에게 자기 집을 내주는 등 여전히 활기가 넘쳤다.  그분은 내가 그 사진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오히려 그 사진을 가지고 평화를 위해 일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결국 나는 그 사진을 내 삶에 허락된 놀라는 선물로 받아들였다.  내 삶을 향한 하느님의 계획의 일부로 말이다.


그 사진 덕분에 나는 평화 운동에서 어떤 역할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래서 1997년 유네스코 친선대사로 임명되어 평화 문화를 위해 일해오고 있다.  그리고 역시 그 사진 덕분에 전 세계를 여행할 수 있었다.  바로 사랑을 주제로 한 이 사진들의 무대가 되는 나라들이었다.  뉴질랜드, 아일랜드, 한국, 프랑스 등에서 나는 대통령과 수상, 중요한 사업가들, 유명한 음악가들과 멋진 보통사람들을 만났다.

인간의 마음은 선하다.  어디서나 사람들은 평화를 원한다.  전쟁을 끝낼 방법을 찾으며 평화로운 세상에서 가족과 살고 싶어한다.
내 사진은 역사의 우연이었다.  우연하게도 한 사지기자가 그 실에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자신의 고통을 기록해줄 사진기자를 만나지 못했던 수백만의 무고한 희생자들을 결코 잊지 못한다.  특히 어린아이들을 잊을 수 없다.  그런 까닭에 나는 전쟁에서 희생되는 아이들을 돕기 위한 자선 단체인 '킴 재단'을 만들었다.  킴 재단은 시카고와 토론토에 본부를 두고 있다.

"네 원수를 사랑하라."  예수님은 말했다.  나는 마음속에 증오를 품어본 적이 없다.  단 한 번도 없다.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내가 당한 일이 대체 주구의 잘못이냐고.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진심이다.  나는 용서했다.  하지만 인지는 않는다.  똑같은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몇 년 전 나는 워싱턴DC에 있는 베트남전 퇴역 군인 기념관을 방문했다.  나는 수많은 전사자들의 이름을 보았다.  대체 무엇을 위해서?  나는 물었다.  왜 그들이 고통을 받아야 했나?  나는 많은 퇴역 군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사람이 군중 속에서 나와 자신을 소개했다.  존 플러머라는 이름의 그 퇴역 군인은 내가 화상을 입던 날 우리 마을인 트랑 방 공격 계획에 함여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으며 자신의 삶이 완전히 망가졌다고 말했다.  그는 나에게 용서를 구햇고 나는 그렇게 했다.  그도 나와 같은 희생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헬리콥터 기관총 사수였던 마이크는 끔찍한 악몽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말하는 내내 그는 울었따.  "지금까지 줄곧 그 사진이 메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당신을 직접 만나고 당신이 저를 용서해주시다니요.  꿈만 같은 날입니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그런 특별한 순간을 많이 경험한다.  모두가 사랑의 순간들이었다.

나는 우리 모두가 평화를 이룰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신의 피조물이라고 믿는다.  여러분이 손에 들고 있는 이 책은 우리 인류가 해낼 수 있는 사랑을 보여준다.  이런 사랑이라면, 분영 어렵지 않게 평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가정에서, 그 다음엔 직장에서, 나라 전체에서 시작해야 한다.

내가 여러분과 함꼐 나눈 기억들은 이 책에 실린 사진들에 자극받아 떠올느 것이다.  이 알므다운 사진들을 보녀서 여러분 자신의 예 기억들을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여러분의 미래 기억들고 만들어보면 좋을 것이다.

한 장의 사진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질 수 있는지 잊지 말기를, 그 어떤 폭탄보다도 강력한 사랑만큼이나 강력한 힘을.

킴푹 Kim Phuc[앤 베인Anne Bayin과 나눈 대담에서, 캐나다 토론토Toronto]
도서출판 이레 <LOVE>중에서



Kim Phuc and photojournalist Nick Ut. After taking the famous image of Kim, Nick put down his camera and helped to save her life.


여기서 '행복한 아이, Kim Phuc'은 끝입니다.

Posted by 토닥s

댓글을 달아 주세요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