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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생활/Cooing's

[+2708days] 쉼 없이 자란다.

by 토닥s 2020. 2. 18.

누리가 봄학기 중간방학을 맞아 '꼼짝마' 중이다.  날씨까지 궂어서 집에서 '다함께 꼼짝마'하고 있다.



어제 점심으로 피자를 만들어 먹고, 커피를 마실 즈음 김치를 담기 시작했다.  누리는 피자반죽도, 배추를 소금으로 절이는 일도 모두 자기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일을 하다가도, 내가 뭔가를 만들 낌새를 보이면 열일을 밀어두고 달려온다.  사실 우리집이 달릴만큼 넓지는 않지만.  이제 피자반죽은 분량대로 재료만 준비해주면 차례대로 척척 잘한다.  "올리브 오일도 넣어야지?"하면서.  배추도 적은 량의 소금을 꼼꼼히 잘 뿌린다.  매워서 눈물을 흘리면서도 양념장을 버무리는 일을 꼭 하고 싶어한다.  아이용 위생장갑을 한 두 해전에 한국서 사왔는데, 별 쓸 일이 없다가 요즘 열심히 쓰고 있다.

사실 일이야 혼자서 후다닥하는 게 훨씬 빠르다.  그런데 누리가 즐기니 그냥 통째로 넘겨준다.  물론 옆에서 지켜봐야하기는 하지만.  누리가 배추에 소금을 뿌리는 동안 그 옆에 앉아서 나는 커피를 마셨다.

+

누리가 태어나고 한국에 갔을 때, 이전에 일로 알던 지인이 육아가 힘들지(또는 지겹지) 않냐고 물었다.  십년이 다되어가지만, 한국에서의 내 모습을 떠올려보면 그 지인이 보기에 아이와 절대적인 시간을, 집에서 보내는 육아가 나와는 어울려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분도 오래 안 지인인데, 사실 나를 잘 몰랐던가보다.  사실 나 집순이인데-.  하는 일이, 하고자 했던 일이 나를 집 밖으로 이끌었을뿐인데 말이다.  하여간, 그 분의 질문에, "어차피 쉬어가는 거 잘 충전하겠다"고 했던 것 같다.  나도 그때 육아의 실체를 몰랐나보다, 쉬어가다니?!  바닥까지 신체적 에너지와 정신적 자산을 탈탈 털어내야하는 일인데 말이다.

요즘 내가 아이를 대하면서, 육아를 하면서 가지고자하는 마음이 그때 했던, 육아의 실체를 모르고 했던 대답과 같다.  어차피 빨리 갈 수 없는 것, 마음 졸이지 말고 이 순간도 충전하며 가자.  아이 손에 뭔가를 맡겨두고 옆에서 마음 졸여도 소용없다.  나만 손해다.  아이에게 맡기고, 그 덕에 나도 커피를 마시는 게 남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누리가 6~7살이나 됐으니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자라는 건 모든 부모가 기대하고 고대하는 일이긴 하지만, 한편으론 너무 빨리 자라서 아쉽기도 하다.  어쩌면 아쉽다기보다, 더 자라서 내가 새롭게 마주할 질문들이 두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이 따라, 나도 자라면 언젠가 닥칠 질문과 문제들이 갑작스럽지 않으려나.  아이가 태어나고 기저귀를 어떻게 갈지 몰라 감히 간호사를 불렀다.  우리는 너무 미안해했고, 간호사인지 조산사인지는 괜찮다고 했다.  그랬던 기저귀 갈기가 일상이 되면서 우리가 마스터하게 된 것(?)처럼 아이의 성장도 마스터하게 되는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물론 아이가 자라는 건 기저귀 가는 거랑은 차원이 달라서 쉽게 되지는 않겠지만, 내 마음이라도 잘 다스려지면- 하고 희망한다.



+


좁은 집안에 천막을 치고 그 안에서 카드게임도 하고, 책도 읽고 놀다가 결국은 물건을 사고파는 가게를 차렸다.  그러다가 그 가게가 갑자기 미용실이 됐다.  인형 머리를 빗겨보고, 묶어보고 하다가 땋는 걸 가르쳐달란다.   인형 머리는 짧아서 연습이 안된다기에 손수건 세 개를 묶어줬다.  견습 미용사들이 사용하는 상반신 인형 같은데 조금 작은 상반신 인형에 머리모양 만드는 장난감이 있던데, 그런게 왜 있나 싶었더니, 그게 필요한 나이가 있나보다.  누리가 바로 그때.  다음 놀이 단계는 무엇이 될지 궁금하다.  지금은 내 머리만 주면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좋네.  누리 이모야, 런던 올 때 머리 자르지 말고 길러 와. 얼른 와.







댓글8

  • 2020.02.18 19:33

    비밀댓글입니다
    답글

    • BlogIcon 토닥s 2020.02.19 07:27 신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은 아이도, 저희도 무척 힘들답니다. 그래서 가능한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편인데, 요즘 여기 날씨가 너무 궂어서, 매일매일 비가 옵니다, 가까운 공원도 갈 수가 없네요. 가봐야 까페에 앉아 차마시는 일이 전부니 그냥 집에서 시간을 보내지요. 그래도 어제 오늘은 영화관과 공연장을 갔는데요, 뭐랄까 누리 나이에 딱 맞는 작품이 별로 없네요. 그래도 집보다 낫지하며 가기는 갑니다. 덕분에 아이들 영화는 개봉하면 다보게 됩니다.ㅎㅎ
      누리.. 이쁘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 BlogIcon 후까 2020.02.19 16:15 신고

    아이랑 놀아주고 김치도 담으셨어요 !! 여러 바쁜 상황에 아이도 크지만 엄마도 함께 커가는것 같아요 ^^
    답글

    • BlogIcon 토닥s 2020.02.21 01:58 신고

      아이에게 요리는 일종의 놀이라서 비오는 날, 밖에 나가지 못하는 날엔 꼭 뭔가를 만들게 됩니다. 덕분에 저는 점점 무거워지는 현상이..ㅜㅜ

  • 타뇨 2020.02.24 10:15

    세상에나! 배추도 절이는 모습이 참 귀여워요. 누리가 더욱 사랑스럽게 커가길 멀리서 바랍니다. 누리 보고 있으니 저도 한국에 있는 조카들 생각이 많이 나네요. 하필 연고지가 대구라서 모두들 집 밖으로 못나가고 집 안에 갇힌듯 지낸다는 소식에 마음이 아파요. 누리가 있는 곳에는 코로나로 인한 공포와 어려움 없기를!
    답글

    • BlogIcon 토닥s 2020.02.27 05:18 신고

      유럽은 지난 주말을 기해, 이탈리아 북부에서 대규모 확진자가 나왔고 여기저기서 확진자가 나오는 추세랍니다. 영국의 TV에서도 예전과 다르게 대유행시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를 보여주고요. 주로 자가격리를 권장합니다.
      저는 연고지가 부산.(ㅠㅠ ) 분명 어려운 때이지만, 잘 극복하리라 믿습니다.

  • 마지막 사진 보며 미소지었어요~너무 이뻐요! 손놀림도 정말 야무지구요! 저도 어릴 때 엄마가 요리하면 꼭 옆에서 함께 하고 싶어했는데 그 때 엄마가 자주 넘겨주신 일이 마늘 빻기, 깨소금 빻기였어요 ㅋ 한참 자라서 그때 생각이 자주 나요. 엄마가 날 사랑하고 존중해줬구나 아이를 키우며 이제야 그걸 알게 되더라구요~
    답글

    • BlogIcon 토닥s 2020.05.26 09:55 신고

      지금은 저때보다 아이가 더 훌쩍 자란 것 같아요. 계절이 겨울에서 봄으로, 다시 봄에서 여름으로 가고 있으니까요.
      정말 말씀처럼 아이 키우면서 어린시절을 많이 떠올려봅니다. 비록 그때와 세상이 너무 달라서 비교할 건 별로 없지만, 가끔은 아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해요. 이해는 되지만, 힘든 건 또 사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