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와 BBC의 유아 채널인 Cbeebies를 보다 다가오는 토요일에 지난 7월에 공연된 Cbeebies Proms가 방송된다는 걸 알게 됐다.  Proms는 BBC에서 주관하는 클래식 공연 축제인데 2~3년마다 Cbeebies의 출연자들이 진행하는 어린이 공연이 있다.  3년 전에 누리와 갔었고, 올해도 우리는 운좋게 표를 구해서 갈 수 있었다.  운좋게 표를 사기는 했지만, 못산 사람들이 많으니, 좌석은 공연장 맨 뒤 그러니까 공연장 천정 바로 아래였다.



마침 우리가 공연을 보러 간날이 한국에서 언니가 런던으로 오는 날이여서 우리 모두 설레는 하루였다.  


좌석이 어이 없게 시야가 제한된 좌석이었다.  출연진들의 정수리만 그것도 측면에서 보이는 좌석이었다.  티켓 예매가 시작되는 정시에 구입한 좌석이었는데.  지난 공연에서는 박스석에 앉아서 봤다.  그때도 잘 안보이는 것은 마찬가지.  분위기만 느끼고 잘 편집된 화면으로 나중에 TV로 보면 된다고 우리 스스로를 위로 했다.  누리도 한국에서 이모가 오는 날이라 공연이 잘 보이지 않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은듯했다.  다행스럽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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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에피소드가 있었다.  내 옆에 11~14살 정도 되보이는 소년이 앉았고 그 옆에 소년의 엄마가 앉았다.  공연이 시작됨과 동시에 들어온 소년은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중증 자폐 또는 행동장애가 있는 것으로 보였다.  가만히 앉았다가도 수시로 온몸을 앞뒤로 흔들었다.  체중을 실어 앞뒤로 흔드니 내가 앉은 의자에 진동이 전해져 조금 시간이 지나니 두통이 올 정도였다.  그래도 사실 나는 괜찮았다.  무대의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옆에 앉은 엄마는 "저거봐 하얀 연기 보이지?", "아 누구누구네(출연진)!"하면서 소년에게 말을 건냈다.  그리고 소년이 체중을 실어 의자로 자신의 몸을 던질 때마다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두통이 날 정도의 진동이었지만, 나는 최대한 밝은 표정을 지으려고 애쓰면서 괜찮다고 했다.  내 노력이 그녀에게 얼마나 닿았는지는 모르지만.

정말 같이 애 키우는 입장에서 나는 그 엄마가 대단해 보였다.  나도 아이를 키우니 다른 사람들에게, 아는 사람은 물론 모르는 사람에게도 미안하다고 해야할 때가 많다.  아이를 닥달해도 약속에 늦는 일이 흔하고, 공공장소에서 아이의 부족한 행동 때문에 타인에게 미안하다고 해야할 일이 있다.  하지만 그래봐야 하루에 한 번, 외출 할 때 한 번인데 그 엄마는 60분의 공연을 보는 동안 나에게 미안하다고 몇 번을 말했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모자라 공연이 마무리 될즈음 5분 정도 일찍 일어나면서 인파를 피해 먼저 일어나야 할 것 같다고 나에게 다시 미안하다고 말하고 일어섰다.  나는 밝은 얼굴로 괜찮다고 말하려고 노력했지만 정말 괜찮게 보였는지 모르겠다.
주변이 좀 더 조용했고, 그 엄마가 소년을 데리고 서둘러 나가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미안해 하지 말라"고, "아이가 공연을 즐겼기를 바란다"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그러지 못했다.

정말 나는 괜찮았다.  정말 나는 괜찮다.  그런 아이들이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음악을 듣고 살아갈 수 있다면 나는 괜찮다.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앉은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그 아이의 존재를 알았지만, 어린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내 옆에 앉은 소년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지비와 내가 느끼기엔 주변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그 소년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그건 그 엄마에 대한 배려이자 소년에 대한 배려였다.  그런 배려와 배려가 모여 사회가 한 걸음 나아가는 게 아닐까 생각했던 하루였다.
그날의 공연보다 아이를 공공 장소에 데려온 엄마, 그 엄마와 소년을 배려한 주변 사람들이 기억에 남았다.  어쩌면 음악보다도 더 오래 남을 것 같다.


Posted by 토닥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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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he_hesse 2019.09.11 15:03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따뜻한 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