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을 먹고 나길 준비를 하고 있는데, 식탁에 남아 있던 누리가 "빵야!(총소리) 뿌-웅(방귀 소리)"를 반복하며 혼자 웃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그게 뭐야? 그런 건 어디서 들었냐"고 물었다.  전날 학교에서   미니언이 나오는 영화 Despicable me를 봤는데 거기에 나왔다고.  지금 찾아보니 방귀 총 Fart gun이라는 게 나온 모양.

개인적으론 영화 제목도 납득이 안되지만, 방귀 총이라니.  아이들이 웃으며 총에 익숙해지는 건 아닐까, 재미로 받아들이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됐다.  노파심인가? 그럴지도 모르지만. 

누리는 총 Gun을 몰랐다.  지금은 알게 됐을지도 모르겠지만.

+

미국 여행을 이야기하다 시간과 경비만 있으면 지비는 미국을 가로지르고 싶다고.  미국이 한국이나 영국만하지도 않고 총 때문에 무섭다고 내가 반대했다.  사실 미국 여행은 틈틈이 이야기 꺼리로 등장하곤 하지만, 지금 우리 (경제적)형편으론 어렵다.

미국에 있는 대학 동기 친구 딸과 화상통화를 한 번 한 누리는 그 친구 딸이 마치 자기 친구인양 미국 OO네 집에 가자고 한다.  내가 (한국어로) 총 때문에 무서워서 갈 수가 없다고 하자 누리가 총이 무엇인지 되물었다. Gun이라고 답해줘도 모르기는 마찬가지.  사냥꾼이나 군인들이 사용하는 것으로 사람들을 다치게 하는 물건이라고 말해줬다.  '그래서 그게 뭐냐고?'하는 누리의 반응으로 대화는 마무리됐다.

지인에게 이 에피소드를 이야기 했더니, 내가 누리를 너무 애처럼 & 순진하게 키우는 것 아니냐고.  그런면도 없지 않지만, 누리만 그런 건 아니다.

적어도 누리 또래 아이들은 장난감 총을 가지고 놀지 않는다.  혹시 모르겠다, 집에는 있는지.  하지만,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지금까지 사계절 비만 오지 않으면 누리와 놀이터에 갔는데 장난감 총을 본적이 한 번도 없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공원에 있는 야외 수영장(무릎높이 정도.  여기서는 Paddling pool이라고 한다)에서 여름에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 되는 아이들이 물총을 가지고 노는 것을 보긴했다.   이 동네만 그런 거 아니냐고.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

영국의 조지 왕자(왕세손 윌리엄의 아들)가 물총을 가지고 노는 모습이 미디어에 비춰졌다.  그 모습에 비판과 지지가 여론이 일었다.

아이들이, 특히 군주의 가족이 장난감 물총이라도 총을 가지고 놀아서는 안된다는 의견과 장난감 총도 아니고 물총인데 어떻냐는 의견이 충돌했다. 
나는 전자에 동의한다.  군주의 가족이라서가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총을 모티브로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건 좋지 않다.

장난감인데 유별난 거 아니냐고. 내가 유별난 거라면 이런 건(조지 왕자의 물총)이 여론을 가르지도 않았을테다.  많은 사람이 나처럼 생각한다.

+

'전쟁'에 '놀이'를 붙여 '전쟁놀이'가 존재하는 시절을 거쳐온 사람이라 무척 예민한 주제다.  심지어 한국은 전쟁을 경험한 나라가 아닌가.  그런데 누리가 "빵야!"라고 해서 정말 놀랐다.  언젠가는 누리도 '총'을 알게 되겠지만, 그땐 총의 존재가 우리가 사는 세계에 미치는 해악도 함께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Posted by 토닥s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colours 2019.05.19 09:09 Address Modify/Delete Reply

    저도 공감이에요. 총이나 칼을 장난감으로 거부감 없이 접하는게 아이들에게 해롭다고 믿고있어요. 지우 또래 남자아이들도 점점 칼을 휘두르고 놀던 습관대로 야외에서 함께 놀아도 기다란 나뭇가지를 위험하게 휘둘러서 맘이 불편하더라고요...

    • BlogIcon 토닥s 2019.05.19 22:26 신고 Address Modify/Delete

      비록 한국의 환경이 실제 총을 접할 기회가 아주 작은 나라이긴 하지만 접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우리 옛말이 있지요..
      (그나저나 저희가 8월에 계신 곳으로 짧은 여행을.. 연락 한 번 드릴께요. :) )

화요일 아침 누리가 팔이 가렵다고해서 보니 붉은 반점 rash가 세 개.  이건 뭐지? 생각하고 가렵다길래 E45라는 보습제를 발라주고 학교에 보냈다.  또 바이러스인가 생각했지만 열도 없고, 아이도 아픈 기색이 없었다.  학교 마치고, 발레 발표회 연습까지 마치고 늦게 집에 돌아와 보니 목에도 반점이 두 개가 생겼다.  웬지 수족구 같아서 지인에게도 물어보고, 여기저기 찾아보니 그런 것도 아닌 것도 같고 불안한 마음으로 잠들었다. 
다음날 일어나니 더 많이 늘어난 붉은 점.  그런데 한쪽 팔에만 갯수가 늘었다.  그 전날과 달리 반점이 아니라 심하게 부풀어 올라 식중독 같아보였다.  일단 학교에 보내놓고, 보건소 격인 GP의 당일예약을 했다.  예약시간에 맞춰 학교로 돌아가 누리를 데리고 GP에 갔다. 

의사에게 보였더니 벌레에 물린 것 같단다.ㅠㅠ
최근에 공원이나 농장에 간적 있냐고.  당연히 많이 갔지.  학교 마치고 비만 안오면 공원과 놀이터에서 갔다.  심지어 주말도.  영국의 아이들에게 공원과 놀이터는 참새에게 방앗간과 같다.

어제는 듣고 있는 교육의 구술시험도 있는 날이었는데 아이를 데리고 GP와 학교를 오가느라 구술시험도 연기해달라고 부탁해야 했다.

벌레에게 물린 걸로 GP를 찾은 나도 어이 없고, 그런 일로 내 하루를 보내버린 것도 어이 없고 그런 날이었다.  날씨마저 소나기가 오락가락해서 더 정신없는 날.  GP에서 나와 집에서 점심을 먹인 후 다시 학교에 넣어주고 돌아나오는데 금새 멈출 것 같은 소나기가 쏟아져 한 10분 간 기다렸다 집으로 돌아왔다.  뒤늦은 점심을 먹으며 벌레에 물린데 발라줄 수 있는 약 검색.  처방받은 하이드로코티존크림 hydrocortison 1%와 알레르기 시럽 priton을 함께 먹였다.  두 가지 약을 함께 처치해도 되는지 모르겠다는 지인의 우려 때문에 오늘 아침엔 약국에 전화해봤다.   크림 바르고 함께 시럽 먹여도 괜찮다고.  이런저런 사정을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더니 다들 스테로이드인 하이드로코티존 크림이 걱정스럽다며 수두 때 바르는 칼라마인calamine 로션/크림을 권해서 오늘은 나가 칼라마인 크림을 사왔다.  알레르기 시럽인 피리톤을 먹이며 칼라마인을 발라주니 훨씬 덜 가려워하는 것 같다.  지금은 잘 참다가 한 번 긁으면 붉게 부어오르는 상태.
어젯밤엔 잠결에 누리가 긁을 것 같아 내 옆에 데리고 잤다.  아니다 다를까 가려우니 이불에 대고 긁어서 내가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자야했다.  알 것 같은 가려움이라 안타까웠다.  이대로 한 이틀만 잘 넘어가면 훨씬 나아질 것 같다.  누리야, 이틀만 참자.

+

오늘 아침 학교에 등교하면서 누리반 어시스트 선생님께 상황을 설명하고 아이가 가려워하면 의사에게 처방받은 약 하이드로코티존을 발라줄 수 있는지 물었다.  학교 오피스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급하게 오피스로 가서 물어보니 하이드로코티존은 스테로이드라서 학교에서 발라줄 수 없고, 아이가 직접 바르는 걸 감독해주는 방식으로 해야한다고.  그걸 확인하는데 꽤 시간을 소요했다.   마침 학교 간호사가 없는 날이라 응급처치를 담당하는 교사의 확인을 받아야했고, 그 뒤에 학교 규정에 따라 서류를 작성하고 교실에 들어간 아이를 다시 불러 아이에게 약을 넘겼다. 
덕분에 내 일정에 늦어져 급하게 학교를 나왔다.  그 과정이 조금 지치기는 했지만, '맞다'는 생각을 했다.  그 과정이 아이보다는 일하는 사람을 보호하는 것이기는 했지만. 
그 일을 겪고서 스테로이드가 포함된 약이 아닌 칼라마인을 발라야겠다는 생각을 더 굳히게 됐다.  참고로 어제 의사가 누리에게 처방해준 하이드로코티존이라는 크림은 처방전 없이도 살 수 있는 크림이다.  스테로이드 함유가 아주 작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학교에서 일하는 사람이 직접 바를 수 없는 약이라면, 아이에게도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칼라마인 크림이 더 효과적인 것 같으니 앞으로도 칼라마인을 써야겠다.  물론, 이 약이든 저 약이든 쓸 일이 없는 게 가장 좋지만.

이렇게 또 한 가지 배운다.  벌레에 물렸을 때 좋은 약/크림 - 칼라마인. 

+

아 그리고 또 한 가지.  아이가 가려워할 땐 주위를 돌릴 수 있는 활동을 하면 좋다고.

마침 어린이날을 기념해서 주문한 레고가 도착해서 오늘 저녁은 누리가 가려움도 잊고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오늘은 절반만 했으니 내일 저녁도 가려움을 잊고 시간을 보낼 수 있겠지.  그렇게 되기를 열렬히 희망해본다.


Posted by 토닥s

댓글을 달아 주세요

폴란드인들은 다른 서유럽인들과 비교해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을 중요하게 치르는 편이다(폴란드는 동유럽, 자기들이 싫으나 좋으나). 한국인이 추석과 설을 대하는 정도랄까.  물론 한국처럼 그 중요도가 날이 갈수록 가벼워지고는 있지만. 

오늘 누리는 폴란드 스카우트 모임에 갔다.  폴란드 스카우트는 폴란드 주말학교 이후 진행되는데 누리가 다니는 주말학교의 전체 스카우트 모임이었다 - 유아, 초등여아, 초등남아, 중등여아, 중등남아로 나눠진 5개의 그룹이 모였다.  대략 80여 명.
오늘 모임은 포스트-부활절 기념행사.  다같이 모여서 달걀데코도 하고, 최고 데코도 뽑고 그런다는데 누리는 집에서 달걀데코를 해서 가져갔다.  지비가 달걀이 준비물이라 해서 어디쓰냐고 물었더니 행사용이라고.  두 번 물었다.  데코를 할껀지, 데코한 걸 들고가야는지.  두 번 데코한 걸 들고가야한다고 답했는데, 오늘 아침에야 데코할 껄 들고가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ㅠㅠ
듣자하니 누리 그룹 담당선생님이 예비로 더 삶은 달걀을 준비한다고 해서 '아몰랑~'하고 보냈다.

작년 부활절에 폴란드에서 받아온 달걀데코.  삶은 달걀에 플라스틱(비닐) 띠를 둘러 뜨거운 물에 넣으면 달걀에 밀착되는 식이다.  1초만에 데코 완성.  그런데 데코 그림이 좀 80년대스럽다.
 
보통 오후 3시면 끝나는 주말학교+스카우트가 오후 5시까지 이어졌다.  우리는 3시반 일명 레크리에이션 시간에 갔다.  유아 스카우트 아이들은 피곤한 기색으로 연신 하품을 하며 앉아있었다.  그 아이들은 긴 시간이 힘들고, 많은 수는 폴란드어를 잘 하지 못하니 더 힘들었을테다.  그래도 누리는 3년차고 노래를 좋아하니 아는 구절만이라도 흥얼거리며 앉아있었다.

그 동안 이 레크리에이션 시간을 몇 번 겪어도 여전히 당황스럽다.  1시간에서 1시간 반정도 계속해서 노래만 부른다.  그나마 오늘은 노래 두 어곡 부르고 게임하고, 노래 두 어곡 부르고 게임하고 - 그런식이었다.
어떤 게임을 하냐면 - 땅에 종이조각을 떨어뜨려놓고 부채로 바람을 일으켜 경주를 한다던지, 안대를 하고 미리 준비한 사물을 촉각으로 알아 맞춘다던지. 오늘 준비된 사물은 어른 손만한 새우였다.   이 레크리에이션이 어찌나 건전한지. 90년대 카세트테이프 마지막에 생뚱맞은 건전가요를 듣는 기분이었다.  노래를 한 시간이나 부르나 싶은데, 그러면서 언어와 문화를 배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작년 여름에도 중요한 스카우트 행사 2개가 있었는데 블로그에 담지 못했다.  틈나면 올려야겠다.
Posted by 토닥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정확하게 2주 전 부활절 방학이 시작됐다.  사실 방학이 시작되기 전에도 아이의  각종 학교 행사 때문에 바빴고, 아이들 방학이 되면 일상생활에서 거의 3주간 벗어나니 몇 가지 일을 미리 하느라 바빴다.

방학 전 학교의 부활절 행사/조회를 누리네 학급이 준비했다.  대단한 건 아니고 노래 두어 곡을 부르고 부활절 관련된 시(?)를 낭독하는 것이었다.  낭독에 선발된 누리.  거리가 너무 멀어 누리인지 아닌지도 나 아니면 알기 어려운 사진만 남았다.    그래도 누리 스스로에게는 너무 신나는 경험이었다.

그렇게 부활절 방학이 시작되고 정말 하루도 집에서 쉬지 않고 밖으로 다녔다.  다양한 기억과 경험이 없는 어린시절을 보낸 우리라서 주말, 방학이면 동네 공원이라도 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 동안 만나지 못하던 친구들도 만나고, 방학 숙제를 위해 런던 박물관도 가고, 폴란드와 독일 베를린 여행도 다녀왔다.  여행에 돌아와서도 매일 밤 빨래를 돌리면서 낮에는 매일매일 이 공원 저 공원 나들이를 다녔다.   집안 일을 뒤로하고 밖에서만 시간을 보내니 냉장고가 텅텅 비었고, 통장도 텅텅 비었다.  가득한 건 빨래와 다크써클뿐.  부활절 연휴가 끝나고 방학이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그러면 부활할꺼라며.

+

방학이 끝나면 그 동안 미뤄둔 과제로 활활 나를 태우며 밤을 새야겠지.  활활-.  그리고 또 부활할꺼야.
Posted by 토닥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어제 방학하고 첫날.  누리는 오전에 수학 숙제를 했다.  심지어 커피를 마시러 나갈 때도 그 숙제를 들고가서 까페에 앉아 했다.  절대로 시킨 건 아니다.  되려 지비랑 나는 방학 숙제는 방학 끝날 때 하는 거 아니냐며 어릴 때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이런 누리가 적응이 안된다면서.


+

날씨도 쌀쌀한데 자전거까지 끌고 집을 나선 이유는 도서관에 마련된 가전제품 수거함에 한국서 사와서 제대로 써보지도 못한 미니 오디오를 버리기 위해서였다.  누리가 어릴 때 동요를 들려주기 위해서 부러 CD가 있는 미니 오디오를 사왔는데 TV와 간섭현상도 있었고 리모컨이 고장나면서 거의 쓰지 않게 됐다.  그보다 작은 DVD player를 사와서 지금 잘쓰고 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읽던 책을 누리 카드로 대여하려고 하는데 카드가 문제가 있어서 대여가 되지 않았다.  그걸 해결하는 동안 아이가 지루할까봐 도서관에서 일하시는 분이 DVD 하나 골라오면 무료로 대여해주신다고 해서(보통 DVD 3개 대여에 2파운드) 누리가 Zootropolice라는 걸 빌렸다.  나는 Zootopia의 후속편인가 했는데 이 주토피아가 일부 지역에서는 주트로폴리스로 배급됐다고 한다.  영국이 그 일부지역인 모양.
집에 와서 목욕하고, 저녁먹고 앉아서 시청.  영화 초반 주인공 쥬디가 경찰이 되서 집을 떠나는데 그 장면을 보고 누리가 울었다.  당황한 우리는 아니 왜?하면서 물어보니 쥬디가 자라서 부모를 떠난다는 설정이 슬펐던 모양.  아직은, 아직도 그런 게 슬픈가 보다.  그래, 그 슬픔이 언제까지 가는지 봐야지.  부모를 떠나서 슬프다는 그 말을 녹음해둘 껄 그랬나-.( '_');

+
Zootropolice - 기대하지 않고 봤는데 재미있었다.  인종/스트레오타입 같이 가볍지 않은 문제를 재미있게 풀어냈다.  그리고 공포를 조장하는 정치/권위 마저도.  올해 후속편도 나온다니 챙겨봐야겠다.  올해는 라이온킹, 겨울왕국 2편, SING 2편 누리랑 챙겨볼 게 많다.
Posted by 토닥s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후미카와 2019.04.08 16:14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카페에서 공부하는 누리 멋지네요
    아이가 영화를 보면서 눈물 흘리는 감수성이 엄마들은 신기한가봐요^^

    • BlogIcon 토닥s 2019.04.08 20:32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숙제를 즐겨하는 모습이나 부모와 떨어져 살게되는 걸 슬퍼하는 모습이 언제까지 가나..하는거죠.

      언젠가는 숙제를 좋아하지 않지도 않고, 부모를 떠나고 싶어하는 날이 오겠죠? 그걸 아니..지금 모습 신기한거죠.ㅎㅎ

  2. colours 2019.05.10 17:33 Address Modify/Delete Reply

    눈물 터진 누리 너무 귀엽네요 :) 지우도 지난주에 어찌어찌 얼결에 주토피아를 봤어요. 어릴땐 슬픈장면에서 잘도 울더니 ㅋ 지금은 무서운거 나오면 뛰어오거나 눈을 가리고 숨더라고요. 아니 그리고 숙제하는 누리! 오오 너무 대단합니다!!

    • BlogIcon 토닥s 2019.05.11 00:09 신고 Address Modify/Delete

      Sing이라는 영화에 Golden slumbers라는 노래가 있는데요. 누리가 그 노래가 나올때마다 울어서 지비가 화를 낼 정도랍니다. 왜 저 노래를 안빼냐구요.ㅎㅎ
      무서운 걸로 치자면, 누리는 무서워서 미녀와 야수 책도 못읽어요.ㅎㅎ

어제 오후 장도 보고, 누리를 놀이터에서 놀게 해주기 위해 점심을 먹고 다 같이 집을 나섰다.  나가보니 제법 쌀쌀한 날씨.  시간을 줄이기 위해 둘을 놀이터에 내려주고 혼자 장을 보러 갔다.  장보기는 15분도 안되서 마쳤는데 계산대에서 다시 10여 분을 보냈다.  기다리면서 창 밖을 보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해 마음이 급했다.  분명 햇볕이 있어서 집을 나섰건만 영국 날씨가 이렇다.  계산을 마치고 마트를 나가니 빗방울이 더 굵어져 소나기다.  나 같으면 아이를 데리고 나무 밑에서 비를 피하거나 까페에 들어갔을텐데 지비는 마트로 아이를 데리고 오고 있었다.  중간에 만나 둘을 태우고나니 비가 그쳤다.  햇빛 비스무리한 빛도 보이고.  날씨가 뭐 이래하면서 집에 돌아왔다.

둘을 집 앞에 내려주고 차를 주차하러 집에서 1~2분 떨어진 주차장으로 갔는데 굵은 비가 쏟아졌다.  느낌상 오래가지 않을 것 같아서 차에서 좀 기다렸다 가겠다고 문자를 보내고 앉아 있으니 비는 우박으로 바뀌고 점점 세차게 떨어졌다.  갈수록 태산.  이를 어쩐다 - 다시 고민하기 시작한지 1분도 안지나서 우박도 그치고, 비도 그쳤다.  이때다 하면서 재빨리 차에서 내려 집으로 향했다.  저 멀리 하늘이 파란 하늘색이다.  마치 거짓말처럼.

+

지난 주말엔 날씨가 몹시 추웠다.  기온이 낮다기보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그날도 아이를 놀이터에 데려갔다가 필요한 물건 한 두가지가 있어 커피도 마실 겸 상점들이 몰려 있는 리테일 파크로 갔다.  필요한 물건 한 두가지는 내 운동화와 누리가 교복과 입을 타이츠였는데, 맘에 드는 운동화가 없고 누리 타이츠는 사이즈가 없어 빈 손으로 나왔다.  지비만 계획에 없던 자전거용 상의 하의를 샀다.  지비가 옷을 입어보고 계산하는 동안 누리가 발견한 스케이트 보드. 

매장에서 내가 손잡아주고 1~2미터쯤 타본 누리가 스케이트 보드에 푹 빠졌다.  몇 살이 되야 스케이트 보드를 탈 수 있냐고 누리가 물었다.  스케이트 보드라니-.  스쿠터(퀵보드) 다음엔 자전거 타령이더니, 자전거 타고나니 이젠 스케이트 보드 타령인가.  스케이트 보드는 한 번은 깁스(기브스)할 생각을 해야하는 거라 넉넉히 잡고 "열 살!" 불렀다.  내 대답이 성이 차지 않았는지 막 계산을 마치고 온 지비에게 다시 묻는다.  그런데 지비는 "일곱살은 되야지".  누리는 꺄악- 좋다고 난리법석.  6개월 뒤면 일곱살인데 스케이트 보드를 탄다고?  그건 안돼-.(ㅠㅠ )

+

어제 오전 주문한 우쿨렐레를 받았다.  일반배송이었는데 일요일에 도착해서 깜짝 놀랐다.  내가 필요해서 산 건데 누리 손에 들어가 나는 만져볼 기회도 없었다.  결국 튜닝을 하느라 나도 잠시 만져볼 수 있었다.  누리랑 머리 맞대고 인터넷에 튜닝하는 법 찾아 튜닝하고 두 개 코드로 할 수 있는 동요도 불러봤다.  당장 헤치워야 할 일들만 없으면 몇 날 며칠 붙들고 놀 수 있을듯 하다.  기타도 안쳐본 내가 연주(라고 하긴 그렇지만)할 수 있고, 심지어 누리도 할 수 있다.  오늘은 4개 코드로 이뤄진 동요들을 불렀다.

지비는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바이올린은 뒷전이고 우쿨렐레에 빠진 누리가 걱정이다.  뭐가 되도 그걸로 밥 먹고 살 것이 아닌데(혹시 모르긴 하지만), 누리가 즐거우면 그만 아닌가.  물론 두 악기의 비용은 엄청난 차이가 있지만서도.

오늘 4개 코드를 이용해 노래를 불러 본 누리가 연습을 많이해서 올해는 예선을 통과하지 못한 학교의 재능경연에 내년에 나간단다.  그래, 내년까지 꾸준히하면 가능하겠지.  꾸준히-.  악기는 그게 포인트다, 누리야.
Posted by 토닥s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후미카와 2019.03.19 02:02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누리가 너무 행복해 보여요~ 흥이 절로 나나보네요^^

    • BlogIcon 토닥s 2019.03.19 12:34 신고 Address Modify/Delete

      네 정말 좋아해요. 스케이트 보드든 우쿠렐리든. 스케이트 보드는 제가 아직 정이 안가지만 우쿠렐리는 정말 잘 산 것 같아요. 이럴 줄 알았으면 겨울 내내 나가놀지 못할때 즐기게 미리 살 껄 그랬다는 생각이 들 정도랍니다. 하지만, 얼마나 갈런지..ㅎㅎ

  2. BlogIcon 노르웨이펭귄🐧 2019.03.22 13:32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영국도 날씨 참 오락가락하죠. 그래도 날이 많이 풀리긴 했나봐요. 여긴 아직도 눈이 가득 쌓여있어서 얼른 녹기만을 기다리고 있어요 ㅎㅎ
    그나저나 따님이 예체능에 관심이 많나봐요! 이 분야는 어릴적부터 흥미갖고 시작해야 좋은 것 같아요. 우쿠렐레 들고있는 폼이 예사롭지 않아요 :D

    • BlogIcon 토닥s 2019.03.22 16:26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예체능에 관심있는 건 접니다. 못해본 한의 정서. 농담입니다. ㅎㅎ 아이가 좋아해요. 아직은 어려서 운동이든, 음악이든 몸으로 하는 건 다 좋아하는 편이예요. 저희집 아이만 그런게 아니라 요 나이때 아이들이 다 그런게 아닐까 싶고요.

      살면서 혼자서 시간을 보내고, 즐길 수 있는 예술/취미는 하나쯤 있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악기라고 배운 건 피아노 하난데 그건 제약이 많은 악기고. 달랑 들고 다닐 수 있는 악기를 제가 늘 배우거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부모의 욕망을 아이에게 투영시키고..있는 평범함 부모랍니다.ㅎㅎ

  3. colours 2019.05.10 17:37 Address Modify/Delete Reply

    역시 누리는 언니군요! 저희집엔 제 우크렐레가 있는데 아직 지우는 그 존재를 모른답니다 ㅋㅋ 본적도 없고요. 아직 제가 엄두가 안나서 보여주지도 않았는데 누리만큼 크면 괜찮겠지요? :)

    • BlogIcon 토닥s 2019.05.11 00:15 신고 Address Modify/Delete

      다 그것도 한때. 제가 요즘 바빠서 우쿠렐레를 놓으니 누리도 그렇네요.
      아이가 책을 읽게 하려면 부모가 책을 읽으라더니.. 정말 그런가봐요.
      다시 우쿠렐레를 들어야할지, 요즘 틈틈이 읽는 책을 봐얄지 고민되네요.ㅎ

지난 가을에 쓰다만 포스팅이다.  어느 블로그에서 아이의 중이염에 관한 글을 보다  혹시나 누구라도 비슷한 정보를 찾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마무리해본다.  포스팅이 길고, 시간과 표현이 들쭉날쭉 하더라도 이해를-.

+

작년 가을 누리가 리셉션(유치원 격)을 시작하고 거의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결석을 했다.  가을 학기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학교로부터 출석률 저조에 관한 경고 편지를 받았을 정도.  감기에 이어 감기, 감기, 또 감기. 

그 와중에 누리가 12월 쯤 학교에서 청력 검사를 했는데 통과하지 못했다.  감기와 그에 의한 중이염이 영향을 미치기도 하니 3개월 뒤에 다시 청력 검사를 한다는 편지/서류를 받았다.  걱정이 되어도 어쩌지 못하며 재검사를 기다리던 2월의 어느 날 누리가 귀가 아프다고 해서 GP(보건소 격인 1차 의료기관)에 갔었다.  의사는 귀에 염증은 있지만 항생제를 쓸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그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청력 재검사가 있었는데, 역시 통과하지 못했다.  그 뒤에 전문클리닉에 넘겨진다는 편지를 받았고 5월 말쯤 전문클리닉을 찾았다.  전문클리닉에서 다시 검사를 했고, 의사는 Glue ear라며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말로 찾아보니 삼출성 중이염이라고 한다.  고막에 염증이 있고 그로 인해 청력이 낮아진다. 
수술이라는 말에 너무 당황한 나머지 그 자리에서 수술 신청을 하지 않고, 다음날 전화로 답을 주겠다고 했다.  혹시 수술 이외에 방법은 없는지, 수술을 하지 않고 자연적으로 치유될 가능성은 없는지 물었더니 많은 아이들이 3~6개월 안에 자연치유가 되는데 누리는 첫 청력 검사에서 6개월이 지났는데도 염증이 그대로이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치유될 가능성이 낮다고 했다.  나는 이 병을 처음 들어봤고 너무 당황한 나머지 전문가의 입장에서 수술을 하는 게 낫냐고 물었더니 의사는 자신있게  권유했다.  흔한 병이고 수술하면 90~95%가 청력이 회복된다고.  누리의 경우는 청력이 무척 낮아 입술 모양으로 읽으려고 했을지도 모른다고.  청력이 그렇게 낮다는 게 충격이었다.

많은 경우 청력 이상은 아이가 잘 듣지 못할 때, 불러도 응답하지 않는다던지, 발견된다.  청력 저하는 잘 들리지 않으니 학습부진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누리의 경우는 그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아 학교에서 치러진 청력 검사가 아니었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누리가 이 수술을 해야한다고 했을 때 다들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해 했다.  영국의 아이들은 태어나면 그날 혹은 다음날 귀 안에 양수가 빠졌는지 체크한다.  그리고 시기별 발달 체크를 통해 확인하는데, 아예 청력이 없는 게 아니라 평균보다 낮은 정도는 사실 잘 알기가 어렵다.  누리는 학습면에서 그럭저럭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나도 청력에 문제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전문의와의 면담 뒤 지인의 도움을 받아가며 폭풍 검색.  여기서는 정말 종종 들을 수 있는 질환이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이 병을 직접 경험했거나 알고 있었다.  대략 95%는 자연 치유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수술을 하는데 영국처럼 수술같은 처치를 잘 권하지 않는 문화에서 의사가 수술을 권한다면 하는 게 맞겠다는 결론을 냈다.  한국에서는 이 병에 항생제처방을 많이 하는데, 그럴 경우 나으면 다행인데 구조적 문제라면 재발 가능성이 높고 항생제 계속 써야하는 문제가 있다고 한다.  영국에선 일단 자연치유가 안되는 Glue ear는 수술하고, 10살 이전에 재발할 가능성도 있어 두 번 수술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다행인 것은 10살이 넘어기면 잘 생기지 않는다고.

수술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어느 병원으로 가야할지 또 폭풍 검색.  전문클리닉이 소속된 병원으로 갈지, 지인에게 추천받은 다른 병원으로 갈지 고민하다 하루라도 빨리 수술하고 싶은 마음에 클리닉이 소속된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기로 했다.  그런데 그때가 5월 말.  7월에 한국을 가야해서 시기가 겹치지 않을까 걱정하며 9월에 수술을 잡아 달라고 부탁했다.  우리와 상담한 의사는 2~3개월 안에는 수술일 잡히지 않을테니 걱정말라고.  다행인건지, 문제인건지. 

그런데 7월 초쯤 수술날짜가 잡혔다고 편지가 왔다, 그 수술날 일주일도 남겨놓지 않고.  기뻐해야 되는데 그 주말에 캠핑도 잡혀있었고, 한 열흘 뒤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한국을 가야하는 상황이라 수술을 하루라도 빨리 하는 게 좋은지, 여행 뒤에 하는 게 좋은지 고민이 됐다.  또 폭풍 검색.  지인의 조언에 따라 병원에 전화해서 이런 상황에 있으니 수술을 할지, 연기할지 결정하기 위해 담당 컨설턴트와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전화를 받은 리셉션은 의료진이 아니라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래서 수술 연기할꺼냐"고만 반복해서 물었다.  결국은 답답해서 연기를 했다.  사실 혼자서는 완전히 아물지 않은 수술상처를 가지고 영국보다 더운 곳에 가는 게 마음에 걸렸다.  감염 같은 탈이 나기 쉬우니까.  계획했던 물놀이를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  수술을 빨리하면 좋긴 하지만, 수술을 몇 달을 기다리는데 한 두달 늦는다고 문제될 게 있겠냐며 합리화했다.
지나서 생각해보면 잘한 결정이었다.  여름에 한국가서 신나게 물놀이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첫 수술 통지는 일방적인 통보였는데, 다시 스케줄을 잡으면서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돌아와 시차적응하고 2주쯤 뒤로 잡았다.  그렇게 9월 초에 수술을 했다.

+

의료진은 수술은 10분도 안걸리는 간단한 수술이라고 했다.  염증이 있는 양쪽 고막을 잘라/구멍을 내서 작은 관을 넣어 고막의 안과 밖에 공기가 통하도록, 고름을 배출하고 건조한 환경을 유지하도록 하는 수술이었다.  볼펜 심지보다 작은 관은 찢어진 고막이 자연치유되면 빠져나온다고 한다.  간단하다고 하지만 우리에겐 간단해보이지도 않고, 전신마취를 하는 수술이라 누리보다 우리가 더 긴장했다.

입원해서 하는 수술이 아니라 새벽에 공복상태로 병원에 가서 오전에 수술하고, 상태에 따라 2~3시간 회복실에서 마취가 깨면 귀가하는 식이었다.

새벽에 집에서 출발하면서 물 한 모금 먹인 게 전부라 누리가 배고프다고 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아침 7시부터 수술시간인 9시까지 쉴 사이 없이 다른 의료진을 만나고, 설명듣고, 검사하니 누리도 긴장을 했는지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아이에게 아이의 언어로 자신들이 하는 검사를 설명해주고 기구를 만져보게 했다.  아이의 거부감과 두려움을 없애려는 그 노력이 아이와 우리에게 전해져 수술 과정을 잘 이해하고 진행할 수 있었다. 
마취실까지만 부모 1인이 동행할 수 있었는데 우리는 수술실까지 동행해야 하는 줄 알았다.  마취실과 수술실은 문 하나 사이.  비위가 약한 나는 못간다 하고, 지비는 자기도 못간다 하고 서로 양보(?)하다가 누리가 편안해야 하니 내가 동행하기로.  다행히도 마취실까지, 아이가 마취될 때까지만 동행하면 됐다.  마취실에선 의료진이 아이에게 아이패드를 주고 함께 게임을 하는 사이 약을 주입했다.  그 전에 나에게 마취되서 아이가 의식을 잃어도 놀라지 말라고 미리 말해줬다.  그래도 아이가 하하호호 웃다가 눈이 풀리며 잠드는 모습을 보니 당황이 됐는데 살펴볼 사이도 없이 담당자가 나를 마취실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약 용량에 따라 정해진 마취시간이 있으니 빨리 진행하려고 해서 그랬던 것 같다.  수술은 10여 분이지만 마취에서 깨려면 1~2시간 걸리니 대기실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약간 얼이 빠져 있는 나에게 지비가 아침 먹으러 가자고.  별로 먹어질 것 같지 않아 커피랑 크로와상 하나 사들고 다시 대기실로 돌아왔다.  한 시간만에 누리가 마취에서 깨서 회복실로 옮긴다고 말해줘서 누리에게 갔다.  회복실로 옮겨 이후 먹어야 할 약(그냥 해열제/진통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오늘 내일 자고나면 귀에서 피가 나올지도 모르니 놀라지 말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정말 그랬다.  일주일 동안 진통제 이외엔 먹는 약이 없다는 게 놀라웠다.  회복실에서 두 시간 정도 쉬면서 병원식이라고 주는 샌드위치랑 우유를 먹고, 6주 뒤에 수술 후 검진을 한다고 안내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

수술하러 병원에 들어갈 때 지비는 경제적 여유가 있었으면 기다리지 않고 우리가 원하는 시점에 사설 병원에서 빨리 수술을 했을텐데 하며 씁쓸해 했다.  검색해보니 적지 않은 영국의 부모들이 이 Glue ear진단을 받으면 빠른 수술을 위해 사설 병원에서 자기가 원하는 의사에게 수술을 받는 것 같았다.  수술을 조금 앞당길 수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나는 누리가 필요한 처치를 잘 받았다고 생각한다.  의료진도 친절했고 절차도 잘 진행됐다.  시설 또한 내 기대보다 훨씬 좋았다.  다만, 큰 병원이니 거쳐야 하는 절차/단계들이 많았다는 정도가 불편한 점.  주차도 어렵고.  그 병원은 주차도 비싸지만 첼시 한 가운데라 병원 밖 주차도 어려웠다.  하지만, 어린이 수술 보호자는 주차료를 1일 10파운드 정액으로 지불하는 제도가 있어 이용할 수 있었다. 

+

수술 후 정확하게 6주가 지나고 같은 병원에서 검진과 청력 검사를 진행했다.  고막 안에 넣은 관은 그대로였지만 고막에 염증이 많이 해소됐고 누리의 청력은 정상수준이라는 결과를 받았다.  수술 후 6개월 후 검진을 남겨놓은 상태다.  이 검진은 선택이니 받지 않아도 된다고.  그 사이 처음 Glue ear를 진단했던 클리닉에서도 연락이 와서 청력검사를 한 번 더 했었다.  왜 이 클리닉과 수술한 모병원이 정보공유가 안되는지 궁금하지만 영국에선 흔한 일이다(?).  청력은 정상수준보다도 훨씬 좋다는 결과를 받았다.  관은 여전히 고막에 있지만.
중이염을 지속적으로 유발했던 구조를 개선시킨 수술 때문인지, 나이를 한 살 더 먹어서 그런지 지비와 나는 올겨울 누리가 확실히 덜 앓았다고 생각한다.  비록 오늘은 감기에 걸려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

영국에 살면 GP라는 1차 검진기관의 서비스에 대해서 많이 실망하게 된다.  더군다나 각종 예산 삭감으로 검진을 받기까지 예약대기가 더 길어졌다.  보통 3일에서 5일 안에 의사를 만나기 어렵다.  그래서 아이가 아프면 무조건 응급실로 가는 부모들도 있다.  나는 다행히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에 가본 경험은 없지만 아픈 아이를 당장 의사에게 보일 수 없을 땐 불편함이 있었다.  하지만 상급의료기관을 경험하게 되면 1차 검진기관에서의 불편함은 감내 가능한 불편함이 되고, 영국 의료 시스템인 NHS의 열렬한 지지자가 된다.  나는 누리를 이곳에서 출산하면서 왜 NHS가 런던 올림픽 개막 공연에서 영국이 내놓을만한 테마가 될 자격이 되는지 경험했다.  이번 누리 수술을 경험하면서도 마찬가지이다.  뉴스에선 돈 먹는 거대한 공룡쯤으로 비춰지지만, 이 NHS는 기본권과 존엄권을 지키게 해주는 최소한의 저지선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그 소중함을 잘 모른다는 점이다. 
지비는 월급이 작다고 투정하지만 세금(Income Tax)이 많다고, NHS 기여금(National Insurance Contribution)이 많다고 투정하지는 않는다.  이번 수술을 거치면서 지비는 그 많은 기여금도 아깝지 않다고 할 정도였다.  많은 사람들이 NHS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하면 좋겠다.


Posted by 토닥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오늘(3월 7일)은 책의 날 World BooK Day.  나는  이런 기념일이 정해져 있는줄 알고 찾아봤더니 World BooK Day라는 영국 자선단체가 책 읽기를 장려하기 위해 만든 날이자 이벤트다.  International Women's Day처럼 세계적인 기념일도 아니다.

참고 https://www.worldbookday.com/

자선단체에서 만든 날이지만 모르긴 몰라도 영국 전역의 학교에서 이 날을 기념(?)했을테다.  보통 책의 캐릭터로 꾸며입고 학교에 간다.  누리네 학교도 그 중 하나고, 그래서 오늘 누리는 겨울왕국 엘사옷을 입고 학교에 갔다.

2~3주 전 이 World Book Day 일정을 확인하고 어떤 책의 캐릭터로 꾸밀 것인지(사 입을 것인지) 물어봤다.  나는 빨간 모자 아이나 엘리스 같은 캐릭터를 권했는데 엘사옷을 입겠단다.  당연 우리는 그 옷이 없으니 사야한다.  사는 건 문제가 아닌데 치렁치렁한 드레스보다 달랑한 원피스가 편할 것 같아서 엘사는 책 캐릭터가 아니잖느냐 하고 빨간 모자 아이나 엘리스로 설득해보려고 했다.  그랬더니 누리가 "아니야, 엘사 책 있어"하면서 지난 크리스마스에 지인에게 선물 받은 엘사와 아나가 주인공인 책을 찾아들고 왔다.  선물 받은 날 한 번 읽고 잘 읽지도 않더니만-.  그래서 그냥 엘사옷을 사주기로 했다.  마침 쇼핑몰에 World Book Day를 앞두고 30퍼센트 할인행사가 있어 11파운드를 주고 샀다.(^ ^ )

옷을 받고보니 치맛단 안에 원형의 튜브가 들어있었다.  드레스처럼 모양을 만들려고 그랬다는 건 알겠는데 딱 지름 60cm정도 밖에 안되는 원형이라 잘못하면 아이가 넘어지겠다 싶어 치맛단을 뜯어서 튜브를 빼야겠다고 생각했다.  실행에 옮기기 전엔 누리의 허가가 필요해서 물었더니 싫단다. (- - +)
그러다 중간방학 기간 친구네 1박 슬립오버를 갔는데 그 집 아이 옷 중 치맛단에 원형 튜브가 든 것이 있었다.  골디록스였던가.  그 옷을 입고 논 누리가 스스로 불편한 점을 발견했다.  큰 보폭으로 다니기도 어려웠고 앉기도 불편했다.  그 사이를 놓칠라 엘사옷 원형 튜브를 없애자고 했더니 이번엔 누리가 동의했다.  World Book Day 전에, 시간 있을 때 작업(?)해야지 했는데, 역시나 전날이 되서야 마음 바쁘게 작업했다.

내 금쪽 같은 시간을 쪼개서 치맛단을 반쯤 뜯었을 때, 한 1cm만 치맛단을 뜯어 원형 튜브를 빼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ㅠㅠ )..1
튜브가 어떤 구조인지 알아보지 않고 급한 마음에 치맛단을 뜯기부터 한 나를 원망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열~심히 뜯은 치맛단을 다시 꿰맸다.(ㅠㅠ )..2

+

학교에 가서보니 메리포핀, 스파이더맨, 해리포터, 헤르마인, 배트맨, … 참 다양한듯 획일적이었다.  책 읽기를 장려하기 위한 World Book Day라지만 책 파는 사람보다 옷 파는 사람이 더 돈을 많이 벌었을 것 같은 느낌적 느낌.( ' ')a

+

이런 다양한 기획들이 학교를 즐겁게 만들어주기는 하지만, 더군다나 영국의 아이들은 평소에 심심한 교복을 입으니, 부모들을 바쁘게 만든다.  사실 생각보다 비용은 많이 들지 않는다-고 말하려니 나는 누리 하나라서 그렇지 아이가 둘 셋이면 또 다르겠다.
자.. 다음은 또 뭐냐.  Red Nose Day?
Posted by 토닥s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후미카와 2019.03.08 01:19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우와.. 엘사다. 누리가 엄~~ 청 좋아했겠어요 ^^ 우리 조카는 저거 입으면 자기가 엘사인줄.. ㅋ
    치마단에 와이어 빼느라 고생하셨네요 .. 그래도 아이의 안전을 생각하신거니까 조금 시간이 걸려도 1센치가 맘에 걸려도 다 괜찮아요~~ 누리가 웃었으니까 ^^

    • BlogIcon 토닥s 2019.03.08 09:04 신고 Address Modify/Delete

      누리는 겨울왕국이 나온지 십년 쯤 된 작년에야 겨울왕국을 봤답니다. 올해는 겨울왕국2가 나온다는데 말입니다. 뒤늦게 너무 좋아합니다. 다만, 부모된 마음에서(?) 겨울왕국2에서 엘사가 입던 옷 그대로 입고 나오기를 희망합니다.ㅎㅎ
      엘사 아웃핏이 바뀌면 또 사..야..ㅠㅠ

  2. 2019.03.09 15:04 Address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토닥s 2019.03.09 23:33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저희는 늘 같아요. 누리는 쑥쑥 크고, 저는 죽죽 늙..ㅎㅎ
      오랜만에 반갑습니다. 바쁘게 잘 지내셨다고 믿습니다. 두 아이 이야기 자주 볼 수 있기를 희망해봅니다.
      (막 두 아이 소식 보고 왔어요. 시간이 정말 쏜화살입니다.)

지난 주 누리 학교에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모든 아이들은 모든 문화의 대사/대표" 그런 행사가 있었다.  하루 행사가 아니라 주간 행사였다.  처음 이틀은 세계 각국의 언어로 간단한 인사말을 배우고, 학년별/학급별로 서로 다른 전통춤을 배웠다.  자원자가 있는 학급은 학부모가 아이들에게 자신의 나라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간도 가졌다.  그리고 3일째 되는 날은 학부모들을 초대해 이틀 동안 배운 춤을 보여줬다.  이 행사는 저학년과 고학년으로 나누어 진행되서 고학년은 어떤 춤을 추었는지 모르겠지만, 누리 학년인 1학년은 브라질 춤, 2학년은 오스트리아 춤, 3학년은 인도 펀자브 춤을 췄다.    마지막 날은 전통의상이나 국가를 상징하는 색깔의 옷을 입고 아이들이 등교했다.  그리고 이 날은 Cultural breakfast라는 이름으로 학부모들이 보낸 전통음식을 나눠먹는 행사를 학급별로 진행했다.  

+

누리 학교가 특별한 학교가 아니라 모르긴 몰라도 영국 대부분의 학교가 이런 행사를 할 것이다.  영국에서, 잉글랜드와 웨일즈에서 태어나는 아이들 1/3이 부모 중 한 명이 영국 밖에서 태어났다는 통계가 있다.  이 말은 그 한쪽 부모가 외국인이라는 말은 아니다.  많지는 않겠지만 영국인인데 영국 밖에서 태어난 경우도 포함된다.  보수당의 유명정치인인 보리스 존슨도 미국에서 태어났다.  물론 부모는 영국인.
1/3이라는 수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건 런던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의 2/3가 부모 중 한 명이 영국 밖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러니 이런 행사는 사회화와 통합의 차원에서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참고 https://fullfact.org/immigration/parents-born-outside-uk/

+

누리는 작년 친구 결혼식 때문에 산 한복이 있어서 한복을 입고 갔다.  지비는 더러워지면 어떻게 하냐고 걱정했지만, 비싼 한복도 아니고(사실 한국서 여기로 오는 배송료가 비싸긴 했지만) 벌써 작아져 더는 못입을 것 같아서 마음껏 입으라고 했다.  작년에도 이 비슷한 행사가 있어 벌써 한 번 입고 간 경험이 있다.  전체조회 때만 입고 벗을 줄 알았더니 하루 종일 입고 급식도 먹고, 운동장에서 놀기도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아이에게는 한복이나 겨울왕국의 엘사 옷이나 마찬가지인 드레스일뿐.

Cultural breakfast에 나는 시간도 없고, 한국음식 중 아이들이 손으로 집어먹을만한 마땅한 요리가 떠오르지 않아 그냥 딸기를 준비해서 보냈다.

그런데 다른 엄마들 - 주로 외국인 엄마들이 정성껏 음식을 준비해왔다.  파키스탄 엄마는 인도 디저트를, 브라질 남편을 둔 영국 엄마는 포르투칼식 에그 타르트르 미니 사이즈와 잉글리쉬 브렉퍼스트 재료(토마토, 소세지, 버섯)를 넣은 키쉬를, 이라크 엄마는 전통 패스트리를 보냈다. 한 프랑스 엄마는 바게트에 치즈를 넣어 보냈고 다른 프랑스 엄마는 한국에서도 잘 아는 본 마망 마들렌을 보냈다.
어린이집, 리센션을 겪어보니 영국 엄마들이 이런데 참 약하다.  왜 영국이 요리의 불모지겠는가.  앞서 언급한 한 엄마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마트에서 산 컵케이크, 달달구리 디저트를 보냈다.

하교길에 누리에게서 듣자하니 오전에 간식을 너무 많이 먹어 대부분 아이들이 좋아하는 피쉬앤칩스 금요일 급식을 거의 안먹었다고 한다.

하루 종일 학교에서 한복을 입었더니 한복 쭈글쭈글 꼬질꼬질.. 작아져서 올 여름에 가서 새 한복을 사야겠다고 했더니 똑같은 한복 큰 사이즈로 사달라는 누리.  그렇게 좋아하고 즐겼으니 됐다.

+

작년 인터내셔널 데이에 한복을 입었기 때문에 공평하게 이번엔 폴란드를 상징하는 옷을 입혀서 보내려고 했다.  폴란드 전통의상은 수공업으로 만든 경우가 많아 비싸고, 그래서 대대로 물려 입는 경우가 많다고.  주변에 아이들 중 폴란드 전통의상을 가지고 있는 경우는 엄마들이 입던 옷이다.  우린 그런 게 없으니 축구티셔츠를 살까, (나이키에서 나온 것이라)비싸긴 하지만 평소에 운동복으로도, 여름 옷으로도 쓸 수 있으니 사자고 지비랑 식탁 너머로 이야기 나눴다.  문득 누리에게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국옷 입을꺼냐, 폴란드옷 입을꺼냐고 물었더니 한국옷 입는다는 누리.  지비는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나이키 티셔츠 안사도 된다는데서(돈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데서) 위안을 찾았다.  나는 국가주의 를 경계하는 사람이고, 지비는 혹여나 해코지 당할까 국가를 상징하는 옷을 입지 않는다.  지비도 (그 나이키 축구 셔츠)하나 사서 한국 휴가 중에만 입었다.  월드컵 때랑.  그래서 누리에겐 폴란드를 상징하는 옷이 하나도 없다.  이번에 폴란드에 가게되면 하나 사와야겠다.

+

사실 평소에도 누리는 "우리집엔 두 명의 한국사람, 한 명의 폴란드사람. 두 명의 여자, 한 명의 남자" 이런 말을 하곤 한다.
누리가 한국을 좋아하니 나도 좋고.  물론 누리에게 '한국=휴가=할머니&이모들&이모부=내 맘대로' 이런 공식이 있어 그런 것이긴 하지만.
Posted by 토닥s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후미카와 2019.03.05 05:50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한복이 핑크색. 핑크 가방과 딱 맟춤!! 누리가 핑크를 좋아하는군요. 하긴 저 나이때는 다 핑크빛이죠!! 너무 예뻐요 ^^ 작아질것 같아서 맘껏 입으라 하셔서 누리도 편하게 입고 다녀왔겠네요.

    • BlogIcon 토닥s 2019.03.05 11:53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아이가 핑크색을 좋아해요. 지금보다 더 어릴 땐 핑크색을 전혀 사주지 않았더니 공동체 생활을 시작한 후 다른 아이들의 옷을 보고는 선호하게 됐어요. 핑크를 피해가려다 부작용이 난 셈이지요.
      사실 여자이이들 옷에서 핑크 아닌 걸 찾기가 더 어려워요.

      한국 인터넷 쇼핑몰에서 산 옷이라 막 입어도 될만큼 저렴한데.. 보기는 그래보이지 않는 모양입니다. 남편은 더러워질까 걱정을..ㅎㅎ. 다른 나라의 전통 의상들은 수공업을 통해 만들어진 게 많더라구요. 폴란드도 그렇지만, 인도나 아프리카도. 그래서 비싸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아요.

  2. 2019.03.05 15:57 Address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토닥s 2019.03.06 10:07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아직도 늦지 않..았..(^ ^ );

      아들이 딸처럼 다정한데 뭐가 부러우세요. 저만 돌아봐도 무늬만 딸인 저보다 다정한 아들이 더 나아요. 핵심은 딸아들 구별 없이 '다정함'이죠.

오늘 누리 학교 마치고 학부모면담을 갔다.  여기서는 주로 방과 후에 진행하고 Parent's evening이라고 한다.

학교에 따라 다른지 모르겠지만, 별반 다르지 않을꺼라 생각하지만, 누리네 학교는 학년 중 두 번의 학부모면담을 진행한다.  가을학기 중간 방학이 끝나고, 봄학기 중간 방학이 끝나고 그렇게 두 번 진행한다.  유치원격인 리센셥에서의 두 번의 면담과 1학년에서의 두 번의 면담을 되짚어보면 학년 중 첫번째 면담은 새학년 적응과 아이의 (학습과 발달)상태를 들을 수 있었고, 두번째 면담은 첫번째 면담 뒤 성취/발전을 들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누리의 학교 입학을 앞두고 지인이 그런 조언을 해줬다.  학부모면담에 가면 좋은 이야기만 하니 그런데 녹지말고(?) 질문을 많이 준비해가라고.  그때는 그야말로 누리가 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이라 그 말의 느낌을 알 수 없었다.  경험해보니 정말 좋은 말만한다.  리셉션 학부모면담에 두 번 참여한 뒤 더 이상은 가지 않는 지비와 나는 그런 걸 두고 Britishness라고 이야기나눴다.  영국 사람들의 전형/정형.

영국 사람들은 면전에선 좋은 말만한다.

어떤 사람들, 이런 걸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영국 사람들이 겉과 속이 다르다고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좋은 말만 하는 건 겉과 속이 다른데서 오는 게 아니라 언어에서 오는 습관이자 문화 같다.

영국에 처음와서 놀라고, 속마음을 나눌 수 있는 영국인들과 혹은 인종차별의 테두리를 넘어 사람들의 전형성에 대한 농담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 중에 하나가 영국인들의 인사습관이다.

영국인들은 매일 "How are you doing?"하고 첫인사를 건낸다.  인사를 받은 사람은 "I am fine. Thank you. And you?"하고 답하고 되물으면 첫인사를 건낸 사람은 "I am fine. Thank you."하고 답한다.  내가 놀란 점은 나는 이런 대화가 영어교과서에만 존재하는줄 알았는데 정말 매일 같이 이 대화를 나눈다.  영국에 처음 왔을 때 영어학원 선생이 그렇게 물으면 나는 그날그날 기분과 상황에 따라 "I am fine/good/so so/no good"하고 답했는데 so so/no good이라고 대답하면 무슨 일이냐고 아주 걱정스럽게 되물어오곤했다.  이 사람들에게 No good은 bad다.  기분이 별로면 Good이라고 하는 정도.

이쯤에서 학교시절에 배운 영어를 떠올려보면 영어에서는 단정적으로 I don't like라는 표현보다는 간접적으로 I don't think I like라는 표현을 쓴다고.  또 한국에서 영어를 배울 때 '좋아하다' Like의 반댓말로 dislike/hate로 외웠는데 여기선 그런 단어는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라 '혐오'에 가까운 느낌이다.  미국은 어떤지 모르지만 영국에선 혹은 내가 느끼기엔 그렇다.

그런 언어습관이 몸에 배여 좋게, 순화된 표현으로 말하는 것일뿐 겉과 속이 다른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얼마나 몸에 배인 습관이냐면 - 예전에 지비의 직장상사가 다른 도시에 있는 사무실과 전화 통화를 했다고 한다.  일반적인 How are you? I am fine. Thank you. And you? I am fine. Thank you.로 시작해서 일 이야기를 이어가던 중 통화상태가 나빠 전화연결이 끊어졌다고.  10초도 안되서 상대방이 전화를 걸어왔는데 다시 How are you doing?하고 첫말을 내뱉는 직장상사의 목소리를 듣고 지비 혼자서 폭소할뻔 했다고 한다.

+

다시 학부모면담으로 돌아가서-.  누리가 집에서는 나이보다 어리게 행동하는 반면 학교에서는 큰 키만큼이나 자기 할 몫 이상을 잘 해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좋은 말만 둥글둥글 할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아주 디테일하다.  1학년에서 성취해야하는 어휘 수가 있는데, 보통 말하기와 글쓰기를 통해서 측정하는 것 같다, 누리는 그 수준에 이미 도달했고 수학에 있어서는 구구단 2단과 10단을 할 수 있고 - 그런 식이었다.
성격적으로 여전히 부끄러움을 많이 탄다고 한다.  다른 아이들은 몰라도/틀려도 경쟁적으로 손들고 말하는 편인데 누리는 수학문제를 풀고 답에 도달해도 선생님이 묻지 않으면 말을 하지 않는다고.  부모도 그런 사람이니 그런 성격이 어디서 왔는지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누리에 대한 걱정/고민/질문이 없냐기에 누리가 가족과의 게임에서도 지면 감정을 못다스리고 운다고 했더니, 누리는 승부욕이나 경쟁심이 강한 아이라기보다는 성취도가 높은 편이여서 실패를 경험하지 않아 그런 것이니 더 실패를 경험하도록 할 수 밖에 없다고 조언해주었다.

요즘 아이들의 발달을 관찰/기록하는 과정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기록 방법에 '객관적으로 & 성취를 중심으로 표현'한다고 되어 있었다.  오늘 면담의 내용이 얼마 전 읽은 발달의 관찰과 기록 방법에 딱 맞았다.  예를 들어 아직 아이가 구구단 3단까지 못한다가 아니라 2단과 10단을 '할 수 있다'는 표현이 그렇고 아이의 어휘가 몇 개 단어 이상을 '쓸 수 있다'는 표현이 그랬다.

+

영국 방식 vs 폴란드 방식 vs 한국 방식

지난 1월엔 누리의 폴란드주말학교 학부모면담이 있었다.  면담에 갔던 지비는 주말학교 교사가 이야기한 누리가 할 수 없는 부분, (여기서도 역시)실패를 두려워하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이야기가 주(요)였던 점을 생각하면, 영국의 방식과 폴란드의 방식이 참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주말학교 교사들은 전문교사들이 아니지만.  폴란드의 방식은 우리가 자라면서 관통했던 방식과 참 닮았다.  채찍질 스타일이라고 해야하나.  물론 지금의 한국은 우리가 겪었던 방식과는 다르다고 믿고 싶다.
영국의 (공)교육은 한국에서 실패한 교육의 대명사로 종종 등장하고, 영국에서도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다.  이곳 사람들은 한국이나 일본, 중국, 싱가포르 같은 동아시아의 방식이 괜찮아 보이는 방식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때마다 '그 사회'에서 온 사람으로써 "그래도 이 곳의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싶어 하잖아.  그럼 됐지."라고 답해준다.
학업성취 뭐 그런 건 모르겠고, 누리와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싶어한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영국 교육은 그럭저럭 괜찮은 교육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중고등학교 학교와 교육은 좀 다른 측면이 있지만.  적어도 초등교육만큼은 지역을 떠나 스탠다드는 괜찮다..고 생각하고 & 그렇게 믿고 싶다.

+

 
학교에서 The Jolly Postman을 읽고 그린 그림.

학부모면담은 10여 분만에 끝났는데 누리가 학교에서 하는 영어, 수학, 과학, 프로젝트 노트를 모두 보여주고 싶어해서 그걸 보느라 교실 밖에 한 30분 더 머물렀다.  예전에 한 한국인 부모는 아이가 영국 학교에서 뭘 배우는지 모르겠다, 놀기만 하는 것 같다라고 썼는데 오늘 한 학기 반 동안 한 것들을 보니 나는 교사와 보조교사가 한없이 존경스러워졌다.  이 많은 것들을 어떻게 했을까..하면서.  정말 대단 & 존경 퐁퐁.
Posted by 토닥s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19.03.02 22:24 Address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토닥s 2019.03.03 01:10 신고 Address Modify/Delete

      누리는 성취욕까지는 없는 것 같아요. 좀 무른 성격, 다만 부모를 닮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인데 그 스트레스도 스스로를 견인하는 자극이 되도록 해줘야 할 것 같아요. 하지만 어떻게?는 잘 모름.ㅎㅎ

      스포츠가 성취와 상실(실패)를 건강하게 경험하기 좋은 도구가 아닐까 싶은데요. 누리는 스포츠라고는 자전거 타기 발레가 전부니.. 아.. 그건 스포츠가 아닌가..ㅎㅎ 팀스포츠가 좋은 것 같아요. 그래서 초상류 아이들은 말타고 폴로.. 하잖아요..ㅎㅎ

      사립은 특별한 방법이 있기보다 아이들의 수가 작으니 케어가 가능한 게 아닐까 싶고요. 학업은 집에서 보충할테니 학교에서 커뮤니티, 사회성 같은 걸 중점적으로 할 것 같은 느낌적 느낌. 저도 사립은 안가보니 모르네요.ㅎㅎ

  2. BlogIcon 후미카와 2019.03.03 02:10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How are you 안쓴다던데 영국은 흔하게 쓰는군요 교과서 만들때 영국에서 만들었나봐요??

    • BlogIcon 토닥s 2019.03.03 10:33 신고 Address Modify/Delete

      How are you? How are you doing? 많이 쓰죠. (Are)you all right? 라는 인사도 많이 쓰고요.

      제가 중학교 땐( 중학교 들어가야 영어를 처음 배운 세대라) How do you do?라고 인사한다고 배웠는데요. 그 표현은 전혀 안쓰는 것 같아요.ㅎㅎ

      영어가 영국에서 왔으니..ㅎㅎ
      물론 요즘엔 미국의 영어가 영국으로 들어옵니다. awesome이 그런 단어라고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