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4월 16일
런던일기/2015년 2015.04.17 00:30 |오늘 아침 페이스북을 열어보니 2년 전 오늘 사진을 꺼내 추억을 나누란다. 문득 누군가의 타임라인에도 1년 전 오늘을 기억하라고, 2년 전 오늘을 기억하라고 이런 메시지가 떴을 것이라 생각하니 이 페이스북이 참 눈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조용히 지나가려던 오늘 말문을 열었다.
2년 전 오늘 큐가든에 갔다. 이 땐 회원권이 없었을 때인데 이웃의 아이 엄마의 초대로 봄맞이 겸 산책을 갔나보다.
우연히 2015년 4월 16일 오늘도 큐가든에 갔다. 날짜를 고른 게 아니라 만나기로 한 친구의 휴일에 맞춘 것일 뿐이다. 친구는 일터의 혜택으로 무료입장이 가능하고, 나는 회원권이 있어 언제 한 번 가자 가자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게 오늘이 되었다.
출입구에 놓여있던 화분 앞에 서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가가 꽃 향기를 킁킁 맡는 시늉을 하는 누리. 보는 눈만 없었으면 잡아 뜯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모습이 우스웠던지 마침 화분을 돌보고 있던 가드너 아주머니가 누리한테 좋아하는 색을 고르라고 했다. 한 송이 잘라준다고. 처음에 괜찮다고 사양했더니 '한 송이'는 괜찮다고 다시 권한다. 솔직한 마음으로 아까운 꽃을 버리게 될 것 같다고, 고맙다고 다시 말했다. 그랬더니 가드너는 상상이 된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손을 흔들며 안으로 들어갔다. 햇살만큼이나 따듯한 가드너 아주머니 때문에 미소를 머금고 친구를 기다릴 수 있었다.
튤립이 철인지 정말 예뻤다.
환한 마음으로 이 좋은 봄날에 이쁜 꽃을 보고 있으면 계속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그것 마저도 끝까지 좋을 수 없는 그런 날이었다. 천방지축 화단을 가로지르며 친구와 숨바꼭질을 하는 누리의 환한 미소를 보는 게 미안했다. 두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2013년과 2015년 같은 날 큐가든에 갔다는 사실은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것도 같다. 하지만 2014년의 오늘은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잊어서도 안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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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고맙습니다. 그리고 반갑습니다.

잊지 말자는 말은 스스로에게 하는 말로써의 의미가 더 크답니다. 이제 두살 반 된 누리와 투닥투닥 하루를 보내다보면 세상 흐름에 많이 둔감해진답니다. 특히나 이곳에 살다보니 더욱. 그러지 말아야지요.
세월호 아이들과 같은 나이의 딸님을 두셨으니 한참 선배님이시네요.
아.. 전 언제나 누리와 여행을 할 수 있을지. 그 날이 무척 기다려집니다. 다시 한 번 말씀 고맙고, 반갑습니다.